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

좋은 아빠 되기 -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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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 되기(하)




"자, 그런 일은 앞으로 차차 듣기로 하고 우선 너는 집으로 가자. 오늘 아빠하고 같이 가자. 자, 일어서!"


"아, 아빠! 그건 안돼요!"


"뭐? 너는 그럼 여기서 이런 짓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


민정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집에서는 10일마다 한번씩 간조를 하거든요. 그러니 3일은 더 있어야 그동안 일한걸 받을 수 있단말예요."


"그깟 돈 얼마나 된다고 ......? 더구나 창피한 일을 한건데 ...... 아빠가 그 만한 돈은 줄테니까 오늘 함께 가자. 알겠지?"


"아빠가 따로 돈을 주겠다면 고맙죠. 하지만 이 집에서도 그냥 갈 수는 없어요. 엄연히 내 노동의 댓가인데 왜 안 받고 그사람들 배만 불려줘야 하나요?"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더구나 그놈들은 미성년자까지 고용한 악덕상인 아닌가.




"받을 돈이 얼마나 되는데 ......?"


"그동안 TC에다 이차까지 합,"


민정이는 이미 그 발음을 하느라 다물어진 입을 손으로 가리며 당황해 했다.


"뭐, 이차 ......?"


"아니! 그게 그러니까 ...... 다른 테이블, 말하자면 더블로 뛰는 것을 여기서는 그렇게 말해요. 그게 한 2백은 될거예요."


"뭐, 2백만원 ......?"


민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 애는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지금 내 한달 용돈보다 많은 2백만원을 일주일만에 벌었다는 것도 그렇고, 말을 하다 만 "이차"라는 단어도 놀랠 노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일일히 따지기에는 나도 고달프다. 쫀쫀하게 굴지 말고 대범하게 나가자. ...... 내 사고방식을 바꾸니 민정이의 말에도 수긍이 갔다. 어떻든 나는 오늘 대화, 이해, 관용의 덕목을 지켜 나가야 한다. 민정이의 말대로 해주는 것도 관용의 일환이다. 




"그럼 너 3일후에, 간조만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오는거지?"


"그럼요, 아빠."


"틀림 없겠지?"


"물론이예요, 아빠. 약속할께요."


내가 재차 다짐하자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방긋 웃었다. 얼떨결에 나도 거기에 새끼 손가락을 걸고 함께 흔들었다. 웃는 얼굴에는 제 에미처럼 보조개가 패였다. 새끼 손가락을 걸었을뿐인데 체온, 아니 가벼운 전류가 흐르는듯 하다. 앙징맞고 귀여운 자식! 나는 딸애의 보조개 파인 볼에 입이라도 맞춰주고 싶었다.


"미스 홍, 전화 왔습니다."


노크소리와 함께 웨이터가 들어오는 바람에 내 감정이나 행동은 모두 중단되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민정이는 마치 진짜 손님에게 하듯 정중한 말투로 인사하고 자리를 비웠다.




혼자 있게 되자 나는 착잡해졌다. 오늘 이곳에 들어설 때만 해도 나는 대화, 이해, 관용을 행동지침으로 삼아 그저 빗나간 딸을 집에 데려가는 단순한 미션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딸과의 대화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기막힌 일들이 줄줄이 터져 나와 나를 갈피도 못잡게 하고 있다. 나는 그토록 어리광쟁이로만 보였던 민정이가 처녀막이 깨져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다. 그런데 벌써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제 오래비들하고, 더구나 여기서 하는 꼴을 보니 이미 "왕걸레"나 다름 없었다.


그보다 더 심각하고 놀라운 것은 바로 우리 가정 전체의 문제다. 5인가족의 우리 가정에서 나만 제쳐놓고 이 연놈들이 모두 서로서로 씹질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


내가 더욱 답답한 것은 치가 떨리면서도 이 일을 수습할 마땅한 대책이 떠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들 같으면, 아니 나도 10년 전만 하더라도 당장 아내에게 매질을 하며 "이런 개만도 못한 년!" 하고 분노를 표현할 수도 있었건만 지금은 나의 여러가지 약점 때문에 그런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아내에게 약점을 잡힌 것은 아내의 첫출산 때, 소위 "처제 사건"이다.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우리 마을에서 소문난 나의 활약상, 다른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방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내는 결혼후에도 그런 내 행동을 묵인, 혹은 체념한 상태라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첫아들 민철이를 낳을 때 청하지도 않았는데 장모가 처제를 우리집으로 보냈다. 3류대학을 갓졸업했으나 취직도 못하고 빈둥대던 처제는 용모는 아내와 비교할바가 못되지만 몸매는 역시 한창 때라 탱탱했다.


처제가 집안에서 알짱거리면 나는 좆이 꿈틀거렸다. 아내의 배가 산처럼 불러 뒷치기도 못할 정도가 되었어도 나는 밖에서 처리를 해 굶주린 편은 아니었는데, 처제라는 "금단의 열매"가 더욱 식욕을 자극한 것 같다.


나는 불룩 솟은 바지 앞섶을 처제 앞에 일부러 과시하기도 했고, 그녀의 탱탱한 엉덩이에 부비기도 하고, 팔꿈치로 젖통을 슬쩍 찔러보기도 하는데 때로는 모른척하고, 때로는 눈을 흘기면서도 살짝 웃는 것이 이것도 보통이 아니었다. 




"고생이 많은데 맛있는 저녁을 사줄테니 회사 앞으로 나오라."고 하자 처제는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레스트랑에서 와인잔을 부딛히는데 처제가 먼저 "오늘 친구들 만난다고 했으니 좀 늦어도 돼요."라고 했다. 그럼 일은 다 된 것이다. 우리는 티본스테이크가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모텔로 가서 두탕을 뛰었다.


꽤 늦은 시각에 집에 도착해서는 나만 먼저 들어갔다. "처제는 ......?"이라고 내가 묻자 아내는 "친구 만나러 갔다."고 한다. "아니, 산모를 돕겠다고 와서 이렇게 늦게까지 비우면 어떡해?"라며 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고, 약속대로 한 10분쯤 후 귀가한 처제에게도 나는 면전에서 꾸짖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걔도 자기 사생활이 있는데 ...... 준비를 다 해놓고 가서 아무 불편도 없었어요. 얘, 너도 그냥 마음 풀어! 형부가 너무 애처가 타이프라 그래." ...... 우리는 이렇게 깜쪽같이 해냈다. 그렇더라도 조심했어야 하는데 사실 좀 지나쳤다.




처제와 나는 집안에서도 엉켰다. 아내가 고른 숨소리를 내면 나는 쿡쿡 찔러보가까지 하며 확인을 한 후 처제방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그짓도 한 세번쯤 될 때인가, 한창 박아대던 나는 갑자기 뒤가 썰렁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잠옷차림의 아내가 열린 방문 앞에 서 있지 않은가. 아! ...... 나는 뒷날에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공포영화의 한장면처럼 소름이 돋는다. 말한마디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서 있는 아내는 정말 어떤 귀신보다도 무서웠다. 내가 황급히 일어서는데 아내는 말없이 돌아섰지만 이런 상황을 모르는 처제가 "아이, 형부 왜 이래? 빨리 박아줘!" 라고 콧소리를 내는 것은 들었을 것이다.


곧바로 처제는 짐을 쌌으나 아내는 마음을 풀지 못했다. 내가 앞에만 서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외면을 했고,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께." 라고 말을 걸면 흐느끼던가 통곡을 해대서 더 어찌 해볼 방도가 없었다. 며칠을 꿍꿍대던 나는 좀 유치하지만 충격요법을 쓰기로 했다. 넥타이 세개를 잇고 그 끝에 고리를 만들어 아내 앞에 내보이며 나는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정말 당신한테 죽을 죄를 지은 놈이야. 하지만 당신이 끝내 나를 용서해주지 않으면 나도 결단을 낼 수밖에 없어! 며칠 째 나도 참회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이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군. 못되고 못난 남편이지만 시체는 조상님들 산소의 한자리에 묻어 줘."


"여보!"


일어서려는 나를 움켜잡고 내 얼굴과 넥타이 모음, 아직 눈도 못뜨는 아기의 얼굴에 번갈아 시선을 굴리는 아내는 이제 슬픔이나 분노보다 겁에 잔득 질려 있었다.


"이 애는 ......? 여보! 이 핏덩이는 ......?"


"어쩔 수 없잖아. 다 제 운명인걸 ...... 나도 당신도 ......"


"아항! ......" 하고 통곡을 하면서 아내는 내 품에 안겨 울부짖었다.


"죽지 마세요! 절대로 죽으면 안돼요! 아직 아빠 얼굴도 못봤을 우리 민철이를 애비 없는 자식으로 키울수는 없어요. 당신만 마음을 돌리면 이제 나는 어떻게 돼도 좋아요. ...... 제발 그 끔찍한 말은 내 앞에서 하지 마세요!"


처제와 씹을 하다 아내에게 들킨 것이 공포영화의 쇼킹한 장면이라면 이날의 이 장면은 멜로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만 하다. 연기를 하던 나도 어느새 콧날이 찡해졌다.




그날밤 나는 아내의 출산후 처음으로 씹도 했다. 아직 핏물이 나오는 아내는 고통을 호소하다 "당신이 정말 그럴 줄은 몰랐어요." 라며 울고, 절정에 닥아가는 소리를 지르다가도 "어떻게 내 친동생하고 이런 짓을 ......"이라며 울고, 끝나고 나서도 "한집에서 그짓을 하다니 그 방 문만 봐도 치가 떨려요."라며 울었다. 아직도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것이다.


"앞으로도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리 식구한테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런 일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요."


아내는 여전히 울면서 애원조로 말했다.


"물론! 맹서하지! 각서라도 쓰라면 쓸게. 정말 내가 갑자기 돌았었나봐. 다시 내가 그런 짓을 한다면 진짜 넥타이를 매거나 좆을 잘라버릴꺼야."


"아아, 민철이를 생각해서도 그런 말은 하지 말라니까. 또 이걸 자르면 나는 어떡해?"


아내는 내 좆을 움켜쥐며 처음으로 살짝 웃기까지 하며 애교를 부렸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정말 그립다. 얼마나 순진하고 착하디 착한 여인이었던가. 그런데 그렇게 질기고 거센 여자로 바뀐 것은 원래 그녀의 본성일까, 나같은 놈과 살았기에 바뀐 것인가? ......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그때 처갓집 식구는 장인 장모와 처남 둘, 그리고 처형과 처제다. 나는 호모가 아니니 아내가 "절대엄금"이라고 못박은 자기 식구란 장모와 처형, 처제등 3명뿐이다. 된통 경을 치룬 처제는 이제 생각하기도 싫다. 장모는 이미 환갑이 넘은 전형적 농부의 아낙이었으며 아내보다 5살 많은 처형은 얼굴도 제일 박색이라 만에 하나 그런 위험은 없었다.


그런데 한 10년후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처형이 부부싸움을 했다며 우리집에 온 것이다. "너무나 분하다."며 눈물을 질질 짜고 남편 험담을 주로 한 온갖 푸념을 늘어놓는 처형을 우리 부부는 진심으로 위로했다. 술상을 봐오자 처형은 벌컥벌컥 마셔대더니 좀 기분이 풀린듯 했다. 그러더니 "이차를 가자."고 떼를 쓰는 것이다. 아내는 마침 감기기운도 있고 해서 나와 둘만 노래방으로 갔다.


참, 제버릇 개 못준다더니 내가 그 꼴이다. 취해서 해롱대는 육중한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는 기분으로 블루스를 한곡 추는데 좆이 스멀스멀 일어서 버린 것이다. 이미 40대 중반이며 살은 디룩디룩했건만 역시 "금단의 열매"라는 것 때문일 것 같다.




"어머! 역시 민철아빠는 달라."


처형은 바지 겉으로 그것을 문지르다 가슴을 더욱 밀착시켰다. 입술을 부딪히니 혀가 쏙 들어온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기분으로 의자에 앉히고 티셔츠는 걷어 올리고 바지는 내렸다. 그녀도 내 바지 지퍼를 내리고 좆을 꺼내더니 그냥빨기 시작한다. 몸매는 망가졌어도 처형의 사까시는 꽤 능숙했다. 


"아아! ...... 아주 넣어 줘! 제부, 내 보지 좀 달래줘!"


신음소리를 내며 의자에 덜컥 누워 버리는 바람에 나도 바지를 내리고 꼽아 버렸다. 그런데 자세도 불편하고 하도 오래 빨아서 그런지 몇번 꿀렁거리지도 못하고 나는 싸버렸다. 그렇게 끝내 버렸으면 뒷탈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성이 차지 않아 엉덩이를 움직이던 처형이 "아이, 뭐 이래? 문전 망신만 시키고 ......" 라는 바람에 나는 돌아버렸다.


오냐! 이 박성태 실력을 한번 보여주지. 오늘 한번 죽어봐라! --- 그길로 노래방을 나와 모텔로 끌고 갔다. SOP대로 차례차례 성감대를 섭렵하고 좌삼삼, 우삼삼 돌려가며 기본실력을 발휘하자 그녀는 정말 껌벅 죽었다. 30분도 안되어 나는 한탕을 더 뛰고 처형은 그곳에서 그냥 자라고 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 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직 안자고 기다리는 아내에게 "처형이 너무 취해 집에 데려다 줬다."고 하자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미안해요."라고 했다.




다음날 일찍 처형이 전화를 걸어와 "어제는 미안하고 고마웠다."면서 "사과의 뜻으로 내가 쏠테니 한번 만나자."는 것을 적당히 이유를 붙이며 거절했다. 그후 두번쯤 더 전화가 왔는데 안부만 묻고 다시 만나자는 말은 없었다. 여전히 찝찝한 기분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끝나려니 했다.


며칠후 처형이 또 "부부싸움을 했다."며 우리집을 찾아 왔다. 우리부부도 또 술상을 보고 위로를 하는데 이날은 양상이 달랐다. 술기운이 돌자 남편 험담이 아니라 내가 공격목표였다. 


"사람이 그러면 못써!" "민철아빠가 얼마나 잘나서 그리 도도하냐?" "여자를 그렇게 했으면 책임감도 느껴야지, 정말 오뉴월 서리 내리는 것 한번 맞아 볼래?" ......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어쩔줄 모르는데 처형보다 아내의 변화가 심상치 않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꽉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언니,집에 가! 너무 취했어."


아내가 자기보다 훨씬 무거운 언니를 일으켜 세우며 말하는데도 처형은 해롱해롱했다. 아내는 언니를 밀어버렸고 나뒹굴어버린 그녀에게 "언니, 나 죽는 꼴 보고 싶어?"라고 악을 썼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처형이 비실비실 나가자 아내는 현관문을 쾅 닫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 언니! ...... 우리 언니하고도 했죠?"




좆이나 보지를 함부로 굴리다가는 언제나 이런 곤욕을 치룰 위험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바람둥이라면 그럴 경우 행동준칙이 있다. 끝까지 부인하며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모텔에 들어갔는데 남편이나 아내, 그러니 배우자한테 현장을 잡혔다고 하자.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간통을 형사범으로 다루는 나라며 그래서 옥살이도 해야 될 판이다.


그러니 우선 "이 방에는 같이 들어왔지만 씹은 안했다."고 우겨야 한다. 알몸인채로 들켰다면 "옷은 벗었어도 성교는 안했다."고 끝까지 주장해야 한다. 한창 방아질을 하는데 들이닥쳤다 해도 "꼽기는 했어도 싸지는 안했다."고 피할 길을 찾아야 한다. 보지에서 방금 싼 정액이 줄줄 흐르는 것을 사진까지 찍혔다면 ......? 그래도 아직 포기하면 안된다. "하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다."라고 ......


나도 그 준칙을 철저히 지켰다. 아내가 정황증거를 대고 그동안 내 전과를 나열하며 아무리 나를 닥달하고 사정을 해도 나는 "절대로 그런 적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했다.




그런데 아내도 옛날과는 달랐다. "좋아요!"라며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그후 말도 안하고 아예 나를 무시했다. 밥이야 나가서 사먹으면 되지만 와이셔츠나 양말이 준비가 안된 것은 불편했다. 일주일쯤 그런 대치가 계속되자 나도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또 넥타이로 고리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이제 그런 유치한 충격요법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


나는 그날 술도 좀 취한 김에 다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다 잠든 시각에 생선초밥과 새우튀김을 싸들고 와 아내에게 "술한잔 하자."고 했다. 아내도 오랜 대치에 지쳤는지 "좋다."고 했다.


와인 한병을 다 비우는 동안 둘 다 처형 일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나는 직장에서 우스웠던 일들과 요즘 각광받는 관광지를 들먹이며 "한번 함께 가자."고 했고 아내는 한번도 웃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함께 들어 옷을 벗기자 아내는 몸을 뒤척이며 도와 주었다. 우리는 알몸이 되었고 이제 좆만 꼽으면 이 지겨운 대치는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잠깐!"


막 좆을 꼽으려는 나를 제지하며 아내가 말했다.


"우리가 진정한 부부라면 이렇게 서로 알몸이 되고 살을 섞듯 서로 감추눈게 없어야 돼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가 있어요. 또 그런 실수를 나도 실컷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계속 감추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없는거예요."


아하, 요것 봐라. 알몸을 포개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일종의 미인계로군! 하지만 그런데 내가 넘어 가겠어? 


"여보! 진정 내 사랑 경란씨! 내가 정말 그랬다면 진작 당신한테 털어 놓았겠지. 절대로 그런 짓은 없었어."


"역시 우리는 진정한 부부가 아니군요. 당신이 솔직하기만 하면 나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그런 기회를 당신은 저버리는거예요?"


우리는 그 자세로 몇마디씩 더 싱갱이를 벌였다. 꽤 오래 굶었던 좆은 아직도 듭시라는 허락을 못받아 입구에서 저 혼자 껄떡거렸다.




"그래, 했다! 당신 언니하고 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해"와 "용서"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사실 더 버틸 힘도 없는 나는 백기를 들고 이 지겨운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몇번이나요?"


아내의 말씨가 무척 차갑게 느껴졌다.


"세번. ...... 딱 세번뿐이야."


"어디서요?"


여전히 아내의 말씨는 차가웠다.


"처음은 노래방에서 ...... 다음 두번은 모텔에서 ......"


결국 나는 다 털어 놓았다. 아내도 더 추궁해봤자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차라리 나는 속이 후련했다.


확! 소리와 함께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기획한 부부간의 무드는 산산히 깨져 버렸다. 아내는 두손을 곶추세워 내 얼굴을 할퀴어버린 것이다.




"아니! 이런 못된 계집이 ......!"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이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힘없이 내려놓고 말았다.


"당신, 나하고 약속하고 맹서했잖아!"


아내의 말은 그것 뿐이었지만 불꽃이 이글거리는 그 눈초리에 나는 질려 버렸다. 아내는 그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10년전, 내가 유치한 쇼를 할 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안겨 왔던 그녀가 이제는 나를 압박하고, 얼르며 유도심문을 하다 이렇게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그리고 그때를 시발점으로 나는 아내와의 대결에서 늘 패배하는 입장이었다.


나나 아내가 10대였을 때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의 전형적인 농촌에서 우리집은 정미소와 양조장을 해 항상 현금이 잘도는 부자집이었고, 아내네는 겨우 논 5마지기와 밭 5천평 정도에 7식구가 목을 매고 있어 자식들 겨우 학교보내면서 입에 풀칠이나 하는 빈곤한 집이었다.




그런데 아내와 결혼하고 20여년동안에 몇차례 반전을 거듭하며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형세가 역전되었다.


양조장은 시대에 밀려 문을 닫았지만 땅값이 올라가며 여전히 돈은 잘돌고 아버지의 주색잡기도 여전했다. 그러나 차차 곶감 빼먹듯 하니 재산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형이 무역회사를 한다며 절반이상을 들어 먹었다. 나 역시 월급쟁이를 집어 치우고 사업을 한다며 철근대리점도 하고 가구점이며 택배회사까지 손을 댔지만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더니 결국은 밑천마저 다 날려버리기만 거듭했다. 결국 5년전 회사가 완전히 거덜나며 나는 빈털털이에다 백수가 되어버린 처지다.


반면 처갓집은 땅깞이 춤을 추어도 "내가 할줄 아는 것이 농사뿐이니 죽어도 내 땅은 못 판다." 고 버텨 왔다. 결국 그 일대도 분당이나 일산처럼 신도시가 들어서며 농사는 못짓게 되었지만 옛날 그 기근이 떠나지 않는 땅은 상가의 요지가 되어 이제 마을에서 손꼽는 갑부로 바뀌었다.




아내는 장인에게 떼어 받은 돈으로 한5년전 2백평의 땅을 사고 주차장도 꽤 여유가 있게 그곳에 5층 건물을 지었다. 전부 세를 놓으면서도 이층은 피부미용관리실, 3층의 헬스클럽은 직접 운영하는데 이것도 내가 사업한다고 설칠 때와는 달리 기막히게 잘 굴러가는 것이다.


한편 나는 사업이 완전히 부도나기 직전 빼도박도 못할 각서를 아내에게 써주었다. 우리회사 상무의 아내를 건들인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8천만원을 물어주게 되었는데 나는 당시 그만한 돈마저 융통할 수가 없어 아내에게 손을 벌리게 되었다. 나의 여자 문제에는 아내도 꽤 면역이 되었는지 흥분하지도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아내는 말했다.


"내 자식들 아버지를 전과자로 만들기 싫어 그 일은 내가 처리하죠. 하지만 나도 요구할께 있어요. 당신의 숱한 바람기를 나는 다 참아 넘겼어요. 나도 더 늙기 전에 바람을 피우든 애인을 두든 이성문제에 자유롭고 싶어요."


이미 그때 아내는 벌써 애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거래가 아니었더라도 아내가 그런 주장을 할 때 내가 거부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결국 나는 서명 날인한 각서까지 써준 것이다.




굴욕의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마음은 더욱 침울해졌다. 손수 술잔을 채우렸더니 반잔밖에 안나온다. 위스키 한병을 벌써 다 마신 것이다. 술을 주문하며 "여긴 왜 안 와?" 라며 민정이가 앉았던 빈자리를 가르키자 "아, 미스홍이요. 곧 보내겠습니다."라며 나갔다.


그러나 새 술병을 들고 온 것은 마담이었다. "미스홍은 ......?" 하고 묻자 "아, 잠깐 심부름 보냈는데 곧 올꺼예요."라며 술잔을 채우고 옆에 바싹 닥아 앉는다. 그녀는 갖은 애교를 다 부렸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심드렁하다. 시계에도 자꾸 눈이 갔다. 마담도 내 눈치를 보고 "리나를 곧 보낼께요."라며 나갔고 잠시 후 민정이가 들어 왔다. 전화 받는다고 나간지 근 30분만이다. 나는 이년이 애비를 앞에 놔두고도 다른 술자리, 즉 더불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 어쩌나 내 신세가 이렇게 추락해버렸나 하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든다.




민정이와 나누던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자 맥이 빠졌다. 일단 살아있는 것은 확인했으나 도자기 병에서 빠져나와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마귀로 변한 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집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 아내가 주축이 된 소돔 고모라 같은 광란의 파티를 나는 중단시킬 힘이 없다.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자 더 빨리 취하고 싶다. 잔을 들이키자 민정이가 냉큼 술병을 들어 빈잔을 채웠다. 나는 그것도 원샷으로 처리했다.


"아빠, 좀 천천히 드세요."


민정이가 나에게 좀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그 눈 역시 제 에미를 닮아 맑고 투명하다. 방금 내 목을 넘어간 위스키보다 더 찌르르한 감각이 가슴에 밀려온다. 민정이 얼굴은 아까 나가기 전보다 발그레 했다. 내 앞에서 마신 한잔만이 아니라 30분 이상 이방을 나가서도 마신 것 같다. 


"너도 한잔 할래?"


"마셔도 돼요?"


이렇게 부녀간의 정식 대작이 시작되었다. 




민정이는 3일 후에 집에 들어온다고 했고 나도 관용을 베푸는 뜻에서 동의했으니 그 문제는 이제 일단락 된 것이다. 민정이는 내가 딸아준 잔을 거침없이 원샷으로 넘기고 빈잔을 권한다. 우리는 그렇게 꽤 빠른 속도로 잔을 주고 받았으며 나는 딸꾹질까지 났다.


"민정아. (딸꾹) ......그런데 너는 어떻게 친오빠들과 그런 짓을 했니? (딸꾹)"


"저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민철오빠하고 그러는걸 보고 ......"


"하기야 에미부터 저 지경이니 어찌 너만 탓하랴. (딸꾹) 그래, 네 오빠들이 잘 해주던?"


딸꾹질 때문인지 취한 탓인지 자포자기의 심정은 더해갔다. 나는 내 질문이 차마 딸에게 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면서도 입에서 튀어 나온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히히 ......" 하면서 민정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가만히 보니 요년도 나와 비슷하게 취한 것 같았다.


"그것만 따진다면 그리 잘한다고 할 수는 없어요. 둘 다 좀 조루거든요."




아쭈 이것 봐라. 조루까지 들먹이고 ...... 하기야 그놈들 아직 애숭이라 그럴 수밖에 없겠지. 좆질도 사실 연륜이 있는 것이다. 좆도 적당히 단련이 되고 일단 여자의 몸을 파악하고 다룰줄을 알아야지.


"그럼 누가 잘해주던?"


"글쎄, ...... 웨딩홀 강사장님도 괜찮은 편이죠."


"뭐, 강철수 ......? (딸꾹) ...... 그놈은 아빠 친구 아냐?"


"네, 저도 알죠. 또 엄마 남친이기도 하고 ......"


"뭐? 그 자식이 네 엄마하고 ......?"


"그럼요! 꽤 됐나봐요. 그런데 강사장님은 엄마보다 제가 더 잘한대요."


앗! 나는 딸꾹질이 멈추어 버렸다. 나는 딸국질 대신 허허 ...... 하고 헛웃음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인연들인가.


강철수는 나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기동창이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과부인 녀석의 어머니를 올라탄 적이 있다. 유혹은 그쪽에서 더 진하게 해 왔지만 나도 이며 여성편력은 많은터라 우리는 한 반년쯤은 자주 엉켰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바로 녀석의 누이동생인 선아와도 몇차례 씹을 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요상한 점이 있다. 집에서는 내 아들 두놈과 엉키고 동네에서도 이놈 저놈에 내 동창한테까지 가랭이를 벌린 애가 바로 가까이 있는 제 애비한테는 아예 관심도 없었단 말인가. 그래도 왕년에는 우리 마을에서 아버지와 함께 "부자 난봉꾼"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지금도 그 물건만은 여전해서 명성에 손상을 입은 적이 없는데 ......


"너는 ...... 그러니까 그냥 남자로서 아빠는 어떻게 보니?"


"글쎄요? ...... 남자의 어떤 점을 ......?"


"그저 길거리에서 봤다든지 네 주위에 있는 남자들과 비교한다면 ......"


"아빠야 미남에다 체격도 좋고 멋쟁이죠.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너는 왜 아빠를 ......?"


말을 하다 멈추었다. 이야기가 너무 직설적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런데 민정이는 벌써 내가 침묵으로 묻어 둔 말까지 알아듣고 있었다. 눈까지 살짝 흘기면서 말한다.


"아빠가 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잖아요."


하기야 그렇다. 밖에서 온갖 잡놈 행세를 하면서도 아내는 요조숙녀, 외동딸 하나만은 내가 만났던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성장하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밤도둑질에 열중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있던 보석들을 몽땅 도둑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너도 올가즘을 아니?"


"네?"


민정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나 자신은 더 놀랐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어쩌면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마귀의 형체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햐여튼 애비와 딸이 룸살롱에서 대작을 하며 우리는 계속 카오스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그저 가끔이예요. 사실 남자들은 여자의 심리나 몸을 잘 모르나봐요. 겉보기보다 유치한 경우도 많거든요."


"그럼 네 경험으로는 누가 제일 잘해주는데 ......"


"글쎄 ...... 역시 그 명화극장의 김상무가 ....."


"뭐, 그 김명수 ......?"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다. 빈술잔을 민정이에게 건넸더니 그애도 자기 잔을 내게 돌리고 술을 따랐다. 술병은 두잔을 꼭 채우고 완전히 비었다.


"어머, 아들 낳겠네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내가 말했다.


"너는 3일후에 꼭 집에 들어와야 해. 하지만 아빠도 오늘은 집에 가고 싶지 않구나. 너 아빠하고 같이 있을래?"


민정이는 별 망서림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가자!"


"아, 아빠!"


일어서려는 나를 민정이가 제지했다.


"여기서 이차를 가려면 선불을 내야 해요!"


제기랄, 그런 문제도 있었구나. 나는 계산서를 가져오도록 했다. 민정이가 나가고 마담이 들어왔다. 술값에 TC를 포함해 내 반달치 용돈을 카드로 긁었다. 홍리나와의 이차를 말하자 마담은 "30만원이예요."라고 했다. 내가 다시 카드를 내밀자 "어머, 카드는 33만원을 내야 해요."라고 했다. 아 자식들, 카드수수료를 고객에게 씌우는 것이 불법인줄 몰라? 라고 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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