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21부

본문

귀왕사영은 요즘 들어서 고민이 많았다. 그들은 당순기의 명령으로 금막비를 제거하고 당령을 잡아가려다가 오히려 십이사의 포로가 되었고, 금막비가 강제로 먹인 만성독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협박에 넘어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당령의 호위(扈衛)가 되었다. 금막비는 한때 당가가족의 사위로 암기제조의 달인이며, 독(毒)에도 일가견이 있기에 금막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감히 목숨을 담보로 모험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막비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십이사의 겉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귀왕사영이 본 십이사는 무림에 해악(害惡)을 끼치는 무림공적이 아니라 정(情)이 많고 정의로우며 세상누구보다 무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자신들의 생명이 돌보지 않고 배화교의 음모(陰謀)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고 누가 무림공적이라 손가락질 할 수 있단 말인가? 




십이사가 당령과 십이사의 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다. 십이사는 자신들을 죽이려했던 귀왕사영을 용서하고 아무런 가식도 없이 진정한 동료들로 대해주고 있다. 귀왕사영은 차마 십이사들이 보여준 신의(信義)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본가를 떠나지 벌써 2달이 넘었네. 식구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군.” 


“하긴 그래. 우리가 실패하고 당령님의 호위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주님도 아실 건데 가족들을 그냥 두었겠어.” 


“가주님이 눈감아준다고 해도 원로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귀왕사영은 자신들끼리 모여 당순기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휴~” 


“갑자기 왜 한숨이야.” 


“당령님이나 십이사님들과 함께 있는 것은 불만 없는데 가족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네.” 


“사실 나도 그래. 떠나기 전에 마누라가 만삭(滿朔)이었는데 무사히 해산했는지 모르겠어.” 




귀왕사영이 집 앞에 있는 공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금막비가 멀리서 귀왕사영에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각자의 고민에 빠진 귀왕사영은 금막비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금막비는 귀왕사영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지금은 하늘에 있는 부인의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저려온다. 만일 자신도 귀왕사영의 처지라면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한시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금막비는 씁쓸하게 웃으며 당령이 있는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당령과 금막비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같은 통나무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딜 다녀오세요?” 


“독(毒)의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 곽지향님과 계곡에 다녀오는 길이야.” 


“그런 일이 있었으며 저도 함께 데려가시지 그랬어요.” 


“너무 곤하게 자고 있어서 깨울 수 없었어.” 


“곽지향님이 얼마나 제 흉을 얼마나 보셨을까? 다음부터는 욕 먹이지 마시고 깨우세요. 아셨죠?” 


“알았어. 당령! 자리에 앉아봐~ 할말이 있어.” 




금막비는 침상에 당령을 앉히고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당령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금막비을 바라본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이러실까?”


“당령! 당령은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아.” 


“예? 가족들이요?” 


“당령이 집을 떠나 온지 3개월이 넘었잖아.” 




가족들 이야기가 나오자 당령의 얼굴이 탁탁하게 굳어진다. 당령이라고 왜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금막비는 무림공적이며 당가의 원수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금막비와 부부가 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는 금막비를 죽이고 자신을 끌고 가기 위해 귀왕사영까지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가족들을 찾아간단 말인가? 




“저는 비랑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더 이상 바라면 욕심이겠죠.” 


“나도 당령을 부인으로 맞을 수 있어서 행복해. 하지만 당령은 가족들이 있잖아. 부모님이나 오라버니들이 보고 싶지 않아.” 




당령은 미간(眉間)을 찌푸리다가 금막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옆에 앉히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저는 가족보다 비랑이 더 소중해요. 가끔 가족들이 생각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랑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금막비는 당령을 안아준다. 




“바보?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어. 기다려봐~ 지금은 한가하니까 풍운님께 이야기해서 사천에 다녀오자.” 


“저, 정말이세요.” 


“귀왕사영도 가족들을 보고 싶어 하는 눈치야.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멀리서라도 보고 오면 아쉬움을 다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분들이 반대하지 않을 까요?”


“풍운님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금막비는 식사를 마치고 풍운의 통나무집으로 찾아갔다. 




“어서오세요.” 




풍운의 집에는 식사를 마친 도치도 함께 있었다.




“마침 차를 준비하고 있으니 금막비님도 드세요.”


“하하하~ 무경님이 끌어주는 차도 마시고 운이 좋네요.” 




금막비가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자 무경이 차를 내주고 자리에 앉았다. 




“도치님은 오늘도 여기서 식사하신 겁니까?”


“남자 놈 혼자서 차려 먹으려니 궁상맞아서 은근슬쩍 꼽사리 끼어서 먹었어요.”


“하하하~ 너무 민패를 끼치는 거 아닙니까?”


“쩝~ 무경님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얼굴에 철판 깔아야죠.”




도치의 말에 무경은 피식 웃더니 화재를 돌린다.




“당령님은 잘 지내시죠.”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경님!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 금막비님 요즘 쌍코피 터지지 않아요.” 




도치의 말에 금막비는 멋졌게 웃더니 풍운을 바라본다. 




“일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저에게요? 말씀하세요.” 


“귀왕사영과 함께 사천에 다녀왔으면 합니다. 당령과 귀왕사영이 가족들 소식이 궁금한 모양입니다.” 


“3개월이 넘었으니 보고 싶기도 하시겠네요. 무경 어떻게 생각해. 모처럼 한가하니 보내드려도 별일 없겠지.” 


“저희들이 보내드리는 거야 문제없지만 무림맹에서 아직도 저희들을 쫓고 있어요. 더구나 사천당가에서는 금막비님과 당령님을 좋게 보지 않을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도 모르게 다녀와야죠. 그냥 멀리서 보고만 올 겁니다.” 


“당령님과 금막비님은 걱정이 없는데 귀왕사영이 걱정입니다. 아직 그들을 완전히 믿기는 힘들잖아요.” 




무경의 말에 금막비는 대답을 못한다. 금막비도 귀왕사영을 완전히 신뢰(信賴)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녀오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귀왕사영이 문제가 되면 그냥 두 분만 돌아오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풍운의 말에 무경이나 금막비가 상기된 표정으로 풍운을 바라본다. 




“저는 그들을 남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귀왕사영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싸운 동료들입니다. 그리고 한번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운랑 말씀은 맞아요. 믿어야죠. 금막비님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풍운님 감사합니다. 무경님 말씀대로 조심할게요.” 


“언제 떠나실 거죠?” 


“당장 출발했으면 합니다.” 


“다른 분들께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다녀오세요.” 




금막비는 바로 귀왕사영과 당령을 대동하고 사천으로 향했다. 풍운은 금막비일행을 배웅하고 악무룡의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악무룡도 도치처럼 부상에서 완쾌되어 곽지향과 같은 집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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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은 호북성에 있는 융중산(隆中山) 앞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제갈세가에 도착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공명의 은거지로 유명해서 복룡산(伏龍山)이라고도 불리는 융중산에 무림의 신비가문인 제갈세가있다. 




“아가씨 오늘 중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란은 마부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마차에서 내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본다. 불과 몇 개월 전에 무경과 함께 이 길을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 혼자만이 이 길에 서 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친자매처럼 지내던 무경은 어딜 가고 혼자만이 돌아온 것일까? 란은 지낸 몇 개월간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칠음절맥 때문에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는 무경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겉에 남았고, 자신은 친자매처럼 지내던 무경을 잃어버리고 홀로 돌아왔다. 




“휴~ 아가씨..........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갈세가에 돌아가 어른들께 뭐라 말씀드려야 합니까?” 




란은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멍하니 운중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씨! 날이 어두워지면 진이 발동합니다. 그전에 도착해야 합니다.” 




마부가 다시 큰소리로 말하자 란은 길게 한숨을 쉬고 마차에 올랐다. 마부는 란이 타자마자 제갈세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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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에서 완쾌한 악무룡은 최근 들어 화령화무장을 수련하고 있었다. 화령화무장은 배화교 십대마공의 하나로 악무룡이 출관한 화마관에 있던 무공이었으나 본래 무공보다는 화기제조에 관심이 많았던 무룡은 화령화무장의 기본만 익히고 출관했다. 그런데 최근에 악무룡도 무공의 필요성을 절감(切感)했다. 영장평원의 전투나 군산해전, 림산전투 등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평장평원과 림산에서는 부상 때문에 동료들의 짐만 되었고, 군산해전에서는 자신이 활약할 자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동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악무룡은 통나무집 뒤뜰에 마련한 임시 연무장에 있었다. 악무룡의 양손이 한바퀴 회전하며 앞에 있는 나무를 내리친다. 




“쾅~”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무룡의 손바닥이 나무를 파고들며 무성한 나뭇잎에 우수수 떨어진다. 




“휴~ 아직도 칠성수준이군. 이정도로는 안돼.” 




무룡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또 이곳에 계세요? 아직 무리하면 안됐다고 했죠?” 




갑자기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무룡은 어깨를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광주리를 옆에 낀 곽지향이 씩씩거리며 다가온다.




“저기, 집안에 있기 답답해서 잠깐 몸만 풀고 있었어.”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요. 온몸이 땀범벅인데 잠깐 몸만 풀어요?” 


“요즘 덥잖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니까?” 


“여름도 지났는데 덥긴 뭐가 더워요. 모두 몸이 허해서 그런 거예요.” 


“아니, 아니야. 내가 천성적으로 열이 많은 체질이라서 그래.” 


“이것 봐~ 거짓말하려니까 말까지 더듬잖아. 잔소리하지 말고 따라와요.” 




곽지향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악무룡의 팔을 잡고 집으로 끌고 간다. 




“킥킥킥~ 천하의 악무룡의 지향님께 꽉 잡혀서 사는 구나?” 




어느새 왔는지 통나무집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풍운이 악무룡의 모습을 보고 웃고 있다. 곽지향은 얼른 악무룡의 팔을 놓고 고개를 숙인다. 




“험험~ 언제 오셨어요.” 


“곽지향님보다 조금 일찍 왔어. 하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그냥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저기,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곽지향은 통나무집으로 도망치듯 달려간다. 악무룡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풍운에게 다가왔다. 




“아주 고소하다는 표정이다. 내가 당하는 것이 재밌어 죽겠지?” 




풍운과 악무룡은 다른 사람이 없을 때는 친구가 된다. 




“하하하~ 당연하지! 천하의 바람둥이 악무룡이 곽지향님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 죽겠다.” 


“바람둥이? 참 내? 누가 누구보고 바람둥이래. 너는 나보다 더한 놈이잖아.”


“더하다니 뭘 더하다는 말이야.”


“난 지향 밖에 없지만 너는 부인이 몇 명이냐?”


“그거야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지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됐냐?”


“닫쳐. 과정이야 어떻게 됐던 결과가 중요한 거야.”


“킥킥킥~ 그래도 나는 너처럼 잡혀 살지는 않는다.”


“그래 지금은 열심히 웃어라! 나는 한명한테 당하면 끝나지만 너는 몇 명이냐? 나중에 얼마나 당하나 두고 보겠어.” 


“그건 그렇고 요즘 너무 열심이다. 지향님 말씀대로 무리하지 마라.” 




풍운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하니 악무룡도 진지하게 변한다.




“언제 다시 배화교가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조급하게 굴지 마. 지금 팔성이상이니 천천히 해도 십성까지 금방이겠다.” 


“팔성? 칠성인데?” 




무룡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풍운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르친다. 무룡은 풍운의 손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나무에 무성하던 푸른 잎들이 갈색으로 변하며 가을의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화령화무장에 나무가 순식간에 말라죽고 있어. 만일 사람이었다면 겉은 멀쩡해도 오장육보가 녹아내렸을 거야.” 


“저, 정말이네. 어떻게 된 거지?” 




무룡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바닥과 나무를 번갈아 쳐다본다. 자신이 생각해도 화령화무장을 익히는 속도가 너무 빠른 모양이다. 




“화기(火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불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어. 또한 재료 중에 불(火)의 성질을 가진 재료들이 많잖아. 그래서 어린 적부터 화기를 다루어왔던 너는 당연히 화기(火氣)가 몸에 축적되어 있었어. 그것이 화령마공을 만나 촉발(觸發)되어 화령화무장이라는 결실(結實)로 나타난 거야.” 


“그런가? 그래서 배화교 놈들이 화마관에서 화령화무장을 익히라고 했던 건가?”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하여튼 화령화무장이 팔성이상이란 말이지. 기분 좋은데. 조금만 더해볼까?” 


“곽지향님 말씀대로 무리하지 마라.” 


“참~ 요즘 도치도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데 정신이 없던데.........무슨 이유라도 있냐.” 


“자세한 것은 직접 물어보고 의욕이 넘치는 것 같아서 나도 사사연무도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사사연무도법? 그거 혹시 천외십기 중 사인마도님의 절기 아니야?” 


“맞아. 장인어른의 절기 중에 하나야.” 


“야! 너무 불공평하잖아. 도치 놈에게는 사사연무도법 같은 절정무공을 알려주고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냐?” 


“화령화무장이나 완벽하게 익히셔.”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네. 내가 도치 못해. 도치는 알려주고 난 안돼.” 


“짜식~ 욕심은 많아가지고, 좋아~ 네가 화령화무장을 십이성 이상 익히면 태양폭뢰삼장(太陽爆雷三掌)알려줄게.” 


“태양폭뢰삼장? 그게 무슨 무공이냐?” 


“무경이 그러는데 전설로만 전해지는 태양천의 무공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극양(極陽)한 무공이라고 하더라.” 


“정말이지. 정말 알려주는 거지? 고맙다.” 


“태양폭뢰삼장을 익히려면 화령마공을 극성으로 익혀야 할 거야. 무경이 알려주는 걸 대충 해석해 보았는데.........위력이 대단한 만큼 내공소비가 극심하더라.” 


“알았어. 열심히 할게!”


“간다. 너도 지향님께 가봐라.” 




풍운은 악무룡을 뒤로하고 사우를 찾아갔다. 사우는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국선도를 수련하고 있고, 천유는 사유에게 국선도를 가르치는 한편 자신도 근접박투(近接搏鬪)시에 필요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주로 활로 적(敵)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아왔으나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뜻도 있지만, 풍운이 최근 들어 음양권, 음양각등의 무공을 익히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풍운은 천유에게 활로써 이룰 수 있는 궁극(窮極)의 경지를 보고 싶다고 했다. 활이란 무기는 단순히 활살을 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번에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화살을 쏠 수도 있고, 화살대신 기(氣)를 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막수는 지금까지 주로 이가살수문의 무공만 사용했다. 가문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다른 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적(敵)을 제압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절정마검과 화령마검의 부족한 부분을 다시 수련하고, 새로운 검법(劍法)을 익히고 있다. 한때 자신이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풍운은 극마지경에 이른 절대고수가 되었는데 자신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가문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다른 무공을 배척(排斥)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미림은 영사혈편에 새겨진 영사편법을 극성으로 익히는데 열중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영사편법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미림이 가지고 있는 영사혈편은 무림십대기병에 들지는 못하지만 편법만으로 일가를 이룬 전설의 편마왕이 남긴 무기이며, 영사혈편에 새겨진 영사편법은 편마왕 필생의 정화가 담긴 무공이었다. 




마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무경을 찾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병법을 만들었다. 육도삼락, 사마법, 위료자, 오자병법, 묵자병법 등 많은 병법들이 있으나 병법의 이론을 크게 나누면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손자병법처럼 이미 벌어졌던 수많은 전쟁을 분석하고 고증(考證)을 거쳐 요약 정리한 현장중심의 병법서가 있다. 다음으로 인덕(仁德)과 겸허(謙虛) 등으로 부하들을 감동시켜 사기를 충전한 다음 전쟁승리하는 병법이 있고, 인간의 본성을 악(惡)으로 보고 인간의 욕심과 사악함을 이용한 병법서가 있다. 




마수는 묵자의 겸애설(兼愛說)설과 묵적지수(墨翟之守: 墨守)를 근거로 한 병법을 배웠다. 묵자가 주장하는 겸애설은 순자의 선악설과 근본적인 차이는 있으나 겸애설을 조금만 비틀어보면 인간의 본성을 악(惡)으로 규정한 선악설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이용한 병법을 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묵자의 겸애설과 묵적지수를 설명하면 복잡하니 자세한 것은 작가주로 대처합니다.) 




그에 반해 무경은 어느 한 가지 병법에 치우치지 않고 손자, 오기, 손무, 손비 등의 병법서를 두로 섭렵(涉獵)하여 한 가지 이론만 옳다고 주장하는 편협함에 빠지지 않고 자유분방한 병법을 펼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다. 마수는 무경의 지혜를 배우고 싶어 그녀를 찾는지도 모른다. 




십이사들을 돌아본 풍운은 늦은 밤에 무경이 있는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늦으셨네요.” 


“한바퀴 돌아보고 오느라 늦었어. 그건 보다 무경한테 할말이 있어.” 




풍운은 무경을 침상에 앉히고 자신도 무경의 옆에 앉았다. 




“무경은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아?”


“금막비님 때문에 물어보시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네가 너무 무심한 놈이었던 것 같아. 무경도 가족들과 떨어진지 오래됐잖아.” 




무경은 빙긋 웃으며 풍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부모님께서 낮아주신 무경은 죽었어요.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알고 계실 겁니다.” 




무경의 차분한 목소리에 풍운은 무경을 가볍게 알아준다. 무경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나아주신 부모님이 누군지도 몰라. 어릴 적에는 부모나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부모님이 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어.”


“..........”


“참~ 부럽더라. 도사 할아버지는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했어. 그럼 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사람이 아니라서 부모도 없는 걸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배꼽도 없으니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형제도 없는 거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가족이란 존재를 머리에서 지워버렸어. 하지만 무경은 아니야.”




무경은 고개를 들어 풍운을 올려다본다. 




“운랑! 운랑은 하늘이 선택한 분입니다. 분명 어딘가에 운랑을 나아주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미안!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쓸데없는 말을 했다. 나는 나에게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사람이 부러워! 무경에게는 부모님이 계셔. 그분들은 무경이 보고 싶을 거야.” 


“알아요. 저도 뵙고 싶어요. 이렇게 건강하고 예쁘게 변한 저를 보시면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거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을 만날 때가 아닙니다.” 


“왜 아니라는 거야. 무경도 뵙고 싶다고 했잖아.” 


“운랑! 누가 저보고 부모님과 운랑 중에 한분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운랑을 선택합니다. 부모님이 저를 나아주셨다면 운랑은 저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으며 목숨보다 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


“저는 당당하게 운랑과 함께 부모님을 뵙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백도 무림을 배신했어요. 물론 저는 한번도 무림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죠.” 


“복잡하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단순해요. 남들 몰래 부모님을 뵙고 싶지는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을 만나기 싫다는 거야.” 


“예!” 


“휴~ 무슨 말이지 알았어. 그만 자자.” 




풍운은 무경을 침상에 눕히고 무경의 위로 올라갔다. 무경의 복잡한 심경을 알기에 무경을 달래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잠깐만! 아직 불도 끄지 않았어요.” 


“귀찮은데 그냥 자자.” 


“안돼요.” 무경은 풍운을 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을 끄고 다시 침상으로 올라왔다. 


“무경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치~ 운랑은 불이 없어도 어둠에 구애받지 않으시잖아요.” 




풍운은 피식 웃으며 무경의 옷을 벗기니 무경도 싫지 않은 듯 풍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계속>>




:-------------------- 작 가 주 --------------------------




[묵자의 겸애와 유가의 인]




유가의 [인]이나 묵가의 [겸애] 모두 오늘날의 개념으로 [사랑]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그 사랑은 [아가페]라기 보다는 [에로스]적입니다. 특히 그것이 극명한 이성적 사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감성(기성(氣性)이라고도 함)에서 발현되는 사랑이라고 보이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두 가지 사랑의 개념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묵자의 겸애]


묵가의 겸애는 보편적인 에로스입니다. 유가의 인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동심원적인 원근에 따라서 사랑의 질과 양이 차등, 지향되는데 비해 묵가의 겸애는 자기와 타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할 것을 역설합니다. 즉 묵가의 사랑은 이미 완성된 가장 큰 동심원에, 다른 작은 동심원의 차별이 없이 동일한 질과 양으로 지향된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보면 묵가의 사랑이 에로스를 넘어 아가페에 이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가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의 정신(그것은 상대방의 본질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한다는 점에서의 도덕적 이성적 사랑임)이라고 하기보다는 사랑의 지향 대상의 측면에서는 보편적이지만 그 내용(질)은 타인을 일단 자기와 동류인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바라보는 바에 따라 지향되는 사랑, 즉 자기애를 극단적으로 확장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것은 묵가의 전반적인 사상을 고려해 볼 때 그렇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적 측면인 인격 함양이나 심오한 도덕성에 의하기 보다는 현세에서의 공리 추구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묵가의 사랑 개념인 겸애가 예수의 사랑 개념인 아가페와 다른 점이 이 점입니다. 즉 예수는 원수라도 사랑하기를 권하는데 이것은 상대방이 그 누구이든 오직 그 대상의 본질인 각인의 자기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해 준다는 보편 절대적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묵가의 겸애에는 그러한 요소가 없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유가의 인]


유가(儒家)에서의 인은 사랑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한정적 사랑(묵가에서 별애라 부름)이라는 점에서 묵가와 다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유가의 인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기의 가족에 대한 가족애, 다음에는 자기 일가친척으로 확대하는 친족애, 거기서 더 나아간 민족애 등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서서히 확대하는 그러한 사랑입니다. 


유가의 비조인 공자는 인을 가장 중시하면서도 인을 곧 효(孝 : 부모 공경)이며 제(悌: 윗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끼리 화목함)라하여 인의 근본을 가족적 결합에서부터 시작하여 육친(肉親)사이에 진심에서 우러나는 애정으로 간주하는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는 있습니다. 유가에서는 묵가의 겸애가 현실성이 결여된 공허한 이상애(理想愛)로 보는 것 같습니다.






*** [有力者 疾以助人하고 有財者 勉以分人하고 有道者 勸以敎人이니라.] **** 




◆ [독음] - 유력자 질이조인, 유재자 면이분인, 유도자 권이교인.


▶ 출전 - 『묵자(墨子)』《상현(尙賢) 하편》


◈ 해석 - 힘이 있는 사람은 신속하게 남을 도와주고, 재산이 있는 자는 힘써 남에게 나누고, 도(道)가 있는 자는 권해서 남을 가르친다.




▶ [어구풀이] 


☞ 有 -者 : " -하는 사람이 있다." 구절의 앞에 "有"나 "無"가 있고 뒤에 "者"가 있는 경우는 "有"와 "無"가 마지막에 해석됨.


☞ 疾(질) : 병(病)의 뜻이지만, "빠르다"는 뜻도 있음. 질주(疾走), 질풍노도(疾風怒濤)


☞ 財(재) : 재물(財物), 재화(財貨), 재산(財産)


☞ 勉(면) : 힘쓰다. 면려(勉勵), 근면(勤勉)




▣ 해설


서로 나누고, 돕고, 함께 하는 사회상(社會相)이야말로 모두가 바라고 이루려는 우리의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2300년 전 전국시대(戰國時代) 묵자(墨子: 이름은 적(翟))가 주장했던 논리와 동일하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권력을 지닌 자, 가진 자 등에 의한 부패와 퇴폐의 폐해가 억압받는 대중들에게 또 다른 이상을 그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 인물이 바로 묵자의 사상입니다. 공자(孔子)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 태어나 역시 유가(儒家) 학파를 추종하던 묵자(墨子)는 빈부귀천에 의한 세습과 차별적 예악 숭상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그는 새로운 사회 정의와 질서를 정립합니다.


바로 겸애(兼愛)와 교리(交利)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유가(儒家)의 애(愛)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가족, 사회, 국가로 나아가는 논리이지만 묵자는 그것을 차별(差別)적인 애(愛)라 배척합니다. 그러한 차별로 인해 소수의 귀족이 권력과 부를 집중하고 그로 인해 온갖 부패와 혼란이 야기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새로운 사회 질서란 빈부귀천에 무관한 도덕적이고 재능 있는 사람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서서 모든 인간이 동일한 이익을 얻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것은 박애(博愛)로 표현되는 무차별적 평등의 사랑으로 가능하고 또한 근검(勤儉)과 노동(勞動)으로 자신을 위하는 것처럼 남을 위해 이익(利益)을 나누는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묵자는 비공(非攻)을 주장한 반전주의자였지만, 무조건적 반전(反戰)이 아닌 철저한 자기 방어로 지켜낼 수 있는 평화를 주장한 것입니다. 유명한 "묵적지수(墨翟之守: 墨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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