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욕심(후속편)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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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후속편)-6




간 밤의 정사가 꽤 무리였던지 지원은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느라 고생을 해야만 했다.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까지 이어진 민주와의 섹스는 지원에게는 즐거움도 주었지만 회사에서 


큰 고역을 안겨다 주었다.


전날 참석했던 과장들은 말짱한 모습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기 일에 몰두해 있었고 가끔씩 눈을 


흘기며 심과장이 지원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띄울 뿐이었다.


술 냄새는 가셨지만 쓰려오는 속과 나른한 기분이 꽤 피곤하게 느껴졌고 지원은 무거워진 몸을 추스


리며 정신을 가다듬고는 업무에 집중하려 노력을 한다.


오늘은 아무래도 중대한 발표가 있을 거라는 박과장의 언질도 있었고 모르는 척 가만히 숨죽이고 사


태만 보라는 노과장의 충고도 있었다.


지원은 사무실내에 흐르는 정적 속에 눈치만을 살피며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서 울려대는 휴대폰의 진동에 지원이 의아한 듯한 표정이 되고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액


정에 보여지는 번호를 확인을 한다.


“으응……지혜야…..”


“어떻게 된 거야….??…전화 한번 안하고…….”


간밤에 갑작스레 술자리에 끼게 되면서 지원은 연락을 하지 못했고 몇 번을 연락을 했지만 반응이 없


는 지원에게 아침부터 다소 토라진 듯한 지혜의 음성이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도 있었지만 여러 번의 연락에도 전화 한번 못했다는 게 괜히 마음에 걸린 지원은 


나직한 목소리로


“으응….미안해…..나중에 말할게….지금은 좀 통화가 곤란해……..”


“무슨 일 있어….??……”


“곧 알게 될 거야……….”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심과장의 시선에 지원은 주눅든 듯 폴더를 접고는 책상에 파묻


혀 가고 심과장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무언의 압력을 보내오기 시작한다.




오후2시.


사내게시판에 벽보가 붙었고 홈페이지에 경고성이 짙은 공고문이 게재되었다.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소란스러움이 전략팀의 사무실에도 번져오며 몇 개의 전화에서 벨이 울려대었다.


긴장된 모습의 실무 과장들이 전화를 통제하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회사 내에 감돌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감사부와 법률팀에서 보고서가 올라왔고 급기야 퇴근을 앞 둔 시간에 자금담당 이사가 경


찰에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숨을 죽인 듯한 적막감이 자금담당 이사의 연행으로 잦아 들면서 회사는 정적 속에 묻혀 간다.




“어떻게 된 거야…..??…….”


“그대로야…..임원진 및 실무 과장이나 부장급까지 부정이 이번에 탄로 난거지…..”


“설마……그 막강한 구이사까지 경찰에 연행 될 줄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회사의 존폐 위기까지 달렸던 문제인데….거기다 공금유용 된 돈이 어마어마 


한 모양이야…..한 동안 회사도 조금은 시끄러울 것 같아…..”


“그래서 자기가 어제 연락을 못했구나…..??……”


“후후후……좀 그랬어…….”


지혜의 눈 속에 지원의 행동을 이해하겠다는 듯한 수긍의 빛이 흐르고 조금은 안심이라도 되는 듯 어


둡던 표정이 풀어진다.


회사를 나온 지원은 지혜가 기다리던 카페에서 긴장의 끈을 풀며 대화를 나눠가고 지혜는 점점 표정


이 밝아지며 눈 속에 기쁜듯한 감정을 싣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지혜는 간밤에 아무 소식을 전하지 않는 지원의 행동에 불안함을 느껴야 했다.


매일같이 저녁시간을 함께 했고 지원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행복을 느꼈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


이 행방을 알 수 없는 지원 때문에 밤새 잠 한숨 자지를 못했다.


꺼져있는 전화기에 몇 번을 음성을 남겨 보았지만 대답 없는 지원에게 혹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고 혹 자신에게 회의를 느껴 자신이 싫어진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다행히 회사의 일로 동료들과 있었으며 자신이 근무하는 부서에도 지원의 속한 팀에서 시작된 커다란 


사건이 밀려들며 그 진상을 알 수가 있었고 가슴 졸였던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게 퍽이나 다행스


럽게 느껴졌다.


밤사이에 다소 피곤해 보이는 지원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지혜는


“자기야….뭐 먹고 싶어…..??…오늘은 내가 맛있는 걸로 저녁을 살게…….”


“저녁….??…..글쎄…뭐 별로 생각은 없는데……”


“아냐…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밥 먹고 집에 가서 좀 쉬어….자기얼굴이 밤사이에 반쪽이 된 것 


같아 좀 안쓰러워…….”


“후후후…..이 정도에 뭘…..앞으로가 산너머 산인데……..”


“신촌에 맛있는 고기집이 있다고 하던데….이름이 뭐라고 하던데…..잠시만……”


지혜는 걱정스러움이 많았던지 많은 말을 하며 간밤의 불안함을 씻어내고 지원은 오늘따라 호들갑스


런 그녀를 보며 미안함과 자신을 생각하는 지혜의 마음을 읽어내며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한다.


재잘대는 모습이 가히 나쁘게만은 보이지가 않았고 애교스러움과 포근해지는 안도감도 느낄 수가 있


을 것 같았다. 


“응…언니…..거기 있잖아…신촌에서 고기 맛있게 한다고 소문이 난 집….그 집 이름이 뭐야…??….”


“…………..”


“왜….??….어디 아퍼…..??…..근데….왜….??…목소리가 힘이 없네…..무슨 일 있어….??…”


지원은 지혜가 통화하는 상대가 지수라고 생각이 들자 불현듯 싸늘한 긴장이 몰려들었다.


괜히 지혜의 통화내용에 신경이 쓰였고 혹시나 어떤 말을 해올지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알았어….그니까….좀 조심하지……약은….??….우리 저녁 먹고…언니집에 놀러 갈까….??…….”


“…………….”


“알았어…..그래……나중에 통화해…….”


통화를 끝내는 지혜의 표정엔 아무런 걱정스러움이 없었고 밝게 웃는 모습에서 지원은 안도감이 느껴


졌다.


지혜와의 통화에서 지수는 다소 힘이 없는 느낌이 들었고 아마도 자신과의 일로 아직도 상처를 받은 


듯 지원은 생각했다.


카페를 떠날 때까지 지원은 지수를 생가하고 있었고 지혜는 회사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거라는 생각을 


하며 갑자기 말이 없어진 지원을 바라보기만 했다.




열흘이란 시간이 흐르며 회사는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부패 관련 직원들이 스스로 회사를 떠나며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고 손실에 따


른 보상도 법적으로 진행 중인 상태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이 보였다.


소수의 전략팀이 이번 구조조정의 배후에서 치밀한 작전으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가 잇따


르며 회사 내에서 전략팀의 위상이 높아 졌고 또한 회장의 직속 사정팀이란 별칭까지 생겨나며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원 역시 입사 동기들 중 최고의 인재로 평가 받으며 부러움의 대상으로 동기들의 입에서 오르내리


며 유명 인사가 돼 있었다.


회사 내에서 간간히 부딪히는 동료들의 눈 속엔 언제나 부러움과 질투의 빛도 보였고 전에 없이 친근


감을 과시하는 동료들도 생겨났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못해 쾌감을 느낄 정도의 시간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업무에 빠져 들며 열정적인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재과로 들어서며 혹시 누락된 사항은 없는지 문의 입구에서 서류를 훑어 보고는 


다행스러운 미소를 띄며 자재담당 대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홍대리님……저…이것 내일까지만 보고서 올려 주실 수 있으세요……??…..”


자신의 앞에 다가 온 지원을 힐끔 처다 본 홍대리는 무심한 듯한 얼굴로 지원의 내미는 서류를 받아 


보고는 놀란 듯 눈을 뜨며


“아….아니…..이걸 왜….??…….”


“자재 내고가 맞지도 않고…..수급 단가도 좀 이상해서…..저희 팀장님의 조사를 하라고 지시를 해서요…….”


“허험…..이거야…원…..다 끝난 것 아닌가….??…근데 왜 또 들쑤시는지…..”


낮은 목소리였지만 지원의 귓가로 불만스러운 듯한 홍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지원은 다소 커지는 


목소리로 


“그럼 부탁 좀 드릴께요…..참….감사과에 작년 자료와 일치 시켜야 하니….참고 하세요…”


눈이 커지는 홍대리의 표정이 하얗게 변해가며 멍한 듯 지원을 바라봤고 지원은 입가에 웃음을 띄우


고는 등을 돌리며 자리를 떠난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홍대리는 입이 얼어버린 듯 엉성한 자세로 일어서고는 


손만 내저을 뿐이었다.


지원은 사전에 자재과 내부의 비리가 전에부터 관례적으로 생겨났던 걸 알고 있었다.


전략팀의 과제 중의 하나가 우선은 자재과를 쥐고 있어야 전략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았고 비리 조


사보다는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포석임을 느끼고는 홍대리의 표정에 모른 척 미소


를 짓고는 자재과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홍대리의 표정과 엉성한 자세로 당황스런 행동이 우스웠는지 지원은 혼자서 실소를 터트리며 막 자재


과를 나서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음에 슬쩍 몸을 피한다.


“어…억….”


“어이쿠…….”


서로가 피한다고 했지만 물컹거리는 느낌과 함께 가벼운 듯한 충돌이 자신의 가슴으로 느껴지며 뒤로 


넘어지는 여인이 보였다.


지원이 눈이 순간적으로 커지며


“어헉…….김과장님…..”


“아야……크으……너…..정지원……..”


“죄……죄송합니다….그만 딴 생각 좀 하다가……”


“아이구….엉덩이야……..무슨 녀석이 바위덩어리 같냐….??…바위에 부딪힌 것 같이….별이 보이는 거 


같다……”


“………괜찮으세요….??…..”


“니 눈엔 괜찮게 보이냐….??….빨리 안 일으켜 세울래…..??…”


“예….예……”


지원은 하필이면 김지영과장이냐는 듯 다소 찌푸린 표정으로 손을 내밀고는 김과장을 일으켜 세우고 


아직도 투덜거리는 김과장이 지원을 올려다 보고는


“여긴 왜…??…또 누구 자르냐…..??….”


“예에….??….하하하 과장님도….내가 뭐….저승사자라도 됩니까….??….”


“니들이 저승사자지…..사람이냐……??…..”


김과장의 눈 속에 불만스러움이 있는지 지원을 바라보는 눈빛에 차가움이 보여졌다.


괜히 주눅드는 느낌이 김과장을 만나면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은


데도 지원은 말을 아끼며 김과장의 모습을 지켜보고 김과장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 답답한지 


고개를 돌린다.


“에휴…..신삐리 니가 어떻게 알겠냐….??….니 위에 놈들이 다 알아서 하는데……”


김과장의 말에 지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김과장을 바라보았고 김과장은 괜한 얘기


를 꺼냈나하고 지원를 바라보고는


“아니다….그냥 해본 소리니….흘려 들어라……..”


“………..??………..”


말을 마친 김지영과장은 자재부로 들어갔고 지원은 한동안을 김과장의 내뱉은 말을 되새기며 잔걸음


으로 자재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알 수 없는 또 다른 내막이 있을 것 같았고 김지영과장처럼 정도를 걷는 이의 얘기라면 무


언가 사정이 있을거란 짐작만 하고는 지원은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오늘따라 유난히 지원에게 일거리가 밀려 들었다.


자료조사에서부터 잔잔한 심부름까지 쉴 틈이 없을 정도의 분주함에 지원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


를 보내며 저녁을 맞이해 갔다.




시계 초침이 8시를 가리키며 지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서류에 몰두한 채 자료를 모아가던 지원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집으며 지혜가 거는 전화라


고 생각이 들었고 퇴근하면서 연락을 하고는 아직까지 전화가 없음에 지원은 실소를 머금고는 휴대폰


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지혜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액정에는 처음 보는 번호가 찍힌 채 계속 울어 댔고 의아한 


표정의 지원은 폴더를 올리고는 버튼을 눌러간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저………저….지수에요……”


지원은 숨이 멎는 듯한 놀라움과 물밀듯이 밀려드는 긴장감에 온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예상치 못한 연락이었지만 언제가는 한번은 되 짚어 볼 일이었고 그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


며 지원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예……안…..…녕…. 하셨어요…??....”


“저기…….얘기를 좀 했으면 해서요………..”


힘없이 느껴지는 지수의 목소리에 지원은 불안하면서도 알 수 없는 당혹감이 생겼고 괜시리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전에 없던 서먹함에 한동안 정적이 흐르며 지원을 긴장시킨다.


“……지난번……일……”


“……….??………..”


“그냥…..잊었으면….해요…….지혜…대하기가….너무……..”


떨리는 지수의 음성이 자꾸만 말을 끊기게 만들며 수화기너머 마른 한숨이 흘러 나왔다.


여전히 말이 없는 지원은 한동안을 멍하니 전화기만을 든 채 지수의 떨리는 느낌을 느껴야 했고 목이 


메이는 듯한 지수의 목소리에 측은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미안해요……..”


“……..아뇨…..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게 아닌데……”


갈라진 듯한 지수의 음성 뒤에 지원이 그녀를 위로하듯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수화


기 너머 지수의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 긴 시간을 고통과 후회의 나날을 보냈으리라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엎질러진 물인데


빨리 그녀를 달래고 상처를 치료해야 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흐느낌이 길어지며 지원은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실수때문이라며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


작하고 차츰 슬픔을 삭여가던 지수도 조금은 나아진 듯한 느낌으로 대화에 참여를 했다.


한번쯤 조용히 만났으면 하는 그녀의 바램을 들으며 지원은 그러마하고는 전화를 끊었고


지원은 긴장의 순간이 풀리며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왠지 그녀의 흐트러진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


녀의 촉감에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빠져 오는 것도 같았다.


지원은 자신의 알 수 없는 이중적인 감정에 왜 이럴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지만 떨쳐 버릴 수 없는 지


수의 잔영은 내내 그의 머리 속을 헤매고 돌며 갈등에 휩싸이게 만들기만 할 뿐이었다.




회사 내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행되면서 전략팀의 업무는 날이 갈수록 바빠지기 시작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매출에 대한 비중이 점점 회사를 압박하고 있었고 얼마 전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자금압박이 심해지면서 각 부서에 새로운 지침이 내려지고는 긴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원은 아침부터 각 부서에서 올라온 보고자료를 취합하고 정리하면서 부지럼을 떨었고 여전히 목석 


같은 실무과장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책상에 머리를 박고는 똑같은 모습으로 일에 전념할 뿐이었다.


냉정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에 절로 감탄도 했지만 솔직히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


도 없지 않았다.


저렇게 조용한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실험적인 전략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도출되었고 회사는 말 잘 


듣는 소처럼 조용히 움직일 뿐이라는 게 지원에게는 마냥 신기하게만 생각이 되었다.


몇 일이 지나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심과장의 말에 다소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지원은 피곤에 지


친 듯 정리된 자료를 들고는 팀장에게 다가갔고 팀장은 무심한 얼굴로 자료를 훑어보고는 고개만을 


끄떡인다.


요즘 들어 부쩍 말이 없어진 팀장은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았고 하루의 절반을 부장실에 들어가서는 모


습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지원의 눈에 보여진 팀장의 모습은 갈등과 고뇌의 빛이 보여지기도 했고 때론 허무에 젖은 모습으로 


어깨를 늘어뜨린 채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의아한 생각이 점점 깊어지며 팀장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지원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치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고 심과장이 조용히 따라오라는 듯 손을 흔들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든 두 사람이 자리를 한곳은 높아진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옥상의 벤치였고 


담배를 뽑아 문 심과장이 연기를 뿜어 올리며 지원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꾸 의구심을 가진 눈으로 보지마라…..고릴라 팀장도 사람이니깐 ….아마 심적 고통이 클거다


……..”


“……….??……………”


“너도 이제는 이 정도는 알아두어도 될 것 같아서 얘기를 한다만……..후우…..회사가 살아날려면 얼마


간의 제 살은 도려내야 할거라고 생각한다…..물론 회사에 충성을 다했던 사람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


도 있겠지만…..회사가 있어야 직원도 필요하니깐 말야……”


“또……구조조정이 있나요…..??……”


“그러겠지…….조만간…….”


“허억……얼마나….??…….”


“다음주부터 시작 될 거다…..조용히 입다물고 지켜보기만 해라…….조직이 너무 비대해진 까닭에 회


장님의 결단을 내리신 것 같다……전임 회장님이 너무 인적구조만 팽창시킨 게 회사로서는 큰 위협이 


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그리고…넌…..작업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동료들 지원이나 제대로 


해야 할거다……한 며칠은 우린 집 근처에도 못 가니 말이다…” 


지원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불안하고 떨리는 느낌에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 봤던 직원을 몇 일 있으면 냉정히 회사 밖으로 내쳐야 하고 그들은 살기어린 눈으로 자신들을 


볼 거란 생각에 소름마저 돋는 듯 지원은 굳어진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높아진 가을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차가운 겨울에 선 듯 지원은 몸을 떨며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한잔 두잔 벌써 몇 병이나 먹었는지 지원은 사물이 흐려지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기를 느끼


기 시작했다.


시간은 깊은 것 같지 않은데 회사를 나서고서는 혼자서 포장마차의 구석을 차지한 채 서너병의 소주


를 마시면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


마음 속에 묵직하게 자리한 알 수 없는 정체에 대해 지원은 답답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술잔


에 손을 대게 만들었고 비워진 술잔에 술을 따르며 비워지는 빈병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주마……..여기…술……………. 한병…더………”


“아이고…..그만해요…..좀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아……아니….요…..나…..끄윽……얼..마……..안 먹……었어요…….”


“아이구….벌써 네 병이나 마셨우………그러니 몸 생각해서….그만해요……..”


나이가 지긋한 듯한 주인여자는 걱정이라도 되는 듯 지원을 바라보며 만류를 해가고 지원은자꾸만 같


은 말을 반복하며 술을 주문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다가 온 것도 모른 채 지원은 술을 달라며 주인여자에게 손을 내밀었고 다소 


큰 듯한 목소리가 자신의 옆에서 터져 나옴에 지원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지원…..이게 무슨 꼴이냐…….??…..”


“어억……누….누구…..??……”


“쯔쯔쯧……..아예 맛이 갔구나….너………”


“..어…??…..과장….니….임…….”


“얼마나 마셨길래…..??……….가자…..혹시나 해서 들어왔는데 역시 너 였구나……..무슨 고민이 있다


고 혼자서 오도방정이냐….??……”


김지영 과장이었다.


조금은 싸늘한 듯 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의 표정엔 실망스런 모습이 보여졌고 지원은 취중


이었지만 조심스러운 듯 하면서도 상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어간다.


“그냥……술…술이 먹고 싶어서……….들어……왔어요…….한 병만…….한..병만…더 먹고 갈께요…..”


“무슨 일 있어…..??….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야……??……너 예전에 이러지 않았잖아….”


“크흐흐흐…….나도 모르……겠어요…..어떻게 하고….있는지…….”


김과장은 고뇌가 묻어 나오는 지원의 눈을 보면서 대충 감은 잡겠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떡이고는 나


직한 한숨을 내 쉬었다.


“그만….가자……너 취했어……..”


“끄.윽…….아니…요….나….멀……쩡해요….”


손을 저으며 김과장을 바라보던 지원은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리는 행동에 바닥으로 주저 앉았고 김


과장은 쓰러진 지원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계산을 마친 김과장과 지원이 포장마차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걱정스러운 듯 주인여자의 눈길이 애처


롭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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