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야설

깊고 푸른 날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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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봉투에서 채찍을 꺼내 가볍게 포장지를 뜯었다.


포장지부터 그녀가 뜯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최대한 접착부분 의 접착제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 했다.




차악~!




왼쪽 손바닥에 채찍을 살짝 내려쳐 본 나는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를뻔 했다.


천연 소가죽 의 채찍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살에 감기는 느낌이 강해 통증도 두 배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 화 ~~ 아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채찍의 효과가 좋자 나는 조금 욕심을 내서 이번에는 몸을 살짝 틀어 종아리 쪽에 휘둘러보았다.




워낙 효과가 좋은 것이라 이번에는 손바닥에 내리칠 때 보다 훨씬 약하게 했다.




짜르르르 하는 통증이 머릿 꼭대기 까지 뻗치는 기분에 나는 다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정말 아프다. 할 말을 잃게 만드네.”




비용이 많이 든 만큼 이나 채찍은 나를 만족 시켰다.


나는 그녀 의 팔 힘이 조금 약한 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무지 이 채찍은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해야 적당할지 알 수 가 없네.”




포장지를 들어 다시 채찍을 넣고 봉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포장지 쪽에 내가 아끼는 유럽제 향수를 뿌려뒀다.


은은한 라임 향이 포장지 전체에 스며들었다.


그녀가 포장지를 개봉할 때 이 라임 향을 맡았으면 했다.




그것이 나의 향기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고 싶었다.




채찍을 책상 수납함에 넣고 이번에는 빨간 하이힐을 꺼내 보았다.


예전부터 하나 사고 싶었던 것을 그녀 덕분에 구입하게 되었다.


사고 싶어도 필요를 못 느껴 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굽이 정말 높네? 잘못하면 발목을 다칠 수 도 있겠어.”




인터넷에서 입수한 에스엠 류 동영상에서 보았던 하이힐 과 디자인도 같았고 색도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부담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대체 이런 굽 높은 힐을 신고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녀라면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저 괜한 걱정에 불과 할까?




힐을 신고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상상하자 몸이 반응하면서 아래 부분이 젖어 왔다.




“아이 정말 미치겠네.”




그녀가 사용할 물건들의 품질을 확인 한 나는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고 이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일단 시계를 일 곱시로 맞춰 놓은 후 몇 번이나 알람이 정상 작동하는지 의 여부를 확인했다.




“이제 꿈나라로 갈 시간이다.”




내일이면 그녀를 만난다.




그렇게 느낌이 강렬했던 여성은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녀에게서 어떤 신비감 까지도 느꼈다.




제발..




제발. 그녀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내 성향과 함께 그녀가 나를 정복해 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그날 밤은 꿈속으로 스며드는 내 의식만큼 이나 소리 없이 흘렀다.




“따르르르르~~”




엄청난 소리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디지털 알람 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몇 번이나 약속 시간을 놓쳐 버리는 실수를 한 끝에 귀가 따가울 정도의 구형 알람시계를 샀다.




이 알람 시계를 사고 나서부터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었으니 이렇게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워도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 셈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 알람 시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했다. 나의 게으름 병이 이 녀석으로 인해 많이 고쳐졌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는 순간 꿈을 꾸면서 잊고 있던 현재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먼저 그녀가 떠올랐다.




“맞아 오늘부터 그쪽 회사로 의 출근이었지.”




나는 어느 때 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벌써부터 그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다.




“화장은 짙은 쪽 보다는 화사한 쪽이 좋을 테니까 가능하면 옅게 하고 립스틱은 뭘 바르지?”




마치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같은 모습이었다.




이러다가는 그녀에게 드레스를 빌리려 같이가자고 할 지도 몰랐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나는 연한 주홍빛의 립스틱을 마지막으로 정하고 정말 입기 싫은 촌스런 정장을 몸에 걸쳤다.




“정말 이 옷 만 생각하면 그 회사에 취직 되었다는 것이 후회돼.” 




사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의 회사보다 좋고 전망있는 쪽으로의 취직이 가능했다.




그녀가 있는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벌써 여러곳에서 합격통보를 받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곳도 그녀 만큼이나 강렬한 이미지를 나에게 주지 못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이곳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만큼 나는 앞으로 있을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완벽해. 이제 나가볼까?”




엠피쓰리 기기를 꺼내 작동을 시키고 이어폰을 살짝 귀에 꽂은 나는 그녀가 있을 회사를 향해 가볍게 걸었다.


회사는 나의 자취방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차로 가면 십분 정도가 소요 되었다.




걸어서 출근할 일은 없을 테니 한 시간이라는 시간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오늘 그녀는 무슨 옷을 입었을까?”




면접관 역할 까지 맡는 것을 보면 그녀의 직위 또한 상당할 듯 했다.


너무 지위가 높아도 접근하기 어려워지는 법이라 나는 잠시 불안감을 느꼈다.




“아니야. 그녀는 내가 다가가기 쉬운 곳에서 나를 기다릴 거야. 왜냐하면 이것은 내 운명의 일부이기도 할 테니까.”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운명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별로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만큼은 나에게도 기막힌 행운이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들었다.




그녀라는 존재는 벌써부터 이 정도 까지 나에게 들어와 있는 건가?




회사에 로비에 들어서자 안내원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 살짝 고개를 숙인다.




“어서오세요.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저 잡상인 은 아니고요. 오늘부터 이 회사에 출근하게 된 김 현정 이라고 합니다.”




“아! 신입 직원 분이시군요. 어느쪽에 지원 하셨었죠?”




“경리 과 인데요.”




“경리 과는 6층 끝 방입니다.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느낌이 좋은 여자들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녀만 있으면 된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6 이라는 숫자를 검지로 누르다가 멈칫했다.




쾅~!




엘리베이터 의 문이 갑작스럽게 열리면서 한 사람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나는 놀라 뒷 걸음 질 쳤다.


어깨에 앉은 먼지를 살짝 털어내면서 그 사람은 차분한 어조로 겨우 타게 되었어 라는 말을 했다.


잘 들리지 않는 혼잣말이었지만 보통 사람 보다 청각이 좋은 나는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잡을 수 있었어요.”




나는 사무적인 말투에 놀라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다.




헉!!!




그녀였다.




쌀쌀해 보이는 눈매와 표정이 없는 그녀의 얼굴이 내 시야에 크게 상을 맺으며 들어왔다.




“어떡해..”




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녀가 지금 나와 한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아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문제가 있어요?”




“네?”




“남의 얼굴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저의를 몰라서요.”




“아~ 죄송합니다.”




나는 귓불 까지 빨개져서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전 김 유정이라고 합니다. 신입 직원인 모양이죠?”




으앙~~ 


야속했다.


벌써 나를 잊어버린건가?


면접을 불과 삼일 전에 보았는데도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면접을 본 사람은 나뿐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문득 나는 상상을 해봤다. 


수십 명의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서 형식적인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나라도 그들의 얼굴을 기억 하지 못할 것이 틀림 없었다.




“경리 과 에 지원해서 합격통보를 받은 김 현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경리 과? 거긴 내가 일하는 부서이기도 한데?”




그녀에게서 이 말이 나왔을 때 나는 행복의 세레나데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의 일이 한참이나 기대 되었다.




“묘한 인연이군요. 저는 경리과 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정 씨는 저의 부하 직원이 되겠네요?”




“이변이 없는 이상 그렇게 되겠죠.”




“네?”




나는 혼잣말을 하다가 그녀가 물어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세가 좋군요. 복장도 깔끔하고 이미지 도 좋은 편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야 말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6층에 다다랐다.




그녀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반쯤 고개를 숙이면서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어요.”




베이지 색의 산뜻한 느낌의 정장 차림을 한 그녀가 흰 하이힐을 신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되는 그녀와의 만남은 그렇게 깊고도 푸른 어느 날 시작 되었다.




<4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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