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바람소리 - 12부

본문

바람소리-




제 12 부 : 접전의 초입




‘이슈야! 창문으로 짱 쫌 봐라.’




승강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가자며, 삼슈가 이슈에게 소리쳤다.




‘벌레가 면마리 기어드러 오는뎅…’




‘그럴 줄 알았지. 잠깐 있어 봐.’




삼슈는 민기와 엉켜서 계단을 내려가던 중, 어디론가 전화를 때렸다.




‘누님이우? 응..나 삼슈….어찌된 건 아니구….분위기가 쫌 그렇네. 어여 간딴한 것만 챙겨서 튀어 나오슈. 밑으로 내려가지 말고, 옥상으로 통해서 다른 입구로 해서 내려가는 거 있지말구. 택시 같은 거 타지 말고,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응….응…돌아돌아 미행 따돌리고 오는 거, 알져? 거기서 이따가 봅시다. 내가 아까 건네준 열쇠랑 갖고 있져?’




화장을 하는 사이, 삼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희진에게 피신처의 열쇠를 건넨 모양 이었다.




‘일슈, 이슈, 잘 들어라. 입구에 아무래도 두 서넛이 지키는 거 같다. 승강기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덮칠 것으로 보이니까, 너희들은 내가 먼저 내려 갈테니 뒤에 바짝 붙어. 우리랑 비스무그리한 족속들 같으믄, 입구가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2진이 뛰쳐 들어 올께야. 내가 방어선을 뚫는 동안, 이슈는 이동차량을 책임지고, 일슈는 강선생 챙기고…..’




‘형, 맞짱으로 가자고?’




‘그럼 어떡 헐래? 아까 신호 못 봤냐? 지금 이곳으로 돈빨이 인원을 보낸 것 같은 데….아니, 저런 나부랭이들 코 깨놓는 거야, 상관 없어도, 너 이 상황에서 어물쩡 대다가 짭새들 건드려서 이로울 꺼 없다, 알아?’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으이그 이 놈의 짓거리…. 은제나 면해 볼까….’




일슈의 푸념도 잠깐,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이층까지 내려온 일행은 잠시 그 자리에서 대기 했다. 부츠라서 그다지 발목의 흔들림이 심하진 않았어도, 높은 굽으로 인해 활동이 불편하고 몸에 익지 않은 관계로, 어정쩡한 자세의 민기는, 이 상황에서 옳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도 걱정이 되고는 있었다. 삼슈가 무언가 손짓으로 일슈와 이슈에게 지시했다. 그 자리에서 일슈는 자리에 조져 앉아, 가방 안의 컴터를 슬며시 꺼내서 펼쳐 들었다. 그 와중에 귀신같은 솜씨로 무언가를 조작하며, 기둘리는 몇 초의 사이, 둘러선 네 사람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정적으로 인해, 눈알이 다 튀어 나올 지경이었다.




‘칙칙….칙칙….’




‘왠 무전? 여기는 백마, 현재 이상무, 병아리들이 위에서 아직 삐약대고 있숨다…오바….오바……오바? 이거 왜 먹통이야? 아니, 무전기도 혼선이 되나? 쒸펄……’




일슈가 자신의 추적장비를 이용해서 1층의 승강기 좌우에 버티고 서 있던 녀석중에 무전기를 차고 있는 녀석의 주파수를 검색해서, 거짓 신호를 보내고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는 사이, 민기의 옆에 있던 삼슈가 바람같이 계단을 내려가는가 싶더니만, 1층의 승강기 입구로 몸을 날렸다. 민기의 시선속에 삼슈의 몸은 마치 정지화면처럼 공중에 붕 떠서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시간으로도 잴 수 없는 아주 짧은 순간 이었다. 삼슈는 그야말로 아무런 방어 태세도 갖추질 못하고, 무전기를 붙들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으로 나타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영화에서 처럼 치고 받는 것이 아니었다. 삼슈는 엄지 손가락을 벌리고, 다른 네 손가락은 붙여 직각으로 벌린 채, 주먹을 쓰는 법도 없이, 양쪽에 둘러선 두 녀석의 목젖을 향해, 한 손으로 목을 조일 것처럼, 번개 같이 양손을 날개를 펴듯이 날렸다.




‘퍼퍽…’




두 사람은 반항도 못해보고, 숨도 쉬지 못하는 것처럼, 눈이 허옇게 뒤집어 지며, 컥컥대며바닥에 고꾸라지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던 무전기 마저, 녀석들의 목을 쳐대기 무섭게, 동시패션으로 받아 건져 올리는 삼슈의 그 놀라운 민첩성…..민기의 놀라는 얼굴이 더 놀랍다는 듯한 표정의, 일슈와 이슈는 어서 가자며, 쓰러진 두 녀석들의 사이로 민기를 잡아 끌었다. 민기의 판단으로 볼때, 쓰러진 자들은 이미 기도가 내부에서 파열 되었거나, 목젖이 아그러져, 그대로 두면 질식에 의한 사망에 이를 것으로 보였다. 그와 동시에 삼슈가 받아든 무전기의 시그널이 들어오고 있었다. 삼슈는 무전기를 일슈에게 던지고, 아파트의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살폈다.




‘이슈, 나랑 뛰자!’




‘예….써’




이슈와 삼슈는 차를 갖고 오기 위해서 인지, 현관 앞의 안전이 확인되자, 스프링 처럼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럼, 희진이는?’




밖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일슈가, 돌아다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걱정 마서여. 어련히 누님이야 잘 피했을 라구. 그리고, 이따가 볼텐데, 뭘 그리 조바심?’




그 사이, 아파트의 입구에 차가 멈추어 섰다.




‘갑쇄다.’




다행히도 그 사이, 승강기를 이용하는 주민이 없는 관계로, 수위 아저씨는 1층 승강기 앞에 취객처럼 고꾸라져 앉아 있는 두 녀석을 미처 보진 못하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는 순간, 저 멀리에서 소리치며, 달려오는 몇 무리의 사람들이 보이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그들도 따라 오려다, 다시 자신들의 차로 돌아가는 무리, 그리고, 무전을 때리고 우왕좌왕 하는 무리들과 아파트로 다시 튀어 들어가는 무리들로 나뉘어져 허둥대는 꼴로 보아,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부류들로 보였다. 순전히 감시가 주 업무 였다가, 삼슈가 일으킨 불의의 역습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아그러지고, 그에 따른 후차적인 대비책 마저 없던 조무래기들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 차는 쏜살같이 아파트의 구역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왜 가다말고?’




차가 아파트 입구를 떠나기 무섭게 바로 옆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쥐새끼처럼 밀쳐 들어가 버리는 자동차의 행로로 인해, 민기가 의문을 제시했다.




‘역시 원칙에 강한 의사양반 일쎄. 이슈형이 보통 내기가 넘어여. 아시겄수? 자…다 왔네…내리지 뭐허쇼?’




차에서 다시 내리며, 민기는 의아해 했다.




‘강선상! 아니, 자동차 추격전은 아무 때나 한답디까? 이렇게 초반에 힘을 빼서야 우리들, 슈샤인 보이즈가 아니쥐. 저렁 맹탕들 앞에서 기름 땔 일 있수? 오죽이나 기름값이 비싸야쥐, 안 그러여요, 이슈형?’




민기는 그제서야, 그들의 의도를 알아 차렸다. 차가 출발 하면서, 그들이 이미 차의 번호판을 외웠을 테고, 주변에 짱 박혀 있던 다른 무리들에게 차량의 도주를 알렸을 테니 그 차를 계속 몰고 다닌 다는 것은 날 잡아 잡수하면서 다니는 것 밖에 더 되겠느냐는 일슈의 설명에 지극히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이슈는 차에 붙어 있던 번호판을 떼어서는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차의 트렁크에서 무언가를 꺼내는데 보니, 그 모양이 꼭 등에 지고 한 여름 철, 논에 뿌려대는 농약 살포기의 형태로 보이고 있는 것을 꺼냈다.




‘저건 또 뭐지?’




‘아니, 이렇게 좋은 외제차를, 색맹이 아니고서야 그것들이 색깔로 구분해서 추적하면 월매나 금방 찾아대는지 알기나 아쇼? 괜히 이슈형이 운짱으로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니깐? 저 통을 손으로 압축해서 뽐뿌질을 해서리 뿌려대면, 어찌 되는지나 보고 계시쇼.’




뚜껑에 달린 손잡이로 펌프질을 해서 그 통에서 딸려 나온 분무대 같은 것을 차의 전면에 분사하는 이슈, 옆에 둘러선 민기의 코가 간질 거릴 정도로 화학약품의 냄새가 강했지만, 이슈는 인상 하나 변하질 않고 있었다. 아마도 그 냄새에 익숙한 모양 이었다. 물을 뿌리듯이 차의 전면에 줄줄 흐를 정도로 뿌려댄 화학약품이 차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민기는 입이 쩍하니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 아셨수? 자동차 색이 칵 변했잖수? 이기 다 마술의 일종 이쥐. 저 색깔 밑에 얼마나 많은 다른 색을 이슈형이 도장해 놓았는지는 아무도 모르져. 물로 지워지지도 않는 저 칼라가 저마다 다른 성분의 화학약품에서만, 땟국물 처럼 쏴악 씻겨나가는 거요. 물건도 비싼 외제찬데, 또 써야 허덜 않겠수? 바닥에 떨어진 저 벌건 찌꺼기는 어떻게 되냐구? 의사 양반이라면 화학을 쪼매 알턴데….촉매와 환원, 산화…요정도 알려주면 힌트가 될라나?’




겉에 도장된 특수도료와 제거용 화학물질이 만나 엉긴 후에 버려진 찌꺼기는 혹여 주변을 뒤지는 사람들에게도 발각되지 않도록, 공기중의 산소인지, 이산화탄소 인지와 결합되어, 물과 같은 액체로 변하면서 자신이 긁어낸 색소를 무색화 시키는 기능마저 갖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그 차를 다른 자리에 주차시키니, 아주 감쪽 같았다.




‘그럼 우린, 저 색이 바뀐 차를 타고 가나여?’




‘아니, 이렇게나 무식이 통통 튀남?’




‘저리 가시저.’




이슈가 일행을 안내한 자리에는 까만색 고급 승용차가 서 있었다.




‘서얼 시내에 이렇게 세워저 잉는 제 차만도 50대가 너머여. 그 주차비도 엄청 비싼뎅….’




이슈가 추격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따라잡지 못하는 강점은 교통이 막히거나, 오도가도 못하는 곳을 교묘히 피해가는 동물적 감각도 감각 이려니와, 차마다 장치된 특수 기능의 네비게이션 하며, 시내 곳곳에 거미줄처럼 포진되어 평소에는 장기 주차의 형태로 고히 잠자고 있는 그의 차들을 들 수 있었다. 그 자동차 마다 특수도장과 네비게이션들이 장치되어 있고, 민기에게 현재로서는 말할 수 없어도, 보통 차에는 없는 기가 막힌 부분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설명 이었다. 게다가 시야에 한 두대만 가리면, 추적에 아무리 능수능란한 요원이라도 헷갈리기 쉽도록 요리조리 빠져대는 곡예운전과 급진가속, 급회전은 누구도 이슈를 따라잡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설사 용케 따라 잡았다고 할지라도, 이런 방식으로 곳곳에 마련된 대체 차량으로 바꾸어 타고, 번호판까지 갈고 나타나면, 뒤쫓던 추적 차량의 바로 옆에 차를 대 놓고, 유리창을 열어 놔도, 알아보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슈형, 냉장고에 마실 거 쫌 채워놨쓰?’




‘오케바리징!’




그 고급 승용차는 뒷 좌석에 소형 냉장고도 갖고 있었고, 그 안에는 음료수가 가득 차 있었다. 조수석에 삼슈가 앉고, 뒷 좌석에 민기와 일슈가 앉았는데, 일슈는 차 안에서 그 컴터를 다시 열었다.




‘쫌 보실라우? 우리가 월매나 열려진 좋은 사회에서 살고 있능가를? 형, 출발 헙시다!’




세 사람은 민기의 뛰는 가슴과 달리,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태평한 얼굴로 대화를 나눠갔다. 차가 출발하고, 복작 거리는 시내의 도로에 나왔어도, 세 사람은 긴장하는 모습조차 없었다. 일슈는 무엇보다도 공중망을 이용해서 아파트의 서버로 먼저 들어갔다 와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파트 1층 입구의 CCTV카메라 녹화분을 자우기 위함 이며, 기왕 이렇게 쌈이 벌어진 바에는 영상을 조작하고 자시고도 필요 없이 와장창 포멧을 시키고 나오는 것이 오히려 뒤끝이 후련할 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거지반 작업이 완료 되었는지, 




‘의사 선상님, 긴장 푸서여. 그렇게 이쁘장한 얼굴로 몸에 힘주고 그러먼 쓰나? 화장 망가지구로….자, 오늘의 마술쑈 제 2 탄, 열린 문민정부, 열린 세상, 열린 지갑들…….보셩!’




일슈가 보라고 한 화면은 별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복잡하게 다단계로 열린 폴더와 창들 사이로 가장 크게 열린 곳으로 FAX의 내용처럼 혹은 텔렉스 처럼 계속해서 들어오는 숫자와 알아보기 힘든 정보들의 홍수가 보이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거여?’




‘보시고도 모르시겠어여? 카드번호랑, 사용자 정보 잖아여? 이렇게 길거리를 지나가는 도중에도 쉴 새없이, 곳곳에서 그어대는 신용카드, 직불카드, 카드,카드,카드의 홍수…..힝, 사용자가 쥐고 있는 계산서에만 카드번호가 지워져 있어도, 기계는 그렇게 카드 주인들에게 뺑끼를 치고 있을 뿐, 그 카드의 전체 정보를 어딘가로 보내야 허거덩요. 용량이 크고, 사용자의 빈도가 많을 수록, 잘 모르시겄지만도, 라우터네, 허브네, 브릿지들은 용량이 살찌고, 그런 대용량을 전송 하다보니, 기계의 크기도 점차 커지고, 고속화, 고속화…..짠짠짠……, 주위로 정보가 유도되는 범위는 날로 위험수위로 치닫다 보니, 무선을 선호하게 되고, 이렇게 그 정보들이 똥파리처럼 훨훨 공중을 날아 댕긴다는 사실, 모르셨져? 맘만 먹으면 옛날 국군의 날 행사 때, 길거리로 쏟아지는 꽃종이처럼 앉은 자리에서 돈다발이 저절로 굴러 떨어진다는 거….신나는 일 아니겄어여? 안전함을 보장한다 고라고라? 웃기는 짬뽕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작은 바램이 있다고나 할까여?’




‘근데, 그걸 왜 나에게?’




‘이런 건 카드 뿐만이 아니란 걸 보여 드리려구여. 뭐 CDMA방식은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왠 별 귀신 씨나락 까먹는 개지랄들 떤다고 아뢰주었으면 싶네여. 의사 선상님도 아시져? 퀴즈는 풀라고 되어 있고, 방정식도 답이 나와야 만세 부르고, 암호는 풀려야 전쟁이 끝난 다메여? 아무리 공중으로 쏘아대는 전파를 삼중,사중 암호로 비비틀고 꼬아 보래져? 그거 꼬는데 참가한 놈들 앞에 돈따발 디리 엥긴 담에 어떠케 되는지? 지는 모른 척하고 실타래 푸는 법, 흘리기 시작하면, 가로채서리 바로 FM 라디오 청취, 이거 시간 문제라니깐여. 예전에 아작난 어느 유명인사 마나님의 통화록 들어 보실려우?’




일슈가 들려주는 것은 바로 옆에서 귀를 대고 듣는 것처럼 들리는 이른바, 전화도청록 이었다.




#글쎄….이번엔 걔들은 안돼….#




$누님, 왜 그러우? 저번에 갸들이랑 좋다고 했잖수?$




#너, 디질래? 내가 똥꾸녕 째져서 얼마나 고생 했는지 알기나 알어? 좋기야 좋았지, 너나 갸들이나 간에, 나까정 합쳐서 디리 약처먹고 뒹굴었으니, 뭐가 뭔지 알 게 뭐야? 깨고나니 똥꾸녕이랑 보지가 너덜대고 찢어져서 오줌도 못 눠, 똥도 못 싸…다신 떼씹 같은 거 안하기로 했다, 알아?#




$누님 그러지 말고, 오늘 한번 깝시다. 내 잘해 드릴께. 약도 새로운 게 들어와서 누님께만 특별히 드릴라고 준비 했는데, 영 섭하네.$




#무신 약?#




$이건 먹지 않고 헤롱대질 않아도 되우. 거 담배 끊는 파스 있잖우? 그런 건데, 30분 전에 팔에 떡하니 붙여 놓고 있으면, 홍콩 간다는 거 아니우?$




#그래? 그건 쫌 색다르네…글쎄..어쩌나? 오늘 골프 약속이 있는데……#




$누님 왜 그러슈? 아니, 누님이사 오기만 허면, 알토란 같은 불알이 자그만치 네짝씩, 8개나 굴러 댕기는데, 골프공 보담 못할라구여?$




#그럼 그럴까? 이번에도 찢어 놓으면, 너 다신 안본다, 알쥐?#




민기는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 부인과 놈씨가 핸폰으로 나누는 음란한 대화의 내용도 문제 였지만, 그 음질의 청아함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말을 듣고 살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까발려져 있을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뭐 새삼스럽게 도청 어쩌고, 누가 잘했네, 못했네….참, 기가 막혀서 일반 사람들은 모두 호구 빙신으로 아는 것 같아 답답하대여. 예전부터, 전화 교환원 있던 시절, 아니 그 이전 오랫적부터 염탐꾼이란 단어가 있던 시절부터 도청은 있어 왔다니깐여? 아니, 누가 누구의 꼬투리 쫌 잡아야 쓰겄는데, 도청만큼 재미나고, 쉽사리 흔적없이 걸머 쥘 수 있는 게 또 어디 있느냐 이거져. 미국 아쟈씨들이 청와대 거실에서 나누는 밀담, 손 끝 하나 안대고 들을 수 있는 거 아세여? 사람의 목소리를 아무리 작게 해도 그게 공기를 타고, 유리창을 때리는 그 진동의 미세함을 멀리서 잡아내는 그 기계 하나만 있스믄, 구차 시럽게 도청 버튼을 밥상 밑에 붙이네, 누구 목에 방울을 다네, 이런 짓거리 허덜 않고도, 편하게 중계방송 들을 수 있는 마당에, 왠 도청 잘잘못 타령? 내가 한번 보여 줘여?’




일슈는 아주 다채로운 기술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이거 보이져? 이 삐빅대는 신호가 점차 가까와 지는 거…..이게 다 주변 1킬로 미터 이내 어디엔가에서 도청기기가 주파수를 뿜어내고 있다는 신호라구여. 기업비밀을 빼내기 위해 잠입해서 그 놈의 잘 찍히지도 않는 마이크로 필름 사진기로 도면을 찍어대? 웃기는 짬뽕에, 맛대가리 없는 군만두 싸비스라고 말해 주셔여. 사무실 전기배선 수리하는 척, 혹은 신입사원 들어왔네 하면서 방마다 파티션 추가로 설치허는 사이에, 어디엔가 모르게 콩알만하게 구녕 뚫려있는 무선 카메라에, 도청장치에….., 무신 좇발랐다고, 사람 하나 더 써가며, 오진 적지에 사람을 왜 심어 놓고 벌벌 떨겠냐 이거져. 가끔 일하는 사람들 돈푼깨나 집어 주면서, 설치된 시설물에다 배터리나 갈아주고 오면 그만 인데…..’




‘근데, 왜 이런 걸 나에게 보여주는 거지?’




‘아니, 그걸 몰라서 물어여? 지금 선상님 아줌씨랑 들러 붙어 대가리 박치기 허려는 인간들이 요런 데에 기깔난 아그들 이라니깐여? 귓구녕은 엿을 바꿔 드셨남? 그렇게 얘길 해도, 어딜 갔다 오셨는지, 나 원….’




‘윤서가 무슨 이유로 그런 치들과 맞짱을 떠? 이유가 뭔데?’




‘그거야 저희도 알 수는 없져.’




‘그만 해라. 알려 줘봐야 소용도 없는데…..’




앞 자리에 앉은 삼슈가 넌즈시 타일렀다.




‘셩, 그럼 거기루 가까?’




‘그래라. 운전 조심 허고, 난 쫌 잘테니…..’




민기는 아까부터 똥꾸녕 사이에 끼어서 자꾸만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T팬티의 그 가닥이 못내 불편할 뿐이었다.




‘상대를 잘 못 골랐다니깐 두루, 형 내가 그랬잖수? 덩어리가 꽤 크다구….’




‘어허? 그만 하래니깐 두루!’




‘알았수, 알았다니깐.’




눈을 감은 채로 백미러로 민기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삼슈는 입을 뗐다.




‘이제부터 하는 말 잘 들으쇼.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헌다고 했수. 주구장창 개 끌듯이 데불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이제 웬만하면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 버릇 해야될 시점에 왔다는 거 인정해야 될게요. 쌈을 잘 하건 못하건 간에, 급한 위기가 닥치면, 몇 놈 정도는 치고 빠질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몸에 익히지 않고는, 우리마저 댁 같은 샌님 보호하려다 개죽음되기 십상이니 말이요. 누님 얼굴 다시 보고 싶다면, 우리가 시키는대로 해야 할 거요.’




민기는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일이 꼬여가는 느낌이 들고는 있었지만, 이것이 최선책 이겠거니 하고 참을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행방이 묘연한 윤서가 다시 회사로 숨어 들었다고 예상되는 흉흉한 시점에서 이런 처지 쯤이야, 버텨야 하질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였다. 




‘형, 잠깐 잠들기 전에, 돈빨네 식구들 돌아가는 폼새는 들어봐야 하질 않겠수?’




‘어, 참….그렇네…어여 틀어 봐라.’




일슈는 또다시 컴터를 조작해서는 무엇을 포착 했는지, 컴터의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그건 수색 팀 간에 이루어지는 무전 교신을 감청하고 있는 소리였다. 그 무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음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교차되는 다급한 음성과 지시 사항들로 미루어 보아, 수색이 아닌 추격 비스무그리한 일이 일어나는 눈치가 분명했다.




‘윤서를 찾은 것….. 아닌가여?’




‘어휴, 이젠 풍월까정? 형! 돈빨이 감을 잡은 모냥 이네여. 역시나 사내 어디에선가 숨어 있는 게 분명한 모냥인데, 왜 회사로 다시 기어 들어간 거지?’




‘일슈야, 혓바닥 조심해라. 강선생 옆에 계신다!’




‘아차차, 나의 실수! 아무래도 샤모님은 빠른 시간 안에 잡힐 듯 싶네여. 형, 만일에 사모님이 돈빨에게 넘겨지면, 껨이 쉽게 쫑 나는 거 아니우?’




‘그럴까?’




‘그럴까라니?’




‘돈빨이라면 내가 잘 안다. 냄새나는 시궁창에 코 처박고, 헤헤거릴 인물 아니거덩? 사모님 신원 접수하고 나면, 아마 불똥, 꽤나 튈 꺼다. 그렇게야 되믄야, 우리도 한시름 더는 거이지. 강선생의 결백도 자연히 밝혀 질 거고…..’




민기는 일슈에게 잘은 이해할 순 없어도, 지금의 무전 상황을 해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전 내내 전 사내를 통해 이루어진 신분 확인 작업은 수포로 돌아갔굽쇼, 사람들을 하나하나 내 보내면서, 사내의 지하 주차장 에서부터 이 잡듯이 뒤져 올라 온게, 이제 거의 막바지라고 하네요. 근데, 사내의 보안 경비 시스템에서 계속해서 도주하는 걸로 보이는 센서 정보가 튀어 들어오고 있어서 그걸 쫓고 있는 모냥이라고 하네여. 끽 해봐야, 최상 층에는 임원실과 회장실, 비서실이 고작인데, 어련 하실 라구여. 막판에 회장님 뒤에 붙어 서서, 무셔운 사냥꾼이 쫓아오니 저 쫌 살려 주셈 이러면서 동화속 주인공 흉내나 내는 거 아닌지 모르겄네, 혹시 사모님께서 평소에 공주 기질이 있으셨어여?’




그러나, 민기는 대답 대신 골똘히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근 6개월 동안 골머리를 앓는다고 하던, 그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번뜻 들었기 때문 이었다. 윤서의 성격상, 어느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고야 마는 기질로 인해, 또 엄한 부하 직원들, 초죽음 나겠거니라고만 생각하고 무심코 흘려 버렸던 그 일들….그 일로 인해 이렇듯 괴로운 지경에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살을 맞대고 사신 건지, 아님, 무늬만 부분지, 어떻게 이렇게나 서로에게 무심할 수가 있남? 도대체 서로에게 아는 게 없으니…..요즘 결혼 했다하면 다 이런가?’




혀를 차는 일슈를 나무라기에, 그의 말에는 아주 딱딱한 뼈가 정확히 박혀 있음을 민기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끼익!’




차가 멈추어 섰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민기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그건 희진의 아파트와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오래된 고급 주택가 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민기 일행은 멀리 간 것이 아니라, 천천히 주변을 돌면서 무언가를 살핀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 여기는 별로 멀지도 않은?’




‘참 길눈도 어두우셔라! 그 시력으로 수술은 잘 허시나? 아니, 몇바퀴 뱅뱅 돌고 있던 걸 그렇게나 모르실 수가 있나, 내 참. 지하도에 떨구어 놓으면, 기어이 집가는 길 잃어먹고, 파출소에서 나 살리셈 허면서 주무실 분이네….참……헐…..’




차에서 내리며, 주위를 살폈지만, 너무도 한적한 동네의 한 복판 그 가운데, 여장 차람으로 서있다는 것도 잊은 채, 다리를 벌리고 있는 민기의 발목을 오무리라는 의미로, 툭하고 찬 것은 삼슈였다.




‘아직 모르시나 본데, 지금 선생 모습은 열나 야한 여자란 거 명심하쇼.’




그와 동시에 열리는 대문의 자물쇠소리……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희진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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