무협/SF

色魂 無影客! - 4부 10장

본문

스르륵!


창문이 열어 젖혀졌다. 이른 아침의 한 가닥 춘풍이 불어와 창문에 걸친 벽사를 나부꼈다. 창문으로 보이는 정원에는 기화요초들이 제철을 만나 만개하였다. 금작아(金雀兒), 창포(菖蒲), 난초(蘭草), 산다(山茶),매화(梅花), 목단(牧丹), 목련(木蓮)등 꽃봉오리마다 저마다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




그러나 바라보고 있는 설 무영의 마음은 우울했다. 그는 지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그는 소류진에게 태음화강진록(太陰花 眞錄)을, 전도련에게는 봉황쌍후 백봉황의 취혼화음공(取魂花陰功)비급을 주어 각각 무공수련에 들어가게 했다. 그녀들이 없는 공간이 어쩐지 쓸쓸하다. 그러나 그는 외롭게 태어나 자란 습관에서 고독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정룡으로 인해 참선옥에 있는 유끼꼬였다. 아직까지 도화성의 그 누구도 은비살의 본명이 유끼꼬이고 여인인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가여운 여인......!"




설 무영도 유끼꼬의 자신을 향하고 있는 애절한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녀는 항상 채워지지 않았던 행복을 갈구하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녀 못지않게 그녀에 대한 애정은 지극한 것이었다.




허지만 그에게는 이미 그를 의존하는 세 여인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의존하려는 여인들이 버거워서가 아니었다. 설 무영 자신이 유끼꼬에게 의존하고 싶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의존하고 싶은 대상이 체구가 작은 여인인 유끼꼬라는 것이 안타까워 애정을 느끼면서도 차라리 놓아주고 싶은 여인이었다.




"차라리 길정학의 정인(情人)이 될 것이지.......!"




무심히 뇌까리던 설 무영의 시선이 허공을 향하였다.




푸드득!




한 마리의 전서구가 창문으로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 무영은 전서구의 발목에 매달려 있는 두통의 서한을 풀었다.




무영도존(無影桃尊) 전배(前拜)


첫째, 아수천으로 보이는 유력한 종파 라마흑사천(喇麻黑邪天), 천마성(天魔城), 북두마궁(北斗魔宮)의 본거지를 발견하였음.


둘째, 강호무림의 여인들이 연달아 실종되고 있음.


셋째, 중원무림에서 아수라에 대항하는 정의무림수호연맹(正義武林守護聯盟)을 청해성 곤륜산에서 유월 초파일에 조직한다고 함. 일명 정수맹(正守盟)에는 정, 사, 마의 모든 종파가 합류하고 새로운 종파들도 대거 참여하며 정수맹의 군단을 조직할 성산(聖山) 비무대전(比武大典)이 열릴 예정임. 




서한의 말미에는 검은 장문(掌紋)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공비하문을 뜻하는 표식이었다. 설 무영은 침중한 표정으로 교탁의 서랍을 열고 또 다른 서한을 펴들었다.




무영도존(無影桃尊) 전배(前拜).


일금 백만 량의 살수청탁이 들어옴. 청탁자는 아수라의 지부천(支部天)으로 보임.


살수대상자.


정수맹(正守盟)이란 회합에 참가하는 무림종파의 장문인 일십이 인.


소림사 자허선사(慈虛禪師), 남궁세가 천검일학(天劍一鶴). 서천도성 파천도군(破天刀君). 뇌황궁 뇌황성군(雷皇聖君)...... 




일십이 인의 명부가 적힌 서한의 말미에는 야래향의 비표인 꽃잎이 검게 찍혀 있었다.




설 무영은 새로운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곤륜산에는 곤륜파가 있었고, 곤륜이라함은 중원의 도가무학(道家武學)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뿌리가 깊고 또한 역사가 오래 된 무림문파(門派)이다. 가히 도가무림의 최고봉(最高峰)이라고 할 만큼 높은 명성(名聲)을 지니고는 있으나 당금 무림맹의 맹주는 소림의 자허선사이거늘 어찌하여 정수맹이라는 미명아래 곤륜의 본거지에서 새로운 맹주를 뽑는다는 것인가.




살수청탁 대상자들은 당금 무림의 절대종사자들인데 정수맹의 모임과 아수천의 살수청탁과는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직시할 수 있었다. 또한 아수천의 본거지로 보이는 세 종파는 현 중원의 가장 사악한 사도종파인 것이다. 




설 무영은 내막을 파헤칠수록 고도의 음모가 서려 있음을 느끼고는 아수천의 잔학성에 몸서리를 쳤다. 두 개의 서한을 움켜 쥔 설 무영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지필묵을 꺼내놓고 생각에 잠겼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춘풍이 그의 머리카락을 길게 휘날리게 하였다.




설 무영의 두 눈에 결연한 안광을 뿜더니 한지위에 글을 적기 시작하였다. 글을 적은 두개의 서한을 각각 전서구에 묶었다.




푸드득!




두 마리의 전서구가 날개를 퍼덕이며 높은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의 시선은 까마득히 사라지는 전서구를 한동안 쫓고 있었다.




지하 석실.


자연 암동을 인위적으로 다듬어 만든 도화성 지하의 참선옥이다. 가재도구는 없지만 정결함으로 따진다면 석옥이라고 하기 보다는 면벽하는 장**고 부르는 것이 알맞을 듯하다. 그러하기에 참선옥이란 명칭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




설 무영은 두 평 남직한 석옥을 막고 있는 철창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철창 안에서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사람은 유끼꼬였다. 그들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마주하고만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도 한 다경의 시각이 흐른 것이다.


침묵을 깨고 설 무영이 입을 열었다.




"아픈 곳은 없나?"


"네! 주군........"




유끼꼬의 음성이 떨려 나왔다. 설 무영의 정감어린 한마디가 유끼꼬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 것이다.




"나는 곤륜산의 회합에 다녀온다......."


"속하는........?"




유끼꼬가 고개를 들어 설 무영을 바라보았다. 유끼꼬의 애련한 눈빛을 마주한 설 무영은 냉정해지려는 듯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을 하였다.




"그동안 무공을 수련하고, 수련이 끝나면 처소에서 기다리도록. 옥문은 열어두도록 하겠다."


".......!"




설 무영은 품안에서 책자 한권을 불쑥 유끼꼬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받아든 책자는 태허법천비급(太虛法天秘級)이었다. 그녀를 힐끔 쳐다본 설 무영은 뚜벅뚜벅 석옥을 걸어 나갔다. 석옥 밖에는 소류진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정수맹의 회합에 그가 소류진과 같이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무공 수련을 마친 그녀가 모처럼 모란장원을 둘러보고 싶다면서 간청하였기에 설 무영이 승낙한 것이다.




곤륜산(崑崙山).


장강(長江)과 황하(黃河)가 시작하는 지역의 청해성(靑海省)에는 내륙호수인 청해호(靑海湖)를 비롯한 수많은 호수들이 있고, 동쪽으로는 황토(黃土)고원이 서쪽으로는 청장(靑藏)고원이 있다.




서북부에는 자달목(紫達木)분지가 있고, 동남부는 추운 목축지이다. 이곳에는 작은 산들이 솟아있고 얼음봉우리가 나무처럼 서있으며 남북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성산(聖山)이 있다. 이곳이 산중에 불사(佛事)의 물이 흐르고 선녀인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는 전설과 함께 도가무학(道家武學)의 태두(泰斗)인 곤륜파가 있는 곤륜산이다.




정파무림의 태산북두가 소림이라면 중원(中原) 도가무학(道家武學)의 태두인 것이 곤륜이다.


그 계곡으로 들어갈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봉우리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고.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산의 절경은 신선이 좌선하고 있는 듯 위압감마저 느끼게 한다. 곤륜이 있는 절곡에 이르면 울창한 숲 사이로 전각들의 용의 형상을 한 처마 끝이 하늘을 치받듯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산문(山問)을 들어서면 양쪽으로는 심신일도(心身一道), 구법망구(求法亡軀)라는 글귀가 깊게 패인 거석이 우뚝 솟아 있었다. 동녘에 해가 솟은 지 얼마 안 되는 이른 시각이건만 산문에는 많은 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세인들의 복장은 형형색색이었으나 대부분 무복이나 경복차림으로 안광이 형형하여 무술을 하는 무인임을 알 수 있었다.




성산무림대회(聖山武林大會).


오랜 분란의 시국에 모처럼 열리는 무림대회인지라, 무인들뿐만 아니라 세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세인들은 무인들이 지나칠 때마다 호기심어린 눈길로 쳐다보다가 조금이라도 안목이 있으면 탄성을 지르곤 하였다.




"와! 공동파의 속가제자 용하린(龍昰隣)이다."


"저기…! 저 사람은 건곤일상(乾坤一常) 제도륜(齊桃輪)이 아닌가?"




그들은 저마다 아는 식견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무인들이 인파를 헤치고 산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주… 중원삼미다!"




한 세인이 무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세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사 남 사녀의 무리, 그들은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두 노도인과 호남형의 미청년 그리고 궁장차림을 한 노여인 사이에 유난히 눈에 뜨이는 경국지색의 세 아름다운 경장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취라백궁(就羅帛宮)과 용란궁(龍卵宮)의 가솔들이었다. 취라백궁(就羅帛宮)의 궁주 취선진후(就扇眞后)와 수제자 취선옥녀(就扇鈺女) 진소랑(振笑浪). 용란궁(龍卵宮)의 궁제(宮帝) 진제송(振濟松)과 그의 영애 용선옥면(龍扇玉面) 진소이(振笑姨). 용란궁(龍卵宮)의 가신(家臣) 수호광(壽昊光)과 영애 은하비선(銀霞妃嬋) 수여빈(壽汝嬪).




그녀들의 자태는 세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세인들은 곧 그들 무리의 뒤를 이어 들어오는 일남일여에게 시선을 주목하였다. 곤륜산의 입구를 유유 작작 걸어 올라오고 있는 한 청년과 여인이 있었다. 일남일녀의 모습은 마치 눈이 부시도록 흰 백학(白鶴) 한 쌍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백립사이로 관옥(冠玉)간이 빛나는 영준한 용모와 오체가 늠름한 풍채에 백포를 두른 청년과 짙은 속눈썹이 드리워진 추호(秋湖)같이 맑은 눈동자, 윤기가 흐르는 백옥 같은 피부에 청초한 옥잠화를 연상케 하는 경국지색의 봉옥, 한줌밖에 안 되는 세류요(細柳腰)의 허리, 백색 궁장을 걸친 나비 같은 자태(姿態)의 여인이었다.




세인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넋두리 하듯 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란장원의 소(昭) 낭자 아냐......?"




세인들은 모란장원이 폐허가 된 후 사라진 줄 알았던 설난미화(雪蘭美花) 소류진(昭流珍)이었던 것이다. 앞서가던 취라백궁과 용란궁의 가솔들이 세인들의 시선이 향하는 뒤쪽을 향해 돌아섰다.




".......?"




그들 중 소류진의 옆에서 걷고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향한 은하비선 수여빈의 봉목이 순간 반짝이었다.




"무영 대협…? 그가 어찌 소류진과........!"




그렇다. 소류진과 같이 걷고 있는 청년은 설 무영이었다. 설 무영과 소류진은 세인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산책을 하듯이 느슨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영 대협 아니세요?"




그들 무리 중 그를 알아본 여인 진소랑이 반색을 하였다.




"아! 진 소저이셨군요."




답변하는 설 무영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흘렀다. 설 무영이 그들 일행을 살폈다. 설 무영의 눈길이 수여빈과 마주치자 그녀의 봉옥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설 무영의 앞에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쳐 보였던 순간이 떠 올렸던 것이다. 설 무영이 그녀에게 먼저 아는 체 하였다.




"수 소저께서도 오셨군요!"


"네.......!"




수여빈은 설 무영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들 사이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대단한 잠룡인데....... 우리 랑아가 어찌 아는 사이지?)




노여인 취라백궁(就羅帛宮)의 궁주 취선진후(就扇眞后)가 설 무영의 전신을 훌어보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모르던 인물인데........"




용란궁의 궁제 진제송이나 가신 수호광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킁~!"




진소이가 콧방귀를 뀌듯 비소를 흘렸다. 진소이는 자신도 모르게 설 무영의 가슴에 안겼던 기억을 떠올렸다. 진소이는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을 지우려는지, 아니면 여인내의 질투인지 그녀는 비아냥거리는 눈초리로 소류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류진은 그들에게는 무심한 표정으로 설 무영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에 잠겨있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었는데 설 무영이 다른 여인들과 안면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설 무영은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설 무영은 환한 미소를 보내고는 그들 무리를 지나 앞서갔다. 뒤쫓아 가던 소류진의 입술이 뽀로통하게 내밀며 설 무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느새 중원삼미와 친교가 있었지.......?"


"그냥 우연한 기회에........"




설 무영이 힐끗 소류진을 바라봤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봉목이 흘겨보고 있었다.




"그동안 바람피우고 다녔나봐.......!"


"아닌데 단지 봉변을 당하는 그녀들을 도와주었을 뿐인데........"




공연히 설 무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거짓말…! 흥!"




소류진의 입술이 삐죽 내밀어졌다. 세인들에게 요조숙녀라는 칭송을 듣던 그녀도 이성에 대한 질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중문을 들어서려는데 세인들이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이 세인들 사이를 빠져나와 걸어 들어가려는데 회포를 두룬 한 도인이 두 손을 모아 예를 하며 그들 앞을 가로 막았다.




"어느 문파의 고인이신지......! 등록명부에 가입 신청하시지 않으시려는지요."




성산무림대회에 참석하려는 세인들은 등록을 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등록을 하여야 정당한 무림종파로 인정을 받는 절차였다. 설 무영과 소류진은 세인들이 모여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소류진이 필묵을 받아들고 명부에 일필휘지로 적어갔다.




종파: 도화성(桃花城).


종사: 성주 무영도존(舞影桃尊) 설 무영(渫霧影)


참석자: 무영도존(舞影桃尊) 설 무영(渫霧影). 설난미화(雪蘭美花) 소류진(昭流珍).




여기까지 적어 놓은 다음 소류진이 설 무영을 처다 보았다. 성산대전 참가자를 적어 넣는 항목이 있었던 것이다. 정수맹에 가입되는 각종문파에서 각출된 수호군단이 구성되고, 군단은 삼개의 기대(基隊)로 이루어진다. 성산대전에서는 비무(比武)를 통하여 수호군단을 이끌어갈 잠룡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문득 설 무영이 소류진에게서 필묵을 받아들고 빈난을 메웠다.




성산대전 참가자: 무영객(無影客).




등록을 마친 설 무영은 등록 명부를 들여다보고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




의아하게 여기는 소류진은 설 무영의 마음을 모른다. 분명히 그가 성산비무에 참여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등록을 한 것이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려니 하고 따를 뿐이었다. 그들은 유유히 발걸음을 옮겨 중문 안으로 들어섰다.




중문과 곤륜의 전각들 사이는 초지로 된 광대한 광장이 펼쳐저 있었다.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광장 전면과 좌우에 층층이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석단에 앉아 있거나 대회장을 오락가락하였다.




대회장 중앙에는 성산비무대회를 위한 여섯 개의 비무대(比武臺)가 설치되어 있었고, 전면의 석단에는 대회를 주관하는 사람들과 초청 객들을 위한 연단위에 천막과 아울러 정의무림사수연맹과 성산비무대전이라는 깃발이 펄럭였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쑥덕이고 있는 광장 주변에는 곤륜산을 거슬러 불어오는 남풍에 오색기와 번들이 나부끼고 있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광경은 대회를 앞두고 대회장을 준비한 세심한 사전 배려가 들어나 보였다.




설 무영과 소류진은 오고가는 세인들 사이를 지나 동쪽 연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회장 곳곳에는 각 종파를 대표하는 무림인들이 저마다의 생각에 사로잡혀 대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도(正道)의 소림사, 공동파, 화산파, 종남파등 구파일방(九派一房)과 개방의 당주 방천공(房天公)을 비롯한 개방 가솔들과 남황문(南荒門), 사천당문(四川唐門)등 중원무림의 정통성을 갖은 종파의 고수들의 모습과 백혼쌍마괴(魄魂雙魔傀)인 지마괴와 천마괴를 비롯한 보타문(普陀門), 사천당문(四川唐門) 등의 독문종파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서쪽 석단에는 취라백궁(就羅帛宮)의 궁주 취선진후(就扇眞后), 진소랑(振笑浪), 진소이(振笑姨), 수여빈(壽汝嬪)등 여인들의 자태와 취라백궁(就羅帛宮)과 용란궁(龍卵宮)의 가솔들의 모습이 보였다. 설 무영의 옆에 앉아있는 회포와 황포의 두 사나이가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회포의 사나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삼잠 삼마룡(三潛三魔龍)이 다 모였군."


"삼잠 삼마룡이 누군데......?"


"이런 아직도 그걸 모르나?"


"요즈음은, 걸출한 무인들이 많으니까...!"


"정도의 삼잠룡으로는 무당(武當)의 고혼신룡(枯魂迅龍), 남궁세가(南宮世家) 소가주 남궁종(南宮宗), 천검성(天劍城)의 소성주 능서문(凌瑞雯)......."


"그리고…?"


"마도의 삼마룡인 천마성(天魔城)의 천마비랑(天魔飛郞), 미라혈전(彌羅血殿)의 미라철마(彌羅鐵魔)......."




회포의 사나이가 잠시 말을 멈추자 황포의 사나이가 궁금하다는 듯 재촉하였다.


"또 한 사람은......?"


"글세, 세인들은 흑풍야차(黑風夜叉)라고도 하는 흑설매(黑雪梅)라는군."


"그가 마도인가?"


"글쎄, 정도라는 사람도 있고......."




사나이들의 말에 소류진이 미소를 띠우며 설 무영을 바라보았다. 설 무영은 빙긋이 미소를 지을 뿐 그들의 말에 무감각한 표정이었다. 다시 그들의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술시(戌時)가 지나 해시(亥時)인데, 삼존삼마황(三尊三魔帝)도 안 보이고 시작할 낌새도 없네......."


"글쎄…! 더 있어야 시작하려나?"




그들의 말이 그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빨리 시작해라!"


"너무하잖아! 기다리게 해놓고 주최 진은 나오지도 않고......."


"뭐야! 이거, 사람 취급도 안하네......."




쑤군거리던 세인들은 급기야는 아우성이 난무하였다. 그때 곤륜의 한 도인이 연단에 올라서서 고소성으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 곤륜의 장문인 무진도장께서도 정도맹의 맹주와 마도맹의 맹주로부터 통보를 받고 대회장을 준비한 것뿐입니다."




내공이 심후한 사자후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 술렁거렸다.




"뭐야! 그럼 마냥 기다리라는 거야?"


"아니 중원 만 리 온 사람도 있는데, 너무하네."


"이건 사람들을 농락하려는 건가?"




이때 연단 맞은편에서 키가 구척 같은 장한이 벌떡 일어나서 고성을 질렀다.




"그럼, 마냥 기다리란 말이오?"


"이것은 무림에 문제가 있던 일입니다. 오년 전 쌍암의 변 이후로 소림뿐만 아니라, 여타 문파의 종사와 원로들의 행방이 묘연한 일이었는데 통보를 받았기에 우리도 의아해 하던 일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다가 진행을 하겠습니다."




곤륜도인의 말에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이 터졌다.




"맞소! 우리 문주이신 태서왕(泰瑞王)께서도 오년 전 사라지셨소.......!"


"화라문(華羅門)의 총관과 호법도 돌아오지 않았소!"


"우리 아버님 도패인군(圖覇刃君)께서도 아직 안돌아 오셨소."


"그럼 혹시 그들이 오늘 모두 나타난다는 건가?"




곤륜 도인의 그 말에 사람들은 더욱 웅성거리며 제각기 불만을 토로하였다. 갑자기 혼란한 난국 속에 사라진 세인들에 대한 의문으로 장내가 소란해졌다. 소란의 상태가 한 다경 가량 지났을까?




둥! 두둥! 둥! 둥!




연단에 설치된 대형북인 대명고(大鳴鼓)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중앙 연단위로 향했다. 좌측으로 정도의 종사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의 웅성대던 소란이 멈추고 조용해졌다.




그런데 정도맹의 맹주인 소림의 자허선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현 장문인인 천선대사(天宣大師)와 곤륜의 장문인 태청진인(太淸眞人)이 선두에서 나오고 있었다. 천선대사의 뒤로는 정도맹을 이끌었던 절대무인들 삼존중 이인 남궁세가의 천검일학(天劍一鶴) 남궁현군(南宮賢窘), 서천도성(西天刀城)의 파천도군(破天刀君) 구절승(俱絶昇) 모습도 보였다.




이어서 우측으로 마도맹의 맹주인 라마흑사천(喇麻黑邪天)의 라마사존(喇麻邪尊)을 위시한 천마성(天魔城)의 천마귀존(天魔鬼尊), 백마궁(白魔宮)의 북두마존(北斗魔尊)등 마도맹의 마두들이 줄지어 나왔다. 




"........?"




설 무영은 흠칫 놀랬다. 서무영의 시야에 천황마제(天荒魔帝)의 모습이 들어 온 것이다. 천황마제의 뒤에는 허리 굽은 추래야(樞來耶)의 모습도 보였다.




(대막(大漠)의 천황혼마전(天荒魂魔殿)이 무슨 연고로.....?)




연단으로 나온 그들은 연단의 좌측으로 정도 무림의 종사들이 우측으로는 마도무림의 종사들이 자리를 하고 앉았다. 곤륜의 당주인 듯 보이는 한 도인이 나서서 간략하게 연단에 나타난 종파의 종사들을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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