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그룹

지옥같은 산행 - 4부

본문

그녀가 발을 몸쪽으로 당겨 오롯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녀의 양 무릎이 자석에 끌리듯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붙었다. "자,시작하죠. 영어로는 밭을 간다는 뜻이예요. 독일어로는 무얼 짓는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괴테가 완성한 독일소설의 양식이기도 해요. 젊은이들의 내면적인 성장과정을 그리는게 특징이지요. 무엇보다 당신한텐 이게 없어요. 뭔지 알겠어요?" 사내가 눈을 부라렸다. "이 년,이거." 사내의 반응에 그녀는 섬뜩했다. 혹시 아는거 아냐..이런 퀴즈는 친구들과 재미삼아 많이 해 본 놀이였다. 물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조마조마한 적은 없었다. "나한테 뭐가 없다는거야,이 년아. 네 년이 날 알아?"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힌트 준거예요,힌트. 답이나 맞혀요." 사내가 킁하는 소리를 냈다. "모르겠다,이년아.뭔데?" 그녀는 순간 안도했다. 아마도 이길 때까지는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교양이예요." 


사내가 인상을 구겼다. "내가 교양없다 이거냐. 잘난척 하고 있네. 그래,이 년아. 이제 좀 살만한가 부지. 그러다 지기만 해봐. 아주 홀딱 벗겨놓고 살려달라고 그럴때까지 보지에다 콩콩 박아줄테니까." 그녀가 짜증섞인 어조로 쏘아 붙였다. "문제나 내요." 사내가 특유의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보지가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아?" "뭐요?" 그녀는 처음에 사내가 장난하는줄 알았다. "보지 어원이 뭐냐고?" 그녀는 기가 막혔다. 상스런 놈..문제 내는 꼴하곤. "문제를 내는 사람은 답을 알아야 돼요.확실히 모르면서 내면 지는거야." "문제나 맞혀,이 년아." "몰라요.뭔데요?" 사내가 입술에 쓱 침을 발랐다.




섹스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대되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단적인 사례를 사마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마귀의 카니발리즘은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간단히 말해서 수컷과 암컷의 교미도중 수컷이 자신의 몸을 암컷에게 먹이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수컷이 강제로 암컷의 먹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컷은 도망가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먹기 좋게끔 자신의 머리와 등을 수그려 암컷의 턱 밑에 갖다대는데 이것은 그들의 포식행위가 오로지 자발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행위를 설명하려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어왔지만 가장 적절한 설명은 그것이 종의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사마귀들의 먹이가 풍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씨를 가진 암컷이 안전하게 자손들을 번식시키기 위해서는,수컷이 자신의 몸을 영양분으로 공급하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가설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에는 중요한 설명이 하나 빠져있다. 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번식에 유리하다는 것이 맞겠지만 수컷 하나의 개체에 대해서는 정말 그럴까. 아직도 뭔가가 부족하고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진짜로 사마귀 수컷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설마 그 수컷이 자신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생각, 즉 내 몸 하나 버려서 수많은 내 유전자를 살려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컷은 대체 왜 자신을 기꺼이 먹이로 내 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암컷의 단단한 턱이 수컷의 외골격을 부수고 그 몸을 씹는 그 순간 수컷이 느끼는 쾌락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이 수컷이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수컷은 이 강렬한 쾌감을 위해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것이다. 이 극단적인 사례를 일반화 시켜 말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섹스의 범위는 죽음까지 확대된다. -성욕아래 모든 교양. 421쪽.위르겐 슈바인슈타이거 지음. 편두석 역.-




"씨앗이야." 그녀가 사내를 노려보았다. "거짓말 말아요." "이 년이 속고만 살았나. 너 하듯이 똑똑한 말 한번 써볼까,응? 보지는 볻에서 나온 말이야,볻은 씨란 뜻을 가진 옛날 말의 어간이고,거기에 명사화 접미사 이가 붙어서 볻이가 된거야. 그게 구개음화를 일으켜서 보지가 된거라고. 알았냐,이 년아." 순간 그녀는 이 사내가 자신이 생각하듯 완전히 무식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국문법의 기본원리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년아,난 씨뿌릴 준비 됐는데 넌 보지댈 준비 됐어?" 사내의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에 그녀가 발끈했다. "왜 이래.아직 안끝났어.내가 문제 낼 차례야." 그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사내는 말을 한마디 하더라도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놓는 거친 말을 사용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내기는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내의 손에 떨어지면 안돼.그건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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