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PC방시트콤 - 3부 3장

본문

문주, 이 PC방은 왜 밑진다는 걸까?" 


"인테리어 후지지 인터넷 느리지 랙 심하지, 장사 되겠어요?" 


"문주는 그래도 여기서 죽 때리잖아." 


"요금 싸잖아요. 겨우 오백원인데..." 


"뭐가 안된다면 오백원도 싼게 아니잖아?" 


"내 껀 길 들여놔서 잘되구 딴 것들이 말썽이죠." 


"돈 벌면 더 벌려고 투자 할텐데, 돈 못 벌어서 투자 못 하니까 더 어려워지는구먼." 


"웬 걱정이십니까?" 


"오늘밤부터 쥔이랑 동업 하기루 했거든." 


"미쳤어요?" 


"왜?" 


"하지마요. 정말 안되는 집이라구요." 


"잘 되게 하는 방법도 있지않을까?" 


"문파 애들 다 델구오면 몰라도..." 


"죽돌이 PC방 만들자고?" 


"밤엔 죽치지만 낮엔 직장다니는 애들인데요 뭐." 


"밤 설치며 겜하고 낮엔 골골 데는 놈들이구먼?" 


"열댓 명 델구오면 상금 줄꺼죠?" 


"몽창 집합시켜봐, 상금은 그 담에 생각해 보자고." 


"명희년 문제도 해결해줬는데 그 정돈 해줄께요." 


"명희가 떠난게 정말 속 시원했구나. 그나저나 딴 겜은 없어?" 


"리니지랑 와우 뭐 엄청 많지요." 


"미른가 하는 겜이 젤 재밌는거지?" 


"미른 돈 벌이잖아요. 딴 애들은 이거 않해요." 


"많이 하는 겜이 뭔데?" 


"애들은 아케이드, 여자들은 고스톱, 테트리스, 좀 하는 애들은 롤플레잉 정도죠. 뭐." 


"못알아듣겠다. 게임을 잘알아야 쥔 할 수 있다니까 짬짬이 도와줄 수 있지?" 


"가끔 어깨펼 때 도와줄께요." 




게임 속에 빠지다 보면 너무 한심하게 단조로운 반복 동작 때문에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서도 도저히 중단할 수 없는 이상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기껏해야 키보드를 툭 치거나 마우스로 콕콕 누르기만 하면 알아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칼자루 마구 휘두르는 것 뿐인데도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오줌이 마렵다. 일어나기 싫다. 똥이 마렵다. 싸서 뭉게는 한이 있더라도 몹 사냥을 중단할 수가 없다. 이렇게 빠져들다 중독되면 집이고 직장이고 다 팽겨치고 말 것 같다. 아침나절에 경현인가 하는 아이를 내팽겨치고 남편 멱살을 잡던 여자 생각이 났다. 




"어이, 문주." 


"또 왜요?" 


"여기서 밤샘하는 부부도 있나본데?" 


"아, 김미자." 


"알아?" 


"그 팀 말고 또 한팀 더 있어요." 


"그래? 여기서 밤새면 언제 그 짓거릴 하지?" 


"모르죠. 겜하다 만났다던데 언제 했는지는 몰라도 애는 딸렸잖아요." 


"경현이라는 앤데 완전히 거지차림이더라." 


"그렇다니까요. 키우지 못할꺼면 왜 싸질렀는지." 


"맞아, 문주네는 영희엄마가 꼬박 돌보며 잘 사는데 그 집구석은 왜 부부가 지랄들일까?" 


"김미자라는 애는 한 성깔해요. 얼굴도 반반하잖아요." 


"여자가 곱상하다 싶었는데 남편 멱살을 막 잡더라." 


"박진열이가 엄청 쫒아다녀서 결혼했다죠." 


"박진열, 김미자, 그리고 애는 박영희구먼." 


"남의 집 족보를 꿰서 뭐하실라구 외우고 난리셔." 


"신기해서..." 


"안 그런 애도 있어요." 


"어떻게 하는데?" 


"깔끔해요." 


"뭐가?" 


"메너 좋아요. 남편은 직장다니고 부인은 PC방 죽돌인데 직장 끝나면 집에 갈 것도 없이 둘이 나란히 앉아서 밤늦도록 합동으로 게임을 즐기다가 새벽 한 시쯤되면 세상이 쪼개져도 군말없이 집에 가거든요." 


"그럼 죽돌인 아니네." 


"신랑 출근시키구 점심 나절에 오면 열두어시간 꼼짝않고 겜하는데 당연히 죽돌이죠." 


"애는 없구?" 


"들리는 말로는 친정엄마가 집에서 봐준다죠?" 


"복도 많군." 


"암튼 결혼한 여자가 PC방 죽돌이하면 보기 좋지는 않죠." 


"문주도 죽돌이가 안 좋다는 것은 아는구나." 


"전 직업이잖아요. 비교할 걸 비교하셔야지." 


"알았어. 알았어." 




문주 김동수가 게임에 빠져들수록 앉은 자리를 중심으로 점차 담배연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팬이 돌고 있지만 지독하게 쌓인 먼지도 함께 돌고 있다. 게임을 하던 어린아이들도 점차 죽돌이의 담배 냄새를 피해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철호야, 밥 먹으러 가자." 


"어, 행님 벌써?" 


"그래, 시간이 얼추 점심은 지났네. 곱창 좀 채워야지." 


"알았수. 주머니에 돈 생긴 줄 알구 곱창두 아우성이네." 




우리는 PC방을 나와 지하철 근처의 도원식당을 향해 걷고 있다. 몇일 전보다는 한결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찾아가는지 스치는 사람들이 멀찌감치 우리를 피해가던 일은 없었다. 




"야, 깔끔하게 옷이나 사 입을까?" 


"남대문엘 갔다올까요?" 


"어디든 가서 옷 좀 바꿔 입는게 좋겠어." 


"밥 먹고 한번 나가봅시더." 




점심때가 한참 지난 탓인지 식당은 한산해 보였는데 마침 유리창 밖을 보니 낯선 노숙자 한명이 눈알을 때굴 굴리며 입맛을 쩝쩝 다시는 모습이 보였다. 




"철호야, 저 사람 첨보는데, 배고픈가 보다." 


"그러네. 델구 올까?" 


"우리도 맨날 식당 기웃거릴 때가 많았잖냐. 델구와." 




철호가 노숙자를 데리고 식당안으로 들어서자 종업원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가린 채 못마땅해 하는 듯하더니 우리들 마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아줌마, 국밥 한그릇 추가!" 


"아저씨들 노숙자죠?" 


"왜? 오면 안돼?" 


"돈은 있어요?" 


"걱정 말고 밥 한그릇 더 내오기나 하셔." 


"우린 노숙자 안 받는다구요." 


"돈 낸다니까." 


"아휴, 냄새나고 지저분해서 누가 여길 또 앉아요?" 


"손님 없을 때 얼른 줘. 돈 낼테니까 걱정말고." 


"미안한데요. 돈 먼저 보여줘야 추가밥 나갑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못마땅하는 아줌마에게 건넸다. 


"아줌마, 이거 팁!" 


"팁?" 


"그래, 밥값은 나가면서 낼게. 아줌마 맘에 들어서 팁 주는거야." 


"정말?" 


"속고만 살았나. 걱정 붙들어 메고 국밥이나 얼른 내오슈." 




아줌마는 뜻밖에 허름한 인간으로부터 팁을 챙기게 되자 의심의 눈초리를 풀고 얼른 주방을 향해 국밥 한그릇을 추가했다. 낯선 동지는 황송해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저 꼴로 살았던 수많은 세월 속에 이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 들였던 우리들의 차림새가 남의 눈에 혐오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형씨, 어디서 굴러온거유?" 


"네, 네." 


"이 동넨 내가 터주대감인데 먹구 살기 힘든 곳이거든." 


"아, 네." 


"네, 네 밖에 몰라?" 


"황송해서..." 


"아냐, 나두 당신이랑 똑같은 사람이야." 


"그래두..." 


"아니라니까. 나두 노숙자라구. 어제 목욕해서 좀 달라보였나?" 


"그래요? 아저씨두 나랑 똑같은 노숙자?" 


"그렇다니까. 어디서 굴러온거냐구." 


"아, 네. 서울역에서 살아유." 


"음, 이 곳까진 웬일루?" 


"살던 동네라서 먼 발치에서 애들 좀 볼려구 왔시유." 


"아, 그럼 집은 있는 사람이구먼?" 


"살기 심들어서 내 뺏슈. 집사람이랑 애들이 잘 사는지 궁금해서 가끔 와유." 


"그렇게 미련이 남았걸랑 노숙자 생활 그만 두고 집에 들어가면 될꺼아뇨?" 


"몰라서 하는 말이유. 마누라한테 쫒겨났거든유." 


"왜? 그렇게 힘쎄?" 


"사업하다 망했슈. 빚쟁이한테 시달리다 이혼했걸랑요." 


"이혼하면 빚쟁이가 봐준답디까?" 


"아뉴, 빚쟁이보담 마누라 등쌀에 떠밀려서 집 나온거유." 


"알았수. 밥 한그릇 챙겨주고 별걸 다 묻는 내가 웃기는 군." 


"근데, 댁들은 노숙자 같진 않네유." 


"어허, 어제 목간가서 한 때 벗겨낸거라니까." 


"옷도 깔끔하구, 몰라뵈었슈." 


"그래, 다시 서울역 갈꺼요?" 


"가봐야지유. 그래두 거긴 때 되면 죽꺼린 나온께유." 


"여기서 십년 노숙해봤는데 서울역과 다를 바 없수. 그냥 쓰레기통 뒤져서 먹었어도 맘 편한 것 생각하면 천당이였지." 


"버린 음식두 얼어터져서 먹기가 힘들더구만유." 


"뱃속이 알아서 잘 소화시켰었지." 


"근데 웬일루 식당에서 밥 먹는데유?" 


"이 생활 청산하려고 생각중이오." 


"뭐 할게 있을라구유?" 


"찾아볼까 해. 난 PC방 알바할꺼고 이 놈은 강남제빌 할테지." 


"행님요, 제빈 뭔 제비?" 


"그라몬, 니 놈이 제비말고 할게 있나?" 


"그라마소. 행님 때 벗겨지면 나두 한가닥 할 생각인데..." 


"어이, 당신도 햇빛 속으로 나올 생각 있어?" 


"저유? 먹고 살 일만 해결되면 뭘 못하겠슈." 


"좋아. 일단 우리 세 명이라도 환골탈태를 해보자구." 


"저두 껴 주는갑네?" 


"난 김갑수, 이 놈은 박철호, 당신 이름은 어떻게 돼?" 


"전 이강홉니다. 혼자서 무역 하다 쫄딱 망했지만 한 땐 잘나갔었는데..." 


"그럼 잘하는게 뭔가 있겠구먼." 


"영어는 잘해유." 


"됐어. 밥도 먹구 했으니 옷가지나 바꿔 입은 후 시작해 보자구." 


"뭔 시작을유?" 


"노숙자 탈출. 목표는 쉽지 않겠지만 거저 먹는 일은 이제 그만할라구." 


"전 자신 없시유. 의욕이 없구만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빼지말구 날 믿구 따라오슈. 밥 벌인 내가 할테니까." 


"맨날 따뜻한 밥 챙겨주는거지유?" 


"그렇다니까. 잘 먹이진 못해도 쓰레기통은 안 뒤지게 해 줄게." 


"그라믄 저두 형님으로 모실께유." 


"그럼 당신이 형님 할 생각이었어?" 


"아휴, 그냥 모신다니까유. 글쿠 철호양반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내가 형님 하면 되겄시유?" 


"행님, 유비, 관우, 장비 모이듯이 우리 세 사람이 도원결의 하는갑네." 


"거기 비할 순 없지만 마침 우리도 도원식당이라는 곳에서 만났으니 내가 유비하구 강호넌 관우하고 철호 넌 장비하면 도원결의가 안될 것도 없겠네." 


"헉, 행님요. 이 식당 이름이 증말 도원식당이구만. 그럼 우리 말 나온 김에 빈 잔에 물 따라 놓고 건배한번 합시더." 




각자 앞에 놓인 빈 물잔을 다시 채우고 소리 죽인 채 건배했다. 우연한 조우를 통해 거렁뱅이 삼총사가 도원식당에서 함께 하기로 결의 했으니 훗날 사가들은 삼국지 이후 진정한 도원결의를 논할 때 노숙자 삼총사의 도원식당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저씨들 더 필요한 건 없소?" 




역시 배춧닢 한 장에 스르르 녹아 버린 식당 아줌마의 부침을 뒤로한 채 우리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남대문 시장에 도착했다. 가진 돈이 넉넉하지 않터라도 발바닥 품만 조금 더 팔았더니 넉넉하게 옷을 챙길 수 있었다. 난장판으로 널려 있는 좌판대에서 청바지 하나를 사고 한번 입으면 일년도 더 입고 버렸던 팬티며 런닝서츠를 몇 개 산 후, 큰 맘 먹고 철호에겐 싸구려 양복을 한 벌 사줬다. 시장 뒷 골목에 가서 노숙자 생활을 하며 몇 년째 입던 옷들을 벗어 던지고 새로 산 옷으로 깔끔하게 차려 입으니 서로가 바라보며 너무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라버렸다. 




"유비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관우인 이강호가 감격해 눈물을 한줄기 뿌리며 말했다. 장비격인 박철호는 오랜만에 입어보는 싸구려 양복에 홀딱 빠져 어깨를 으스대며 뽐내는 꼴이 제비가 봤어도 뒤로 훌렁 넘어갈 뽀대가 돗보였다. 


"관우야, 너 그 동네 알짱거리다가 니네 마누라 보면 어쩌지?" 


"안되지유. 갸가 시집 또 갔는데, 보면 눈까뒤집구 난릴 칠꺼구만유." 


"남의 품에 안긴 여잘 먼 발치로 보는 놈이 더 안되보인다." 


"자식 때문이지유. 전 그 여잘 원치 않구먼유." 


"알았어. 여잔 싫단 말이지?" 


"싫긴유. 있기만 하면 먹겠지만 어디 있어야 말이지유." 


"흠... 경제적 독립이 되면 넌 아일 찾도록 하고, 그 전엔 아애 그쪽을 쳐다보지도 말아." 


"안된다니까유. 난 애들 봐야해유." 


"좋아, 그럼 철호야 관우한테 딴 년 맛 좀 보여줘." 


"행님요. 저두 첨 먹어본건데 남 챙겨줄일 있수?" 


"얌마, 니 놈 먹을 년 달라는게 아니구, 살다보면 관우한테 어울릴 여자가 눈에 띌꺼아니냐. 그땐 니 놈이 먹지말구 챙겨주란 말야." 


"아따, 식당 아줌마가 딱이구만." 


"어, 그것도 괜찮네." 


"유비 형님요, 저는 아무래두 좋아유. 그냥 딱 한번만 했음 소원이 없겠네유." 




우리 삼총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오늘 밤부터 시작될 PC방 알바자리에서 얻어지는 돈으로 세명의 밥벌이를 어렵게 챙기다 보면 당장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얼어붙은 돗자리에 등짝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둘러 PC방으로 돌아가려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를 내려갔다. 남대문시장으로 갈 때만 해도 훌쩍 뛰어 넘어 기차를 탓지만 이젠 허우대가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부득불 아깝게 기차표를 사야했다. 모든 것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된다. 노숙자의 당연한 무임승차 권리가 옷한벌 갈아입었다고 즉결처분으로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 삶의 순간 순간의 결정인 것이다. 


(참고 : 관우인 이강호의 옛 마누라는 부부게이머 중 점잖은 부부로 나오는 사람 중 한명이기 때문에, 계속 소제목을 부부게이머로 한 것입니다. 다음편에 두 사람이 PC방에서 조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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