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59부

본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법이다. 하루 동안의 광란(狂亂)의 잔치가 끝나고 서서히 날이 밝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술병과 처참하게 버려진 여인들의 시체들이 즐비한 군막을 사이로 혁린강이 걷고 있었다. 혁린강은 여인들의 시체들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여인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태어난 곳과 살아가는 곳이 다른 차이점을 빼면 무엇이 다른가? 모두가 다 같이 사람이 아닌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빼앗으려하는가? 인간의 생명과 존엄(尊嚴)성을 짓밟으면서까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혁린강은 서서히 밝아오는 태양을 보며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싫다. 중원이라는 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싶었다.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워진 운명이라는 짐이 너무 무겁다. 혁린강은 고개를 흔들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다. 자신이 싫다고, 하고 싶지 않다고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혁린강은 십대마왕과 대장들을 군막으로 불렸다. 




“여자들은 모두 묻으세요. 역사가 아무리 승자들만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우리들의 치부(恥部)가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모두 죽이라는 말씀입니까?”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죽이세요. 그리고 천천히 출발 준비하라고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십대마왕과 대장들은 무사들을 깨워 여자들을 모두 파묻기 시작했다. 




“이봐~ 공자님 말이야. 정말 이상한분 아니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쩔 때는 정(情)도 많고 다정다감한 분 같은데, 어쩔 때보면 찔려도 피한방울 안나 것처럼 잔인하니 하는 말이야. 이번일도 그래. 여자들을 모두 죽이라니·······비록 적(敵)이지만 너무 잔인하잖아.” 


“참내~ 솔직하게 말해봐~ 여자들이 불쌍해서 하는 말이야.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 하는 말이야.” 


“물론 다른 뜻도 있지만...........” 


“그만해. 자네 속을 모를 줄 알아. 이년들이랑 더 즐기고 싶은 거잖아. 공자님은 군율(軍律)을 중시하는 분이야. 풀어줄 때는 확실하게 풀어주지만 평소에는 냉정하고 차가운 판단력으로 지휘하셔. 그렇게 하시니까 우리가 연전연승(連戰連勝)하고 있는 거야.” 


“그래. 그래. 그만하자. 공자님께서 단시간에 이만한 성과를 거두셨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믿고 따라야지.” 




혁린강이 지휘하는 배화교 본진은 하루 동안의 잔치를 끝내고 새롭게 전열(戰列)을 정비했다. 하지만 모든 무사가 혁린강의 말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차마 여자들을 죽이지 못하고 몰래 숨겨둔 놈들도 있었다. 청성과 아미를 불바다로 만들고 질퍽한 잔치를 벌였던 배화교 이진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성도근방에 있는 야산으로 이동했다. 혁린강이 전서구로 성도에서 합류(合流)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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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일행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송반(松潘)을 지나 성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배화교가 아미와 청성을 상대하데 정신이 팔린 사이에 풍운일행이 먼저 성도에 도착한 것이다. 풍운일행은 성도에 도착하자 허름한 객점을 통째로 빌렸다. 




“모두 쉬고 계세요. 저는 둘려보고 올게요.” 


“도착하자마자 어딜 가세요.” 


“대륙상회 성도지부를 다녀와야지. 우리가 이동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잖아.” 


“이곳에는 배화교 이진이 있어요. 혼자 행동하시면 위험해요.” 


“역용하고 다니면 돼. 다른 사람들은 쉬고 계세요.” 




풍운은 일행을 남겨두고 대륙상회 성도지부를 찾아갔다. 성도지부는 남쪽에 있는 무후사(武侯祠)근처에 있었다. 무후사는 촉한의 승상 제갈량(공명, 181∼234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진 영안원년(304년)에 창건되었으며, 경내에는 유비전(劉備殿), 제갈량전(諸葛亮殿), 촉한의 문신무장소장 28위 및『제갈고(諸葛鼓)』라 칭해지는 동고(銅鼓) 등 있으며 정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유비전안에는 황금색의 유비의 상이 안치되어 있고 제갈공명의 정치, 군사, 사상이 담긴『융중전(隆中殿)』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한쪽에 떨어져 있는 제갈량 전에는 그의 문장과 업적을 칭송하는 글들과『제갈고(諸葛鼓)』라는 북이 있는데 제갈고는 남녘 정벌 때 제갈량이 낮에는 그 북을 두드려 밥을 짓고, 밤에는 그것을 두드려 경보를 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풍운이 성도지부에 도착해 막사검을 보여주자 지부장이 집무실로 풍운을 안내했다. 




“사천성 지부장으로 있는 평성이라고 합니다. 태상장로일행이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찾을 것이라 짐작하고 계셨군요.” 


“그 정도는 당연히 짐작하고 있어야죠.” 


“그럼 인사치례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배화교와 사천무림의 동태를 소상하게 알려주세요.” 


“요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미와 청성파의 본진이 초토화되고 공동산으로 가던 지원군이 몰살당했습니다.” 


“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미와 청성파가 초토화 돼요. 그게 사실입니까?” 


“아미와 청성파도 우리 상회의 단골손님들 입니다. 생필품을 전해주려 갔던 회원들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消失)되고 곳곳에 시체들이 즐비하다고 합니다. 아미나 청성도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 겁니다.” 


“공동파처럼 모두 죽었단 말입니까?” 


“청성은 생존자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힘들게 도망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아미는 양호한 편입니다. 금정신니을 비롯한 수뇌부와 일대제자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비구니를 도망친 모양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消失)되고, 많은 제자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공동에 이어 청성과 아미까지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다니, 할말이 없군요.” 


“그것도 그거지만 더 기막힌 것은 공동파로 가던 아미와 청성의 주력이 괴멸(壞滅)되었다는 겁니다.”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공동파를 초토화시킨 배화교 본진은 구채구(九寨溝)을 조금 지난 숲에서 매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미와 청성의 지원군은 매복이 있는지도 모르고 숲으로 들어갔다가 습격을 받아 전멸한 거죠.” 




풍운은 너무나 기막힌 현실에 할말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배화교가 막강한 전력(戰力)을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중원 무림을 장악하고 있던 아미와 청성이 공동에 이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중원 무림이 이정도로 허약했던 것일까? 예상외의 공격에 당황했기 때문일까? 설마라는 안일한 대처 때문일까? 그 무엇으로도 지금의 결과를 설명하긴 힘들다. 구파일방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진 것은 어느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복합된 결과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사천당가는 어떻게 됐죠?” 


“예상외로 당가쪽은 조용합니다. 배화교도 아직까지는 공격할 의사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 밖의 다른 군소문파들의 움직임은 어때요.” 


“대부분 도망치자는 분위기 입니다. 청성과 아미까지 초토화된 마당에 비빌만한 언덕도 없으니 다들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사천에 산제한 군소문파들은 아미와 청성과 관련이 깊다. 이마와 청성의 제자였거나 그들에게 무술을 배운 사람들이 세운 문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미와 청성이 무너졌다. 믿고 의지하던 기둥이 무너졌으니 나머지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모두 그래요. 다들 도망치는 겁니까?” 


“모두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대부분 그래요. 어떤 문파는 벌써 본진을 버리고 도망친 문파도 있습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친단 말입니까?” 


“죽는 것보다는 낮지 않습니까? 공동파에 있던 생명체가 씨가 말랐고, 아미와 청성파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당했습니다. 그걸 보고 누가 싸우려하겠습니까? 잘못 걸리면 죽는데 도망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풍운은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지부장을 바라본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지켜야 할 것이 있지 않는가? 모두 도망친다면 누가 싸울 것인가?




“만일 배화교가 대륙상회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망치시겠습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제가 대륙상회 장로가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지부장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힘들게 대답한다. 




“저와 가족들만 생각한다면 도망칠 겁니다. 하지만 본회에 장로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싸울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제가 없으면 도망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장로님께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기에 도망치지 않습니다.” 




짧은 대답이지만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누군가를 믿는 다는 것, 믿고 따를 수 있는 무언인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우리 일행은 주정객점에 있어요.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곳으로 연락주세요.” 


“벌써 가시는 겁니까?” 


“가볼 때가 있어요. 참~ 여기 사천에 장강수로십팔채가 있지요?” 


“무산삼협채가 있습니다.” 


“위치가 어디죠?” 




풍운은 지부장에게 위치를 자세하고 듣고 나서 무산삼협채로 향했다. 무산삼협채는 장강수로십팔채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서천과 청해성 등으로 이동하는 물자를 담당하는 곳이다. 풍운은 혈선(血腺)을 야산에 풀어주고 무산삼협채로 향했다. 혈선(血腺)을 타고 다녀오기는 시간이 촉박해서 음양비로 다녀올 생각이다. 풍운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새처럼 날아간다. 무림 최고의 경공인 음양비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천리마인 혈선(血腺)보다 빠르다. 성도에서 떨어진 간양(簡陽)이라는 곳에 도착한 풍운은 무산삼협채가 있는 나루터로 갔다. 나루터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짐 보따리를 집어지고 있는 무사들과 가족들이었다. 




“모두 차례를 지키세요. 거기 새치기하면 태워주지 않을 겁니다.” 




구리 빛 피부에 건장한 뱃사람들이 밀려드는 손님들을 진정시키며 배에 태우고 있는데 사람들은 서로 먼저 타겠다고 난리가 아니다. 풍운은 나루터 입구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뱃사람에게 갔다. 




“저기 말 좀 물어봅시다.” 


“뭐요. 바쁘니까 빨리 물어보소.” 


“무산삼협채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이 사람이 바쁜 사람 붙잡고 헛소리하나? 저기 안보여요. 저기가 무산삼협채 아니요.” 




무사가 가르치는 곳을 보니 나루터에서 멀리 않은 야산에 목책을 누른 마을이 보인다. 




“저기가 무산삼협채입니까?” 


“두말하면 입 아프지. 본일 끝났으면 빨리 가보소.” 




풍운은 쓰게 웃으며 나루터를 벗어나 무산삼협채로 향했다. 망루에 있던 무사가 풍운을 발견했다. 




“거기 누구요.” 


“채주님을 만나러 온 사람입니다?” 


“먼저 정체부터 밝히세요.” 


“마수마랑 풍운이라고 합니다.” 


“저기, 방금 풍운이라고 하셨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경비무사는 다급하게 비상종을 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책으로 만들어진 문이 열리며 40대 중반의 사내와 사람들이 나왔다. 




“저기~ 마수마랑님이 확실한 겁니까?” 


“우문보채주님이시죠. 제가 역용을 하고 있어서 못 알아보시는 군요.” 




풍운이 군산해전에서의 얼굴로 역용하니 우문보채주는 반갑게 달려와 풍운의 손을 잡았다. 군산해전에 우문보채주도 참여했기 때문에 풍운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또 사실 세상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역용할 수 있는 사람이 풍운 외에 누가 있겠는가?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시기가 하도 어수선해서 잠시 실례를 범했습니다.” 


“당연히 확인부터 하셔야죠.” 


“자자~ 들어가시죠.” 




채주는 풍운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더니 부채주를 비롯한 책임자들을 불려 인사를 시켰다. 차기 총채주로 내정된 풍운이 왔으니 인사를 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인사는 이정도로 끝내시죠. 오늘 제가 온 것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너희들은 물려가고 술상을 준비하라고 일러라.” 


“술 대신 차로 주세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차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에 한잔 하죠.” 


“음~ 할 수 없죠.” 




채주가 차를 가져오라 하니 하녀가 차를 가져다주고 문을 닫는다. 이제 채주와 풍운만 남은 것이다. 




“오면서 보니까 나루터에 사람들이 많더군요.” 


“대부분 사천일대의 군소문파사람들입니다. 아미와 청성이 배화교에 의해 불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치는 거죠?” 


“지키려는 자는 없는 없고 도망치는 자만 있는 겁니까?”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군요.” 


“채주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예? 어떻게 하다니요?” 


“남들처럼 도망치실 겁니까?” 


“하하하~ 뭐가 무서워 도망친단 말입니까? 죽어보라고 하세요. 오는 족족 수장시켜 버릴 테니.........그건 그렇고 우리는 마수마랑님이 감숙성에 계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제가 감숙성에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죠?” 


“총채에서 알려줬어요. 아참~ 옥선소저께서 총채 무사들과 함께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세요.” 


“옥선이가? 이 위험한 곳에 왜요?” 


“배화교 놈들이 들 끊고 있는 감숙성에 계신다고 하니 걱정되어 오신다고 합니다. 사실 그래서 저희들도 마수마랑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음~ 잘 알겠습니다. 저는 현재 성도에 있는 주정객점에 있어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계속 머물러 있겠지만 혹시 없으면 대륙상회를 찾으세요. 대륙상회에서 제가 있는 곳을 알려줄 겁니다.” 


“바로 떠나실 겁니까?”


“가야죠. 가서 뭐라도 해야죠?”


“예? 이미 무너진 것이나 진배없는 사천에서 무엇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사천당가을 구해야죠.” 


“사천당가요? 어려울 것 같은데.......워낙 폐쇄적인 가문이라 마수마랑님께서 돕겠다고 해도 싫다고 할 겁니다.” 


“저도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천당가까지 무너지면 사천 무림은 끝입니다. 그들만이라도 구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휴~ 저는 잘 모르겠네요.” 


“하여튼 옥선이 오면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저희들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풍운은 채주와 인사하고 곧바로 성도로 달려갔다. 밤이 깊어서야 객점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혈선을 다시 데려오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늦은 시간까지 풍운을 기다리던 일행이 한자리에 모였다. 




“늦었네요. 일이 많으셨어요?” 


“대륙상회 성도지부에 들렸다가 간양(簡陽)에 있는 무산삼협채를 다녀오는 길입니다.” 


“무산삼협채라면 장강수로십팔채의 하나 아닙니까?” 


“맞습니다. 나중에 도움을 받을 것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들렸다 오는 길입니다.” 


“가신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무경의 질문에 풍운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미와 청성의 본진이 초토화되고 공동으로 가던 지원군까지 전멸(全滅)했다고 합니다.” 




풍운은 성도지부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아미와 청성까지 무너지다니..........도대체 어떻게 생겨먹는 놈들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정말 한심한 놈들이군.” 




이막수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이막수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양민들을 보호하고, 무림을 바른 길로 이끌어가야 할 백도라는 놈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만 채우기 급급하고,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반(反)하는 사람들은 무림공적이라는 누명을 씌워 치부(恥部)를 감추기 급급했다. 그들이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위험에 대비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배화교 놈들이 쳐들어오니까 대비해야 한다고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떠들고 다녔어. 그런대도 무사안일(無事安逸)주의에 빠져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손놓고 있었으니 이렇게 당하는 것도 당연하지. 모두 인과응보(因果應報)아니겠어.” 


“빌어먹을........앞으로 어떻게 될지 캄캄하군.” 




십이사 모두가 너무나 기막힌 현실에 쓰게 웃으며 말한다. 




“남이나 탓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나루터에는 사천에서 도망치려는 무림인들로 장사진(長蛇陣)을 이루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대부분의 무사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감숙성에 이어 사천성까지 배화교 놈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입니다.” 




풍운의 말에 서로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본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뜻이지만 굳이 백도를 도와주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모두들 냉담하군요. 저번에 말했습니다. 모두들 좋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고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양민들을 위해 싸우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막말로 우리끼리 배화교와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닙니까? 같이 싸울 놈이 있어야죠.” 


“맞습니다. 아미와 청성는 무너졌고 군소문파들은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고 있어요. 사천무림은 가망이 없습니다.” 




이막수의 말에 칠대세가 사람인 악무룡까지 맞장구를 친다. 현실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공동파가 초토화되고, 아미와 청성까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싸워볼 엄두도 못 내고 도망치기 급급한 것도 욕할 것은 없어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한다고, 믿고 의지할 곳도 없으니 당연히 도망가죠.” 


“운랑! 냉정한 말이지만 사천은 포기해야 합니다. 희망이 없어요.” 


“모두가 안 된다고만 하는데.........우리는 지금까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왜? 안 된다고만 하시는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겁니다. 이번 같은 경우가 그래요.” 




무경과 마수조차도 상황이 너무 어려워 방법이 없다고 한다. 대책이 없는 것일까? 이대로 사천이 배화교이 넘어가는 것을 손놓고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풍운은 주위를 둘려보다가 금막비와 당령을 바라보았다. 금막비와 당령은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여기서 풍운일행마저 외면한다면 사천당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다른 군소문파들처럼 도망친다면 모르겠지만 자존심 강한 사천당가가 도망치진 않을 것이다. 금막비와 당령도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감히 도와달라는 말을 못하는 것이다. 풍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 좋아요. 사천 무림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당가만이라도 구해야 합니다. 그들까지 무너지면 사천에 희망이 없어요. 여러분도 말했지만 무언가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당가만으로는 배화교를 막는데 역부족이지만 그들만이라도 배화교의 마수에서 무사해야 사천무림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기다렸어요. 사천 무림 전체를 구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당가는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무경의 말에 마수도 끄덕거린다. 마수도 무경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풍운이 너무 과도하게 사천 무림 전체를 구하자고 했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천당가를 구출할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사천당가가 우리말을 들어줄지 의문이지만 금선탈각지계를 사용하면 가능합니다.”


“본진을 버리고 몸만 빠져나가자는 건가?” 


“요점을 말하면 그거죠. 당가는 암기와 독으로 유명하죠. 암기와 독 그리고 사람만 빠져나간다면 건물은 언제라도 다시 만들면 되는 겁니다. 당령님 제 말이 틀렸나요?” 




무경의 질문에 지금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당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암기를 만드는 시설이나 각종 설계도 등도 소중한 재산입니다. 한번 망가지면 다시 만들기까지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당가의 핵심 당중에 복구당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들만 무사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암기당 및 독당과 함께 복구당이 본가의 핵심이라는 것은 기밀사항인데 많은 것을 알고 계시네요. 무경님 말씀대로 복구당만 건재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세울 수 있어요. 문제는 본가가 우리 뜻대로 해줄지 의문이라는 겁니다.” 


“워낙 자존심 강한 분들이라 모두가 우리 뜻에 찬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해봐야죠.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봐야죠.” 


“이렇게 하자. 옥선이가 총재의 함선(艦船)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어. 군산해전에서 보았지만 배화교는 물에서는 약하기 때문에 함선을 타고 도망치는데 문제가 없을 거야. 그리고 당가를 설득시키는 일은 당령님께서 도와주세요. 저와 함께 당가로 갑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풍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경이 급하게 일어났다. 




“지금 당가로 가시겠다는 말씀이세요.” 


“한시가 급해. 당장 만나야지.” 


“무턱대고 쳐들어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대책을 세워놓고 가야죠.” 


“당령님이 함께 가시니 걱정하지 마. 일단 부딪쳐 보고 생각합시다. 무경은 나머지 분들과 함께 배화교의 움직임에 대해 파악해봐~ 대륙상회 정보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확실하지.” 


“알았어요. 그럼 막사검을 주고가세요. 배화교 놈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야 감시를 하던지 정보를 캐던지 할 게 아닙니까?” 




풍운이 고개를 끄덕거리면 마수에게 막사검을 주니 당령이 일어났다. 




“비랑 다녀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와. 일사(一死)님 당령을 부탁합니다.” 


“조심할게요. 갑시다.” 




풍운이 당령과 함께 사천당가로 떠나자 마수와 이막수가 대륙상회 성도지부를 찾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도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당령을 태운 혈선이 바람처럼 달려간다. 풍운은 혈선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당령님! 현재 가주는 누구죠?” 


“당순근이라는 분입니다. 촌수로 따지면 저와 삼촌뻘 되는 분입니다.” 


“실권은 누가 가지고 있죠. 쉽게 말해 당가를 움직이는 실체가 누굽니까?” 


“평**면 가주가 실권을 가지고 있어요. 인사권까지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원로원에서 전대 가주셨던 아버님을 밀어내고 삼촌을 가주로 옹립(擁立-받들어서 임금의 자리 따위에 모시어 세움)한 상태라 실제적인 실권은 장로원에서 가지고 있을 거예요.” 


“복잡하군요. 당령님께서 잘 아시니 누굴 만나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수석장로님을 만나세요. 그분만 설득할 수 있다면 당가를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이야기하는 사이에 어느덧 당가에 도착했다. 풍운 혈선을 풀어주고 당령과 함께 당가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으로 올랐다. 당가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관계없다는 듯이 적막한 정도로 조용하게 보인다. 




“수석장로의 거처를 알고계세요.” 


“장로원과 멀지 않아요. 저기 건물 보이죠. 저 건물 뒤편에 수석장로님의 처소가 있어요.” 


“잠시 실례할게요. 손 좀 주시겠어요.” 




풍운이 손을 내밀며 말하자 당령이 작고 통통한 손을 내밀었다. 풍운은 당령의 손을 잡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당령은 순식간에 주위 사물들이 작아지자 숨을 멈추었다. 풍운이 무림최고의 경공을 익히고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새처럼 자유자재로 공중을 날아다닐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혼자도 아니고 자신까지 잡고 있지 않는가? 풍운은 경비무사들이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올라간 다음 당령이 말한 원로원을 넘어 한적한 곳에 위치한 건물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경비무사들이 숨어 있는 모양이네요.’ 




풍운은 당령에게 전음을 보내고 나무들이 우겨진 숲으로 날아갔다. 




“쉬이익~” 


“억~”


“윽~”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나무위에 숨어 있던 무사들이 풍운의 지풍(指風)에 혈도가 제압되어 쓰려진다. 풍운은 잔상(殘像)을 남기며 나머지 무사들을 처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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