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43부

본문

목표한 군소문파들을 혓바닥으로 접시 핥듯이 깨끗하게 몰살시키고 대설산에 다시 집합한 배화교 본진은 기린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무사들이 엄밀하게 호위하는 마차를 향해 전서구가 날아왔다. 혁린강은 서찰을 읽다말고 거칠게 찢어버린다. 




“그렇게 조심하라고 하였거늘.........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쌍마(雙魔)님을 믿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혁린강의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자 앞에 있던 벽안환요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쌍마(雙魔)님께서 십이사(十二死)의 함정에 빠져 십이살(十二殺) 중에 4명이 죽거나 생사(生死)가 불분명(不分明)하고, 이마(二魔)님은 치료하기 힘든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설마! 쌍마(雙魔)님이 그런 실수를 하셨단 말이에요.” 


“쌍마(雙魔)님과 십이살(十二殺)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지나친 자신감이 부른 화(禍)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제가 직접 나서야겠어요.” 


“자중하세요. 공자님은 부대전체를 지휘하는 대장입니다. 공자님은 본진을 지휘해주시고 십이사(十二死)일은 저희 십대마왕에게 맡겨주세요.” 


“십이사(十二死)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초기에 죽이지 못하면 중원공략이 힘들어져요.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서겠다는 겁니다.” 


“제가 갈게요. 제가 가서 쌍마(雙魔)오라버니들을 도와 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벽안환요의 간곡한 말에 혁린강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네요. 귀왕대만 별도로 움직이긴 너무 위험하고, 환요님을 보내는 것도 내키지 않아요.” 


“한번만 더 믿어주세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벽안환요가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혁린강은 환요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힘들게 입을 열었다. 




“환요님은 제 겉을 지켜주세요. 대신 검치독인(劍癡獨人)님을 보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제가 검치오라버니께 공자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벽안환요가 밖으로 나가자 혁린강은 창문을 열었다. 벽안환요가 검치독인과 잠깐 이야기하더니 검치독인이 달려왔다. 




“환요에게 들었습니다. 맡겨주세요. 반드시 놈들을 처단하겠습니다.” 


“삼마(三魔)님! 다시 당부하지만 십이사(十二死)는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특히 일사(一死)를 조심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바로 난주로 가겠습니다.” 




검치독인을 태운 말이 길게 울부짖으며 난주를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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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에 풍운이 돌아왔다. 풍운은 객점에 도착하자 점소이에게 혈선을 맡기고 무경과 마수가 있는 방으로 올라왔다. 




“다녀오셨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그것보다 연구는 해 봤어요.”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제가 점소이에게 부탁할게요.” 




무경은 밖으로 나가 점소이에게 식사를 주문하고 돌아왔고 잠시 후에 식사가 준비되었다. 




“먹으면서 듣죠. 방법은 있는 겁니까?” 




풍운의 질문에 앞에 앉은 마수나 무경은 대답을 못한다. 아무리 고민해도 방법이 없다. 하늘의 지혜를 가졌다는 무경도 모르고 배화교에 대해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마수도 모른다. 




“대답이 없군요. 역시 방법이 없는 건가요?” 


“제가 살펴본 결과 저들에게 가해진 금제(禁制)는 3가지예요. 마령단, 감각신경의 차단. 섭혼(攝魂). 이중에서 마령단은 운랑께서 수라기나 선천강기로 제거하실 수 있고 차단된 감각신경은 금침대법으로 되살릴 수 있어요. 문제는 수라섭혼이에요. 아무리 고민해도 수라섭혼을 풀 방법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안타깝지만 포기하세요.” 


“죽이자는 말이야?” 


“저들을 위해서도 그게 최선의 방법이에요.” 




풍운은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만일에 저들이 가족이라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


“수라섭혼도 인간인 만들어낸 무공에 지나지 않아. 극복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해보자. 최선을 다해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하자. 이렇게 나와야 정상 아닌가?”


“운랑 마음은 알아요. 저도 가엽고 불쌍해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걸 어떻게요. 제가 살펴본 결과 저들의 지능(知能)은 다섯 살 꼬마수준도 안돼요. 자기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몰라요.”


“마령단의 중독과 감각신경이 차단되어 일어나는 현상일 거야. 혹은 수라섭혼으로 과거의 기억을 억눌려버렸을 지도 모르지.”


“좋아요. 마령단의 독을 제거하고 차단된 감각신경을 살려주면 정상으로 돌아올까요? 수라섭혼에 제압당한 영혼은 어떻게 하실 거죠?”


“가끔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해봐.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고 결과를 보자.” 


“어쩌면 그게 저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지도 몰라요. 그건 생각해 보지 않으셨어요?”


“알아. 알고 있어.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우리 한번 해보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잖아.”




풍운의 간곡한 말에 무경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한다. 운명대로 한다면 자신은 죽었어야 했다. 모두가 칠음절맥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포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풍운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치료하여 새로운 삶을 주었다. 풍운은 그런 남자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운명이라고 포기해도, 절대 포기하기 않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남자다. 




마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풍운을 바라본다. 많이 변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다. 스스로의 의지도 없고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고만 했다. 한 무리의 수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은 아니다. 한 무리의 수장을 넘어 영웅의 풍모(風貌)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강력한 추진력으로 만인(萬人)을 이끌고 있다. 풍운은 상자에 누워있는 남녀를 바닥에 눕혔다. 




“헉~ 헉~ 죽인다. 죽여라.” 




일살(一殺)과 삼살(三殺)은 붉게 물든 눈으로 풍운을 노려보며 온몸을 비틀었다. 혈도를 제압했기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다. 풍운은 두 사람을 보고 쓰게 웃는다. 살기(殺氣) 가득한 눈빛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옷차림을 보고 찌푸린 것이다. 찢어진 옷 사이로 붉게 물든 젖가슴과 허벅지가 보인다. 모두 벗고 있는 것보다 살짝 속살이 드려난 지금의 옷차림이 색욕을 자극한다. 풍운은 애써 삼살(三殺)을 외면하며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당신들을 위하는 길이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깨끗하게 죽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당신들을 이대로 보낼 수 없어요.” 




풍운은 먼저 삼살(三殺)을 자리에 앉힌 다음 찢어진 옷을 벗기니 무경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린다. 치료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자신의 남자가 외간여자의 옷을 벗기니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다. 더구나 마수까지 있지 않는가? 풍운은 혈도가 제압되어 나무토막 같이 뻣뻣한 삼살(三殺)의 뒤에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더니 수라마령신공을 끌어올렸다. 가장 강한 힘은 선천강기(先天剛氣)지만 예전에 십이사(十二死)를 치료할 때 수라기(修羅氣)를 사용했기 때문에 수라마령신공을 끌어올린 것이다. 풍운의 몸이 순간적으로 은색에서 금색으로 변하고 끝내는 무색(無色), 무형(無形)의 기(氣)가 방안에 가득 찬다. 풍운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삼살(三殺)의 등에 손을 얻고 12성의 수라기(修羅氣)를 불어넣었다. 




“아아악~” 




팔이 날아가고 온몸이 난도질당해도 작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던 삼살(三殺)이 온몸을 부들거리며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극양(極陽)의 수라기(修羅氣)가 몸속 깊숙이 침투한 마령단의 독기(毒氣)를 태우는 고통은 감각기관이 죽어버린 삼살(三殺)도 느껴지는 모양이다. 역할 냄새와 함께 삼살(三殺)의 땀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수는 입을 막고 무경에게도 입을 가리라고 손짓하더니 창문을 열었다. 만독불침인 풍운이야 상관없지만 마령단의 주성분인 시독(屍毒)이 타며 발산하는 연기를 마셔서 좋을 것이 없다. 풍운의 이마가 땀방울이 맺힌다. 삼살(三殺)의 몸에 축적된 마령단의 독기(毒氣)가 너무 많아 예전에 십이사(十二死)을 치료할 때보다 몇 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배화교는 한 번의 실패를 겨울삼아 십이살(十二殺)에게 엄청나게 많은 마령단을 먹여 독(毒)이 골수까지 침투했다. 풍운은 삼살(三殺)의 등에 붙이고 있던 양손을 거두고 길게 숨을 몰아쉰다. 




“끝났어요.”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무경의 질문에 풍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직.” 


“그런데 왜 중단하셨어요. 힘드셔서 그래요.” 


“지금이 한계야 더 하면 이친구가 견디지 못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세요.” 


“꾸준히 치료하면 골수까치 침투한 독기(毒氣)라도 제거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문제야. 마령단이 언제 발작할지 모르잖아.” 


“그럼 포기하시는 건가요.” 


“아직 일려. 수라기(修羅氣)보다 강력한 선천강기로 시도해 볼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무경과 마수님은 사내를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세요.” 


“우리가 피할 만큼 위험한 일인가요.” 


“선천강기를 이 친구가 견딜지도 의문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피해있으라는 말이야.” 




무경과 마수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일살(一殺)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풍운은 원을 그린 양손을 무릎위에 올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단번에 마령단의 독기(毒氣)를 태울 기(氣)를 끌어내려면 7개의 차크라에 잠들어 있는 선천강기(先天剛氣) 모두를 끌어올려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 풍운이 수라기(修羅氣)를 거두고 선천강기를 끌어올리자 하단전에서부터 눈부신 광채(光彩)가 솟아지더니 삽시간에 빛의 덩어리처럼 변한다. 7개의 차크라가 찬란한 빛을 뿌리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풍운이 가늘게 경련한다. 7개의 차크라에 잠들어 있던 선천강기가 성난 파도처럼 일어나 가슴으로 모여들며 온몸이 부셔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풍운은 전투 시에 두개 이상의 차크라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의 차크라에서만 극성으로 끌어내도 수라기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2개 이상의 차크라에서 선천강기를 끌어올리면 지금처럼 고통이 밀려와 순간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수들의 대결에서 순간의 흔들림은 생사(生死)를 가른다. 지금 풍운은 7개의 차크라에서 선천강기를 끌어올렸다. 삼살(三殺)이 느끼는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무경을 치료할 때 만났던 정령을 다시 불려낼 생각이다. 




풍운이 팔을 올리니 가슴에 모아졌던 선천강기(先天剛氣)가 양손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와 하얀 구름을 만들고, 허공에 둥실 떠있던 구름은 이리저리 형태가 변하더니 인세(人世)에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여인은 섬섬옥수를 들어 풍운의 상기된 뺨을 어루만진다. 




“주인님은 향상 급하세요. 시간이 가면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일인데도 향상 우리 예상보다 앞서가시죠.” 


“반가워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저는 주인님과 하나랍니다. 주인님께서 평안하시면 저도 잘 지내요.” 




여인과 풍운은 마치 오래된 연인들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보통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영혼(靈魂)의 대화다. 




“저 여인 때문에 또 무리하신 건가요.” 


“반반입니다. 저 여인 때문도 있지만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궁금하신 것이 많으셨던 모양이죠.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대답해 드릴 수 없어요.” 


“바라지 않아요.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지 등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다보며 언젠가는 모든 것을 알게 되겠죠.”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저는 주인님을 믿어요. 지금까지도 잘해 오셨지만 앞으로도 잘하실 겁니다. 하지만 란님에게는 너무 하셨어요.” 


“란! 제갈세가의 풍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그분은 주인님의 부인으로 내정되신 분입니다. 저와 함께 있던 정령이 그분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주인님과 그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짐작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저를 거부해요.” 


“주인님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래요. 주인님께서 본모습을 보여주시면 그분도 마음을 여실 겁니다.” 


“그녀의 내면세계에도 나와 같은 형상을 한 정령이 있는 모양이죠.” 


“예! 있어요. 그래서 주인님의 본모습을 보시면 마음을 여실 거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더욱 싫어지네요.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준 운명에 의해 맺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고집불통! 하기는 그게 지금의 주인님을 만든 원동력이죠. 하지만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마세요. 그분도 힘드실 겁니다.” 


“그녀 이야기는 그만하죠. 한 가지 물어볼게요. 마지막 차크라까지 각성하고 차크라의 힘을 끌어내는 것까지는 했어요. 그런데 왜 아픈 거죠.” 


“몸이 버티지 못해서 그래요. 주인님의 금제(禁制) 중에 신체에 대한 것도 있어요. 쉽게 말해 주인님은 현재 완성체(完成體)가 아닙니다.” 


“완성체? 그게 무슨 말이죠. 금강불괴에 만독불침인데도 부족하단 말입니까?” 


“완성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성체(神聖體)라고 할 수 있으며 풀어서 설명하면 신(神)의 능력을 담을 수 있는 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주인님은 18살이 넘어야 차크라의 각성과 완성체를 이루도록 금제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스스로의 노력과 여러 가지 사건들 때문에 차크라의 각성시기가 많이 당겨진 겁니다. 하지만 완성체는 아직 이루지 못하셨어요.” 


“그럼 완성체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몇 개월만 기다리시면 금제가 풀리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된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정령의 말에 풍운은 피식 웃는다. 정령의 말뜻을 그대로 해석하면 정령과 몸을 합쳐야 완성체가 된다는 말이다. 




“지금 하면 안 될까요?” 




풍운의 장난스러운 말에 정령이 째려본다. 




“이상한 상상하지 마세요. 저를 인간의 범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본래부터 주인님과 하나였으나 금제에 의해 나누어졌어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하나가 되는 과정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건 과정에 지나지 않아요.”


“알아요. 지금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없는 건가요?” 


“안 됩니다. 아직 정해진 시간이 남았어요.” 


“고지식하군요. 제가 양보하죠. 그건 그렇고 혹시 저 여인을 치료할 방법이 있나요.” 


“주인님이라면 가능합니다.” 


“정말이요? 어떻게 하면 되죠.” 


“제가 가끔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셨을 거예요. 괴물들은 주인님 마음속에 생겨난 심마(心魔)였어요. 여기서 심마(心魔)란? 한계상황에 부딪쳐 포기하고픈 마음일수도 있고,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일수도 있어요. 또한 자신을 괴롭히는 외부의 힘일 수도 있어요. 저 여인은 수라섭혼이라는 외부의 심마(心魔)가 억압하고 있는 거예요.”


“수라섭혼이라는 심마(心魔)을 제거해주면 된다는 말이죠? 저에게 그런 힘이 있나요?”


“제가 영혼기병(靈魂奇兵) 천향(天香)입니다. 저와 하나가 되시면 돼요.”


“뭐야 그럼. 결론적으로 지금은 안 된다는 말이잖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주인님은 금제에 상관없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셨잖아요.”


“말을 어렵게 하는 군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말씀하세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제가 여인의 몸에 들어가서 제거해주면 돼요. 하지만 여인이 저를 감당하지 못해요. 저를 감당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주인님뿐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임시적으로 저와 하나가 되어 주인님께서 직접 심마(心魔)를 제거하시는 방법입니다.”


“그게 가능해요.”


“주인님께서 참으실 수 있으면 가능해요.”


“참는 데는 이골이 난 놈입니다. 해봅시다.”




정령은 빙긋이 웃더니 천천히 내려와 풍운의 겉에 앉았다. 마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여인 같다. 풍운은 정령의 나신(裸身)을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았다. 아무리 색욕을 참는데 이골이 난 풍운이지만 꽃보다 아름다운 정령을 보고 있으니 신성함과 함께 색욕이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정령은 풍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치부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풍운의 어깨에 손을 얻었다.




“시작해 볼까요. 먼저 선천강기로 남아있는 마령단의 독기(毒氣) 태우세요.”


“다시 선천강기를 모으면 되는 건가요.”


“예!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번에는 고통스럽지 않을 거예요.”




풍운은 다시 차크라에서 기(氣)를 일으켜 가슴으로 모았으나 정령의 말대로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날아갈 것 같이 상쾌한 기분이다. 풍운은 삼살(三殺)의 등에 손을 얻고 온몸에 넘쳐나는 선천강기를 불어넣었다.




“아아아아악~”




삼살(三殺)의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방안에 가득해진다. 순식간에 골수까지 침투한 독기(毒氣)가 타오르며 땀구멍뿐만 아니라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연기가 피어난 것이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지금부터는 주인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시작하세요.”


“음~”




풍운의 어깨에 있던 정령의 손이 스르르 풍운의 몸으로 스며들더니 천천히 풍운과 하나가 된다. 풍운은 뼈가 부셔지고 오장육보가 끊어지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완전체가 아닌 상태에서 정령과 하나가 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주인님.......저는 주인님의 마음입니다. 정신을 한곳으로 집중하시고 여인의 몸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세요.”




풍운은 눈을 감고 고통을 인내(忍耐)하며 정신을 삼살(三殺)에게 집중했다. 아무것도 존재하는 캄캄한 공간에 홀로 울고 있는 어린여자아이가 보인다. 꼬마는 무엇 때문이지 얼굴을 무릎사이에 기대고 한없이 울고 있다. 바로 삼살(三殺)의 내면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풍운은 꼬마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때 갑자기 아수라의 형상을 한 괴물이 나타나 풍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는 누구냐? 누군데 허락도 없이 나의 영역에 침입하는 것이냐?”


“여기가 너의 영역이란 말이냐? 그럼 저 꼬마는 뭐냐?”


“나의 종이다.”


“누가 너의 종이란 말이냐. 당장 꼬마를 풀어주고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이제 보니 나의 종을 뺏으러 온 놈이구나. 용서할 수 없다.”




아수라의 갈퀴 같은 손이 풍운의 목으로 날아온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수라의 손톱이 목을 파고들며 곧이라도 부려질 것 같다.




“크윽~”


“크크크~ 용케 여기까지 왔다만 여기는 나의 영역이다.”


“크윽~ 헛소리 하지 마라. 여긴 저 꼬마의 내면세계야. 어떻게 너의 영역이란 말이냐?”


“저 꼬마는 나의 종이야. 종의 내면세계 또한 나의 영역이란 말이다.”




아수라의 또 다른 손이 풍운의 뱃가죽을 파고들며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아수라의 말대로 내면세계에서는 아수라가 절대자(絶對者)란 말인가? 참을 수 있는 고통의 한계가 넘어서며 의식이 흐려진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인님. 정신 차리세요. 제가 주인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저를 부르세요. 저를 생각하시며 손에 마음을 집중하세요.”




풍운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정령의 말대로 손에 마음을 집중하니 찬란한 빛을 뿌리는 하얀 검(劍)이 손에서 튀어나온다. 




“이건 뭐야.”




아수라는 눈부신 빛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가리며 도망치듯 물려난다. 




“마음이 가는 곳에 제가 갑니다. 아수라를 향해 힘차게 내려치세요.”




풍운은 빛으로 일렁이는 검(劍)을 아수라를 향해 내리그었다. 아름답다. 가끔 내면세계에서 보았던 정령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풍운의 손을 떠난 검(劍)은 무수한 빛을 뿌리며 주춤주춤 도망치는 아수라을 향해 날아갔다.




“크아아악~ 안 돼.”




아수라가 반으로 갈라지고, 반으로 가라진 아수라를 검(劍) 난도질하니 아수라는 삽시간에 혼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수라를 난도질 한 검(劍)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풍운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헉~ 헉~ 헉~ 끝났어요?”


“잘 하셨어요. 이제 가요. 여기서 더 지체하시면 주인님도 견디지 못하세요.”




풍운이 눈을 뜨자 정령이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고 있다. 아수라를 처리하자 다시 풍운과 분리된 모양이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저는 가야합니다.”


“아직 한명이 더 남았어요.”


“내일 치료하세요. 주인님도 쉬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그럼 내일도 만날 수 있는 거죠?”


“저는 주인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어요. 다만 주인님께서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당신 말대로 이제 저도 쉬어야겠네요.”




풍운이 눈을 감자 정령은 구름으로 변해 풍운에게 들어왔다. 그리고 치료가 끝난 삼살(三殺) 역시 편안한 표정으로 풍운 앞에 잠들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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