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내 삶의 빛, 내 생명의 불꽃, ... - 13부

본문

13. 운명의 그날




다음날 아침 나는 날벼락을 맞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아내가 침실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내게 집어 던지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야! 이 씨… 이게… 이게 무슨 짓이야. 딸 같은 어린 애하고…”




아내는 발가벗고 누워있는 나와 민서의 상황에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헐떡거리며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내가 볼 때 아내의 눈에는 번쩍이는 살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우선 날아오는 흉기부터 피해야 했다. 전화기며 화장품들 그리고 나중에는 거실에 있던 화분까지 날아왔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되고 말았는가? 왜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는가? 나는 눈 앞이 깜깜해져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지만 일단 이불을 뒤집어 쓰고 민서를 보호했다.




“붙어먹을 년이 없어서 어린애야? 그것도 내 침대에서 그 짓을 해? 니 딸한테도 그러고 싶디?”




아내는 울면서 평소에 입에 담지 않았던 상스러운 욕을 수도 없이 해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은 교육을 받고 교양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똑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한참을 집어 던지고 두들겨대더니 지쳤는지 거실로 나갔다.


나는 재빨리 옷을 찾아 입고 민서에게도 옷을 입혔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자 아내가 소파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주희와 주영이가 엄마 옆에서 함께 울고 있었다.


상황이 최악이었다. 아내 뿐만 아니라 딸과 아들까지도 모두 보고 말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을 한단 말인가? 수습할 방도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일단 집에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서를 일단 내 보내고 다시 방으로 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왔다.




그 이후 며칠 만에 나는 자녀에 대한 양육권과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협의이혼을 했다. 마지막으로 주희와 주영이 얼굴이라도 보고싶었지만 염치가 없어서 말도 못 꺼내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수경으로부터는 고소를 당해서 경찰서에 붙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경찰 취조에서 나는 사실대로 다 진술을 했다.


대질 심문에서 민서는 겁에 질려서 말을 못하는 것 같았다. 민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배려하면서 나를 위해 변명하지 않았다. 수경은 엄청난 배신감으로 나를 증오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미성년자 성폭행범에 대한 수사관의 냉랭한 시선과 모욕하는 막말에도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구치소에서 일주일 후에 풀려났다.


수경이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었다. 물질적인 합의를 하지도 않았는데 수경이 고소를 취하한 것은 어쩌면 나에 대한 배신감의 표현이자 자존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경에게 역시 변명도 할 말도 없었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나오면서 나는 갈 곳이 없음을 알았다.


이미 회사에도 알려졌는지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도 큰 충격 때문인지 현실이 정확히 인지되지 않고 당장 앞에 떨어진 일만 좌충우돌 처리하다 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 심신이 너무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어디에서 편하게 자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 쉴 집이 나에게는 없다.


술을 잔뜩 퍼 마시고 여관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늦게 잠에서 깨어난 나는 막막한 현실에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처한 현실을 하나씩 생각하다가 절망에 빠져들었다. 자책과 후회가 밀려왔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 분노하고 절망했다. 죽이고 싶도록 나 자신이 싫었다.


죽음을 생각했다. 산에 올라가서 투신자살? 건물 옥상에서 떨어질까? 욕탕에 들어가 동맥을 절단할까? 음독 자살을 할까?…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하다가 제일 편하고 괴롭지 않게 수면제를 많이 먹고 잠자듯이 죽는 방법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높은 데서 투신을 하는 것이나 칼로 신체를 자해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용기가 없어서 였고, 궁극적으로는 죽고싶은 마음보다는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이 된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고 비장한 마음이 컸었다.


몇 군데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모았다.


소주를 몇 병 사 들고 다시 여관으로 들어가서 안주도 없이 병째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왔던 몇몇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제일 먼저 주희와 주영이 얼굴이 떠올랐다. 추악한 아버지라는 인상을 남기고 가는 것이 한스러웠다.


민서와 발가벗고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만 보이지 않았어도…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웠을 아빠가 이렇게 추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그들에게 안겨준 이 엄청난 상처를 어떻게 씻어줄 수 있을까?


그러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고 어떻게 다시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을 생각하고 한 모금 마시고,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 사람을 생각했다.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애지중지하며 키워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계셨을 부모님에게는 얼마나 불효를 하고 있는가? 죄스러운 마음에 생각이 이어지지 않고 술만 마셨다.


이어서 아내, 수경, 민서… 그리고 친구들…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때 다시 술을 마시고 20알 정도 되는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나중에 내가 깨어난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내가 빈속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약을 먹었기 때문에 토하며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여관 주인이 구급차를 불러 내 생명을 구한 것이었다.


동생들이 면회를 오고 나의 이혼 사실을 알았다.


내가 입원하자 집으로 연락이 갔고 이혼한 아내가 동생에게 연락을 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 위로하고 삶의 의지를 일깨워 주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귀찮을 뿐이었다.


이어서 고향에서 어머니도 올라오셨다.


또 한번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고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은 듯 붉게 충혈된 눈을 봤을 때 이미 많이 우셨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께서는 이혼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고 “어떻게 든 죽지 말고 살아라”고 하셨다.


고향에 내려가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라는 것을 내가 안 죽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누누이 안심을 시켜드려서 내려 보냈다.




이후 나의 생활은 희망과 삶의 의지를 버리고 되는 대로 살았다.


취업을 하거나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게 남아있던 퇴직금으로 빈둥거리며 생활했다. 돈을 다 쓰고 나자 카드를 쓰고 그것을 갚지 못하자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금융거래도 막혔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몇 차례 얻어 쓰기도 했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되어서 결국에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 정도 되었을 시점이었다.




내가 그렇게 나 자신을 학대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가족들에 대한 나의 배신 때문이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안긴 실망 감이 무서워서 였다. 나를 알고있던, 내가 속해있던 모든 사람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살았지만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별로 어려움이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고, 내가 원하는 직장을 얻고,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고, 직장에서 진급하며 승승장구할 것처럼 생각했는데… 내 인생은 지금까지 순풍에 순항만을 해 왔었다. 그러던 것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자 정신적인 공황에 빠져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내면에서 나에 대한 심한 후회와 한으로 자리를 잡으며 계속적으로 나를 학대할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공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급식을 받아먹고 밤에는 지하철 역사에서 구부리고 새우잠을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자 나의 본성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예전의 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초라하고 비굴한 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몸도 쇠약해지고 더 심각한 것은 정신적으로도 불구나 다름없이 변해 가는 것이었다.




시간 감각도 없고, 날짜 감각도 없는 세월이었다.


밝아지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그날의 잠자리를 찾아갔다. 오늘이 며칠인지도 몰랐으며 알 필요도 없었다. 추우면 겨울인가보다, 더우면 여름인가보다 생각했다.


처음에는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조심을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그것도 소홀해지며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느날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서 아는 척을 했다.


언뜻 보니 어릴 적 고향 친구였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고 명절 때 고향에 가면 가끔 얼굴이나 보는 그런 사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도망쳤다. 그리고 근거지를 옮겨서 다시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나는 점점 노숙자 생활에 이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도 생존경쟁을 하며 작은 것에도 서로 싸우고, 자주 마주치게 되는 몇몇 사람도 생겼다.


6~7개월쯤 지난 어느날.


누군가 내 뒤에서 갑자기 덤벼서 내 양쪽 팔을 완강하게 잡았다.


두 명이 팔 하나씩을 뒤로 꺾으니 나는 꼼작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한명이 내 앞에 나타났다.


고향 친구 한태석이였다.




“자식 꼴 좋다. 이게 무슨 꼴이냐 자식아?”




나는 만나자 마자 비웃으며 욕부터 하는 태석에게 불끈 악이 돋아서 양쪽에 붙잡힌 팔을 빼내고 한 방 먹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두 명이 붙잡고 있는 팔을 빼낼 수 없었다.


양쪽을 번갈아 보니 한명은 지난번에 나를 봤던 광호였고 또 한명은 나와 가장 친하고 마음이 통하는 갑수였다.


갑수를 보자 나는 맥이 빠졌다. 그래서 반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풀이 죽어서 그들이 끌고 가는대로 묵묵히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목욕과 이발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혔다. 그 동안 한번도 목욕과 이발을 하지 않아서 알아볼 수조차 없을 만큼 찌든 떼를 벗기고 덥수룩했던 머리와 수염을 본의 아니게 잘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예전의 당당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쇠약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리고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술을 마시며 갑수는 말이 없었고 태석이가 다시 말을 했다.




“한진우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놈이냐? 씨발놈! 대학 나오고, 고향에서는 성공했다고 거들먹거리더니… 그렇게 살 바에야 뒤져버리지 뭐 하러 사냐 새꺄?”


“……”




나는 말없이 태석이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태석과 나는 서로간에 갈등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몇 안 되는 동창생으로 자존심과 뚝심이 있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나와 많이 어울렸던 친구다. 그러나 태석은 공부에서 밀리고 생활 형편이 어렵다 보니 진학을 포기하면서 일찌감치 건달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나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3학년 때 그네들끼리 어울려 다니던 몇몇이 나를 포섭하려다 내가 거부하자 나에게 린치를 가했다. 태석이 거기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태석에게 남아있던 우정을 깨끗이 지워버렸고 태석도 나를 피하고 나도 태석을 만나도 소가 닭 보듯 했다.


세월이 흐르고 태석은 서울에서 사업가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명절 때 가끔 보면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내려왔고 2~3년 마다 차가 바뀌는데 최근엔 최고 사양의 BMW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의 재산이 축적되자 고향에 왔을 때는 많은 돈을 쓰고 간다고 했다.


동창회에 큰 돈을 내고 학교에도 장학금을 내고 갔다고 했다. 동네 노인정을 지어주고 잔치도 벌려주었다고 들었다.


나는 그가 돈 자랑하고 허세 부린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에게서 태석의 사업 이야기를 들었다.


다단계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부동산 컨설팅 등을 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지가 그러면 그렇지 사기치고 다른 사람 피해를 주고 번 돈이구나 간주하며 경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부가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 동안 태석과 이렇게 가까이 마주 앉아 이야기 해본적이 없었는데 내가 가장 비참해져 있을 때 내 앞에 나타나 나를 비웃고 있는 그를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분노를 터트릴까? 그 동안 익숙해졌던 체념을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 낌새를 느낀 듯 태석이 말을 이었다.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 알아 임마! 그런데 내가 너를 왜 찾아왔겠냐? 학교 다닐 때 좋은 정도 있고 나쁜 정도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어렵게 너를 찾은 것은 아니다. 이번 설 때 고향에 갔을 때 네 어머니를 만났다.”


“……”


“너 좀 만나서 정신 차리고 살게 하라고 사정을 하시더라 임마. 너한테 연락도 안 된다고… 세상에 이혼한 놈이 다 너 같이 사냐? 나도 새끼야 원조교제도 해보고 미성년자하고 자보고 다해봤어. 너는 들켰고 나는 안 들킨 것 차이일 뿐이야. 그까짓 것 때문에 그렇게 병신처럼 사냐? 벌써 2년 가까이 되 간다면서…”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다시 의기소침해졌다.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시고 있는데 갑수가 말을 했다.




“나는 광호한테 이야기 듣고 네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마 전에 알고 있었다. 몇 번 찾아와서 보고만 갔어. 그때 나타나 봐야 또 도망가버리면 그만 이라서… 그리고 언젠가는 네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 그냔 내버려 뒀었지… 이제 그만 돌아와라.”




태석이도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오늘 우리랑 자고 내일 고향에 내려가 봐라. 어머니 돌아가시게 생겼더라.”




나는 마음 속으로 ‘그래. 내일은 고향에 내려가자’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오랜만에 말문을 트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태석과 20년 넘은 앙금도 다 걷어낼 수 있었다.




다음날 내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열차까지 배웅 나온 태석이 내게 명함을 주며 말했다.




“다시 서울에 올라올 때 연락해라. 너 그 나이에 그 꼴에 다시 취직하려면 쉽지 않을 거고 내 사업도 커져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나랑 같이 한 번 일 해보자.”




나는 말 없이 명함을 받았지만 태석의 말대로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머니는 태석의 말대로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2년 사이에 더 늙고 수심이 늘어난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늘진 얼굴에 웃음을 띄고 나를 맞아주었다.


아버지도 평소와 같이 별 말씀 없이 묵묵히 맞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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