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노리로리 - 17부

본문

17. 두 번째 혹은 첫 번째






“오늘… 오빠랑 잘 거야.”


“…….”




잠시 그녀와 나 사이에, 물기 어린 정적이 흘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로, 일없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올렸다. 그녀의 얼굴 위로 늘어뜨려진 윤기 도는 머리칼이 젖혀지자, 발간 빛이 도는 흰 얼굴이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몇 분 정도의 시간은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오빠, 나...”




애잔하면서도 결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노리.


이럴 때 난 어떻게 해야 할까. 힘겹게 입을 떼었다.




“노리야.”


“……응.”


“너 더 이상 자신을 학대하지 마라.”




그녀는 할머니의 죽음과 양친의 무관심 속에서 나름대로 엇나가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모임’도, 원조교제도, 아마도 나하고의 만남도… 하지만 맘놓고 엇나가기엔 그녀는 너무 여렸다.




“아니야. 나… 그런 거 아냐…”


“그래도…”


“왜? 안 돼? 싫어? 원조교제한 애라서? 더러워져서?”


“어휴…”




이런 말 들으면 또 가슴 찢어진다. 


…뭐, 이런 상황에서 넌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순결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고 있는 거야… 라고 할 수는 없겠지. 여기는 대학 강의실이 아니다. 아니 그보다 그런 식으로 말할 정도로, 얘 이야기가 남 얘기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런 거야? 응?”


“네가 더러우면 도대체 깨끗한 사람이 누가 있겠냐...”


“오빠…”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린다.




“오빠… 제발…”


“…….”


“나… 오빠가 필요해….”




나는 이미 적잖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녀가 자신을 품어달라며 몸을 기대올 때 거절할 수 있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애처롭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애원할 경우에는 더더욱.


문득 비오던 날 밤의 일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열락의 기억.




나도 모르게 다시 달아오르는 얼굴 가까이 그녀의 하얀 얼굴이 다가온다.




“부탁이야…”


“……노리야.”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곤 천천히 얼굴을 가져다 대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쪽… 쪼옥…)




가볍게 입술을 댄 다음 혀를 내어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살짝 빨아 본다.


아까 양치를 하고 왔는지 치약 냄새랑 입술 연고 맛이 난다.


유자차의 달콤함과… 음, 희미하게 우유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으… 음…”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몇 번을 더 빨아준 다음 혀를 집어넣으니 그녀의 이빨에 닿는다.




“음…?!!”




그녀가 눈을 반짝 뜬다.


얼굴을 잠시 떼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미, 미안…”


“괜찮아. 자…”




다시 얼굴을 감싸 안고 입을 맞춘다. 역시 눈을 감는 그녀.


이번엔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 온다.


그녀의 수줍은 혀가 나의 것을 받아들인다.




(추웁… 춥…)




잠시 동안의 깊은 키스를 즐긴 뒤,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푸하~!”




이런.


숨을 못 쉬고 있었는지, 내가 입을 떼자마자 헥헥거리는 그녀.




“아이구, 숨을 안 쉬고 있으면 어떻게 해.”


“학학… 입이… 막혔는 걸… 캑… 콜록…”


“코로 숨을 쉬어야지…”


“아… 히잉… 미안…”




그녀의 얼굴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괜찮아.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뭐.”


“히잉… 처음이니까 기왕이면 멋있게 했어야 되는데…”




노리는 정말 잘 해내고 싶었나 보다.


난 웃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아냐, 잘 했어. 정말.”


“…정말?”


“그럼. 얼마나 맛있었는데. 흐흐.”


“…아유 참…”




내 짖궂은 말에 가볍게 눈을 흘기는 노리.




“저기, 우리 다시 해…”


“후후…”




……




…그리고는 몇 번인가의 깊은 키스.




“…헤헷.”


“잘 하네… 소질 있는 걸.”


“정말?”




분위기를 깨지 않을 정도로만 희미하게 밝아지는 그녀의 얼굴.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 언니보다… 잘 할 것 같아?”


“……!”




노리의 입에서 혜경이 얘기가 나오자 난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때 늦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난… 혜경이가 사 온 유자차를 이 아이에게 먹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던 침대 위에 앉아 키스하고 있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




내 몸이 굳어지는 것을 금방 느꼈는지, 그녀가 짧게 외마디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상기되었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오, 오빠… 미안해…”


“아, 아니야.”


“…….”


“노리야, 나… 역시 여기선… 좀…”


“……!!”


“…미안하다.”


“오빠…”




그녀는 잠시 슬픈 눈을 하더니 다시 내게 안겨왔다.


그리고는 내 목 뒤로 두 손을 두르고, 먼저 키스해 왔다.




(쪼오옥…)




짧은 키스와 함께, 그녀를 덮고 있는 어두운 오오라가 나를 덮쳤다.


그 때의 그녀다.


살짝 젖은 옷을 입고, 신촌 지하철 역 지하 바닥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그 때의 그녀다.


여고생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무섭도록 차분하고도 섹시한 느낌.


얼굴의 앳됨을 지워버릴 정도의 깊은 절망.


너까지 날 버릴 거냐고 말하는 듯한, 어둠 저편으로부터 부르는 절망적인 아름다움.




찬물을 뒤집어썼던 것 같은 좀 전의 느낌이 스러지며, 다시금 욕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랬던가. 난 그 때, 이 아이를 본 처음 순간부터 그녀를 열망하고 있었던 것일까.


(뭐, 일단 그날 자긴 했지만)


동정이라기보다는 욕망에 굴하여, 예전의 일들은 일단 다 잊기로 했다.




……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여고생’과 몸을 나눴던 그 날과는 달리, 나는 노리에 대한 욕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이미 우리 사이에는 역사가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부끄러운지 옷가지가 벗겨져 나갈 때마다 얼굴을 모로 돌린 채 얼굴을 붉히고 있다. 달아오른 분위기를 잠시 진정시키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귀여운 속옷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음…오늘은 곰돌이 아니네?”


“아이 참…!!”




그녀가 감고 있던 눈을 반짝 뜨더니 너무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녀 자신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다행히도 그녀나 나나 약간 긴장이 풀리는 느낌.




내 손으로 직접 그녀의 팬티를 내렸다. 살짝 허리를 들어주는 노리.


전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녀의 작고도 아름다운 알몸이 눈 앞에 펼쳐졌다.




“보, 보지 마… 부끄러워…”


“아, 뭐 어때…”




전신을 내게 드러낸 채,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을 가렸다.


좀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고 싶었지만, 너무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




약간은-아니 조금 많이-서두른 느낌이 있는 애무가 지나간 다음, 나는 그녀의 몸 위에 자리를 잡았다. 




“…….”


“…괜찮아?”


“으…응…”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야, 왠지 몰라도 나도 떨린다.




“저기… 키스해…줘…”


“아, 어…”




내 얼굴이,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을 덮었다. 오늘 새삼스럽게 다시 만나는 우리 둘의 혀가 엉김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조금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아아…!”


“으읏…”




살짝 젖은 그녀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나의 분신을 죄어오는 속살의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져 온다.




“으, 으으음… 흑…”




그녀의 아름다운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역시 지난번엔 신경써서 보지 못하였던 부분이다.


아직도 많이 아픈가 보다.




“괜찮아…? 정말?”


“흐윽… 오빠… 괜찮아… 키스해… 계속…”




찡그린 얼굴을 펴지 못하면서도, 다급하게 나의 행동을 촉구한다.


쾌감과 미안함이 동시에 나를 자극한다.


서서히, 움직임을 빨리 가져가기 시작했다.




……




지극한 환락 속에서,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요사이 나를 괴롭히던 몽상 속의 그 몸.


그 부드럽고도 찰진 몸이 내 품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미쳐 버릴 것 같다.




“아… 오빠, 오빠아…”


“헉…헉… 응…”


“안아줘… 학… 흐윽…”


“헉… 지금, 안고… 있잖아… 헉…”


“응… 안아줘…”




그녀는 울고 있었다.


아직도 아픔이 느껴져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아달라는 말을 계속하는 그녀에게, 그렇게 나는 빠져들고 있었다.




……




…어느샌가, 나는 그녀에 대한 배려조차 잊은 채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파정의 순간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굳어지는 몸. 한껏 찌푸려지는 그녀의 얼굴. 정적.




……




“괘, 괜찮아?”


“으응…몰라.”




우린 땀에 젖은 서로의 몸을 그대로 감싸안은 채, 시트 위에 몸을 뉘었다. 이것도 몇 달 전과는 다른 것인데… 이번엔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고통이 간신히 끝났다는 듯한 안도감과 원하는 것을 얻은 듯한 기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씨익 웃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빠.”


“…음?”


“헤헤, 참 잘했어요~”




마치 애 다루듯이, 그녀가 내 이마의 땀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


……


샤워를 하고 물을 한 잔 마시고 있는데, 그녀가 욕실에서 나온다. 빨리도 끝내네.


가만 있자, 여기서 고개를 돌리면 물기 어린 긴 머리의, 우수에 찬 표정을 한 그녀가 수건 한 장을 두르고…




“아~ 추워~ …헤헤헤. 오빠, 이거 봐.”


“…….”




그녀가 자기 옷 대신, 벗어둔 내 셔츠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머리… 머리는 안 감고, 뒤로 넘겨 밴드로 묶어 버렸군.




“섹쉬하지? 응? 응?”


“…….”




그녀는 재미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다소 헐렁한 셔츠를 맨몸에 걸친 채로 살짝 돌아 보였다. 뭔가 딸랑딸랑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에휴… 아까 그 분위기는 싸그리 사라지고 여느 때의 여고생인 그녀로 돌아와 있지 않은가.




“휴우…”


“?! …뭔데 그 한숨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저기, 감기 걸린다. 옷 입어라…”


“에엥~ 귀찮어. 온도 올리면 되지~”


“난방비 올라간다니까.”


“어 머야, 에이 깍쟁이.”




……




훈훈해진 방 안에서, 노리는 여전히 내 셔츠를 걸치고 있다.




“…기쁘냐. 그 셔츠 걸쳐서.”


“응… 히히. 지난달엔가 본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이렇게 입구 있더라구. 꼭 해보구 싶었거든.”


“…….”




음, 역시 청소년에게 영화의 위력이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인가…


난 일없이 침대 위에 앉은 채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날 보며 말을 꺼냈다.




“오빠, 뭔가 얘기를.”


“…얘기?”


“남자친구가 됐으면 뭔가 좀 재미있게 해줘야지.”


“남자친구….”




남자친구라. 12살 많은… 남자친구.


이 아이는 나를 정말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단지 외롭기 때문에, 아빠나 오빠 역할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오빠라는 호칭이 마음에 걸렸다.




“근데 오빠라고 부르는 거 조금 이상하지 않아?”


“? 오빨 오빠라구 불러야지 그름.”


“아니, 나이차도 있고 조금…”


“그럼 아저씨? 나 아저씨 싫어. 이상해. 원조같애.”


“…아.”




뒤로 묶은 머리를 다시 만지면서,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뭐, 아저씨는 사실 나도 싫다.




“그리고 오빠 아저씨같이 안 보이니까 괜찮지 않아?”


“고맙긴 한데, 그럼 다른 거...”


“히히, 자기라구 부를까? 자기야아~”


“얘야, 제~발~. 평소에도 그렇게 부를래?”


“뭐 어때.”




그녀는 다시 장난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자기라.


난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침대에 벌렁 누우면서, 뭔가 대안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 거 말고, 가령 이름이라든지.”


“엥?! 어떻게 이름을 막 불러…”


“아니 이안씨라든가…”


“이안씨?”




노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눈동자를 위로 향하며 잠시 생각하는 눈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씨이…”




벽에 한쪽 몸을 기댄 채, 머리를 가만히 풀면서 나직이 내 이름을 되뇌어 보는 그녀.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뭔가가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소녀가 꿈꾸는 듯한 눈으로 조심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사랑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나신을 반쯤 드러낸 채로, 성숙한 여성이 쓰는 호칭을 써서. 언밸런스할 정도로 성적인 매력을 머금은 청순한 아름다움. 순수와 요염함이 뒤섞인 그녀의 자태 앞에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신촌역 햄버거 가게 앞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보다도.


그 날 그녀의 몸을 처음 가졌을 때보다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녀에게 첫 입맞춤을 하던 순간보다도,


심지어, 애틋한 감정으로 서로 원해서 이루어진 조금 전의 정사에서보다도…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은 그 어느 때의 느낌보다 강렬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몸을 떨며 애써 나의 감정을 가라앉혔다.


보나마나 붉게 달아올라 있을 얼굴을 숨기기 위해 돌아 누우며 말했다.




“걍 오빠라구 해라… 머리 아프다.”


“머야, 결국 그럴 거면서.”




노리는 허무하다는 듯이 풀썩 베개 위로 눕는다.




“어쨌거나 난 오빠가 좋은걸.”




등 뒤로 그녀의 얼굴과 손의 감촉이 느껴진다. 


난 괜한 질문을 해 본다.




“나 말하는 거야? 아니면 오빠라는 호칭?”


“둘 다아~ (와락) 우악~ㅎㅎ”




나는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 누우며 꼬옥 그녀를 끌어 안았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기도 했고…


아직도 상기되어 있을 얼굴을 보여 주기가 쑥스럽기 때문이었다.




……


우리가 그렇게 끌어안고 누워 있은 지 얼마쯤일까.


그녀가 내 감은 눈 위로 속삭인다. 




“…오빠 자? 졸려?”


“…아니. 안 자.”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그녀의 해맑은 얼굴을 바라본다.


약간 난처한 얼굴을 짓고 있다.




“아직 자면 안 돼… 자지 마, 응?”


“안 잔대두.”




너 땜에 다시 흥분해서 지금 눈 감고 그거 식히고 있는 중이시다.


그것도 모르고 참…




“근데 왜…?”


“재야의 종 들어야 돼…”


“꼭 들어야 돼?”


“…소, 소원… 빌어야 된단 말이야.”




소원?!




“푸, 푸하하핫…”


“엉, 왜 웃어?!!”




난 그녀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킨다.


아아, 고맙다 노리야.


그녀의 순진한 한 마디가 나의 타는 듯한 욕망을 가라앉혀 주었으니.




“그게 그렇게 웃겨…? 응?!”


“아니… 귀여워서. 푸핫핫.”


“피이.”




노리는 이불로 몸을 가리고 앉아서 뾰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다.


‘또 애기 취급이야’하는 것 같다.




……


……






“…4,3,2,1! 뎅~ 뎅~!!!!!!!”




새해가 되었다. 아, 드디어 서른인가. 젠장.


TV를 보고 있는 서른이 된 처량한 총각 곁에는 팬티 바람에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여고생이 앉아 있다. 


…뭐, 그닥 나쁘지는 않은 것인가.




“오빠, 나 이제 열여덟이야.”


“…그래서?”


“애기 취급하지 말라구. 이팔청춘인데.”


“…저기, 이팔청춘은 열여섯이거든?”


“…….”




(뎅~뎅~뎅~…)




“오빠 소원 빌어.”


“…….”




뭐라고 하려 했지만 냉큼 눈을 감아 버리는 그녀.


도대체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소원 비는 건 어디서 나온 건지.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뎅~~~)




얼마 후 33번의 타종이 끝나고 노리가 눈을 떴다.




“빌었어? 올해의 소원...”


“뭐, 대충 빌었지.”


”뭐야, 그 대충은.”




서운한 표정을 짓는 노리. 난 잽싸게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소원 빌었는데?”


“비밀이에요~”


“뭐야 또.”


“오빤 무슨 소원?”




윽, 사실은 안 빌었는데.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올려다본다.




“너도 말 안해주는데 왜 나만?”


“…소원 안 빌었구나…?”




이런. 들켰다. 뭐라도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래, 그 얘기를 하자…


난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천천히 말했다.




“…난, 노리가 대학에 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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