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그룹

바이러스 - 8부

본문

바이러스 


박 봉구(26) 


이 춘식(25) 


김 유석(26) 


송 은미(35) 성 재경의 처 


양 수연실장(29) 생명연구원 책임자




8부 채송화는 짓밟고.........


“으음”


“박사님. 박사님”


“으응? 뭔 일인가?”


“놀랬잖아요, 박사님. 갑자기 신음을 막 하시고........”


“내가? 신음을?”


“네, 무서운 꿈을 꾸신 것처럼.........”


“그랬다........말이지”


“네, 그랬어요? 어디 안 좋으세요? 차가운 음료수라도 드릴까요?”


“아니야. 커피나 한 잔 주게. 양 실장”


“찐하게 타드릴게요, 박사님.”


몸을 가까이 하자 가슴께서 톡! 쏘는 향수에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느끼며 이 석현 박사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다 조금 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천연색 풍경에 넋을 놨다. 


그것은 지옥도 풍경이었다. 홀딱 발가벗은 여체들이 나뒹군 널따란 방을 자신이 기어 다니며 마주치게 된 여인들의 유방을 움켜지거나 가랑이에다 얼굴을 박고 하체를 헐떡거린 풍경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아주 생생했다. 양 실장의 향수를 맡는 순간 손을 뻗어 그녀의 엉덩이를 낚아채려 했던 것은........ 그 잔상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상하군. 저번보다 더 강해졌어. 갈수록 끔직한 광경이야. 내가 꼭 짐승 같았어, 굶주린 개가 따로 없어.” 


머리가 무거웠다. 양실장이 건네 준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도 커피에서까지 뒤엉긴 남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오늘따라 이상해요, 박사님”


“허, 허, 허. 그렇게 보이는가? 양 실장”


“정말이에요, 다른 때와는 달라요.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은........”


그녀의 귀여운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던 이 박사는 뜨거운 무엇이 왈칵 치달아오자


“양 실장. 내가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지?”


컴퓨터 앞을 일어난 이 박사는 소파로 몸을 옮기며 그녀를 끌어 앉혔다.


더 진한 향수가 자극했다. 이 향수는 분명 저번 프랑스학회에 다녀오며 사다 준 그 향수임에 분명했다. 


양 수연 실장. 이 박사가 있는 생명연구원의 미생물실험실 책임자인 양 수연은 한국 아니 세계 생명과학계의 대들보인 이 석현을 애인처럼 존경했다. 지금은 예순을 바라보는 회색빛 머리의 유전자센터장이지만 처음 이 연구소에 올 때부터 우러러 봤던 그녀였다. 이 박사가 한창 연구에 전념할 몇 년 전까지도 몸을 허락한 사이였다. 육체의 탐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식의 산책, 아니 높은 경륜을 사랑으로 나눴다고 판단한 그녀다. 


그런데 지금 그 센터장이 자신의 손을 끌자 얼굴이 붉어졌다. 육체를 접한 지 벌써 4 - 5년은 지났지만 뜨거운 불길은 아직 남았나 보다. 


“아이 박사님”


싫은 표정은 아니다. 못내 옆으로 앉는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얼굴을 내밀었다. 립스틱이 고운 도톰한 입술이다. 잔잔한 입술의 파문이 그의 입김을 맞이하자 말미잘 섬모처럼 물결쳤다.


‘아!’ 


양 실장은 두 손으로 그를 안았다. 입술을 떼면 도망을 칠 것 같았다. 그러나 대신 그가 더 강하게 빨아들이자 ‘흐 - 읍!’ 숨이 막히며 아랫도리가 풀렸다. 예전과는 다른 뜨거움이었다. 열정 속의 그 냉정했던 중년의 몸이 아니었다. 지금은 냉정 속의 타오른 열정이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노인의 힘이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아메바. 거친 흙을 뚫은 박테리아. 사람의 내장을 휘젓고 다니는 미세 생물처럼 그의 손은 치마 속을 헤집으며 연한 샅을 건드렸다. 


‘아! 박사님........’


숨을 길게 쉰 그녀는 손을 풀어버린 채 가슴과 아랫도리를 그에게 맡겼다. 


“내가......... 정말......... 이상한가?”


“그....... 래....... 요”


“나도 모르겠어. 학! 학! 왜 이리 뜨거워지는 거지. 참을 수 없어. 멈출 수 없어”


“해...... 줘....... 요”


이미 붉어진 얼굴의 그녀는 대낮이라는 부끄러움 따위는 집어 던졌다. 스물아홉의 잘 익은 육체는 오히려 그것을 더 즐기는 듯 했다. 


“아이........., 빨리요” 


긴 소파에 누워 치마를 허리께로 접고 다리를 벌린 자세다. 적당히 살이 오른 허벅지가 눈 부셨다. 이 박사는 들뜬 몸짓으로 그녀 배위에 올랐다. 몸 깊은 내부에서 그녀를 재촉했다. 막을 수 없는 분출. 노년의 나이는 생각치도 않은 채 있는 힘껏 허리를 움직였다.




수줍은 얼굴로 그녀가 빠져나가자 그때서야 화들짝 지난 일이 떠올랐다. 그냥 스쳐지나간 꿈이 아니다. ‘그렇군, 그랬어. 그때가 된 거야.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그 파일을 봐야 해. 무언가 이상해다 했어. 10년 전부터 띄엄띄엄 찾아 온 그 광경은 결코 꿈이 아니었어. 가만 먼저 강 인수 박사에게 연락을 해야 돼나? 아니지. 그 친구는 그때도 떨떠름한 표정이었어.’ 




이 석현은 주섬주섬 바지를 가지런히 하고 실험실 한 쪽에 있는 작은 금고를 열었다. 노란 봉투. 1급이란 빨간 도장이 찍힌 봉투를 열어 몇 장의 서류를 꺼냈다. 두 장은 복잡한 분자공식 같은 게 적혀 있는 종이고 또 한 장은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름과 주소 따위가 적힌 종이를 보며 손으로 꼽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드디어 시작이군. 잠자는 세포가 일단은 깨어났다는 건데........, 다음이 중요하지. 성공은 아직 이야. 그들에게 짐승 같은 심장과 욕구가 들어나야 해. 그래야 완벽한 성공이지. 그래도 유전자 합성은 성공이군. 후후후”


강 인수에게 전화를 걸려다 휴대폰을 덮은 그는 다시 파일의 공식들을 소중하게 하나하나 읽었다. 20여 년 전의 DNA 연구였지만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견한 성과였다. 최근에야 세포분열이니 합성이니 유전자 조작이니 죽은 공룡을 부활시킨다고 난리지만 그에게는 우스운 짓거리로만 보일 뿐이었다. 양 실장이 그 일면을 보고 자신을 따르며 존경의 눈길을 보내는 지도 모르지만.


강 박사에게 전화를 건 대신에 생각을 바꾼 이 박사는 청주에 있는 한 산부인과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 xx 산부인과죠? 혹시 원장선생님 계시면 부탁합니다.”


이미 선배는 타계했고 병원은 딸에게 물려주었으나 대전으로 옮겼다는 설명을 듣고


‘아, 그래요’ 그리고 몇 마디 묻는 듯 하더니 싱겁게 전화를 마쳤다.




산처럼 버티고 있는 남자. 그래서 자신이 마치 그 산 그림자에 묻혀 있는, 아주 미미한 작은 숲 같았다. 이 남자는 10분 쯤 전 ‘여기 성 재경씨 댁 맞습니까?’ 낮게 묻고는 ‘그런데요?"란 대답을 미처 끝내기도 전 강한 팔로 허리와 입을 막은 채 별로 애쓰지도 않고 방까지, 무슨 물건을 들어다 놓은 것처럼 갖다 던졌다. 뭔가, 소리를 내지른다던지 주위 이웃의 도움을 청한다든지 하는 몇몇 대응을 떠올렸었지만 그딴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남자였다. 오히려 입을 막았을 때의 그 차가움은 아주 추운 겨울날 맨 손으로 얼음을 만지는 느낌을 주었다. 마음까지 얼게 만드는 혹독한 눈빛은 얼굴을 가린 마스크 위에서 품어졌다. 뱀의 눈. 먹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눈빛. 기다란 혀가 마스크 너머로 나와 자신을 칭칭 묶을 듯 했다.


“..........”


“네가 재경이 마누라야?”


바닥에 폐품처럼 던져진 여인은 경악의 얼굴을 끄덕였다. 서있던 남자가 양반 자세로 앉으며 눈높이를 맞추자 얼굴을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재경이는 어디 있나? 아직 빵에 있나?” 


“네.......... 근데 누구?”


“지금부터는 아가리 놀리지 마. 대가리로 말해.”


“네?”


“말귀가 좃나 어둡군.”


“네?”


“네........라, 그렇다. 이년아”


처음엔 남편의 가까운 친구려니 방심한 잘못도 컸다. 개망나니 같은 남편이라 오면 오는가보다 가면 가는가 보다 한 남편이었다. 집구석에 보탬을 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주먹은 셌던 남편 탓에 후환이 두려워서인지 송 은미, 그녀에게는 누구하나 시비를 걸진 않았다. 개떡 같은 남편이었지만 그나마 고마운 것이 있다면 그 하나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것을, 지금까지 자신이 누렸던 그마저 무슨 개떡마냥 던져버린 것이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연신 떨어지는 주먹에 혼비백산이었다. 돌멩이처럼 묵직한 주먹으로 놀리듯 배와 가슴을 때린 통에 어쩔 줄 몰랐다. 한 대씩 맞을 때마다 팔다리에서 주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아가리로 말하지 마, 대가리로 말해. 대가리, 이 대가리”


손바닥으로 뒷머리를 몇 대 두드리자 그제야 입을 앙다물고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아듣는군.”


말이 끝나자 머리를 끄덕인 은미. 자기 딴에는 알았다는 시늉이지만 봉구는 비웃으며


“내가 여기를 찾은 이유는 오래 전 빚이 좀 있어서야. 내가 받아야 할 빚이 좀 있거든.”


여자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었다. 상체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다. 블라우스가 스커트에서


거의 삐져나왔다. 


“그런 건 모른다는 말이지? 몰라도 돼. 그건 니 남편과 나와의 문제니까. 다만”


봉구는 그때 그 치욕스러운 시간들을 떠올리며 


“빚은 집에 있다 했어. 그래서 찾아온 거야. 근데 가족이 별로 없군.”


25인치 TV 세트 위에 세워진 작은 꽃무늬 액자. 여름 어느 땐가 물가로 놀러갈 때 찍은 사진이다. 반바지차림에 웃고 있는 가족. 험상궂은 남자 얼굴과 비교된 곱상한 여자. 큰 키는 아니지만 선이 제법 곱다. 그 앞으로 언뜻 봐도 해맑은 소녀가 시선을 끈다. 열 두셋은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다. 


물가? 개울이 흐르는 공간. 순간 정지된 사진 속의 물을 보자 어느 땐가의 추억이 떠올랐다. 서로 물을 뿌리며 검은 튜브를 먼저 잡겠다고 서투른 헤엄을 치던 유성, 춘식, 그리고 봉구. 수업이 끝난 뒤 우 몰려갔던 냇가. 동네에서 한참이나 멀었지만 물에서 첨벙댈 재미 하나로 찾았던 그 곳.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자 봉구의 눈빛은 차가움이 가신듯 했다. 맞다. 가신 듯으로 끝났다. 포말을 밀어내며 분노의 감정이 다시 솟구쳤다. 눈은 예의 그 뱀. 숨이 가빠졌다. 마스크가 들쑥날쑥하다. 


“가족이야?”


‘끄덕끄덕’ 하얗게 질린 얼굴. 


“저 꼬마는 딸이야?”


또 ‘끄덕끄덕’ 하얗다 못해 파랗게 변하는 얼굴. 떨리는 손.


“빚은 저 꼬마한테 받을까?”


‘절레절레’ 고개를 밑으로 숙이고 머리를 세차게 옆으로 흔든 여자. 


“그래?”


또 ‘끄덕끄덕’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은미는 차라리 자신을 범하고 떠나주기를 바랬다. 남자가 이렇게 밀고 들어온 이유는 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그런 짓거리를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다. 교도소 면회도 너무 창피해 포기했다. 특히 딸에게는 더 숨기고 싶었다. 


“벗어”


이번에는 ‘끄덕끄덕’ 하지 않고 반은 누운 상체를 세워 블라우스부터 벗었다. 뱀 눈빛에 질린 개구리. 개구리는 뱀을 만나면 도망을 치지 못하고 그 자리 그대로 굳는다 했던가. 그 모양이다. 형광등에 비친 살결이 뽀얗다. 혼자 있는 여자가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 지 은미는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배시시 웃음을 던지며 보험권유를 한 게 몇 건이었다. 요즘에는 콘설턴트라는 이름이 익숙한, 보험설계사로 살림을 꾸린 그녀다. 호리한 몸매로 중년들을 꼬드기면 열 중 한둘은 계좌를 터줬다. 


발가벗은 상체를 싸늘하게 훑는 봉구는 상체를 가로로 막고 있는 분홍 블레이저를 손가락을 걸어 잡아 뜯었다. ‘툭!’ 끊어진 헝겊은 두 봉우리를 드러냈다. 까만 두 점이 전의를 상실한 개구리의 두 눈 같다. 본능으로 가슴을 가린 은미. 팔에 눌린 젖가슴이 크지는 않지만 야트막한 동산으로 손에 쥐면 삐져나갈 듯 했다. 


눈이 벌겋게 변하는 남자는 그 때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가쁜 숨에 답답한 듯 마스크를 벗고는 크게 숨을 쉬는 모습이다. 얼굴이 익숙했다. 이 남자는.........


“아니? 넌.........”


“그래 맞아.”


"어떻게 이럴 수가..........“


은미는 그때서야 기가 막힌 듯 얼굴을 굳혔다. 이 남자, 아니 이 청년은 한 때 남편이 데리고 다니던 아이가 아니던가. 


“그래서? 무얼?”


벌건 눈을 세우자 거기에서 비수가 쏟아졌다. 그때와는 너무 다른 얼굴. 얼음장 같은 목소리는 한줌 기대감까지 앗아갔다. 


“대가리로 말하란 말, 빨리도 잊는 군”


봉구는 주저하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불끈 몰아 쥘 때의 만족감이 여자의 옆구리에 터졌다. 발가벗은 상체 아래 드러난 옆구리를 주먹으로 후려 맞은 은미는 ‘켁!’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고통스런 비명에 기침까지 ‘콜록’ 거리며 방바닥에 던져진 종이처럼 구겨졌다. 걷어 올려진 치마 밑으로 통통한 허벅지와 종아리가 드러났다. 매끈한 살결은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을 주었다. 숨을 거칠게 들이키며 아랫배에 힘을 주는 봉구다. 여자를 낚아챌 때부터 팽팽해진 불알은 점점 커져 형광등빛에 반사된 허연 허벅지를 보는 순간 좆대가리가 바지를 뚫으려 했다. 머리 속은 텅 빈 상자처럼 다른 그 무엇이 없이 오직 이 여자의 속을 파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파먹다? 숟갈로 밥을 퍼먹은 것처럼 가랑이 사이에서 헐떡거린 게 아니라 자신이 긴 막대기가 되어 저 보드라운 구멍 속 깊이 파고들고 싶을 뿐. 


언제라고 정확하게 말할 순 없었지만 봉구 자신이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석과 함께 고등학교 시절 못된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닐 때도 그랬다. 동네 여자아이들을 꼬드겨 덮칠 때마다 아랫도리가 활활 타오르는 기쁨을 맛보곤 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후회가 찾아왔다. 마치 채송화가 예쁘게 피어있는 꽃밭을 마구 짓밟아 버리곤 왜? 그랬을까 . 이 아름다운 꽃을 왜 짓밟았을까 하는....... 변하는 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짧아지고 후회는 생기지 않았다. 최근 들어 더 그랬다.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머리를 꼿꼿이 세운 뱀이 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리 벌리고 누워. 두 손은 머리 위로. 빨리!”


울음을 삼키고 방바닥에 등을 댔다. 청년이 시킨 대로 다리를 옆으로 벌렸다. 스커트 안으로 분홍색 팬티가 장미처럼 놓여있다. 유혹의 향기. 봉구는 바지를 벗어던지고 여자의 몸에 올라탔다. 검정 두 알을 깨물며 이미 팽창한 좆을 세웠다. 부서진 성벽을 넘기는 쉬운 일. 빡빡한 구멍은 봉구의 침입을 잠시 멈추게 했지만 오히려 살같이 터졌다. 너무 큰 물건. 봉구의 성기는 여자를 느낄 때마다 배 이상 커졌다. 출산 경험이 있는 유부녀들도 봉구의 물건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은미는 비명을 지르며 밀어냈다. 주먹으로 맞을 때보다 이건 더 아팠다. 두 다리 사이에 낀 이물질이 톱니바퀴 달린 기계였다. 하체가 두 조각으로 동강날 것 같았다. 


“그만. 아아악!”


비린내를 풍기는 남자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뱀의 꽈리에 묻힌 개구리, 은미는 순간 그것을 떠올렸지만 희미해져 갔다. 목을 조이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은 다물어지지도 않은 그대로 멈췄다. 




춘식은 너부러진 한 년의 발목을 잡아들었다. 갈색으로 곱게 그을린 유경의 발목이다. 잡아 들어 체취, 보드라운 살집, 가득 품은 즙,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기에 딱 좋은 발을 입으로 가져갔다. 고통에 몸을 가누지 못한 유경이지만 발을 빼내려 했다. 아랫도리에서는 뭔가 흘러내렸다. 질을 적시고 남은 누런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조금 전 역겨운 액취를 풍기며 자신을 갈기갈기 찢은 남자는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고통에 이를 덜덜 떨며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남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여자의 눈물은 사랑의 미약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의 눈물을 쯥쯥, 거리며 핥아먹었다. 맛있다는 표정에 절망한 유경이었다.


“죽고 싶어?”


“아, 아니요.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요, 흑흑”


유경은 그나마 이 사람이 자신들을 구해줄 것으로 여겼다. 말만 잘 들으면 살려주겠다는 약속이 떠오른 것이다.


“살려주지. 암. 그런데 내가 배가 너무 고프거든. 허기져”


“아악.........”


발에 강한 통증이 찾아왔다.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가 날카로운 이를 세우듯 남자는 유경의 발뒤꿈치에 어금니를 대고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아........악!”


발버둥을 치는 유경. 은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이것이 현실인지 악몽인지 믿겨지지 않았다. 시간도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여기에 잡혀온 게 몇 달 전 아니 몇 년 전의 일 같았다. 유경은 고통이 가득한 얼굴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남자의 손에 잡힌 발은 끄떡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바동대기만 할 뿐 유경의 왼 발 뒤꿈치는 조금씩 뜯겨 나갔다.


“흐흐흐, 난 배가 고파. 아까부터 먹고 싶었거든, 너도 기다려”


“악!” 


남자의 피 묻은 입은 괴기스러웠다. 짓이겨진 공포영화였다. 여자들을 먹이처럼 잡아먹은 그 괴수. 바로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이 괴수였다. 은혜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유경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발목이 잡힌 유경은 꿈쩍 하지 않았다. 


“도망?, 어디로? 가 봐”


벌거벗은 남자는 입을 쩝쩝거리며 은혜를 비웃었다. 입술에 빨간 피. 유경의 것이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빈 은혜는 행운을 빌었다. 이 세상에 단 한번 뿐인 행운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그 행운이 일어나기를 빌었다. 괴물은 유경의 다른 발을 들어 발가락 모두를 입에 물었다. ‘두둑’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듯 상체를 세운 유경은 긴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쓰러졌다. 눈은 풀려 반쯤 감겼다. 이미 오른발은 피범벅으로 인간의 그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발치는 찢긴 살갗으로 너덜거렸다. 


“맛있어, 젊은 육질이야. 기가 막히는 맛이군.”


오물거리는 입을 벌리며 피로 범벅이 된 혀를 날름거렸다. 짐승 아니 괴수. 처음 자신들을 대하던 그 표정은 이미 사라졌다. 굶주린 승냥이는 은혜를 낚아챘다. 엄청난 힘이었다. 두 손을 비비던 은혜는 허수아비처럼 춘식의 앞에 쓰러졌다. 있는 힘을 다해 손아귀를 벗어나려 했지만 오른발을 잡아끌자 주르륵 밀렸다. 


“놔! 이 나쁜 새끼. 놔란 말이야.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다리를 바둥거린 은혜는 발을 바짝 더 끌어당기자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가려 했다. 


“이렇게 큼직한 발도 좋지. 식욕을 채우기에 딱 좋은 발이야. 흐흐흐”


발바닥을 혀로 쑥 핥은 승냥이는 먹이의 진득한 향기를 즐기는 듯 하다 보드라운 발 옆을 물어뜯었다. 정신을 후리는 고통, 아랫도리를 찢어놓은 듯한 노린내 남자의 아픔보다 이 남자의 이빨이 더 고통스러웠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은혜는 기절했다. 




“으윽.......... ”


부쩍 머리 속이 윙윙, 거린 이 석현 박사다. 며칠 전 양 실장의 젊은 육체를 탐한 것도 바로 이 지근거린 두통 때문이었다. 두통과 함께 강한 성욕이 찾아들었다. 억제할 수 없는 성욕은 양 실장의 여체를 원했다.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그때는 연인의 감정이나 어쨌든 사랑의 정서가 있었지만 이번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그들이 깨어난 것인가? 20년이 지나..........”


기억을 다시 떠올린 이 박사는 파일에 끼워 둔 그 종이를 꺼냈다.


“지금, 그들이 깨어났다면”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는 판단인지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시간을 단축해야겠군. 그리고 이제 그들을 찾아내면 끝나는 건가? 혈청만 채취하면 바이러스는 무한정 만들 수 있는 거지. 하하하. 과학의 힘은 역시 위대해. 강 박사, 우린 성공한거야. 근데.........”


문제는 강 박사다. 자신의 유전자 지도도 중요하지만 그의 정신 DNA도 필요했다. 단순한 육체의 변화는 거칠고 무식한 짐승만 만들어 낼 뿐 뱀의 지혜나 들개의 예측, 승냥이의 날카로움은 부족한, 반쪽이 될 뿐이다. 그러나 강 박사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연구원에서 나가 금산 어딘가에 묻혀 살고 있는 정도였다. 자연이 좋다는 그를 그렇지 않아도 찾아간 이 박사다.


“성공이야. 성공. 우리들은 세계 그 어느 학자보다도 우수한 변종을 만들어 냈어.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페스트균 따위는 따라오지 못해. 우리가 만든 이 유전자 합성은 위대한 과학의 열매를 맺은 거야. 어때? 강 박사”


“허허, 이젠 박사가 아니래도. 그 놈의 박사란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다니까 그래. 자 보게, 저 앞에 펼쳐진 호수, 얼마나 아름다운가. 호수를 보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그때 그 지우고 싶은 일까지”


아내 미연은 조금 전 자리를 피했다. 20년도 지난 일이었지만 아내는 지금도 그 고통을 지우지 못한 듯 뉴스나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나오면 몸을 떨었다. 그때마다 강 박사도 사실 세상을 저주했다. 모든 불행이 자기에게만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은 아무리 학자라도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박사가 시도한 실험에 스스럼없이 참여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야. 자네가 연구해 온 신경물질계의 유전효소, 내게 그 게놈 지도를 주게. 이건 순전히 학문적 욕심이지 다른 뜻은 없어. 크게 걱정하지 말게나.”


“허허허, 이제 생각도 나지 않은 용어들일세 그려. 그때 다 주었지 않았나?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이미 자네가 만든 거나 내가 만든 거나 그들 몸속에 흐르고 있을 텐데.......”


“그렇단 말인가? 그건 몰랐군. 그래 알았네, 그럼 가야겠네. 자네 처에게 언제 한번 집에 들르라 하게. 아내가 보고 싶다고 하던데..........”


“그러지 뭐. 언제 같이 한번 들리겠네. 자네 처도 잘 지내고 있는가?”


숙희, 이 박사의 아내인 숙희는 그 일 이 후 너무 변해버렸다.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방에서도 나오기 싫어할 정도였다. 병원에 있다 나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다. 병약한 얼굴을 볼 때마다 그 놈들을 찢어죽이고 싶었다. 갈기갈기 찢어 나무에 걸어놓고 싶었다. 차라리 세상의 종말이 와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헉!”


이번에는 더 큰 아픔이다. 머리가 윙 거릴 정도가 아니라 심장을 때리는 충격이다. 충격과 함께 머리 속에 떠오른 광경은 그때 그 참혹한 것과 똑 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피가 흥건한 방이라는 것 뿐. 이 박사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불로 돌돌 말아 한쪽에 밀어 놓은 봉구는 가라앉지 않은 욕구에 땀을 흘리며 불안해했다. 가슴을 가득 채운 그 무엇. 폭발시키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자의 육체를 입으로 젖통을 핥아대며 구멍을 쑤셔댔다. 반응이 사라진 여자는 눈을 반쯤 뜨고 흔들거리고만 있었다.


봉구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소녀를 들어 밀어 놓은 이불 위에 거꾸로 눕혔다. 학교에서 돌아온 소녀는 방안의 풍경에 놀라 뒷걸음을 쳤지만 이미 늦었다. ‘헉!’ 바람 빠진 소리가 끝이었다. 


교복 치마를 걷어 올린 그는 탐스런 엉덩이 사이의 검은 점을 노렸다. 여인의 피와 질액과 정액으로 반들거린 좆을 문지르며 하체를 밀었다. 기절한 소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입을 멍하게 벌렸다. 아랫배의 바람이 목을 타고 흘러나온 듯 하다. 




유석은 아직도 샤워다. 시뻘게진 얼굴로 방에서 나오자마자 욕실로 들어가더니 춘식이 나와서 구토를 할 때도 안에 있었다. ‘꺽, 커억!’ 핏자국이 남은 입을 벌려 변기통에 토한 춘식. 비릿한 냄새를 변기에 쏟았다. 환희 뒤에 찾아온 침몰. 바닥이 꺼져 저 깊은 땅속으로 잠긴 것 같았다. 피부에 솟았던 돌기는 가라앉았지만 배속에서는 역겨운 그 무엇이 꿈틀거렸다. 찬물을 연거푸 마시고 얼굴을 닦아내자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유석은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쪼그려 앉아 덜덜 떨고 있다. 나쁜 일을 저지른 소년이 찾아올 처벌에 어쩔 줄 몰라 한 모양이다. 춘식은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해보지만 아까 같은 그런 힘은 생기지 않았다.




몸을 떼어내자 붉은 포도주를 붓듯 선홍색 길이 생기고 푸른 이불을 검게 적셨다. 엉덩이 골짝 안은 동굴이 크게 뚫렸다. 선홍색 길은 그 동굴 안으로 이어져 있다. 사진 속 냇가가 언뜻 스쳤다. 거기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던 모녀는 지금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폐품이었다. 이불을 다시 펴 두 모녀를 가지런히 눕힌 봉구는 미리 가져간 시너를 골고루 뿌렸다. 이불을 흠뻑 적신 액체는 휘발성 냄새를 강하게 날리며 둘의 몸까지 적셨다. 옷장을 열어 타기 좋은 옷들을 꺼내 몸 위로 던지고는 가스밸브를 열었다. ‘쉬’ 천식환자 숨처럼 품어져 나온 가스는 바닥부터 채웠다. 시계는 밤 9시가 돼가고 있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서로의 길로.......... 펑, 짧은 섬광. 받아야 할 빚은 화염에 쌓인 붉은빛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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