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장미의 노래 - 1부 10장

본문

10. 어린 연인들(Puppy Love)




“어서 침대로! 의사는 불렀어? “




“그래, 지금 도착했어! 삼층으로 옮겨! “




“당장 오라고 해, 의사 놈 어딧는거야? 젠장, 이 어린 애를… “




“그 새끼들, 죽이기 전에 싸그리 다 좆을 잘라놨어야 하는 건데… “




잠자러 들어가려는데, 온 집안이 울리며 웅이형과 솔개형이 집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두 사람은 평소답지않게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며 쿵쾅거리고 있었다.




나는 재미있어하며 한 쪽 모퉁이에 숨어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웅이형은 그 커다란 팔 안에 인형 하나를 안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빨간색이 섞인 검은 머리칼, 옅은 초록색이 도는 눈동자…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예쁜 서양 여자애의 인형이었다.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그 인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 인형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 인형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인형이 아니라 사람 이라는걸, 얼굴은 표정이 없지만 눈 속에는 비명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웅이형이 3층으로 뛰어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에, 나는 그 인형 같은 소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소녀도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가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한참동안 웅이형이 지나간 계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약간 화난 얼굴이셨다.




쇼파에 털썩 주저앉은 아버지는, 넥타이를 풀르며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네, 접니다. 네… 죄송합니다. 엄마는 이미… 네. 간살입니다. 애초에 그놈들은, 요구대로 해준다고 해도 살려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네… “




아버지가 담배를 피워물었다.




“네, 우리가 숨은 곳을 찾아냈을때는 이미… 그리고, 따님은 무사합니다만… “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네, 따님도… 네. 다행히 외상은 없습니다만…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큰 듯 합니다… “




잠시 끊어졌다 이어지는 아버지의 목소리.




“아닙니다. 엄마가 죽는 것을 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예, 아이쪽도 강간 당했습니다. 처리하기 전에 물어봤습니다… 네… 십여차례 이상인 것 같습니다… “




절반도 안 타들어간 담배를 비벼끄며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충격이 크겠지만 아직 어리니까, 잘 달랬고 따님도 다행히 저희를 믿고 많이 안정됐습니다. 네, 의사는 불러놨습니다. 지금 제 집에 있습니다. 네, 오시기 전 까지 응급치료는 해 놓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딸깍.




전화기가 끊어지며 아버지가 쇼파에 깊숙히 묻혀 앉았다.




겁간? 강간? 죽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해보려 애썼지만,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본 아버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서 뭐하는거냐? 올라가서 자든지 놀든지 해라. 어서 사라져. “




나는 아버지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내밀어 보이고서,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 # #




열두시가 다되어 가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꾸만 아까의 소녀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시간 정도를 침대에서 뒤척거리던 나는, 드디어 몸을 일으켜 침대를 나왔다.




소녀가 있는 방은 알고 있었다.




3층의 다락방, 손님이 올때만 내어주는, 커다란 침대와 붙박이장 하나가 가구의 전부인 조금 을씨년스러운 방이었다.




‘그 애를 만나면 뭐라고 하지- ‘




나는 생각하다가, 비장의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로켓맨 세트!




솔개형이 어느날 빌려온 비디오에서 본 로켓맨은 그 시절 내 우상이었다.




등 뒤에 로켓을 달고, 멋진 헬멧을 쓰고서, 초음속으로(그때 난 빠른건 무조건 초음속이라고 생각했었다) 날아다니며 악당을 무찌르는 용사!




하도 난리를 치는 내가 귀여웠던건지 아니면 귀찮았던건지 모르지만, 손재주 좋은 웅이형은 나를 위해 로켓을 만들어 주었다.




1.5리터 짜리 빈 콜라 페트병 두개를 접착제를 써서 옆으로 맞붙여 영화에 나오는 로켓과 비슷하게 꾸미고, 마개를 밀봉하고 안에 공기를 꽉 채운 뒤에, 줄을 달아 어깨에 매고 허리에 차서 등에 고정 시킬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양쪽 페트병에는 미술을 전공했다는 아버지 가게의 한 누나가 포스터 칼라로 멋진 불꽃 문양을 그려넣어 주었고, 내 야구모자에도 휘갈기는 글씨체로 [ROCKET MAN]이라고 그려넣어주었다.




나는 내 보물 아이템을 등에 달고 머리에 눌러쓰고서, 살금살금 방을 나왔다.




머릿속에는 동화속의 공주님을 찾아나서는 기사의 모험 같은 흥분이 가득했다.




삐걱 –




살며시 열었지만, 오랬동안 닫아놓았던 문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불을 켜지 않은 방안, 환하게 달빛이 비쳐드는 창가 침대위에 소녀는 앉아 있었다.




눈동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빛이 없었고, 얼굴에 아무 표정도 떠올라있지 않았다.




그저 그 예쁜 얼굴을 내 쪽으로 고정시키고서, 바라보고있을 뿐이었다.




“어… 안녕? “




이미 나는 기사가 아니었고, 소녀도 동화속의 그런 공주님은 아니었다.




차라리 나는 노틀담의 꼽추같았고, 그녀는 야만인에게 능욕당한 공주님 같았다.




내 어색한 인사에도, 소녀는 표정에 변화하나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어라 말도 못하고서 시간이 흘러갔다.




1분정도 지났겠지만, 나는 한시간은 흐른것처럼 느껴졌다.




그 어색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바보짓을 시작했다.




“음음, 나는 로켓맨이야! 너, 로켓맨 아냐? “




“. . . “




“모르는구나? 로켓맨은 용사야. 영웅이라구. 나는 초음속으로 날아. 이거보이지? 이 로켓 때문에 나는 총알도 피해. 왜냐면 총알보다 빠르니까. “




“. . . 거짓말. “




소녀의 입이 처음으로 열리더니, 어색한 영어식 악센트가 섞인 한마디를 뱉아냈다.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였지만, 소녀의 입에서 말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나는 너무 자랑스러웠다.




“거짓말 아니다? 넌 모르지만, 로켓맨은 원래 그렇게 빨라. 네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필요하면 나는 날아간다구. 로켓으로 말야. 위험해지면 날 부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




“거짓말… I had some cartoon books about that stupid hero… “




“뭐, 뭐라고? 하, 한국말로 말해. 영어로 말하면 못알아듣잖아. “




“거짓말이야… 나 알아 로켓맨. 그건 거짓말이야. “




“거짓말아냐! 난 로켓맨이고, 로켓맨은 거짓말안해! 위험한 사람은 누구든지 구해준다구! “




나는 처음에 소녀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데 부끄러웠고, 그 다음에 소녀가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얼굴이 빨개지는게 느껴졌고, 그것이 더욱 나를 부끄럽고 화나게 만들었다.




소녀는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 나는 그때까지 화났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소녀의 얼굴에는 쓸쓸함과 슬픔이 다시 떠올랐고,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무표정은 사라졌지만, 이제 그녀의 얼굴에는 내가 그때까지 한번도 본적없는 슬픔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물을 바라보면서, 나도 울어버리고 싶은 욕구와 싸워야했다.




“네가 로켓맨이라면… 위험한 사람을 구해주는 히어로라면… 왜 나랑 엄마를 구해주지 못했지… ?“




“으응? “




“엄마의 비명소리… 엄마는 죽을 것 같이 소릴 질러댔어… 그러면서도 나는 그냥 두라고 빌었어… 그래도 그 사람들은… “




소녀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치마를 걷어올렸다.




허리까지 걷어올린 치마 아래로, 엷게 음모가 솟아나기 시작하는 소녀의 비밀스런 부분이 드러났다.




그 예쁜 꽃잎에는 온통 약칠이 되어 있었다.




걷어올린 하체에는 시커먼 멍이 여기저기 들어있었고, 소독약을 잔뜩 바른 가랑이 사이에서는 아직도 조금씩 핏방울이 번지고 있었다.




“그 남자들은 낄낄거리면서 엄마한테 말했어… 영어는 못알아듣는다면서… 비명소리도 영어니까 재미없다면서… 엄마는 비명을 지르다가 끌려나갔어… 나는 그 지하실에서 혼자 남았었어… 깜깜한 방 안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면, 커다란 아저씨들이 들어와서 날 마음대로… “




“어, 어어… “




“그래도 난 그 아저씨들이 들어오기만 기다렸어. 그 때만이 그 깜깜한 방안에 빛이 들어오니까… 그 아저씨들이 날 짓밟을때만은 빛이 있었으니까… “




나는 아무말 못하고서 그저 소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그 커다란 눈망울로 눈물을 넘쳐흘려내면서 말을 이었다.




치마를 든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게 보였다.




“엄마는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대… 나도 입원해야 할거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 캄캄한 방안에서 난 제발 누구든지 도와달라고 수없이 빌었어… 하지만 넌 안왔잖아? “




무어라 말을 해야하는데,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소녀가 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의미가 뒤죽박죽이 되어 헝크러지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일을 당한건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말속에서 느껴지는 것 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거짓말이야… 로켓맨도 없어. “




“거짓말아냐! “




가까스로, 내 입에서 말이 나왔다.




나는 영웅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소녀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죽을듯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소릴 질렀다.




“거짓말아냐! 네가 그런지 몰랐어서 도와주지 못했던 거야! 미안해, 미안해…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줄께. 네가 도와달라고 날 부르면, 내가 날아갈께.“




새빨개진 얼굴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소녀는 나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생긋이 웃었다.




하지만 그 눈망울에 가득찬 눈물은 마르지 않았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넌 멋진 애다… 이름이 뭐니? “




“시… 신이야. 이 신. “




“난 마야(maya)… 만나서 반가워. 몇살이니? “




“나? 난 열살이야. “




“그럼 나보다 오빠네… 난 아홉살이야. 근데 신이 오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헤헤. “




나도 그녀가 나보다 어리다는것에 대해서는 꽤 놀랐다.




아무리 적게 봐도 그녀는 나보다 두세살은 많아보였으니까.




게다가 마야의 얼굴은 앳되 보였지만, 몸은 거의 내 주변에 중학교 3학년 정도의 누나들 정도로 성숙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보다 오빠라는데 대해서 어떤 책임감을 가졌고, 호기롭게 가슴을 두드렸다.




“걱정마, 앞으로는 오빠가 널 지켜줄 테니까. 근데 넌 미국에서 왔니? “




“응… 하지만 스페니쉬야. 울 엄마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어. 아빠가 한국사람이야. 엄마는 한국말 거의 못하지만, 난 엄마가 한국말 학원에 보내서 배우게했어. 내가 조금만 자라면 아빠한테 갈거라고… 아빠에게 온지 이제 15일 됐어… 아직 아빠 얼굴도 못봤는데… “




“그렇구나… 마야 엄마는 정말 예쁜 사람인가보다… 마야도 그렇게 예쁘니까… “




나는 순수하게 마야가 예뻐서 그녀의 엄마도 예쁠것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내 말에 마야의 얼굴은 다시 딱딱하게 굳어들었다.




이제 생각하면, 그 때 마야는 엄마를 떠올렸고, 연이어 그 지옥 같은 경험을 떠올려버린 것 같았다.




갑자기 되살아난 기억은 겨우 진정되던 마야의 마음을 엉망으로 깨뜨려버렸고, 그녀는 갑작스럽게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엄마… “




마야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침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우, 울지마… “




나는 당황해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침대가로 다가가 마야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팔을 들어 눈물을 훔치던 마야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며 소릴 질렀다.




“거짓말쟁이! You Liar! Liar! 안 왔잖아! 안도와줬잖아! 엄마가 그렇게 아파했는데도 넌 안왔잖아! 마야가 얼마나 빌었는데, 살려달라고 얼마나 애원했는데 넌 안와놓구서! 뭐가 로켓맨이야! 뭐가 히어로야! “




“미, 미안해… 미안해… “




“필요없어! 거짓말쟁이! 안믿어! 넌 앞으로도 내가 아무리 불러도 안올거면서! 또 그런일이 생겨도 모를거면서! “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화륵! 하고 타올랐다.




억울함과 부끄러움이 소용돌이치면서 눈물로 솟아올랐다.




나는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것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면서, 마구 울며 소리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이제부턴 정말로 내가 지켜줄꺼야! 거짓말 아니야! “




마야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아까의 맑은 웃음과 달랐다.




비웃음이 섞이고, 믿을수 없다는 마음이 가득 담긴 웃음이었다.




마야가 한걸음 물러서서 창가로 다가서며 말했다.




창가에 가득한 달빛이 마야를 가득 휘감고 있었고, 나는 달빛속에 선 마야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다 날개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어린 천사 같았다.




“그래… 정말이야…? 신이 오빠, 아니 로켓맨. 정말 지켜줄거야? “




“정말이야. 정말이야… 약속할께.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날아가서 지켜줄거야… “




“그래…? 그럼 날 지켜줘. 바로 지금. “




그 말과 함께, 마야의 몸이 창문 너머로 휙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마야는 마치 다이빙 선수들이 뒤로 떨어지듯이 우아하게 창문을 넘어 떨어져 버렸다.




창을 넘어가며 작은 호선을 그리는 그녀의 머리를 따라, 마야의 눈동자는 끝까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말한 것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넌 거짓말쟁이라고.


너는 가짜 영웅이라고, 나를 지켜줄 수 없다고.




“으아아아아아아!!!! “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마야의 몸이 완전히 창틀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는 온 힘을 다해 침대를 뛰어넘어 창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으로 뛰어내린 내 눈앞에, 땅으로 떨어지며 나를 바라보는 마야의 얼굴이 보였다.




마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속엔 놀람과 당혹감과, 그리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들어있었다.




그녀를 잡으려 뻗은 내 팔을 마야는 부둥켜 안았다.




나는 온 몸으로 마야를 감싸안고서, 가까스로 몸을 돌려 내 등을 땅으로 향하게 할 수 있었다.




퍼억!




온 몸이 뒤틀어지고, 뼈가 조각조각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산 것은 순전히 등에 진 로켓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공기가 가득 채워진 채 밀폐되어있던 페트병은 훌륭한 쿠션역할을 해 주었고, 나는 땅에 떨어졌다가 튕겨올라 데굴데굴 굴렀다.




“으아아악! “




다리가 부러진 느낌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마야가 내 품에서 머리를 들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황급히 물었다.




“신이 오빠! 신이 오빠! 다쳤어? 어디야, 어디 다친거야? “




“괘, 괜찮아… 로, 로켓맨은… 이정도로 안다쳐… 으아악! 내 다리! “




마야가 내 다리를 짚는 바람에, 내가 가까스로 잡은 폼은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마야는 펑펑 울면서 내게 안겨들었다.




“으아앙! 미안해, 미안해 오빠! 내가 왜 그랬을까… 아파? 많이 아파? “




“괘, 괜찮아… 마, 마야, 이젠 나 믿지? 아야야… 이젠 내 말 믿지? “




“응, 믿어. 믿어요, 오빠! 오빠는 로켓맨이야, 진짜 히어로야! 오빠가 언제까지나 마야를 지켜줄거라는거, 정말로 믿어요! 미안해 오빠… “




우리의 비명에, 어른들이 달려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이형이 나를 안아들었고, 솔개 형은 대체 이게 무슨 난리냐며 날 쥐어박으려다 내 다리가 부러진 걸 알고서는 손을 털어댔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담배를 물고서 별 변화없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웅이 네가 만든 저것, 언젠가 내다 버려버릴 생각이었는데… 저 놈 목숨을 구하게 될줄은 몰랐군. “




마야는 나를 안은 웅이 형의 뒤를 펑펑 눈물을 쏟으며 따라걸으면서 게속 말했다.




“신이 오빠, 미안해…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 믿을께… 오빠, 미안해… 미안해 내 로켓맨… 죽을때까지 오빤 내 히어로야… 미안해… “




꼬르륵 자물어가는 의식속으로, 흐느끼는 마야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어왔고, 나는 영웅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자부심에 의기양양해서 웃었다.






깨어났을 때, 마야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마야는 그 예쁜 얼굴을 내 눈가에 바싹 갖다붙이며 말했다.




“신이오빠, 괜찮아? 괜찮아? 안 아파? “




“응, 괜찮아… 아이고 내다리… “




“부러졌대, 둘다… 그래두 다리외에는 아무데두 이상없대. 로켓은 망가져 버렸지만… 미안해 오빠… “




마야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듯한 표정을 짓는 바람에,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야했다.




우리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야는 나를 완전히 자기의 영웅으로 받아들였고,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믿었으며, 어떤 억지나 잘난체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떠받들었다.




완전히 영웅행세에 취해 버린 나는, 온갖 허풍과 우스개소리를 주절거려댔고, 잡을 수 있는 폼은 다 잡아대며 으시대었다.




그리고 마야는 정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슈퍼 히어로를 만난 순진한 시골아가씨처럼 나를 열렬히 숭배하며 내 헛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 마야가 슬픈 얼굴로 내게 말했다.




“신이 오빠… 오빤 누구랑 결혼할거야… ?”




“응? 결혼? 응… 생각안해봤는데? “




“마야가… 오빠랑 결혼하면 안될까… ?”




“으응? 마야 네가? 으응… “




어린 나이였지만 마야처럼 예쁜 애가 내 색시가 되어준다는 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쑥스러움에 나는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고, 마야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안되겠지? 마야는 더럽혀 져버렸어… 오빠의 부인이 될 순 없겠지…? “




아무래도 그녀와 나는 정신연령으로는 내가 한 댓살은 아래였었던듯 하다.




거기다가 윤간이라는 끔찍한 일을 경험해버린 그녀는, 이미 나와는 차원이 다른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버린 것이었다.




나는 [더럽혀졌다]란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마야가 창으로 뛰어내리기전 말했던 그 일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는 정도만 느껴졌다.




“그, 그런건 상관없어! “




“진짜… ? 정말 괜찮아? “




“그럼! 그건 이미 지난 일이잖아. 게다가 마야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오빤 그런거 쩨쩨하게 안따져. “




“진짜지? 그럼, 마야가 오빠 신부가 될 수 있는 거지? “




“음,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러면 안되는거야. 마야가 일부러 나쁜 일을 하면 오빠 신부는 될 수 없어. 알겠지? “




“정말? 앞으로 안그러면… 오빠 신부가 될 수 있어? 이런 마야를… 아내로 맞아줄 수 있어? 진짜루? “




“물론이지! 아직 모르는거야? 로켓맨은 거짓말 안한다니까! 마야가 앞으로 나쁜 짓 안하고 예쁜 어른이 된다고 약속하면, 그땐 내가 신부로 맞아줄께. 걱정말라니까! 약속한다, 진짜야! “




나는 더럽혀진게 어떤 건지는 잘몰랐지만 그것이 매우 나쁜일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여덟살때 친구들 따라 엉겁결에 해보았던 도둑질이 떠올랐다.




처음에 문방구에서 자그마한 장난감을 훔치던 그 일은, 처음 시작은 도둑질을 하는 친구들과 따돌려지지 않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내 그 재미에 맛을 들여 이것 저것 훔쳐대기 시작했고, 결국 아버지에게 알려져 반쯤 죽도록 얻어맞고서야 그만두게 되었었다.




영웅 로켓맨으로서 그런 과거가 있다는 것이 죽도록 부끄럽지만, 나는 그 시절에 처음에 반 강제로 시작한 일이라도 나쁜일일수록 재미가 더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 마음으로 마야가 그 일에 재미를 들여 스스로 하게 되는건 오빠로서 막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려 했던 것이다.




마야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 절대 안할께. 약속해. 신이 오빠랑만 그럴거야. 이제부터 죽을때까지, 신이 오빠 외에 아무한테두 안그럴께. 난 오빠 신부가 될거니까… “




“음, 그래. 그럼 됐어. “




나랑이라도 더러운거 뭍히는 건 싫은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마야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야가 갑자기 얼굴을 숙여 내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너무 놀라 뭐라 말도 못하고 새빨개진 나에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약속. 헤헤… 잊으면 안된다? 오빠 신부는 마야란거, 절대루 잊으면 안돼? “




“바, 바보야! 부, 부끄럽게! “




# # #




그 날 이후, 나는 마야를 한번도 다시 볼 수 없었다.




많이 보고싶어 했지만, 아무 연락도 못하면서 점점 마야의 얼굴과 그날의 기억은 마음속에서 흐려져갔고, 나는 조금씩 그녀를 잊어갔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녀의 기억을 마음속의 서랍속에 모두 접어 넣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그 예쁜 소녀는 이렇게 성숙한 모습으로 발가벗은채 지금 내 품에 안겨있었다.




“그런데 마야, 너 아직 중학생이잖아? 왜 저런 애들을 만나는거야? 네 또래보다 한참 위일텐데… “




“풋! 하하하… “




“왜 웃어? “




“신이 오빠, 지금 몇살? “




“응? 열 일곱이지. 고등학교 1학년. “




“마야는 열 여섯살.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




“에에? 그게 말이돼? 너 왜그렇게 일찍 학교를 들어간거야? “




“호호… 내가 세는 법은 서양식. 한국식이라면 열 여덟살. “




“. . . “




“흐응? 이제 알겠어? “




“마… 만으로 센 거 였어… ? “




“아하하… 어쩔 거야? 누나라고 부를 거야? “




“시, 싫어! “




“흐응~ 나두 싫어… 신은 언제나 내 오빤걸… 내 로켓맨인걸… 난 죽을때까지 신이 오빠라고 부를거야… “








로켓맨이라는 영화 기억하시는 분 없으세요? 한 10년쯤 되었나... 월트디즈니사에서 만든 영화였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 무비인데...^^




일단, 여기에서 장미의 노래는 1부가 끝납니다.


전체적으로는 한 4부정도의 분량이 될거예요. 2부후반쯤에서부터 신과 상우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듯...




그건 그렇고, 제일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구상중인 스토리를 들려줬었거든요? 그 친구가 이러더군요.




"너, 그런 순정만화 대본같은 스토리가지고 그 살벌한 야설판에서 버틸수있겠냐? "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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