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야담소설가 유관필 - 8부

본문

마교 교주라니. 자네, 농담을 하는 겐가?"


"아닙니다. 형님과 제가 알고 있는 그가 맞습니다. 형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그 자를 치워드리지요."


"내가 당가의 가주네. 독공자 당민이라는 그 기담집을 보지 못했네만, 혹시 무형지독 같은 것을 쓰지 않았나?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무형지독이란 것도, 무색무취무미한 독도 없다네. 독이란 원래가 검고 쓰리고 비리다네. 내 단언컨대, 칠보단혼산 같은 것의 열 배정도 효력이 나는 독으로도 마교 교주 마신 한병기는 죽일 수 없을 걸세."


"형님. 독은 말입니다. 원래 약한 자에게 쓰는 겁니다. 진짜 강한 자는 독으로 어쩌질 못하죠. 독이란 원래가 약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쓰는 거라는 걸 독을 쓰는 모든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가의 독은 약하지 않네. 단지 마교 교주가 특별할 뿐이야."




유관필의 얼굴이 점차로 어두워져 갔다. 그리고는 어렵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형님, 혹시 한림학사 최항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자네가 마주쳤다는 그 벽이 아닌가?"


"네. 그렇지요. 그를 마주쳤을 때, 전 이상한 공포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무지렁이 촌고을의 촌로였다면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도 그는 나라 안 최고의 석학인 한림학사였고, 최항 정도는 아니었어도, 그래도 저 역시 대과에서 방안을 한 실력이니 얼마든지 재주를 뽐낼 자리를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전 마주 대하는 모든 글자에서 최항을 봐야 했습니다. 어찌나 지독했던지, 결국 최항이라는 벽에서 뒤돌아서고 말았죠."




아버지의 만천화우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아니던가. 당척은 유관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자신은 유관필보다 더 심한 경우였다. 유관필은 접고 돌아설 용기가 있었지만, 자신은 도망칠 자신도 없었던 것이다. 당척의 눈에서 강한 공감을 느낀 유관필이 말을 이어갔다. 




"형님. 그럼 말입니다. 최항의 삶은 행복했을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린가?"


"학문의 정점이란 과연 있는 걸까요? 최항의 글을 알아볼 눈을 가진 저였기에 벽을 느낀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벽의 위에선 최항에겐 벽이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최항의 글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족히 수백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최항만한 자가 자신의 글에 만족을 할 수 있을까요? 끝없는 진리를 눈 앞에 둔 자의 삶은 어떨까요? 제가 발견했을 때도 그는 거지꼴로 시장의 청석판에 물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모르겠군. 내 공부가 모자람이야."




마침, 린아가 잘익은 술과 안주를 내왔기에, 대화가 끊어졌고, 두 의형제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의문을 가진채로 당가주 당척은 당가로 돌아갔고, 유관필은 곤한 몸을 이끌고 사랑에 들어 잠을 잤다.




유관필이 일어난 것은, 아들인 유경민이 짧은 유관필의 수염을 잡아뜯었기 때문이었다. 사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황초가 하나 방을 밝히고 있었다. 안주인인 오세인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잠든 유관필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유관필이 일어나자 짐짓 골을 냈다.




"예인이에게 다 들었어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부인, 그건 모두 오해요. 내 어찌 부인을 두고 다른 여인을 취할 수 있겠소."


"예인이도 안돼요. 상공 그것만 기억해요. 상공의 눈이 제 곁에서 멀어질 때, 제 삶도 제 인생의 길에서 멀어질 거예요."


"끔찍한 소리 하지 마시오. 부인."


"일어나세요. 소세를 하시고, 식사를 하세요. 지금 모두들 기다리고 계세요. 당 어르신도 적송자 어르신도요."


"일찍 깨우지 그러셨소."


"괜찮아요. 객을 위해 주인의 잠을 방해하다니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오. 어찌 어르신들을.. 내 일어나리다. 먼저들 시작하시라 하시오."


"그런 법은 없어요. 유가장은 언제나 상공으로 시작해서 상공으로 문을 닫는 곳이니까요."




서둘러 얼굴을 닦고, 모두가 기다리는 식탁으로 가자, 유가장의 하인들은 보이지 않았고, 총관인 일문만이 자리를 배석하고 있었고, 적송자와 당가의 삼대가 앉아서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관필이 들어서자, 찬모인 일지 할머니와 화영이 재빠르게 휴대용 화로를 식탁 중간으로 나르려는 것이 보였는데, 당철기가 손을 들어 음식이 차려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유관필을 청했다.




"아들놈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내가 아는 자네는 허언을 할 사람이 아니네. 아들놈에게 들은 이야기를 여기 이 청성의 늙은이와도 나눠봤지만, 자네의 이야기를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저녁을 물리고 기다린 것이네."


"아, 어르신. 마교 교주라는 사람이 인세의 악당이라 들었으니, 만약 그를 해쳐 형님이 원하시는 명성을 얻는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유관필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교교주를 해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자, 능글맞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뻔뻔한 도인 적송자마저 유관필을 다시 봤다.




"하지만, 자네가 말한 그 만고의 악적은 쉬운 상대가 아니네. 사천 제일의 무인으로 몇 십년을 살아온 저 작달만한 사내 정도는 한 손으로 찜쪄먹을 사내란 말일세. 고금 제일이라 칭하기는 어림없지만, 현 무림 최강자라는 말은 아주 쉽게 붙일 수 있는 자란 말이네. 그런 자를 어떻게 독살한다는 말인가?"


"그가 그 정도의 사내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그를 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글쎄, 그 방법이 뭐냔 말이지."




유관필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답지 않은 긴 침묵에 다들 입이 바싹바싹 마를 때쯤에, 유관필의 입이 열렸다. 유관필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사람은 당철기였다. 




"어르신, 사천 왕부의 왕을 독살을 시키는 것은 어렵습니까?"


"그건 어렵지. 왕전하는 모든 음식을 기미를 하는데다, 왕부란 곳이 구중심처니 억지로 침투를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니, 어렵지. 어려워."


"하지만, 제 작년에 복건왕 전하가 독살을 당하셨죠."


"그건 반역의... 사약 인가?"


"네 부자탕이죠. 엄연하 독살이죠."


"마교 교주에게 사약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일은 절대로 독살을 당할 수 없는 사람도 스스로의 의지로 독을 먹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럼... 자살인가?"


"네. 당가의 독을 쓰지 않아도 마교의 독으로 마교 교주를 죽일 수가 있지요."


"하지만, 말이네. 마교의 교주가 뭐가 아쉬워서 자살을 한단 말인가? 그자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네. 애초에 극마에 이르는 마공을 얻으려면 말이네. 그만한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세."




적송자가 다시 의문을 표하자, 유관필은 적송자는 보지도 않은 채로, 당철기에게 물었다.




"어르신. 어르신은 삶이 즐거우십니까? 정말 즐거우셔서 사시는 겁니까? 화경을 얻으셨으니 앞으로 수십년을 더 사셔야 하는데, 무엇으로 사실 생각이십니까?"




당철기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기 때문이다.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화경을 얻은 후엔 오연하게 살아왔다. 무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몇 십년 전부터 그대로였다. 챗바퀴를 돌리는 쥐새끼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그는 몇 십년동안이나 그대로 살아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유관필의 말이 이어졌다.




"자살이라는 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지요. 산을 오르다보면 말입니다. 산의초입이나 산등성이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지요. 하지만, 산의 정상을 밟는 사람들은 하나 둘, 정상에 올라서야 보이는 또 다른 커다란 산을 마주쳐 그것을 오르려는 자는 정상을 오른 자 중에서도 백에 다섯을 넘지 못합니다. 오르고 또 오르다가 언제까지라도 계속 올라도 산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뒤돌아봤을 때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사람이라곤 전혀 없는 얼음산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지요. 기왕에 올랐으니 마지막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그 산의 끝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철기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당철기는 깨달았다. 화경에 올라 지고의 무공을 얻은 것이 아니라, 화경에 오르는 순간 이미 세상과 유리되어 버린 자신을 말이다. 오십년도 더 남은 자신의 삶이 겪여야 할 질곡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아들이 먼저 죽게 될 것이다. 손녀도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무공이란 끝이 없는 것이다. 화경을 얻고나서 당철기는 제대로 된 수련을 한 적이 없다. 무공의 본질적인 향상심마저 잃은 것이다. 화경을 깨달은 순간, 당철기는 화경이란 자격을 얻은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 대한 관심도 무공의 본질도 모두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당철기는 진정한 두려움을 느꼈다. 유관필이 당철기를 보며 한마디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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