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24부

본문

천상(天上)의 향기 224(십이살(十二殺)의 출현)-2




혁린강은 수라섭혼으로 제압한 십이사를 순서대로 세워보니 남자가 일곱에 여자가 다섯 명이며, 대부분 이십대 초반에서 삼십대 초반사이로 보이다. 제1기 십이사도 여자들의 숫자가 많았지만 이번 2기 십이사들도 여자들의 비율이 예상외로 많다. 여자들은 극한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은근(慇懃)과 끈기로 어려움을 극복(克復)하고자 노력하며, 배고픔과 괴로움 등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적은 인원이 들어갔음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 출관했을 지도 모른다.




“공자님.........잠마동에 있는 등마관에는 12개의 관문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놈들은 어디어디 관을 출관한 놈들인지 아십니까?” 




쌍마가 일렬로 서있는 남녀를 살펴보며 혁린강에게 물어본다. 십이사를 제압할 때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이나 무기를 보아 대충 어떤 관을 출관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똑같은 옷을 입은 열두 명의 남녀가 아무것도 없이 우두커니 서있으니 어떤 놈이 검(劍)을 사용하던 놈인지, 어떤 놈이 도(刀)를 사용하던 놈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더구나 검(劍)을 사용한다고 모두 검마관을 출관한 놈으로 보기에도 어렵지 않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일대 십이사가 출관하며 극마관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11개의 관이 있었습니다.” 


“극마관은 왜 폐쇄된 겁니까? 극마관이야말로 12개 관중에서 가장 뛰어난 놈이 들어가게끔 만든 관이 아닙니까?” 


“극마관에 있던 마황단은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마황단이었습니다. 그걸 제일대 일사가 먹었죠.”


“마황단이 없어서 등마관을 폐쇄했다는 말씀입니까?”


“수라마령신공은 마황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공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오성(悟性)과 자질(資質)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익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아예 극마관을 폐쇄하고 11개의 관만 남겨둔 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십이사는 일대 십이사들처럼 각자 다른 관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럼 한개 관에 두세 명이 함께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 오른쪽에서부터 일사, 이사, 삼사의 순서입니다.” 




제일사(第一死) : 32세의 남자로 쾌마관 출관했으며 검(劍)을 주로 사용한다. 


제이사(第一死) : 26세의 남자로 일사와 같이 쾌마관 출관했으나 두 자루 비검(飛劍)을 주로 사용한다. 


제삼사(第一死) : 21세의 여자로 검마관 출관했으며 검(劍)을 주로 사용한다. 


제사사(第一死) : 25세의 남자로 삼사처럼 검마관 출관했으며 검(劍)을 주로 사용한다. 


제오사(第一死) : 28세의 남자로 도마관 출관했으며 도(刀)을 주로 사용한다. 


제육사(第一死) : 26세의 여자로 빙마관 출관하여 빙백마공 계열의 장법을 주로 사용한다. 


제칠사(第一死) : 35세의 남자로 수라관 출관하여 부(斧)을 주로 사용한다. 


제팔사(第一死) : 27세의 남자로 암마관 출관하여 다양한 암기를 사용한다. 


제구사(第一死) : 28세의 남자로 독마관 출관하여 독(毒)을 주로 사용한다. 


제십사(第一死) : 17세의 여자로 요마관 출관하여 미혼공을 주로 사용한다. 


제십일사(第一死) : 22세의 여자로 십사와 함께 요마관 출관하여 미혼공을 주로 사용한다. 


제십이사(第一死) : 23세의 여자로 편마관 출관하여 편(鞭)을 주로 사용한다. 




제2기 십이사는 각자 다른 관을 출관했던 일기 십이사들과는 다르게 같은 관을 출관한 경우가 많아 극마, 화마, 계마관의 경우는 아무도 출관한 사람이 없었다. 혁린강의 설명을 따라 십이사를 유심히 살펴보던 쌍마의 시선이 두 명의 여인에게 멈추어 떠날 줄을 모른다. 




마물(魔物).........


그녀들은 한마디로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마물이었다.


마치 꿈꾸는 듯한 몽롱한 시선과 오뚝한 콧날,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아리따운 붉은 입술, 한명은 좁고, 한명은 넓은 이마를 가지고 있지만 두 명 모두 계란형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는 백치 같은 표정이다. 쌍마는 여인들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짓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아직 다른 이의 발길이 닫지 않은 봉우리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충동, 순순하고 아름다운 꽃을 꺾어싶은 충동, 백치 같은 표정의 여인들이 자신의 밑에서 몸부림치며 매달리게 만들고 싶은 야릇한 충돌이 밀려온 것이다.




“요물(妖物)이군. 몽환염희 같은 요사(妖邪)함에 순순함까지 겸비(兼備)했어.” 


“공자님! 저년들은 어떤 무공을 익혔기에 저런 요물들로 변한 거죠?” 




쌍마는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혁린강에게 물어본다. 




“한명은 흡정마녀의 무공을 익혔고, 한명은 몽환염희님이 익히고 계신 천요전라미혼마공(天妖全羅美魂魔功)을 익혔습니다.” 




흡정마녀의 무공은 궁아라와 벽궁수혜가 익히고 있으니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천요전라미혼공은 전설의 천요(天妖)가 창안한 무공으로 천요는 수라마령신공을 창안한 수라마제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인이다. 그녀는 세상만물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졌으며, 음과 양이 하나가 되었을 때 완전체가 된다는 믿을 가지고 음양화합(陰陽和合)만으로도 궁극의 깨달음과 신선(神仙)이 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래서 음양화합으로 요령이나 음양을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수많은 무공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천요전라미혼공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무공도 변하기 마련이다. 천요가 처음 만들었던 전라미혼공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흡정마녀의 무공과 흡사하게 변질되었다. 즉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여 상대의 정기를 빼앗은 흡정마공처럼 변한 것이다.




“두 가자 무공이 전설적인 미혼공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몽환염희도 이 정도 요물은 아닙니다. 또한 제1기 십이사들 중에 흡정마녀의 무공을 익힌 아이들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이런 요물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무공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밖으로 발산되는 기운(氣運)을 안으로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몽환염희님이나 제1기 십이사 중 요마관을 출관했던 여인은 평소에 요기(妖氣)를 안으로 갈무리했다가 필요할 때만 사용한 겁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여인들은 감정이 없고 지능이 낮기 때문에 요기(妖氣)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발산하고 있어 요물처럼 보일 겁니다. 더구나 두 명의 여인들은 오욕칠정을 느끼지 못해 백치미(白痴美)까지 더해져 더욱 요염(妖艶)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거죠.” 




혁린강의 말에 쌍마는 입맛을 다시며 다른 여인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에 출관한 십이사 중에 삼사, 육사, 십이사도 여인이며 그녀들에게도 십사와 십일사처럼 백치미가 느껴진다. 사람마다 미(美)의 판단기준이 다르겠지만 쌍마가 보기에 얼굴만 놓고 본다면 빙마관을 출관한 육사가 가장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십사나 십일사에게 풍기는 요사한 아름다움은 없었다. 다시 말해 십사나 십이사는 흡정마녀나 천요의 무공을 익히고 있기에 남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마력(魔力)이 있는 것이다. 




혁린강은 쌍마를 보며 쓰게 웃고 있었다. 무공이 반로회동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수련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수련이 수반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반로회동은 극마(克魔)의 이전 단계라고 할 수도 있으며, 극마(克魔)의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악마의 속삭임 같은 심마(心魔)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반로회동의 경지에 오른 쌍마가 십사와 십일사를 보고 음욕(淫慾)을 느끼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십사와 십일사의 미혼공이 쌍마의 부동심(不動心)을 무너트릴 정도로 강하다 말인가? 그게 아니면 반로회동에 올랐다는 쌍마의 말이 거짓말이란 말일까? 혁린강은 혁린강은 음욕(淫慾)으로 번들거리는 쌍마의 시선을 보고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쌍마의 체면도 있으니 직접 물어보기는 곤란하다. 혁린강은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험험~ 쌍마님........수라섭혼으로 놈들을 제압하기는 했지만 교주님이 걸어놓은 금제를 풀고 저를 완전한 주인으로 인식(認識)시키려면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아~ 그래요.” 




십사와 십일사에게 빠져 있던 쌍마는 혁린강의 말에 펴듯 정신을 차린다. 




“수라섭혼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놈들을 제압하려면 밀폐(密閉) 된 공간이 좋습니다. 제가 놈들을 데려고 통나무집으로 들어가 제압할 때까지 보초를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혁린강은 멍하니 서있는 십이사를 끌고 가까운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쌍마는 십이사가 통나무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십사와 십일사를 바라보며 마름 침을 삼킨다. 




“저년들! 사내 여럿 잡아먹게 생겼어.” 


“글쎄 말일세. 나부터가 음욕(淫慾)이 솟구치는데 다른 놈들이야 오죽하겠어.” 


“우리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년들 한번 먹어볼까? 이지(理智)가 없는 년들이니 한번 먹는다고 별일 있겠어.” 


“죽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해. 흡정마녀나 천요는 남자들의 정기나 빨아먹던 흡혈귀였어. 그런 년들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저년들인데 말하며 입만 아프지. 한번 먹겠다고 달려들었다가는 앙상한 뼈만 남고 싶지 않으면 자중해야지.”


“빌어먹을........그림의 떡이라는 말인가?”


“하하하~ 일마(一魔)! 자녀는 정력도 좋군. 그 나이에도 지금도 여자 생각이 나나?” 


“쩝~ 남자란 지팡이 잡을 힘만 있어도 바람피운다는 말이 있어. 자네는 안 그래.” 


“성인군자도 아닌데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다만 나는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은 구별하네. 저년들은 독(毒)이 든 사과야. 겉모습만 보고 먹었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쩝~ 그런가? 이런 방법은 어때, 혈을 제압해서 아예 내공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먹는 거야. 그럼 흡정마공에 당할 염려도 없잖아.” 


“그만하세. 남들이 보면 나이 값도 못하고 주책이나 떤다고 할 거야.”


“주책은 무슨?........하여튼 나중에 보세.”




쌍마는 잡담을 그만두고 주위를 경계하며 통나무집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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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이 제갈세가에 도착하지 오일이 넘었다. 란은 그동안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무경과 풍운 그리고 자신의 앞날에 대해 번민(煩悶)했다. 란에게 무경은 스승이자 인생의 지표(指標)였다.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세상을 포괄(包括)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혜안(慧眼)은 무한한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자신은 정착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삶을 살면서도 다른 이를 사랑하고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은 존경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무경은 자신이 천귀성의 운명을 타고 났으며 천강성의 운명을 타고난 풍운과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과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었다고 하던 풍운이 무경의 남자가 되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풍운이 자신의 남자라고 강조하던 무경이 어떻게 풍운의 여자가 된단 말인가? 이건 배신이었다. 향상 가문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던 무경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자 모든 것을 저버리고 풍운에게 가버렸다. 물론 풍운이 생명의 은인이며 죽도록 갈망(渴望)했던 남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무경이 풍운을 죽도록 사랑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풍운이 아니었다면 무경이 죽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풍운과 무경이 연결됨으로 자신은 인생의 스승과 동반자를 한꺼번에 잃어버렸으며, 삶의 목표 또한 잃어버렸다. 




란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하늘의 천형(天刑)을 타고난 무경을 대신하여 제갈세가를 반석(磐石)위에 올려놓을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천강성을 도와 천마성이 일으킬 피바람을 잠제우고 도탄(塗炭)에 빠진 무림을 구원할 운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천강성의 운명을 타고난 풍운의 겉에 무경이 있다. 무경은 자신의 스승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무경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풍운의 겉에 있는 한 자신이 풍운을 도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경이 풍운을 도와 도탄(塗炭)에 빠진 무림을 구원한다면 제갈세가의 이름은 무림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할일이 없다는 것이다. 




풍운이라는 남자...........


자신과 운명의 남자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풍운이 싫다. 왜 싫은지는 모른다. 처음에는 무경 때문에 싫어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싫어졌다. 냉정하게 따져서 풍운이 잘못한 것은 없다. 오히려 친자매처럼 지내던 무경을 구해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한다. 




처음 풍운을 처음 만날 때, 풍운은 무림공적으로 백도무림인들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무경은 무림을 구해줄 운명을 타고난 풍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풍운이라는 놈은 거만하고 냉정하게 무경의 도움을 거절했다. 무경은 풍운을 돕기 위해 사정하듯 매달렸지만 풍운은 끝내 무경의 도움을 거절했고 자신은 무경의 마음을 몰라주는 풍운을 괘심하게 생각했다. 무경은 풍운과의 만남이후 그를 연모(戀慕)하게 되었고 그런 무경을 보면 알 수없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풍운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역시 거만하고 차가웠으나 무경은 비굴(卑屈)할 만큼 풍운에게 매달렸다. 란이 결정적으로 풍운을 싫어한 계기가 그때였을 것이다. 무경이 내밀 도움을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운명의 여인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말도 없이 개 닭 보듯 지나치는 풍운의 태도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하늘의 운명을 타고난 동지이며, 여인이라고 했다. 평생의 반려자(伴侶者)가 될 여인이라고 했다. 




“하늘이 정해주었다고 무조건 따라야 합니까? 정해진 운명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는 겁니다.” 




자신 딴에는 의지(意志)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그 말을 들고 상처 받을 상대를 생각했다면 그런 말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당사자를 앞에 두고 운명이란 개척하는 것이니 두고 보자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저 여자가 내 운명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번 틀어진 마음을 되돌리기란 여간 힘든 법이 아니다. 더구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에게 거절당한 상처는 쉽게 치유(治癒)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풍운과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결정적으로 무경이 풍운과 연결되며 분노(忿怒)와 미움이 절정을 이루었다. 풍운과의 대결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무경의 남자이자 자신의 운명의 남자라는 생각보다 미움이 많았기에 풍운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풍운은 자신의 공격을 피하기만 할뿐 반격을 하지 않았다. 그건 배려(配慮)가 아니라 무시였으며 치욕적이었다. 자신 같은 여자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밖에 생각할 수없었다. 풍운은 자신의 공격을 무시하고 유유히 도망쳤고, 마지막 만남에서 알 수없는 말을 남겼다.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남자가 현실에도 존재한다.” 




그게 무슨 말일까? 내면세계에서 자신의 순결을 가져간 남자가 현실에 존재한단 말인가? 자신을 각성시키기 위해 한 몸이 되었던 남자가 현실에 존재한단 말인가? 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풍운에 대해서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다. 그에게 삶의 목적을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목적도 희망도 없다면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까?” 




란은 아무리 고민해도 제갈세가에 남아 자신이 해야 할일도 없으며, 살아갈 희망이나 목표도 없었다. 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결심한 모양이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란이 안에 있느냐?” 




란은 얼른 문을 열어보니 제갈가주인 만통선생이 문 앞에 있었다. 




“어서오세요. 들어오시죠.” 




만통선생은 느린 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와 주위를 살펴보니 방안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으나 선반 곳곳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마도 지난 오일동안 번민(煩悶)과 고민에 빠져 다른 일을 못한 모양이다. 만통선생이 자리에 앉자 란도 그의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다.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구나. 얼굴이 어둡구나.” 




만통선생의 다정한 말에 란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가주님........저도 가주님을 찾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만통선생은 딱딱하게 굳은 란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무언가 결심한 모양이다.




“란아........태공망에 대해 아느냐?” 


“예? 태공망이요? 강태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은 알고 있느냐?”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이란 말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는 하늘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겠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너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란은 입술을 깨물고 만통선생을 바라보았다. 만통선생은 자신이 무엇을 고민하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가주님........무경언니는 살아 있습니다. 저의 능력은 무경언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찮은 능력밖에 없는 제가 가문이나 무림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너는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다. 무경은 무경의 역할이 있고, 너는 너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 


“란아........무엇이 힘들게 하느냐? 무엇을 번민하느냐? 무경이 살아 있음에, 무경이 천강성의 운명을 타고난 녀석과 맺어졌음에 변하는 것은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라. 네가 고민한다하여 운명의 물줄기가 멈추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가주님..........누군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의 운명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개척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개척할 운명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닐까요?”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뀔 수 없다. 운명의 물줄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하늘이 정해준 운명의 수레바퀴는 정해진 곳으로 굴려가기 마련이다.” 




란은 입술을 깨물고 잠시 고민했다. 만통선생의 말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가 풍운이 자신의 남자가 될 것이며, 그와 함께 도탄에 빠진 무림을 구할 것이다. 그것이 너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운명을 기다리라는 말씀이군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죠.” 


“멀지 않았다. 무림에 피바람이 불면 운명이 너를 부를 것이다.” 


“.........” 


“란아! 할 수만 있다면 네가 질며진 운명이라는 짐을 나누어지고 싶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나도, 아버님도 너를 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서 괴로워하지 말고 힘들고 외로우면 우릴 찾아라. 너에게 많은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너를 도와주겠다.” 




란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린다. 자신을 나아주신 부모님는 아니지만 천애고아로 버려진 자신을 거두고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다. 운명이라는 수레바퀴가 어떻게 굴려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가 없다. 




“알겠습니다. 내면적 소양(素養)을 쌓는데 전념하며 운명이 저를 부를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만통선생은 훌쩍이고 있는 란의 어깨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조금만.......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란은 그날 이후 서고에 틀어박혀 수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미래에 닫쳐올 난세에 대비하여 지식을 쌓고 내면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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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살막을 출발한 냉하상이 난주에 도착했다. 감숙성의 성도(省都)인 란주는 중국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육도의 심장(陸都心腸)’이라 불리는 곳으로 서안과 서역을 연결하는 입구이며 황하의 출발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왕래하던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교통 매우 발달한 곳이다. 냉하상은 란주 시가지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넓은 란주에서 도치를 찾는다는 것이 모래알에서 바늘 찾기만큼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치가 란주에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일단 주린 배부터 채우고 보자.” 




냉하상은 말을 끌고 가까운 객점으로 갔다. 




“어, 어서오세요.” 




냉하상이 객점 문을 들어서는 그녀에게 달려온 점소이가 말을 더듬거린다. 난주는 한족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이 왕래하는 곳이라 색목인(色目人)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에 백설(白雪) 같은 하얀 피부 그리고 은빛 머리까락이 어울린 냉하상 같은 미인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구나 거만하고 도도한 표정의 냉하상에게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품위까지 느껴진다. 




“식사하려고 왔어요. 안내해 주시겠어요.” 




“아예~ 따라오세요.” 




냉하상은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창가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소면과 과일로 준비해 주세요.” 


“그런 걸로 식사가 되겠습니까? 오늘 양고기 들어왔습니다. 그걸 드세요.”


“육식을 싫어해요. 그냥 면과 과일로 주세요.”


“쩝~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이곳의 특산물인 수박과 하미과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창밖을 바라보는 냉하상을 힐긋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냉하상은 점소이가 가져온 소면을 먼저 먹고 창밖으로 보이는 난주를 시가지를 구경하며 과일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음탕한 눈길로 냉하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덩치는 산만하고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은 냉하상을 훔쳐보며 자신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저년 몸매 봐~ 중원계집들하고는 차원이 틀리지 않니. 죽인다.”


“몸매뿐이냐. 저 은빛머리까락하며, 뚜렷한 이목구비하며.........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한번 품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야야~ 저년 혼자 같은데 보쌈이나 할까? 한번씩 돌려먹으면 되잖아.” 


“여기서는 곤란하고 조금만 기다려보자! 저년도 다 먹었으니 일어나겠지.” 




사내들이 흉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을 모르는 냉하상은 식사를 마치고 객정을 나섰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라 그런지 하늘이 무척이나 높게 보이고 주위 사물이 또렷하게 보인다. 냉하상은 말을 타고 가면 자신이 도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도치와 십이사는 무림공적이기 때문에 밝은 하늘아래 나설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도치 입장이라면 사람들이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 위험이 따르더라도 가끔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난주에서 십이사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 결론적으로 난주에서 가까우며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도치나 십이사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계속>>




---------- 작 가 주 ---------------------




*** 태공망 [太公望, ?~?] 


본명 강상(姜尙)이다. 그의 선조가 여(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 불렸고, 속칭 강태공으로 알려져 있다. 주나라 문왕(文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그 공으로 제(齊)나라에 봉함을 받아 그 시조가 되었다. 




동해(東海)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웨이수이강[渭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문왕을 만나게 되었다는 등 그에 대한 전기는 대부분이 전설적이지만,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 시대에는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兵法家)로서의 그의 재주가 회자되기도 하였다. 병서(兵書) 《육도(六韜)》(6권)는 그의 저서라 하며, 뒷날 그의 고사를 바탕으로 하여 낚시질하는 사람을 태공망 혹은 태공이라 하는 속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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