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71부

본문

동정호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망부석처럼 호반(湖畔)만 바라보는 여인과 그녀를 지켜주는 사내들이 있었다. 풍운은 언제 오는 것일까? 서서히 기다림에 지쳐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힘이 없다. 기다림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초벽하는 나무에 등을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밤이 깊어질 것이다. 오늘도 안 오시는 것일까?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가시죠. 식사는 하셔야죠.” 




혈장장로의 말에 벽하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드시고들 오세요. 저는 생각 없어요.” 


“이러시다 쓰려지세요. 점심도 안 드셨잖아요.” 


“조금 있다가 먹을게요.” 


“아가씨! 안됩니다. 드셔야 해요.”




벽하의 그림자인 거패도 걱정되는 모양이다. 




“먼저 먹어. 나중에 먹을게.”


“휴~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나중에 함께 먹죠.”




거패가 긴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으니 혈장장로도 자리에 앉으려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동정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함선(艦船)들이 물살을 가르며 들어오고 있다. 




“저기.......저기 보세요.” 


“저도 보고 있어요. 장로님. 장강수로십팔채 함선(艦船)들 맞죠. 제가 헛것 본건 아니죠.” 


“여기서는 깃발을 안보이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혈장장로로가 새처럼 날아올라 동정호로 날아간다. 




“잠깐만요. 저도 함께 가요.” 




오매불망(寤寐不忘) 풍운만 기다리던 벽하도 혈장장로를 따라간다. 




“아가씨. 저도 함께 가요.”




거패도 급하게 따라나서지만 벽하와 혈장장로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도법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신법에는 아무래도 딸리는 모양이다. 동정호변에 도착한 혈장장로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함선(艦船)을 살펴보니 장강수로십팔채를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초벽하가 기다리던 풍운이 도착한 것이다. 




“헉~ 헉~ 장로님. 맞죠. 운랑께서 오신 거죠.” 


“장강수로십팔채 배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태상장로님이 타고 계신 배인지는 모르겠네요.” 


“어떻게 하지. 빨리 확인해야 하는데.” 




벽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동정호로 뛰어들려고 하니 혈장장로가 다급하게 팔을 잡았다.




“안 됩니다.” 




11월에 접어들면서 동정호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 벽하가 등평도수(登萍渡水) 같은 상승 경공을 익힌 것도 아니기에 물에 빠져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놔요. 확인해야 합니다.” 


“기다리세요. 제가 배를 준비하겠습니다.” 


“배요? 알았어요. 그럼 빨리 다녀오세요.” 




혈장장로로 나루터로 출발하자 벽하는 입술을 깨물고 미끄러지듯 동정호로 들어오는 함선(艦船)들을 바라본다. 지난시간의 기다림보다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지금이 더 안타깝고 초조하다. 조그만 조각배가 화살처럼 벽하 앞으로 왔다. 벽하의 다급함을 알기에 혈장장로가 장풍(掌風)으로 끌어온 것이다. 




“빨리 타세요.” 




벽하가 배에 오르자 혈장장로가 장풍(掌風)으로 물을 때리니 조그만 조각배가 화살처럼 함선(艦船)들을 향해 미끄러진다. 




“아가씨. 저도 함께 가요.”




뒤늦게 도착한 거패가 소리치지만 이미 조작배는 함선(艦船)들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눈앞에 둔 당가식솔들과 아미파 사람들은 갑판에 달라붙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악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제 다 왔네.” 




풍운일행도 갑판에서 악양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운랑은 군산으로 가실 거죠?” 


“글쎄. 일단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왜요? 아버님께서 기다리신단 말이에요.” 




옥선이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매달리자 풍운이 피식 웃었다. 




“당가와 아미파 분들께 인사는 해야 할 거 아니야.” 


“난 또. 그럼. 인사만 하시고 군산으로 가시는 거죠.” 


“아버님께 상의드릴 일도 있으니 가야지.” 




풍운일행이 떠들고 있는 사이에 작은 조각배가 엄청난 속도로 함선(艦船)을 향해 다가왔다. 




“소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건장한 무사가 달려와 옥선에게 보고 한다. 




“그래요? 혹시 본채에서 보냈는지 모르니 확인해보고 그게 아니라면 쫓아버리세요.” 


“알겠습니다.” 




함선(艦船)들 사이에 도착하자 조그만 조각배가 폭풍우를 만난 것처럼 요동친다. 




“여기 계세요. 제가 확인하고 올게요.” 


“같이 가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혈장장로가 벽하를 두고 함선(艦船)위로 올라간다. 장로가 갑판에 착지하자 건장한 무사들이 포위했다. 




“누군데 함부로 올라와! 죽고 싶어.” 




뱃사람들답게 말투가 걸치다. 혈장장로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반말로 지껄이자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자기가 큰소리칠 입장이 아닌지라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이 배가 장강수로십팔채 배들이 맞습니까?” 


“눈깔은 뻔으로 달고 다녀. 저기 깃발 보면 알잖아.” 


“휴~ 혹시 여기에 마수마랑님이 타고 계십니까?” 




혈장장로가 끌어오는 분노(忿怒)를 억누르며 다시 질문한다. 




“당신 누구야.” 




마수마랑이라는 말에 무사들의 험악한 얼굴로 다그친다. 




“어떤 분의 부탁으로 혹시 이곳에 마수마랑님이 계신지 확인하러 온 사람입니다.” 


“이런 쌍~ 똑바로 말해. 혹시 배화교 새끼 아니야.” 




새끼라는 말에 혈장장로는 참을성도 바닥이 난 모양이다.




“이런 잡놈의 새끼들. 어른이 물어보면 고분고분 대답해야지! 무슨 잔말들이 많아. 마수마랑 있어. 없어. 새끼들아.” 


“이런 미친 늙은이를 보았나. 여기가 어디라고 큰소리야.” 




무사들과 혈장장로 사이에 험악한 말들이 오가자 갑판에서 악양을 구경하던 당가식솔들이 몰려온다. 혈장장로가 성질대로 했다면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이 무사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는 혼자인데 놈들의 숫자가 엄청나다. 물론 겁나지는 않는다. 




“시끄럽네. 무슨 일이진 보고 올게요.” 


“같이 가자.” 




무사가 물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에서 소란이 있어나자 풍운과 옥선이 가보니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이 붉은 수염의 노인과 싸우고 있고, 그들 주위에 당가식솔들이 모여 있었다. 




“옥선. 적(敵)이 아니야. 물려나라고 해.” 


“아시는 분이세요.” 


“대충. 내가 처리할게.” 


“알았어요.” 




옥선이 무사들에게 물려나라고 명령하니 무사들이 씩씩거리며 물려났다. 




“안녕하세요. 장로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사들이 물려간 다음 풍운이 다가와 인사하자 혈장장로가 눈살을 찌푸린다. 안 그래도 신경이 날카로운 마당에 처음 보는 놈이 아는척하니 기분 나쁜 모양이다. 




“너는 또 누구야. 날 알아.” 


“사사천교의 혈장장로님 아닙니까?




혈장장로는 눈을 가늘게 뜨고 풍운의 위아래를 살펴본다. 풍운이 역용을 하고 있으니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날 알고 있지.” 


“허허 참. 풍운입니다. 모르시겠어요.” 


“풍운? 마수마랑 풍운.” 


“예! 제가 역용을 하고 있어서 못 알아보시는 모양이군요.” 




풍운은 잠깐 생각하다가 예전에 사사천교에서 지낼 때의 모습으로 역용을 했다. 




“아~ 태상장로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혈장장로도 이제야 풍운을 알아보고 인사한다. 풍운이 사사천교의 태상장로이니 자기보다 신분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어요. 교주님이 보낸 겁니까?” 


“교주님께서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벽하소저를 모시고 왔습니다.” 


“벽하? 초벽하가 여기 왔단 말입니까?” 


“장로님을 찾아가던 중에 악양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어디 있죠.” 


“밑에 있는 조각배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혈장장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풍운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풍운은 함선(艦船)들이 일으키는 물살에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조각배를 발견하고 일직선으로 착지했다. 




“누구. 아~” 




벽하는 갑자기 나타난 풍운을 보고 눈가에 이슬에 맺힌다. 예전에 사사천교에서 같이 있을 때의 모습이라 단번에 풍운임을 알아본 것이다. 




“운랑.” 




벽하가 쓰려지듯 풍운의 품으로 파고든다. 풍운은 작은 새처럼 품속을 파고드는 벽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흐흐흑~!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바보처럼 울기는.......진정해.” 




풍운이 벽하의 등을 다독거려주니 벽하가 고개를 들어 풍운을 바라보다가 다시 품에 안긴다. 정말 풍운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모양이다. 풍운은 벽하를 안은 상태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언제까지 조각배에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당가식솔들은 벽하를 안은 상태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풍운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느 정도의 경공이나 신법을 익힌 고수라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허공을 유영(遊泳)을 하듯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초고수가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풍운은 물살을 가르는 배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직 기(氣)에 의지해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이다. 풍운이 갑판에 착지하자 옥선과 무경을 비롯한 일행이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갑자기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벽하가 고개를 들어보니 곽지향과 도치 등 낯익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처음 보는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마치 학처럼 하얀 피부에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냉하상과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제갈무경이다. 




“안녕들 하셨어요.” 




벽하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풍운의 품을 벗어나 도치 등에게 인사를 했다. 




“하하하. 어서 오세요. 또 일사님 때문에 가출하셨다면서요.” 




도치가 웃으며 말하자 벽하는 얼굴을 붉힌다. 혈장장로가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한 모양이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처음 보는 분들도 계시네요.” 


“처음? 가만있어봐. 그러고 보니까 벽하소저는 무경소저나 옥선소저를 처음 보시는 구나.” 


“두 분 모두 만난적은 있어요. 저기. 안녕하세요. 옥선소저 맞죠.” 




벽하는 예전에 사사천교에서 천마마련으로 가던 길에 옥선을 만난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풍운과 옥선이 남남이었을 때다. 또한 제갈무경도 만났지만 당시는 면사를 하고 있었고, 칠음절맥의 병마와 시름하느라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억해 주시니 영광이네요. 안녕하셨어요.” 


“옆에 있는 분은 누구시지?” 


“험! 내가 소개할게.” 




풍운이 헛기침을 하면 앞으로 나섰다. 




“인사해. 제갈무경이야.” 


“제갈무경? 그럼 이분이 그때의 그분.” 




제갈무경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백도가 자랑하는 절대기재의 한명으로 칠음절맥이라는 천형(天刑)을 타고 났으나 풍운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풍운의 여인이 되었다고 한다. 벽하는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과 너무 달라져 제갈무경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늦었네요. 제갈무경입니다.” 




벽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인사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무경과 옥선이 풍운의 부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운랑. 저분은 누구죠.” 




벽하는 불안한 표정으로 냉하상을 가르친다. 은발의 이국적인 여인도 혹시 풍운의 여인이 아닐까 불안한 모양이다. 




“냉하상이라고 해요. 도치님과의 인연으로 여러분들과 동행하고 있어요.” 




냉하상도 벽하의 눈치를 알고 괜한 오해를 받기 싫은지 다른 사람들이 나서기 전에 스스로를 소개했다. 




“도치님과의 인연? 그럼 도치님의 연인(戀人)이라는 말씀인가요?” 


“하하하. 이거 쑥스럽네. 일사(一死)님! 취봉(醉鳳)소저께서 오셨으니 오늘 한잔 하는 겁니까?” 




도치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알고 말을 돌린다. 




“하하하. 악양에 도착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죠. 옥선. 오늘은 악양에서 지내고 내일 출발하자.” 


“알았어요. 무사들에게 배를 대라고 할게요.” 




옥선이 무사들에게 달려가고, 벽하는 나머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무경의 표정이 어둡다. 풍운에게는 많은 여인들이 있다. 벽궁수혜와 궁아라가 있고, 사사천교의 하후소하도 있다. 또한 옥선도 있으며 방금 만난 초벽하도 있다. 




초벽하............혹도 무림을 삼분하고 있는 천마마련주의 손녀이며, 차기 천마마련주의 딸이다. 자기가 태어난 제갈세가와는 근본부터 다르고 어떤 무림세가와 비교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천마마련주의 손녀라는 말이다. 녹림의 태산북두라고 할 수 있는 장강수로십팔채 총채주의 딸인 옥선을 보았을 때도 이렇게 부담 되지는 않았다. 풍운이 가장 사랑하는 궁아라를 만났을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초벽하는 부담된다. 태생이 다르기 때문일까? 자신보다 막강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풍운도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읽었지만 일부러 모른척했다. 여자들 문제에 남자가 끼어들면 더 복잡해진다. 또한 초벽하나 무경이나 똑똑한 여인들이니 알아서 잘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배들이 도착하자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이 배를 나루터에 대고 발판을 내리니, 당가식솔들과 이미파 사람들이 하선(下船)하기 시작했다. 긴 항해를 마치고 드디어 목적에 도착한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묻어난다. 풍운은 마차와 짐들까지 모두 내리고 하선(下船)을 마치자 금정신니를 찾아갔다. 




“수고 많았네. 자네 덕분에 무사히 도착했어.” 


“제가 할일이 있나요. 장강수로십팔채 분들이 수고하셨죠.” 


“자네들은 이제 어디로 간 건가?”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군산으로 갈 겁니다.” 


“군산? 장강수로십팔채 총채로 가겠다는 말인가?” 


“장강수로십팔채는 중원 5대 정보조직 중에 하나입니다.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수집하고 배화교에 대항할 방법을 찾아봐야죠.” 


“바쁘군. 누굴 욕할 처지는 아니지만 중원 무림은 진정한 영웅들을 모르고 있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 조심하게. 우리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성심을 다해 돕겠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신니님은 어디로 가실 겁니까?” 


“무림맹으로 가야지. 가서 대책을 세워야겠지.” 


“조심해서 가세요. 저희들이 무림맹까지 동행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없는 처지라 죄송합니다.” 


“자네들이 죄송할 일이 아니지. 자네들도 조심하게.” 


“밤이 깊었습니다. 주무시고 내일 출발하시죠.” 


“지금까지 신세진 것만 해도 민망해 죽겠는데 그럴 수는 없지. 바로 출발하겠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풍운이 이번에는 당순기를 찾아갔다. 당순기도 당가식솔들과 함께 무림맹으로 가겠다는 말을 들었다. 




“무림맹으로 가신다고 하셨죠. 지금 출발하실 겁니까?” 


“출발해야지. 자네들은 군산으로 간다고 했지.” 


“오늘은 여기서 보내고, 내일 출발할 겁니다. 괜찮으시면 저희랑 함께 주무시고 가시죠.” 


“아미파 분들은 어떻게 하신다고 하시던가?” 


“지금 출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도 출발하겠네.” 


“당령소저가 많이 아쉬워합니다. 내일 출발하시죠.” 


“당령이나 금막비와는 이미 이야기를 끝냈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자네들도 조심하게. 아참~ 우리 당령.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아미파 사람들에 이어 당가식솔들도 무림맹을 향해 출발했다. 풍운일행은 이미와 당가식솔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가까운 주점(酒店)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사(一死)님께서 사시는 거죠.” 


“제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돈 많은 옥선이가 내겠죠.” 


“어머. 은근슬쩍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시네. 저 돈 없어요.” 




옥선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풍운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도치님. 옥선이 없다는데요. 어떻게 하죠.” 


“그럼 일사(一死) 맡기고 마시면 되죠. 설마 서방님이 잡혀 있는데 안내겠어요.”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자자~ 일단 들어갑시다.” 




밤이 깊었기 때문에 술집에는 손님들이 얼마 되지 않았다. 풍운일행은 창가에 앉아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방금 술독으로 가져다 달라는 하셨습니까?”


“왜요. 없어요.” 


“많지요. 다만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겁니다.” 


“다섯 항아리쯤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점소이가 고개를 흔들어 들어가더니 낑낑거리며 항아리를 가져온다. 




“저놈 기다리다가는 한도 없겠군.” 




도치가 답답한지 양손에 술독을 들고 오더니 가장 먼저 초벽하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취봉(醉鳳)께서 먼저 받으시죠.” 


“고마워요.” 




벽하는 사양하지 않고 술을 받았다. 도치는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나머지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가장 마지막으로 냉하상에게 술을 내밀었다. 




“당신도 받아.” 


“고마워요. 당신도 받으세요.” 




냉하상이 도치에게도 술을 따라준다. 




“자~ 모두 잔을 드세요.” 


“도치야. 뭘 위해서 건배하는 거야.” 


“글쎄. 일사(一死)님 기다리시느라 얼굴이 반쪽이 된 취봉(醉鳳)소저를 위해 건배하자.” 


“하하하~ 그래. 건배.” 




첫잔을 마시고 안주가 나오자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지고, 적당히 취해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사람들이 끼리끼리 찢어지기 시작했다. 도치는 냉하상과 마사고, 이막수는 유미림과 마시는 식으로 연인(戀人)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둘려쌓여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풍운의 옆에도 벽하와 무경 등이 있었다. 




“미안해. 벽하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으며 서둘러 왔을 거야.” 


“치~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하세요. 옥선소저나 저기 있는 무경소저랑 즐기느라 신경이나 섰겠어요.” 


“무슨 말을 이렇게 섭섭하게 하시나. 내가 그런 놈으로 보여.” 


“당신이라며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죠.” 


“아니 이 사람이. 서방을 그렇게 못 믿는단 말이야.” 


“당신이 언제 믿게 했어요. 향상 도망치게 바빴죠.” 


“내가 언제........그리고 뭘 못 믿겠다는 거야.”


“참내. 제가 없는 사이에 부인을 두 명씩이나 얻으신 분을 누가 믿겠어요.” 


“그건 그러니까? 매제한테 못 들었어. 사정이 있었어.”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사정이야 있겠죠. 아니다. 그만하자. 술이나 주세요.” 




벽하가 잔을 내밀자 풍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술을 따라준다. 벽하에게 변명을 하자니 옥선이나 무경에게 미안하고, 그냥 있자니 자기만 나쁜 놈이 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슴만 답답한 것이다. 물론 벽하도 풍운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옥선이나 무경을 만나게 된 배경이나 맺어지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하벽을 통해 들었다. 다만 마음속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심술이 나는 것이다. 




“언니. 운랑께는 잘못 없어요. 욕을 하려면 저를 욕하세요.” 


“맞아요. 운랑을 욕하시려거든 저를 욕하세요.” 




풍운의 난감함을 알고 옥선과 무경이 벽하에게 아양을 떨듯 말하자 벽하는 피식 웃어버린다. 




“저도 원망하지 않아요. 질투도 안 해요.” 


“그럼 동생으로 받아주시는 거죠.” 


“이미 운랑의 여인이 되었는데 받아주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우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요.” 


“어니는 화통해서 좋다. 자 드세요.” 




풍운은 여자들이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도치에게 갔다. 여자들 틈에 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몸을 사리는 것이다. 




“도치님. 한잔 주세요.” 


“어라. 일사(一死)님이 여긴 무슨 일이죠. 오랜만에 하상이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고 가세요.” 


“뭐~ 뭐야.” 


“어허. 방해하지 말라니까?” 




도치는 풍운이 내민 잔을 무시하고 냉하상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내가 더러워서. 간다. 가. 둘이서 배터지게 쳐 먹어라.” 




풍운은 툴툴거리며 일어나서 악무룡에게 갔으나 악무룡도 풍운을 무시하고 곽지향과 술만 마신다. 풍운은 주위를 둘려보다가 홀로 술을 마시는 마수에게 갔다. 다들 연인들끼리 놀고 있으니 짝이 없는 마수만 남은 모양이다. 




“저랑 한잔 하시죠.” 


“허허허~ 부인들을 두시고 저랑 마시자는 겁니까?” 


“저기 보세요. 여자들끼리 놀고 있죠. 괜히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립니다.” 


“많아도 탈이군요. 드세요.” 




마수가 술을 따라주자 풍운이 벌꺽벌꺽 마신다.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일사(一死)님.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요?” 


“배화교뿐만 아니라 나머지 새외세력도 활동을 시작했어요. 우리들 힘만으로 어떻게 해볼 상황은 지났다는 말입니다.” 


“아깝다. 단번에 깨버리네.” 


“제가 흥겨운 기분을 망쳤군요.” 


“아닙니다. 저도 고민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마수님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글쎄요. 일사님께 복안(腹案)이 있지 않나요.” 


“중원 무림이 하나로 뭉쳐 하는데, 문제는 서로 다른 마음을 하나로 뭉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죠.” 


“먼저 우릴 도와주시는 분들부터 모아야죠. 그 다음 우리와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사사천교와 천마마련을 위시한 흑도(黑道)와 장강수로십팔채로 대표되는 녹림도 그리고 대륙상회의 힘을 모으실 계획이세요.”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죠.” 


“백도(白道)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백도(白道)는 무림맹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우리와 함께하기는 힘들 겁니다.” 


“중원 무림이 이원화(二元化)되도 좋다는 말씀인가요?” 


“이원화?” 


“흑도(黑道)가 중심이 된 연합이 하나 생기고, 무림맹으로 중심으로 한 백도(白道) 연합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게 이원화죠. 여기에 대한 문제점은 생각해 보셨나요.” 


“문제점?” 


“여도저도 아닌 사람들..........여기도 싫다. 저기도 싫다는 사람들..........어디에 붙어야 이익이 있을까? 눈치 보는 사람들..........이런 사람들이 생기겠죠. 쉽게 말해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셋, 넷으로 갈라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풍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수를 바라본다. 




“마수님께 복안이 있습니까?” 


“일사님께서 우내십기를 설득하세요. 그들을 다시 뭉친다면 50년 전처럼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보고 우내십기를 설득하라고 하셨나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어렵죠.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최상의 방법입니다.” 




풍운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우내십기를 설득하라. 말은 쉽다. 하지만 그게 어디 될 법이나 한 소린가? 우내십기 중에 행방이 묘연한 천무일룡을 제외하면 9명이 남는다. 그중에서 마마검제와 사인마도는 풍운과 인연이 있으니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마마검제와 사인마도를 설득하면 배교의 천외자를 설득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백도(白道) 사람들이다. 소림의 무혜성승은 홍인의 사부이며, 무당의 태청진인은 현원자의 사부가 된다. 또한 화산의 태화상인은 화원명의 사부이며, 남궁세가의 성수천검은 남궁벽의 할아버지가 된다. 홍인이나 화원명은 모르겠지만 현원자나 남궁벽은 풍운을 극도로 미워하니 자연적으로 그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도 당연히 풍운을 싫어할 것이다. 




“불가능해요. 그들이 제 말을 들어주기나 하겠어요.” 


“처음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차선을 찾아야죠.” 


“차선? 또 다른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무림맹과는 별도로 우리와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르는 겁니다. 물론 이때는 태산이 하나의 먼지도 마다하지 않듯이 모든 이를 받아들어야 합니다.” 


“며칠 전에 무경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을 봤어요. 혹시 무경도 같은 의견입니까?” 


“무경님의 뜻도 저랑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일차적으로 우리와 뜻을 같이 하실 분들을 모으고, 우내십기를 설득하자.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독자적인 길을 가돼 만인(滿人)을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정도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쩝~ 결론은 나만 뭐빠지게 뛰어다녀야 한다는 말이군요.” 


“킥킥킥~ 팔자라고 생각하세요.” 


“나 혼자 고생할 수는 없지. 마수님도 준비 단단히 하고 계세요. 이번에는 여러분 각자에게 권한과 그에 합당한 책임을 줄 겁입니다.” 


“이제 보니 일사(一死)님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놓으신 모양이군요.” 




풍운과 마수가 떠들고 있는데 벽하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어이. 서방. 그만 가자. 졸려죽겠다.” 




벽하의 혀 꼬부라진 말에 풍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취봉(醉鳳)이라는 별호에 어울리게 벽하가 맛(?)이 갔으니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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