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찬란한 인생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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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인생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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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익~ 쉬익~’




나는 지금 지나가는 사람들이라고는 한시간에 한두명꼴로 나타나는 한적한 횡단보도 앞에 


서있다. 지나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보다, 신호가 보행자의 신호임에도 불구하고 쉬익쉬익 


하며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더 많은 횡단보도의 앞. 분명히 자신이 그 횡당보도의 앞에


서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들은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 신호에 상관없이 시원하게 


달려간다.




“하아~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그리고 그런 횡단보도 앞에서 아까부터 12월의 칼바람을 맞으며 서있던 나는, 내가 왜 이곳


에서 이렇게 서있어야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지나가려고 횡단보도 앞에서 손을 들고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멈춰주는 이상한 계율이 있는 


이 횡단보도의 앞에서 30분 이상을 서있었던 그 이유를.




-내 이름은 한세준. 가난이란 것을 TV속에서나 보아오던 다른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무척 어렸을 적부터 그것을 피부로, 숨결로, 현실로 느껴왔다. 가난한 시골사람으로서 중


졸이라는 멍에를 안고 너무나 일찍 아내를 맞아버린 우리 아버지. 경력, 학벌, 인맥, 어느


하나 충족하지 못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런 아버지를 써주는 곳 


역시 전무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근근히 살아오시던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 가난으로부터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도망으로 인해 아버지 역시 알콜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셨


다. 반년여간을 집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술을 퍼부우시던 아버지는 어느날부터 상습


적으로 나에게 손을 대기 시작하셨다. 아직 초등학생 1 학년에 불과한 어린 나였지만 어


떻게든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는 아버지의 모습에 항상 너절한 옷 밑으로 시퍼런 멍을 달


고다니면서도 아버지가 하나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술병을 기울이시던


아버지가 너무나 측은할 뿐.




그렇게 또 반년여간을 아버지의 사랑보다는 주먹질로 성장해오던 나는 또 한번의 시련을 맞


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던것처럼 술을 먹으시며 나의 몸에 하나하나 푸른 자국을


만드시다가.. 이제는 그것도 질리셨는지 어느날은 술병을 치우려는 나에게서 술병을 훽-


하고 채가시더니 나에게 휙- 하고 던지시고 말았던 것 이다. 딴에는 맞추려는 의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일로 인해 나는 시퍼런 멍으로 가득한 등가죽에 한줄기 흉한 흉터를 얻을수 있었다. 자


신이 던져놓고도 너무나 당황스러워 하셨던 아버지의 모습. 그 때 아버지는 눈이 내려 냉


기어린 길바닥을 맨발로 뛰쳐나가시며 나를 업고 병원에 옮기셨다. 그때서야 자신이 그동


안 저질러왔던 일들이 피부로 와닿는지 아버지는 병실에 누워 간신히 눈을 뜨고있던 나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아버지는 돌연 돈을 벌


어오겠다며 홀연 멕시코로 떠나버리셨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도 못할만큼 미안하다고, 아


버지라 부를수도 없을만큼 못되먹은 인간이지만 어떻게든 너만은 먹여 살리겠다고.. 용서


를 받을 생각은 없다고.. 그런 메모만 투박하게 남기시고는-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멕시코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시며 한달에 한번씩 송금해주시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나는 고등학생 2 학년의 막바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근근히 살아올


수 있었다. 친척이라고는 시골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니 하나 뿐, 누구하나 아는 사람도, 


친인척도 없는 서울이라는 냉정한 도시에서 한칸짜리 단칸방에 세를 들어 어떻게든 살아왔다.




하지만 몇 달전. 아버지께서 십년이상을 일해오시던 멕시코 타이어 공장에서 작은 사고를 


당하셔서 허리를 다치시게 되었다. 그로 인해 한달에 한번씩 송금해오던 금쪽같은 생활비도


당분간은 기대할 수가 없게되었고 어떻게든 생활비를 보내주시겠다는 아버지를 뜯어말린


나는 세달간을 그동안 모아왔던 얼마안되는 저축금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 힘들었던 세달여가 끝나고- 통장에 남아있는 잔고도 바닥을 보이면서 자연스레 집세를 


달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언성도 높아졌다. 정말 이 지긋지긋한 가난은 18년을 나를 놓


아주질 않는구나- 하는 한심한 생각에 어떻게든 대학 진학의 꿈보다 곧장 현실을 대처해


먹을수 있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던 나는 당장 먹고살 돈도 없다는 냉정한 현실의 벽


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로부터 어떻게든 살아보려 여기저기 굴러보고 기어봤지만- 딱히 나에게 내려지는 동앗줄 


같은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몇일 여간을 어떻게 살아남을지 궁리해보기 시작했고.




지금 이 순간에-




한가지 극단적인 결심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




내가 이 일주일간을 생각하고 생각한 ‘어떻게든 살아남고,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는’ 획기


적인 방법은 바로- 보행자 신호도 무시하고 차들이 시원하게 질주하는 이 횡단보도에서...




“훽! 하고 뛰어드는 것이지!”




그렇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보행자 신호도 무시하고 차들이 쌩쌩 다니는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뛰어든다. ->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남을 각오로 차에 치인다. -> 그리고 합의금과 보험금을 두둑히 챙긴다.


라는 산뜻한 결론이 나오는 심플한 방법이다. 




아차, 나. 보험은 안들어있구나. 보험금은 취소.




누가 들으면 정말 절로 미친놈소리 튀어나오는 돌아버린 계획이지만- 이 지겹도록 따라오


는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올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나의 머리가 말한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 흉터의 원인을 없애버릴 수 있다고- 항상 들어오던 가난뱅이라는 소


리를 이제는 안들을수 있다고- 이제는 그 춥고 작은 단칸방에서 쪼그려누워 자지 않아도


된다고- 이 한번으로 아버지는 돌아올수 있다고-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머릿속으로부터 들려오는 이 참을수 없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나는 이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 신호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저 신호등이 빨간 불을 내고 있지만, 저것이 


파란불로 바뀐다면- 나는 주저없이 뛰어들겠다고 망설이는 가슴을 다잡고 다잡고 또 다시


잡았다.




몇 번을 뛰어들겠다고 어슬렁거리다가 끝끝내 주저하는 발끝을 어쩌질 못하고 지금까지 서


있었지만. 한번 끔찍하게 가난하고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었던 옛 시절이 


잠시 머릿속을 지나가자 떨리던 발끝도 조금은 그 떨림을 멈추어가는 것 같다.




낙인과도 같이 나에게 남겨진 가난이라는 상징- 그것은 바로 등에 남겨진 하나의 흉터.


그것이 아직도 이따금씩 쓰라릴 때가 있다. 분명히 의사선생의 말로는 완전하게 완치가 되


었다고 했는데- 그 옛 시절을 생각하면 쓰라리는 마음과 함께 등의 그 낙인이 뜨끔하고 


아프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빨간 신호등이 푸른 빛으로 바뀌려고 그 빛을 잠시 점멸했을 때. 등


의 흉터가 아려온다. ‘어서 저곳에 뛰어들어!’ 라고 말하는 듯. 평소보다 조금 더 아파오는


등의 통증에 떨려오던 손끝과 발끝을 한번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저기 몇 미터 뒤에서 시원하게 달려오는 한 고급 세단을 바라보았다. 저 


속도로는 이 짧은 거리안에 멈출수 없다- 라고 그 짧은 시간을 생각한 순간 내 몸은 슉-


하고 횡단보도 안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퍼억!’




사람이 차에 치이는 거라고는 생각할수 없을만큼 선명한 파공음을 남기며 나의 몸은 붕- 


하고 뜨더니 몇 미터 떨어지는 자리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거이거.. 잘하면 죽겠는데-’




그 짧고도 긴 순간에 점점 얼굴로 가까워져가는 아스팔트 도로의 표면을 바라보며 나는 이


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고 태연한 걱정을 하며 방금까지는 선명했던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가는 걸 느꼈다.




“.......! 아아아앗! 기사 아저씨! 사람을 쳤잖아요! 이거 어쩔거에요! 좀 천천히 가라고 누누


히 애기했거늘!”




“아니.. 아가씨가 팍팍 빨리 좀 밟으라고 방금까지 말씀을...”




“에이! 내가 언제 그런말을 했어요! 그것보다 어서 빨리 저 사람 좀 어떻게 해봐요! 우와, 


피봐! 이 사람 죽는거아냐?”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를 두고 뭐라고 왈가왈부 떠들어대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


지만, 이내 무시하고는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까지 처음 당한 교통사고의 그 생생했던 기억이 방


금 일어났던 일처럼 선명한 가운데,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켜가며 정신이 든 곳은 바로


새하얀 천장이 반겨주는 청결한 분위기의 병실.




일어나보니 이 병실의 하나뿐인 침대에 내가 누워있었다. 차도에 뛰어들었을 때 병실 아니


면 하늘나라에서 눈을 뜰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넓은 병동에서 단독


침대를 떡하니 차지하고 누워있으니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드는건 사실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는 아까부터 등 뒤의 창문에서 얼굴에 내리쬐는 햇살이 신경쓰여 오른


팔로 침대를 집고 일어나려고 하니- 이게 웬걸. 아까부터 어쩐지 오른팔이 뻐근하고 은근한


압박이 있길래 뭔가 했더니 단단한 깁스가 둘러쳐저 있다. 그에 놀라 황급히 왼 팔을 


바라보니 다행히도 그쪽은 멀쩡한 모양. 링거가 꼽아져 있다는 것 말고는 멀쩡한 모습에 


웬지 모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하아... 다행이다.”




혹시 몰라 밑에 뻗어있는 이불속의 두 다리도 살펴보니 약간의 타박상이 있는것말고는 평소


의 모습과 다를것이 없었다. 아직 의사가 내 몸의 진단을 불러주지 않는 이상 확신 할 수는


없지만 크게 다친곳이라고는 깁스가 감겨있는 오른팔 뿐 인것같다.




“아니.. 근데 이거... 그렇게 요란하게 치인 것 치고는 너무 안다친거아냐?”




정말 죽을 각오로 뛰어들었던 것 치고는, 급하게 멈췄다지만 한눈에 봐도 속력을 과하게 내


고 있었던 차에 치인 것 치고는, 약 일미터가량을 공중에 떠서 일미터 떨어진곳에 내 온


몸이 착지하게 된 것 치고는....




“너무 안다쳤잖아!”




우와, 이거... 큰일났다. 이렇게 되면 내가 노렸던 합의금의 무게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인데! 


지금에야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남았지만 다시 한번 뛰어들었을 때도 지금만큼의 기적이 


일어날리도 없지 않은가. 반드시 이번 한번으로 끝내야 하는데- 




“이번에 많이 받아내야하는데!”




그렇게 내가 다시 한번 가난과 빈곤에 대한 궁상에 빠져들려는 찰나, 병동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찰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의사라도 왔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의사 선생님으로 보이는 하얀가운을 입은 아저씨 한분과 그 뒤에 졸졸 따라오는 


한 소녀가 있었다.




“아, 한세준군. 일어났군요. 그렇게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오른팔의 이상만 빼면 딱히 큰 문


제가 없어 매우 놀라웠는데, 하루동안이나 꼼짝도 안하고 깨어나지를 않으셔서 무슨 다른


문제가 있나 걱정했습니다.”




“아.. 예. 제가 좀 심하게 멀쩡한가보네요.”




“음... 오른팔의 뼈에 금이 간것만 빼면 다른곳은 가벼운 타박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를 다른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 좀 더 입원해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 마저도 내가 이렇게나 멀쩡하다고 말하니 왠지 모를 허탈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 


들어왔다. 죽을 각오로 뛰어들었는데 이 정도 상처면 기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럼 그만큼의


배상금을 받을수 없지 않은가.




“그.. 그럼. 진단서는 어떻게..?”




“전치 2 주 정도 되겠습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을 보니 거의 일미터 가량을 떠서 충돌을 하


셨다는데, 혹시 모를 후유증이나 이상을 대비해서 이 정도로 끊었습니다.”




2... 2 주? 고작 2 주 밖에 안나왔단말이야?! 아니, 그래도 죽을 각오로 뛰어들었는데 너무 


짧은거 아냐?! 잠깐만.. 전치 2 주면.. 합의금도 별로 안나올텐데!




“아, 저, 저기.. 2 주라구요? 그렇게 심하게 치였는데 그 정도밖에 안나오나요?”




“사실 지금 한세준씨의 몸 상태가 놀라우리만치 좋습니다. 당장 퇴원을 요청하시면 퇴원도 


가능하실 정도로 회복력도 빠르시고, 너무 건강하십니다.”




“아... 그.. 그래요?”




그렇게 의사는 나에게 절망적인 말들만 주르르 늘어놓고는 몸 조리 잘하라며 한마디 남기고 


병실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의사가 내려준 지옥같은 진단에 절망하고 있던 내게 또 다른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한세준씨라고 했지요?”




“...?”




그 낯선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침대 가까이 다가온 어느 한 여성이 


보였다. 여성이라 그래야 할지 소녀라고 해야 좋을지. 그곳에는 백옥같이 하이얀 피부의 


놀라우리만치 예쁘장한 소녀가 서있었다.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다리 위로 짧은 주름 스


커트를 입고는 화려한 무늬의 이너웨어에 가벼운 재킷을 걸친 그녀는 주먹만한 얼굴에 오


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제 자리를 예쁘게 차지하고 있는- 예쁜 소녀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살짝 펌이 들어간 웨이브진 머리에 요즘 학생들이 그렇듯 일자 앞머리를 귀엽게 기른 


그녀는 꽤나 성숙해보이려는 화장과 옷차림이었으나 그 앳된 풋풋함은 다 감출수가 없는지


- 성숙한 숙녀라기 보다는 그저 예쁘장한 소녀로 보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 제가 한세준 맞습니다만...”




그렇게 갑작스러운 미인의 출현에 살짝 당황한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어느새 침대 바


로 앞에 자리한 그녀에게 대답을 해줬다.




“제가 그쪽분을 친 차의 주인이거든요? 아, 말로 이럴게 아니라 먼저 이것부터 받으세요.”




그녀는 아까부터 들고있던 작은 쇼핑백 정도의 종이가방을 대뜸 내게 내밀더니 받으라고 했


다. 불쑥 내미는 그녀의 강압적인 손에 어쩔 수 없이 그 종이가방을 받은 나는 무심결에 그


속을 봤다가 자칫 혀를 깨물어 버릴 정도로 놀라버렸다.




“아.. 아니. 이건?”




그 종이 박스 안에는 만원권 다발이 대충 어림짐작으로도 20개는 넘게 들어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돈이란 말인가. 저 백만원짜리 다발이 20개 이상이면 2000만원 이


상이 아닌가. 이런 거금을 이렇게 쉽게 불쑥 내밀다니? 이 애가 뭘 잘못먹었나 싶었다.




“이게 무슨 돈이죠?”




“그쪽분 사고에 대한 보상금이에요. 급하게 뽑아 오느라 그것밖에 가져오지 못했는데 그래


도 3천 가까이는 될거에요.”




삼.. 삼천이라고? 이 작은 종이가방 안에 들어있는 돈이 삼천이나 된단말이야? 그런데 이 


돈을 나한테 왜 준다 그랬지? 아.. 보상금이라고 그랬나? 보상금? 고작해야 전치 2 주인데


이만큼이나 준단말이야? 




“보아하니 전치 2 주 정도 나오신거 같은데. 꼴랑 그 정도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돈인거 아


시죠?”




“아, 아니.. 근데 갑자기 이렇게 큰 돈을 주시면.. 그쪽이 사고낸 당사자라구요?”




“그래요. 제가 그 차에 타고 있던 당사자에요. 아, 아무튼 그런건 관계없고. 제가 말하고 싶


은건 한가지에요.”




“네.. 네?”




갑자기 조곤조곤 애기하던 그녀가 무언가 더 물어보고 싶어하는 나의 눈치를 알아챘는지 말


을 대뜸 자르더니 자신이 할말을 했다.




“괜히 이번 사고 가지고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제가 지금 준 이 돈 다~ 그쪽분이 가져가시


고 입닫아주라는 거에요. 알겠어요?”




“아.. 뭐라구요?”




갑자기 뭔가 크게 자존심 상할만한 소리를 저 여자애에게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래서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듯 반문이 튀어나갔고.. 그런 반문이 그 여자애


에겐 무척 짜증이 났던 듯.




“아. 거사람 참. 말귀 못알아듣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돈 먹고 떨어지라는거에요! 괜히 귀


찮게 굴지 말고.”




빠직. 잔뜩 짜증섞인 말투와 함께 튀어나온 그녀의 말에 나의 속에 있던 무언가가 빠직, 하


고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런 나의 속마음과는 달리 내 머리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웃어! 웃으면서 받아넘겨! 이 돈이면 반년은 먹고 살수 있다고! 그깟 자존심


쯤 이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머리의 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나는 애써 웃으면서-




“아.. 아하핫... 그런거였어요? 아이고 제가 평소에도 남의 말을 잘 못알아먹거든요. 아하핫~ 


아무튼 감사합니다.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 대답도 짜증난다는 듯 내 앞에 서있던 그녀는 이내 훽 하고 돌면서 병실을 


나가서려고 했다. 그러다가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잠깐 문앞에서 멈칫한 그녀는 다시 훽


돌아서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대뜸 지갑을 꺼내더니 수표로 보이는 


종이를 꺼내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마악 수표를 급하게 꺼내는 바람에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간 그 종이는 유유히 침대 옆 테이블에 놓여있는 커피잔에 빠지고 말았다.




“앗! 에이씹... 재수없으려니 별별게 다 지랄이네...”




그녀는 그 예쁘장한 얼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욕설을 입에 담아가며 그 수표를 급하게 


꺼내들더니- 그 커피에 물들어 갈색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표를 찡그러진 얼굴로 쳐다보


았다. 그리고 이내 그것을 대충 탁탁 털어 물기를 빼더니 나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백만원권이에요. 커피가 좀 묻었는데 그래도 그쪽 같은 사람은 이런거 마다안하잖아요? 그


렇죠?”




그렇게 툭- 하고 던지듯이 내민 그녀의 그 한마디가 그동안 계속해서 참고있던 나의 무언


가를 빠직- 하고 깨뜨려버렸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빠직 소리가 들려오며 금이 가오던 그


것이 이제는 완전히 깨져버려서는 언제부터인지 종이가방을 들고있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무릎위에 커피가 묻어있는 백만원 권 수표를 내려놓고 돌아서 나가려는 그녀


에게. 나는 참지 못하고 터트리고 말았다.




“기다려요.”




“... 네?”




뒤 돌아서 나가려던 그녀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나의 낮게깔린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평소에 아무생각없이 무표정만 짓고 있어도 특유의 날카로운 분위기가 


다른 사람을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는 나의 냉기어린 표정에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


낀 듯 잠시 멈칫한 그녀.




“이 돈. 도로 가져가세요.”




그리고 내가 종이 상자 안에 수표를 넣어서는 다시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뭔가 황당하


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뭐라구요? 지금 내가 뭘 잘못들은 것 같은데..”




“잘못 들은거 없으세요. 이 돈. 가져가시라구요.”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는 ‘야이 미친놈아! 이 돈이 얼마나 큰돈인줄 모르는거야? 지금 잠깐


만 참으면 되는거야! 어유 답답한놈아!’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이미 내 이성은 차


갑게 마비되어 어떤 마음의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니.. 돈이 부족한거에요? 그럼 더 드리죠. 얼마를 원하...”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이거 도로 갖고 돌아가세요.”




내가 무척이나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잇자, 그녀는 이제야 뭔가 느낌이 다른걸 눈치챈 듯 


이유를 물어본다.




“이유가 뭐에요? 합의금도 이만큼은 안나올껄요? 이만한 돈을 주겠다는데 왜..”




“당신이 얼마나 잘살고 또 얼마나 남부럽지 않을만큼 부잣집의 따님인지- 10평도 채 안되


는 단칸방에서 방세 밀렸다고 쪼이는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가난하고 또 가난해도-


이 몸의 장기라도 팔고 싶을만큼 절박한 심정이라도. 제 자존심까지 웃으면서 팔만큼 전


신경이 두껍지 못한가봅니다.”




난 이상하게 화가 날 때면 오히려 극도로 차분해지는 이상한 타입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는 


돈마저 마다한 극도로 열받은 이 상황에서도 내 머리는 오히려 더 차가워지고- 그에 따라


표정 역시 극도로 냉막하게 변하게 되었다. 아마 친하게 지내는 다른 친구들이 때때로 


말하는 나의 가장 무서운 표정이 지금 내 얼굴위로 나타나고 있을것이다.




“그.. 그깟 자존심이 무슨 문제라고 그러는...”




“그깟 자존심이라도, 지금 제게 남은건 단지 이 알량한 자존심 뿐 이니까요.”




“......”




“지금 제가 그쪽분이 하신 싸가지없는 행동 때문에 조금 열이 받은 상태거든요? 더 험한 말 


나오기전에 얼른 그 돈 가지고 나가시는게 좋을것같습니다만...”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독설을 쏟아낸 나를 당황한 듯 그 커다란 눈을 더욱 커다랗


게 만들며 바라보던 그녀는 내가 내밀어 놓은 종이 봉투를 가지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다.




“..... 끄응... 조금 아까운가...”




그렇게 그녀가 나간 적막한 병실에는 나의 궁상맞은 헛소리만이 맴돌 뿐이었다.










한세준이 입원해있던 304호 병실의 문을 박차고나온 한 소녀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병원의 


복도를 잰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씨익.. 씩... 뭐? 돈이 필요없다고? 10 평도 채 안되는 단칸방에 세들어산다는 주제에?”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난 듯 씩씩 거리며 또각또각 병원의 복도를 울려대던 그녀는 이내 아


무도 없는 병원 계단의 벽에 기대어 멈추어섰다.




“전치 2 주가 나왔다는 말에 그것밖에 안나왔냐면서 실망하던 주제에! 감히 이 돈을 거절하


냐구!”




평생동안 언니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본다거나 기세가 밀린다거나, 져본다


는 경험을 겪어보지도 못한 그녀, 이세희는 방금전의 상황이 너무나 굴욕적이고, 충격적


일수밖에 없었다. 아니, 세상에 자기가 먼저 내민 돈을 냉정하게 거절하다니.. 이런 일은 


그녀의 짧은 인생 어디에도 없는 경험이다.




“그깟 자존심이 뭐가 대수라고?! 자존심이 밥이라도 먹여줘?!”




자신 역시 그동안 S 그룹의 차녀로서 그 높은 콧대를 내려본적이 없으면서- 막상 자신 앞


에서 돈 보다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현준을 만나자 기가 차는게 사실이었다.




“.... 씨익.. 씩...”




한껏 한세준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던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방


금전 자신에게 냉막하게 돈을 가져가라고 말하던 한세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워낙 궁상속에


살아서 그렇지, 한세준도 역시 얼굴은 반반하게 생겼다. 185의 훤칠한 키에, 군살없는 


균형잡힌 몸매(온갖 궃은일을 맡아하느라 군살이 붙을세가 없었던), 거기다 조막만한 얼굴


에 날카로운 이목구비까지 갖추고 있는 그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샤프하게 생긴 미남이라


고 할수있었다. 




세희 역시 그동안 학교에서 소위 ‘노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이런저런 반반한 남자아이


들을 만나보았지만 다들 그녀의 재력과 미모에 두손 싹싹빌며 아부만 떨줄 알았지- 그녀


에게 그렇게 차갑게 대한건 한세준이 처음이었는지라 그 인상이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그런 차갑고 예리한 느낌의 남자라니- 처음 느껴보는 매력에 한세준을 생각하는


그녀의 볼이 어느샌가 붉게 물들어있었다.




“.....”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자신의 상기되어가는 볼을 한번 만져보고는 뜨끈한 볼의 감촉에 화들짝 


놀라 기대고있던 등을 떼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한세준이라고 했나?”




그렇게 그녀가 내려가는 계단위로 “미쳤어! 미쳤어!” 라는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




음- 안녕하십니까. 신입 작가 티아맷입니다... 라고 하고싶기는 해도 글을 두어번 올려본 적이 있기때문에..


항상 무언가 번뜩하여 한 작품에 몰두하다가도 다른 소재가 번뜩하면 금새 쓰던 글을 팽개쳐버리고


다른 글을 쓰게 되는 이 조루근성은 어찌할줄을 모르겠군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으로선 무언가 한 작품을 끝까지 완결 시켜보는 것이 제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글도 제 많은 번뜩임 중 하나의 소재로 만들어진 아직 기본 뼈대 정도만 앙상하게 잡혀있는 어줍잖은 글입니다.


으음.. 이 글이 계속 이어질지- 또 다시 폐기 처분이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러분의 반응에 따라 (...) 달라지게 될 것 같습니다. 흐흣.




아무튼, 첫 시작은 활기차게 시작해야죠! 완결을 볼 수있길 기원하며~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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