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물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25부

본문

성진의 말은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랑이란 감정에 가장 근접한 고유의 특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내뱉는 성진 자신도 그녀가 그 말 속에 포함된 진심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녀의 마음을… 마치 기계마냥 아무 감정 없는 듯 굳어버린 그녀의 마음을 흔들 수만 있다면…….




하지만 성진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선영은 그런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증언으로 툭하고 내뱉었다.




“전제부터가 잘못되고 있잖아. 네가 말하는, 감히 정의할 수 없다는 사랑이란 건 같은 선상의 존재들에게나 통용되는 것이지, 그것이 다른 선상으로 넘어가면 적용 자체가 불가능해져. 무의식의 세계를 지향하는 존재에게 사랑이란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 세계는 말 그대로 무의식이라, 경험하고 나오면 다른 선상의 존재가 되지. 방 안에만 살던 사람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온 사람을 보고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깥을 향해 왜 자꾸 나가냐고 따질 수 있는 것일까?”




성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여자다. 그리고 성진은 그녀의 반박을 들으며, 그녀가 이미 잡을 수 없는 한없이 먼 곳에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음을 다시 한번 뼈아프게 느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진 성진의 말은,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심코 내뱉은 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럼 지난번에 캠퍼스 옥상에서… 내가 거치적거려서 맘 편히 나갈수 없다고 한 것은 무엇이었지?”




“…….”




성진은 아무 말도 없는 그녀에게서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곤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영은 시선을 슬쩍 피하고는 덤덤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지만 그 목소리는 미묘한 떨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김성진. 네 녀석이 죽어버리겠다고 했잖아. 도대체 뭐가 그렇게 너로 하여금 나에게 부합하게 만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다른 누구 때문에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하게 된다면, 그 다른 누군가는 책임을 지워야 하는 것 같았거든.”




‘그 다른 누군가’는 물론 선영의 입장일 것이다. 의도치 않은 질문이 이렇게까지 효과를 보자 성진은 마치 신의 도움이라도 얻은 듯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요행이었기에 다음에 더 그녀를 강하게 붙잡을만한 말은 생각해낼 수 없었고, 그래서 약간의 효과에 만족한 채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영은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다시 성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난 죽었지만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는 애매한 상태로 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야. 김성진. 이제 난 완전히 죽은 걸로 생각하도록 해.”




“선영…? 그게 무슨 말…….”




“대행으로 내어진 선영을 나로 생각하고 잘 보살펴주든지, 아니면 헤어지든지 네 마음대로 하라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거야. 자꾸 나오니 이것도 못해먹을 짓이군. 굉장한 정신력의 소모가 있고 그건 내게 있어선 너무나도 귀찮아. 푹 잘 자고 있는데 자꾸 누가 흔들어서 깨나는 게 반복된다고 생각해봐. 물론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차원이긴 하지만…. 만일 네 녀석의 그 같잖은 좆을 나한테 집어넣든지,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강간을 당하든지 해서 또 내가 나오게 되면….”




선영은 갑자기 키득 웃으며 허리를 숙여 성진을 바라보았다. 불과 몇 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서 갑자기 마주한 성진은 흠칫 놀라며 앉았던 몸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오랫동안 꿇었던 무릎은 그에게 저림이란 고통을 선사했고 성진은 이빨을 꽉 깨물며 한 손으로 다리를 쥐었다.




선영은 그런 성진의 반응을 재밌다는 듯 뒷짐을 지고 허리를 숙여서 잠깐동안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 때야말로 대행하던 녀석과 함께 이 세상에서 바이바이하겠어.”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기분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센스있는 경고였다. 그리고 성진은 그런 그녀의 평온하기까지 한 아름다운 미소에 전혀 감사하지 않은 채 외치듯 말했다.




“닥쳐! 은선영! 네가 뭔데 대행하던… 아니, 네 스스로를 그렇게 버리려하는 거야!”




치밀어오르는 감정 그대로 말하려다 ‘대행하는 선영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이므로 생사의 주도권은 그녀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곤 비켜말하려 했고, 그래서 퍽이나 이상한 말뜻이 되고 말았다. ‘네가 뭔데 네 마음대로 죽으려 하는 거야? 너는 내 허락 없인 못 죽어’란 뜻 말고는 다른 의미로는 생각할 수 없게 된 그 화법에 선영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쿡쿡 웃었다.




그리고 성진이 다음으로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선영은 몸을 뒤틀며 옆으로 쓰러졌다. 대행하던 그녀가 도로 끄집어내어진 것이었다. 마치 바람처럼 몸을 돌려 헤어져버리듯 그렇게 사라진 본래의 선영. 성진이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있는 사이 그렇게 전환된 선영은 심하게 옆으로 쓰러져 벽에 머리를 부딪치곤 인형처럼 바닥에 널부러졌다. 콰당-!




“선영…? 은선영……?”




성진은 잠깐동안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르는 어조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다가갔다. 그녀의 등을 받치고 조금 일으켜본 성진은 가늘게 눈을 뜨고있는 그녀의 모습에게서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별 위로가 안 되는 안도감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영은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흐트러진 머릿결 사이로 힘겹게 눈을 떠 성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피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이긴 했지만 성진은 본래의 선영이 그녀 안으로 사라졌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며 울컥하는 성진. 그런 그를 바라보는 현재의 선영은 그의 팔에 뉘어진 채로 힘없이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성진아…. 그들이……. 그들이 날…….”




성진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가 무리해서 말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인지시켜주기라도 하듯.




“알고 있어. 끝났어. 상황은…….”




“성진……. 나…… 나…….”




“미안해! 내가…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




“나…… 흐…… 흑…… 끅…….”




“말하지 말라고! 젠장할… 윽….”




“끄…… 흑…….”




“내가…… 잘못했다고…….”




쾅! 쾅!




“이봐! 당신들 좀 조용히 할 수 없어? 여기가 당신들만 사는 곳인 줄 알아?”




연이은 외침과 감정이 실린 커다란 목소리에 결국 옆호에 사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짜증을 내며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성진은 그런 누군가의 항의로부터 선영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더욱 꼭 끌어안았다. 흐느끼는 선영마냥 그의 두 눈에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시리도록 단절된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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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음 음 음~♪”




희미한 모텔의 조명등. 그 아래에서 혜진은 침대에 걸터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벗고 있었다. 곧 하얗고 얇은 속옷만 남긴 채 모조리 벗어버린 그녀는 섬세하게 꽃무늬가 들어가있는 자신의 브래지어를 가리키며 옆에 앉아있는 성진을 돌아보았다.




“오빠, 나 속옷 새로 샀다. 요런 스타일 어때?”




“…….”




윗옷은 벗었지만 바지는 여전히 입은 채로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성진은 그녀를 한번 흘끗 보고는 미소도 짓지 않고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혜진은 별 상관 없다는 듯 여전히 즐거운 표정으로 두 손을 뒤로 뻗어 침대 위를 짚고는 몸을 반쯤 눕혔다. 그녀의 눈이 모텔 천장을 향한다.




“자주 불러줘 오빠. 일주일간 연락도 안 하고, 뭐야. 자기 전에 메시지 확인하고 일어나자마자 또 핸드폰 열어보는 내맘, 오빤 모르지?”




“…….”




“그래도 오늘 만나서 좋다. 하……. 조금만 더 일찍 연락 줬으면 오빠랑 같이 백화점도 가려고 했는데. 봐둔 옷이 있긴 한데 영… 친구들 평은 못미더워서 말이지. 오빠가 봐주면 더 정확할 것 같았는데.”




“…….”




“있지. 나 라이벌 생겼어. 오빠 맘을 휘어잡을 라이벌이라고 해야 하냐, 후훗. 되게 귀여운 스타일이던데, 일단은 친구라곤 하지만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적이 되는 것도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잖아? 아참, 맞다. 오빠 이쁜 스타일이 좋아, 귀여운 스타일이 좋아?”




“…….”




성진은 그녀가 뭐라고 떠들든 관심없다는 시선으로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채 목석처럼 바닥만 내려보고 있었다. 만일 이곳에 타인의 시선이 존재했다면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옆에 두고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는지 분통을 터뜨리고도 남을 광경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혜진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대에 걸터앉은 두 다리를 흔들며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모텔 바닥지의 무늬를 감상하는 것마냥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있던 성진은 이윽고, 슬그머니 눈동자만 돌려 옆의 혜진을 바라보았다. 얇고 섹시한 속옷을 입은 채 천장을 바라보던 혜진은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성진의 심경은 다시금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전날 아파하는 선영을 겨우 잠재운 그는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데리고 갔고, 사후 피임약 등을 처방받은 후 종일 그녀를 간호해야 했다. 강의도 못들어간 그는 저녁이 넘어가자 정신적 피로가 몰려왔고,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온 후 혜진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될대로 되란 심정으로 그녀에게 문자를 날렸지만 이상하게 혜진은 아무렇게나 날린 문자에도 늘 성심성의껏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마음을 아는 건가? 성진은 그녀에게 신경쓰며 문자를 보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녀는 한번도 문자에 대해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당연하게도 성진 자신에게 더욱더 죄책감 같은 걸 심어주고 있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녀석. 자기가 힘들 때만 여자한테 연락하는 최저의 남자 케이스를 밟아가는 자가 따로 없군. 물론 성진도 혜진을 만날수록 그녀가 그런 점에 정말로 신경을 안 쓰는 여자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계속 대해도 되나? 아니지…. 그녀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안 쓰고 나를 만나는 것 자체가 좋다고 하면 그걸로 된 걸까? 혜진… 강혜진?




“음…? 오빠, 왜 그래? 빤히 바라보고.”




“어… 어? 그랬나? 미안, 생각 좀 하느라.”




“우움. 무슨 생각했어? 또 복잡한 생각? 정말이지, 오빠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나랑 있을 땐 편하게 있어, 편하게! 이잉. 내 속옷은 보지도 않고, 핏.”




혜진은 살짝 토라진 척 고개를 커튼이 쳐진 창문쪽으로 돌렸고, 성진은 그만 힘없이 웃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하나의 고민이 전환점이 되어 휘몰아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눈앞의 혜진이었다. 새삼스레 그녀와 자신의 관계를 정립해보려던 그는, 자신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녀를 ‘원하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늘상 내가 힘들때마다 그녀는 옆에 있었지. 섹스를 하든 안 하든 그녀와 만난 게 첫 미팅 이후로 약 열 번쯤 되었고, 대부분이 성진의 심경이 복잡할 때곤 했다. 사실 만나도 별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단 한마디도 안 한 채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이미 많은 얘기를 나눈 것처럼 편안해지곤 했다. 그냥 혼자 생각하고 있어도 꼭 그녀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눈 듯한 기분이 들곤 했던 것이다.




내면적으로 혜진에 대한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던 성진. 그는 갑자기 그녀에게 사귀자고 얘기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음을 자각하고 깜짝 놀랐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직이야…. 김성진. 너 이렇게 헤프게 행동하면 안 돼. 선영이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그렇게 곧바로 돌아설 수 있나?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네가 혜진과 사귀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현재의 선영을 보호하는 데만도 벅차잖아? 물론 그녀가 내게 바라는 건 단지 정신적인 사랑뿐이라 해도, 훗날 돌아보았을 때 내가 그녀에게 피해만 주었던 것을 자각하면 더 괴로워질 수 있다.




성진은 문득 몇 걸음 건너편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혜진의 핸드백을 바라보았다. 명품백도 아닌 어떻게 보면 꽤나 평범해보이는 가죽으로 된 가방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그녀의 집안 사정을 잘 모른다해도 꽤나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단지 그녀가 외부적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림을 위한 연기가 몸에 배어있을 뿐이다. 그녀와 이미 꽤 많은 만남을 가진 성진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이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물질적인 사랑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무슨…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연애를 할 뿐이라면 상관없지 않나?’




성진은 자신이 너무 앞서 생각하고 있음을 자각하곤 다시금 픽 웃으며 고개를 조금 들어올렸다. 그리곤 긴 한숨. 이러나저러나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허공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이제 그만 하라는 듯 부드럽게 목 너머로 감겨오는 혜진의 두 팔.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가서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오빠. 천천히 생각해. 고민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득이 될 건 별로 없어.”




“네… 네 생각한 거 아냐!”




“어머, 내 생각하고 있었구나.”




혜진은 까르르 웃으며 그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부드러운 브래지어의 실크 감촉과 함께 등에 꾹꾹 와닿고 있었다. 성진은 짐짓 시선을 딴 데로 두며 그녀의 나긋나긋한 감촉을 무시하려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혜진은 그대로 두지를 않았다. 그녀는 성진의 고개를 붙잡아 자신에게로 반쯤 돌리게 한 후 얼굴을 붉히곤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깊고 진한 키스였다. 혜진은 성진의 뒤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로 그의 입술과 혀를 빨았고, 성진은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는 자세로 그녀의 키스를 받아갔다. 그리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의 온갖 생각들이 날아가버리며 그녀의 혀놀림에 호응하듯 자신도 입술과 혀를 놀리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적막 속에서 몽환적인 키스 타임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혜진은 다시 그의 목 너머로 손을 뻗어 그의 젖꼭지를 간지럽히듯 살살 자극했다.




이미 여러 번 혜진의 보지를 맛보았던 성진의 자지가 그녀의 접촉을 감지한 듯 바지 위로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불끈거리는 자지의 모습을 본 혜진은 키스를 멈추지 않으며 능숙하게 뒤에서 손을 뻗어 그의 바지를 끌러내렸다. 팬티가 내려지자 자지는 무서운 속도로 그 위세를 과시하듯 허공을 향해 꼿꼿하게 섰다. 핏대를 세우며 꿈틀거리는 그 자지를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혜진은 부드럽게 귀두와 좆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성진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침대 위로 쓰러뜨리곤 하나가 되듯 포개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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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레인.”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린 남자는 참으로 선영다운 아이디라 생각하면서 잠시동안 쿡쿡 웃었다. 그리곤 보편적인 남자로 보기엔 상당히 길어버린 자신의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넘기곤 한 손을 턱에 갖다대곤 생각에 잠겨갔다. 그의 다른 쪽 손은 금방이라도 어딘가를 클릭할 것처럼 마우스 위를 붙잡고 있었지만 사실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모니터에는 ‘카잔 전쟁’의 net플레이 대기실에 접속한 화면이 보여지고 있었고, 온라인 친구 목록으로 보이는 한쪽 란에는 여러 개의 아이디가 띄워져있었다. 하지만 은선영이 사용하던 ‘실버레인’이란 아이디는 어제 저녁때쯤을 기점으로 갑자기 오프라인으로 표기되었다. 늘상 간다는 인사를 남기던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다가 접속이 끊긴 채 오늘까지 다 지나가도록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런 사실에 별 신경을 안 쓰려고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대전자를 고르는 방을 뒤적이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금 선영이 접속해있나 하고 온라인 친구 목록을 확인하곤 했다.




남자는 결국 옆에 있는 생수통을 들어올려 꿀꺽꿀꺽 마시고는 답답해진 심경을 가눌 길이 없는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그 옆에 있던 담뱃갑을 더듬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벌써 다 빨았나…. 시계를 확인한 그는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들리는 발소리.




“뭐야, 오빠. 이 밤중에….”




가벼운 스웨터에 스키니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20대 초반 여자가 그의 방문을 열었다. 거실의 불빛이 어두운 그의 방 안에 어색하게 비추어진다. 오빠라 불린 그 남자는 담뱃갑을 들어보였고, 여자는 짜증이 난 목소리로 응수했다.




“꼭 이 시간에 그런 걸 시켜야 해?”




“어차피 안 자고 있었잖아? 친구들이랑 문자나 돌리며 놀고 있던 주제에.”




“아 몰라, 잘려고 다 씻었는데 찝찝하게시리….”




남자는 쓴웃음을 픽하고 지었다.




“미안하다. 예나야. 오빠 이거 없으면 긴긴밤 내내 괴롭다. 부탁한다.”




여자는 대답도 하기 싫다는 듯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고, 남자는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확인하곤 컴컴한 허공을 향해 한숨을 폭하고 내쉬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만 은은하게 방안을 밝히는 형국.




“벌써 2년이 다되어가나….”




뭐가 2년인지 의미모를 중얼거림만 내던 그는 다시 ‘카잔 전쟁’ net플레이 화면으로 회전의자를 돌렸다. 그의 눈은 다시금 온라인 친구 목록에 있는 은선영의 아이디인 ‘실버레인’으로 향했다. 여전히 오프.




“뭐 별일 없겠지. 기대하고 재회한 것도 아니니…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닌 것 같고. 하지만…….”




기억하기 싫은 건지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그러나 남자는 둘 다의 가정에 별로 의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렇게까지 안 좋은 감정으로 헤어졌던 것도 아니고, 한동안 메신저로도 연락을 자주 했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기엔 공백 기간이 불과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짧았다.




그래서 그는 선영이 어떤 사고로 기억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자연스러운 추측을 해보았다. 물론 선영은 그것에 관해선 일체 모르는 것처럼 대답이 없었고(라기보단 설명하기 귀찮은 투였지만), 단지 접속해보니 자신도 모르는 예전의 누군가가 온라인 친구 추가를 해놓은 것에 부합되었을 뿐이라는 의미모를 메시지만 남겼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영은 사실상 접속하면 게임하는데만 관심을 쏟는 것 같았다. 대화를 목적으로 한 메신저 따위는 일체 쓰지 않는다는 점이 그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접속한 그녀에게 반가움에 말을 여러 번 걸어봤지만 완전히 딴 사람 취급하듯 답변도 안 왔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초등학교 때나 만난 사람처럼 자신과 그녀의 예전 관계를 설명해야했고, 그녀는 간신히 어느 정도 납득하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두 가지 가정으로 좁혀지는군. 기억상실증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접속하고 있다거나. 설명을 좀 해주었음 좋겠는데 내가 누군지를 정말로 모르는 것 같고, 별로 말할 의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니….’




물론 선영의 매우 특수한 케이스로 그 두 가지 가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라인으로만 몇 번 재회한 남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혀 추측할 수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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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등장하게 되는 신캐릭터! …랄까. 여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남자입니다.(…) 꽤나 평범하지 않은 남자입니다. 선영과 과거에 어떤 접점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관련해선 후에 회상 비슷하게 외전 형식으로 넣을까 생각도 해보고 있습니다.




리플은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도 답글로 말씀드렸지만 리플로 뭐라고 하시든 의견 수용 같은 건 거의 안 이루어집니다. 참고는 할지언정 스토리는 그저 제멋대로 갑니다. 막장이 되든 지루해지든 재미가 없어지든 다 제 선택입니다. 그걸 감안하고 보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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