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신화 올림푸스 - 2부 4장

본문

주시는 댓글들에 감사드리며... 무림은 늘 상상이 풍성해서 좋네요. 상상의 나라로 출발!




올림푸스 나머지 12 장로 - 자금성의 검은 구름 (3)




건청궁. 어제 밤새의 열풍이 아직도 끈끈하게 남아있는 황제의 침실. 거대한 침대 위에는 예닐곱의 후궁들이 큰 대자로 뻗어 있고, 그 가운데 황제 역시 널브러져 있다. 이른 새벽. 아직 새들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아주 조용히 황제의 침실을 엿보는 시선이 하나 있다.




‘후우~~~ 아바마마. 이제는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더는 아니 됩니다.’




고운 자태와 삼단 같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여인의 그림자. 그런데 흐릿한 여명에 보이는 머릿결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렇다면 색목인? 그리고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면사포를 하고 있어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공주마마 이제는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가 여인에게 말을 건다. 공주라니? 영락제의 딸이 색목인이란 말인가? 설비(雪飛). 그녀의 이름이었다. 영락제는 대원정 기간 동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원정을 할 정도의 정력가였다. 대원정 중, 소아시아 지역에서 색목인의 한 부족장에게 생명을 구함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부족장은 자신의 어린 딸을 영락제에게 맡겼다. 영락제는 자신의 딸로 키우겠다고 약속하고 어린 색목인 소녀를 데리고 돌아왔다. 살결이 백설 같아서 설아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설아는 지혜가 남달라 고문서를 읽기 좋아하고, 무공에도 남다른 진전을 보여 곽준에게 맡겨 무공까지 전수하였다. 그래서 설비는 곽준을 사부로 부르고 있었다. 




‘사부님, 아바마마의 상황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신 등이 있고, 폐하께서는 강하신 분입니다.’




공주만이 보이는데, 공주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곽준. 홍무제를 도와 몽골 토벌대 북풍대의 대장으로 중원과 몽골 평야를 달렸던 사나이 중 사나이.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는 영락제 외에 아무도 몰랐다. 그만큼 그의 무력은 신비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악도군 조차 함부로 경거망동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도독부를 맡고 있는 곽준의 휘하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의문에 쌓여 있다. 특히 그의 그림자라고 불리는 잠영대는 그 숫자도 그들의 능력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이 황제와 곽준을 그림자처럼 보호한다는 것 이외는.. 이들의 대화를 진은 아무도 모르게 엿듣고 있었다. 건청궁 황제 침실의 한 기둥 그림자에 숨어있는 곽준의 모습도 진의 시선을 피하지는 못했다.




‘공주와 곽준. 그런데 공주와 곽준은 혜광심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5갑자 이상의 내공이 없으면 시전할 수도 없다는 실전된 소림의 전음술. 그렇다면 공주와 곽준의 내공은 최소 5갑자 이상이란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이들은 이미 반박귀진의 경지. 후후 재미있군. 일단 곽준과 공주를 살펴봐야 겠군.’




공주는 말없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간다. 수녕궁. 영락제의 공주의 별궁. 그런데 공주라 불린 금발의 여인은 수녕궁을 지나 약간 외진 별채로 들어갔다. 




“공주마마 또 건청궁을 다녀오시는군요?”




시비로 보이는 여인이 설비를 맞이한다. 




“후우. 그래 아버님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단다, 앵화야.”


“걱정하지 마세요. 폐하께서는 누구보다도 강하세요. 곧 전처럼 돌아오실 거예요.”


“그래야 하는데... 앵화야, 그나저나 오늘 누군가 나를 찾아 올 것이다. 귀한 손님이시니 용정차라도 준비하고 있거라”


“누구신데요? 언제 오시는데요?”


“나도 누군지 몰라. 번개를 몰고 오는 분인데... 나도 누군지는 정확히 몰라. 그저 천기를 읽었을 뿐이야. 아마 금방 오실거야.”




‘번개? 그럼 내가 올 것을 알고 있단 말이야? 믿을 수 없군. 만일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오히려 더 쉽군. 한번 만나보지 뭐?’




설비의 방. 단아하다. 벽에는 몇 점의 수묵화가 그려져 있고, 양쪽 벽은 고서로 가득했다. 의술서, 병술서, 기관진식 까지 망라된 책들이었다. 작은 침상과, 테이블이 전부다. 그녀의 성품을 보여주는 방이다. 창가로 노란 나리꽃들이 펴있고, 은은한 향기들이 좋다. 설비는 테이블에 앉아 고서를 일고 있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은 얇은 면사포로 가려져 있다. 천리기문서. 설비가 읽고 있는 책이었다. 갑골문으로 되어 있기에 일반인들을 읽을 수도 없겠지만, 만일 무림인이 이 제목을 들었다면 목숨을 걸고 얻으려 했을 것이고, 글을 아는 선비였다면, 책의 한 구절이라도 듣게 해달라고 목숨을 내놓았을 것이다. 무림인이 이 책의 진수를 얻으면,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고, 신의 경지인 화경에 이르는 무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책이다. 문인이 이 책을 얻는다면, 천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이 자금성의 작은 별채에서 읽혀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요. 소녀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시네요.”




설비가 눈은 책에 고정한 채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다. 




“벌써 알고 계셨구려. 죄송하외다. 공주께 누를 끼쳤구려.”




‘으음. 내가 공주인 것을 알면서도 존칭을 쓰지 않는다. 더구나 거의 십 갑자에 이르는 나의 내력이 감지하지도 못하는 내력이다. 그저 누군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뿐 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적이라면 낭패다.’




“나를 너무 경계하지는 마시구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지도 모르니...”


“일단은 모습을 보여 주심이 어떨는지요. 보이지도 않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만큼 추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실례를 또 범했구려. 죄송하외다.”




돌연 설비의 눈앞에 뿌연 아지랑이가 이는 듯 하더니 백의의 젊은 서생이 하나 서 있다. 그러나 설비는 놀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놀란 것은 진이었다. 실제로 눈앞에 있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우~~~ 우물이다.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데 나를 이렇게 격탕시키다니. 선천적으로 뿜어내는 색기란 말인가?’




“역시 대단하시군요. 소녀의 음양섭혼신공을 아무 어려움 없이 견디시다니...”




음양섭혼신공. 이미 천 년 전에 사라진 음양인의 독문신공. 극성에 달하면 마음만으로도 상대방의 심령을 제압하고 내공까지 빼앗아 올 수 있었다.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다. 가장 무서운 것은 상대방의 내공이 얼마이건 상관없이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양인은 이 음양섭혼신공 하나로 무림을 흔들었었다. 누구도 그의 신공을 대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설비가 그 신공을 진에게 시전한 것이다. 




“음양섭혼신공. 음양인의 신공을 어찌 그대와 같은 여인이 익혔단 말이오?”


“식견이 높으시군요. 더구나 음양섭혼신공을 아시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다니...”


“후후. 음양섭혼신공 정도로 소생을 어찌하지는 못 할 거요. 오히려 공주의 음기가 너무 강해짐을 조심해야 할 것이오.”


“그렇다면 상공의 신체가 우주만력지체라도 된단 말인가요? 더구나 음양섭혼신공의 유일한 약점을 알고 계시다니...”


‘우주만력지체? 우주에 가득한 내력을 몸에 지녔다란 뜻인 것 같으니 초우주체라는 말과 비슷한 것 같군...’


“뭐 일종의 그런 것이라 해두지요.”


“뭐 일종의 그런 것이라고요? 정말 우주만력지체란 말이세요? 음양섭혼공은 천지간의 음과 양의 기운을 흡수하여 내공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도 음양섭혼공의 인력을 감당할 수 없어요. 오직 전설의 우주만력지체 이외에는 말이죠.”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오? 나는 우주만력지체라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공주 당신을 만나려고 온 것이오. 공주 역시 음양섭혼공을 시전하고 싶어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지 않소.”


“음양인은 음양섭혼신공 때문에 천하를 얻었지만, 음양섭혼신공 때문에 자신을 잃었지요. 그는 그것을 나중에야 알았어요. 남자였던 그는 양의 기운을 너무 많이 흡수되어 양기가 폭발하여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불구가 되었지요. 인간의 힘으로 천지간의 양기를 무슨 수로 제어하겠어요. 저 역시 여자이기에 음기를 사용하게 되는데, 너무 많이 사용하면 결국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러나 우주만력지체의 소유자에게는 음양섭혼신공이 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음양섭혼신공의 취약점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세상에 우주만력지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이 책, 천리기문서 조차 그런 신비지체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였을 뿐이지요. 그런데 당신이 그런 신비지체의 소유자라니... 정말 놀랍군요. 그래서 더구나 천기는 운명처럼 저를 당신에게 묶어 놓았으니 말이에요.”


“글세... 소생은 천기는 모릅니다. 다만, 황제의 상태가 결코 정상이 아닌 것 같아 그 원인을 찾던 중, 공주를 오늘 아침에 보았고, 공주와 대도독의 대화를 듣고 공주를 만나고자 하였을 뿐이오.”


“뭐라구요. 저와 사부님의 대화를... 우리는 혜광심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당신이 혜광심어로 나누는 대화까지 들을 수 있단 말인가요?”


“무엇이 중요한 것이오? 황제의 상태요, 저에 대한 궁금증이오?”


“휴우~~~ 정말 기이한 분이시군요. 하지만 저에게는 둘 다 중요해요. 아바마마의 중병도 중요하고, 상공에 대한 의문도 중요하지요. 아바마마의 상황은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당신은 저의 음양섭혼신공을 감당하셨기 때문이에요. 제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유와도 관계되지요. 일단 저의 절을 받으세요.”


“절이라니... 왜 이러시오 공주?”




설비는 진에게 삼배를 했다.




“저의 음양섭혼신공을 감당하는 분이 저의 지아비가 될 수 있는 분이시지요. 저는 천기로 그것을 알았고, 오늘 저의 지아비 되실 분이 오실 것을 알았어요. 저의 얼굴은 저의 지아비 외에는 볼 수 없답니다. 즉, 음양섭혼신공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저의 얼굴을 볼 수 있지요. 저는 저의 나라 언어로는 크레데라고 하는 지중해의 한 섬에서 태어났답니다. 그곳의 언어로는 아프로디테라고 불렸지요. 그러나 웬일인지 제가 9세가 되던 해부터 저의 얼굴을 보는 총각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어요. 그때에 황제께서 지중해 지역까지 원정을 나오셨다가, 변을 당하셨는데 저의 친 아버님에게 구함을 받으셨지요. 황제께서는 저의 아버님에게 무슨 일이든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시겠다고 약조하셨고, 아버님은 저를 황제께 맡기셨어요. 자초지종을 다 들으신 황제께서는 저를 딸로 삼으시고, 저에게 면사를 씌어 주시며 저의 문제를 해결하시겠다고 약조하셨지요. 그래서 지금의 사부이신 곽준 어른을 만나게 되었고, 황궁서고에서 수많은 책들을 보게 되었지요. 그런 와중에 저의 신체가 구음양파맥이라는 특이 체질로 9세가 되면 음기가 너무 강해져 총각들이 저를 보기만 해도 양기를 빼앗겨 서서히 죽어간 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음양섭혼신공만이 어느 정도 저의 본원적인 음기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신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사부님께서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구해 주셨지요. 그러나 음양섭혼신공도 말씀 드린 것처럼 우주만력지체를 만나지 못하면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한계가 있었지요. 그래서 우주만력지체만이 저의 지아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허허. 이런 일은... 좋습니다. 저 역시 공주의 그런 어려움을 나몰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오. 다만, 일단은 황제의 일이 급선무라 생각되오. 공주의 지병은 그 후에 치료하도록 합시다.”


“고마와요. 제 얼굴은 보지도 않고, 저의 소청을 들어주시다니... 아바마마의 일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저의 얼굴을 지아비에게는 보여야 할 것 같아요.”




공주는 면사를 서서히 거두었다. 면사가 걷어진 곳에는 정말 필설로 설명할 수 없는 자태가 나타났다.




‘우욱! 정말 대단하구나. 내가 초우주체가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피가 터져 죽었을 것이다. 9세부터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군.’




진은 기혈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 느낌이 계속 되고 있었다.




“가가, 제 모습이 너무 추한가요?”




공주는 이미 가가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진은 그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것이 아니라... 공주가 너무 아름다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라 그렇습니다.”


“호호. 칭찬으로 들을게요. 고마워요. 예쁘게 봐줘서...”


“예쁘게 봐주는 것이 아니라... 공주는 정말 우물이오...”


“정말 기뻐요. 제 얼굴을 보고 아름답다고 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어서...”


“공주, 그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직은 면사를 써야 할 것 같소. 그렇지 않으면...”


“알겠어요, 가가.”


“가가?”


“이제 저의 낭군이시니 가가라 불러야지요. 저는 그냥 설이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소. 설.”


“앵화야 용정차 보다는 백화로 한잔이 더 좋을 듯하구나. 백화로를 준비해주련?”“예, 공주마마. 곧 대령하겠습니다.”




********




설과 진이 작은 술상 앞에 앉았다. 백화로는 백송이 꽃에 맺힌 이슬로 담근 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깨끗하고 향기로운 술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귀한 술이다.




“황제는 현재 독에 감염되어 있소.”


“예? 그걸 어찌?”


“이곳에 들르기 전, 여비라는 후궁의 처소에서 악도군이라는 자와 여비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만년소녀독이라는 것이오”


“마... 만년소녀독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소. 그 독을 아시오?”


“그것은 아직 현세에 나타나지 않은 것인데... 소녀도 단지 만독경이라는 책에서 읽기만 했는데... 만독경도 그런 독이 있다는 것만 기록하고 있어요. 만 명의 소녀의 앵혈을 만 가지 독물과 섞어서 만 일 밤을 만독저 속에 담가 놓은 것으로 여인의 애액과 합쳐져야만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처음 독을 맛본 후, 6개월 지나면 거의 살아있는 생강시와 같이 되는 것이지요. 시술자에게 영혼까지 제어 당하게 되지요. 단순히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혼을 훔치는 것이 목적이에요. 이런 그렇다면 아바마마에게 시간이 없어요. 거의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무슨 소리,,,?”


“아바마마께서 이상해지신 것이 거의 6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어요. 5개월 여전 갑자기 아바마마께서 후궁들에게 빠지시더니 밤낮 육욕에 빠지기 시작하셨어요. 정사를 돌보시지도 않고, 오직 여색에만 빠지셨지요. 거의 건청궁을 나오지 않고 계세요.”


“흐음. 그럼 속히 손을 써야겠군. 공주, 곽준 대도독에게 연락을 취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밤에 건청궁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오. 내가 어떻게 해서든 황제의 독을 처리해 보겠오.”


“만년소녀독은 해독제가 없는 독인데 어찌하시려구요.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후후. 우주만력지체를 믿으시오. 설 당신의 지아비를 못 믿는데서야 어찌 좋은 아내라 할 수 있겠소.”


“죄송해요, 가가. 그럼 가가만 믿겠어요. 저는 사부님에게 연락을 취할게요.”


“황제께서 무엇을 명하여도 아무도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씀을 전하시오. 곽준 대도독도 움직여서는 안 될 것이오.”


“알겠어요, 가가.”




건청궁은 그 날 밤 쥐 한 마리, 새 한 마리도 접근하지 못했다. 모든 시비들과 환관들까지도 접근이 금지 되었다. 진은 건청궁 황제의 침실로 들어갔다. 황제는 여색을 취하지 못해 거의 발광 직전까지 다다라 있었다.




“아무도 없느냐? 어서 후궁들을 들이라 하지 않았느냐. 이놈들, 진정 아무도 없단 말이냐?”




황제는 소리소리 지르다 못해 온 몸의 핏줄이 터질듯이 팽창해 있었다. 이대로 두면 황제의 혈관이 터져 버릴 것이다. 만년소녀독은 하루 밤이라도 교접을 하지 않으면 핏줄이 터져 죽게 된다. 황제의 얼굴이 아귀와 같이 변하고 있었다. 몸속의 음기와 양기가 뒤엉키며 거의 주화입마와 같은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한 황제 앞에 진이 아지랑이처럼 나타났다. 진은 이미 황제의 상태를 알고 있었기에 황제 앞에 오자마자 그의 아혈과 마혈을 점했다. 




‘판도라, 황제의 상태를 살펴봐.’


‘이미 독기가 황제의 온 몸에 퍼져 있는 상태에요. 다행히 뇌까지 손상을 입지는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황제를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일단은 황제의 몸속에는 지나치게 음기가 많이 흡수 되어 있어요. 그것도 아주 지독한 음기이지요. 위험하기는 하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은 황제의 모든 음기를 제우스가 흡수하여 깨끗하게 정화시켜서 황제 본연의 음기는 다시 황제에게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해요.’


‘말로는 쉬운 것 같은데...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 거지?’


‘황궁서고에서 본, 소림의 반야심공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보통의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제우스의 초상에너지를 사용한다면 별 어려움 없을 것 같아요.’




판도라는 반야심공을 ‘정도’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무림인, 특히 소림의 누군가가 들었다면 혀를 깨물고 죽었든지, 사생결단을 하자고 덤볐을 것이다. 달마 이후로 반야심공은 소림 최고의 심공이면서 구두로만 일부가 전해져, 그저 흉내만 낼뿐, 실재로 그 정수를 익힌 사람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부의 반야심공만으로도 소림의 고승들은 무림의 가장 지고한 탈마지공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을 판도라와 진은 마치 옆집 냄비 하나 빌려 오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은 황제의 명문혈과 백회혈에 양 손을 대고 반야심공을 일으켜 자신의 초상에너지를 황제에게 보내어 그의 몸속에 있는 탁한 음기를 몰아갔다. 곧바로 황제의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시커먼 액체들이 모공을 통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와 진의 몸은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은 황제의 몸속의 음기를 모두 자신에게 가져와 반야심공으로 정화시키고, 황제의 본원지기는 황제에게 돌려보내고, 나머지 음기는 초상에너지로 허공으로 방출 시켰다. 황제와 진의 몸이 서서히 침상에 내려앉았다. 이것은 말로는 쉽지만 실재로 상대의 본원지기를 주무르는 것이기에 서로에게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조금의 내력이라도 흔들리면 시전자까지 생명이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무한대의 초상에너지를 지닌 진이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다. 




“후우~~~ 자네는 누군가?”




진과 황제는 동시에 눈을 떳고, 황제는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가 황제의 침상에 함께 가부좌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바마마 괜찮으신거에요?”


“비아, 네가 여기는...?”흐흐흑. 아바마마 드디어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거의 6개월 만에 아바마마께서 소녀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뭐라고? 6개월이라니? 그럼 그 동안 내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단 말이냐?”


“흐흐흑, 아바마마.”


“폐하, 저는 진이라고 하옵니다. 그동안 옥체가 많이 상했습니다. 다시 한 번 운기 하시어 옥체를 보중하소서.”


“폐하 그리하옵소서.”


“대도독, 당신도? 후우~~ 일단 잠시 운기를 하리다.”




황제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예전의 내가 아니군. 이 정순한 기운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력이 어마어마해졌군..’




운기를 하는 동안 황제는 자신의 내력이 오기조원을 넘어 반박귀진에 까지 이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황제는 운기가 끝났음에 깨어나지 않은척하며 주변을 감지해 봤다. 대도독과 설비, 곽준의 잠영대들이 느껴졌다. 그전에는 곽준이나 잠영대들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치 옆에서 코고는 것처럼 가까이 그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후우~~ 도대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6 개월이라니... 그런데 저 청년은 누구야. 전혀 내력이 느껴지지도 않는 청년인데, 마치 나를 구해주기라도 한 것 같잖은가?’




“어떠십니까, 폐하?”


“가가, 아바마마께서 운기 중이신데...”


“아니다. 벌써 끝냈느니라. 괜찮네. 진이라고 했던가? 고맙구먼. 전 보다 더 좋아졌어.”




설비와 곽준은 그동안의 일을 황제에게 알려 주었고, 진은 황제가 입은 암수가 어떤 것이었는지, 누가 암수를 펼쳤는지 알려 주었다.




“그런 일이? 그럼 이제 그 연놈들을 잡아들이도록 하자.”


“아니 되옵니다.”


“무애라? 감히?”




곽준은 진이 황제의 말에 토를 달자 아직 정확히 진이 누군지 모르는 지라 진을 방자하다 생각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것인가? 대도독은 잠시 고정하시오. 진의 말을 들어봅시다.”


“황제 폐하에게 암수를 펼친 자들은 그저 하수인일 뿐입니다. 저들을 친다면 풀을 건드려 뱀을 숨게 하는 것이 됩니다.”


“타초경사라? 그럼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


“저들의 계획대로라면, 황제 폐하께서는 며칠 이내에 저들의 마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환우가 드신 것처럼 침상에 가만히 누워만 계십시오. 영문을 모르는 저들은 아마도 만년소녀독 때문에 폐하께서 환우를 얻으신 줄 알 것이고, 자신들이 계획 했던 것들을 진행 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그들의 머리를 쳐야합니다.”


“적들을 안심시켜 그 배후를 잡는다. 그 생각은 좋지만, 황제 폐하를 인질로 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네.”


“하지만, 대도독 어르신과 잠영대가 있으니 폐하께서는 안전하실 것입니다.”


“자~~ 잠영대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도대체 자네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가 없군.”


“특히 잠영대 중 칠 인의 칠금위에게는 제가 약간의 도움을 주어 황제 폐하를 보호하는 것에 일점의 오차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칠금위까지 알다니. 정말 할 말이 없구먼.”




칠금위는 잠영대 전체 7 개 분단의 대장들이다. 이들은 이미 강호의 초절정 고수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는데, 곽준만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황제조차 이들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대도독, 진 공자의 말대로 해보세. 이미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고, 우리의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 같네.”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설비 너는 어찌하여 진 공자를 가가라 부르느냐?”


“아바마마. 저의 구음양파맥지체를 아시죠. 타인의 음기이건 양기이건 무조건 흡수하여 상대방의 내력이 파괴되어 죽게하는...”


“물론이지.”


“그리고 구음양파맥지체의 유일한 구생 방법이 우주만력지체를 만나는 것이라는 것도 아시죠?”


“물론이지... 그럼 진 공자가?”


“예.”


“정말 그런 상고의 지체가 있었더란 말이냐? 우주의 모든 기운을 온 몸으로 사용할 수 있는...? 후후. 좋아 좋아. 과연 설비의 남편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구나. 그럼 이미 너희는 부부의...?”


“아닙니다, 폐하. 폐하께서 병중이신데 어찌 저희가...”


“점점 마음에 드는군. 그래 자네가 나의 내력도 증진시켜 놓았는가?”


“그저 약간의...”


“좋아 좋아. 곽준 대도독. 이 녀석이 내 사위요. 이 영락제의 사위요. 아시겠소?”


“감축드립니다, 폐하. 공주마마 정말 축하드립니다. 부마를 뵈옵니다.”




갑자기 건청궁은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폐하. 아직은 우리가 자중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아직 적을 정확히 모릅니다.”


“그렇군. 깜빡 잊을 뻔 했어.”




태화전의 지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 어찌 황제의 발밑에 이런 공간이 만들어 질 수 있단 말인가? 넓이만도 태화전의 앞뜰과 거의 비슷했다. 어마어마한 기둥들이 태화전의 앞뜰을 떠받히고 있는 형세이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암회색이 뭉클거리고 있다. 정면에는 거대한 아수라 상이 새겨진 거대한 벽면이 있었고, 그 앞에 일곱 개의 층계가 있고, 층계 위에 역시 아수라 상이 새겨진 묵색의 의자가 묵연에 쌓여 있었다. 누군가 그곳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층계 앞 3장 쯤에는 황후와 왕귀비와 질펀하게 놀아나던 두 명의 거인이 오체복지를 하고 있었다. 묵연에 휩싸인 의자에서 모골이 송연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 고작 인간 계집들과 놀아나다가, 건청궁의 상황을 놓치다니. 네 놈들이 아주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주~~ 죽여주십시오.”


“미친 놈. 뚫어진 입이라고 떠드는군. 아가리 닥치고 있어라. 만년소녀독에 중독된 황제 놈이 어떻게 병이 들어 누웠단 말이지... 더구나 어젯밤에는 건청궁의 경비가 돌연 엄중하게 변하며 아무도 출입을 못했다. 오직 설비라는 계집만 들어갔다? 분명 무슨 일인가 벌어진 것 같은데... 확인하러 간 녀석들은 시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어젯밤의 이상 경비로 인하여 뒤 늦게 두 명의 거인은 하수인들을 보내 살펴보려 했지만, 판도라와 티파니에 의해 건청궁 근처에 오지도 못하고 다들 온 몸이 분해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진이 미리 판도라와 티파니에게 지시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다시 가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라. 당분간 인간 계집들을 건드리지 말도록.”


“존명.”


“청탑쌍마. 너희들을 불쌍히 여겨 거둔지 15년이다. 너희들에게 거대한 힘을 주었다.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존명!”






묵연의 의자에서는 더 이상 인기척이 없었다. 두 거인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그들도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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