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수레바퀴 - 39부

본문

##)글이 좀 뜸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격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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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보면... 


분명히 유미 누나보다 더 낫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보면... 


그래도 유미 누나보다 더 낫네...히히.




여지껏 정수진 씨가 청바지라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찰싹 달라붙는 나시를 입은 그녀의 곡선이 그렇게 육감적일 줄은 몰랐었다. 인기 연예인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헐렁한 팬츠를 입었기에 망정이지, 거기마저 달라붙는 옷을 입었다면 교습을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몸매만으로도 남자를 압도하는 그녀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선생님...




“도대체 몇 번 얘기해야 돼요? 엉덩이 뒤로 빼지 말라니까요?”


“아이, 미안해요. 쉽지 않네. 당긴다고 당기기는 하는데...”




엉덩이가 커서 어쩔 수 없는 건가? 첫 교습에 벌써 짜증을 내고 있었다. 자세를 가르쳐야 하는데, 엉덩이가 문제였다. 그것만 좀 앞으로 당겨도 좀 배운 티가 날 것 같긴 한데...




“춤이나 에어로빅하고 다르다고요. 그렇게 엉덩이를 빼면 펀치에 힘이 실리지 않아요. 다리도 흐느적거리고... 팔이든 다리든 빨리 움직여야 할 때는 둘 다 허리 근육이 절반 이상이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봐도 티가 나요. 주먹 한 번 휘둘러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거.”


“이렇게 하면... 이러면 괜찮아요?”




“프흐흐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심각하네. 계약금을 그렇게 왕창 받았는데... 다시 뱉어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우스워요?”


“참 대단하시네요.”




“여전사 같지는 않죠?”


“솔직히... 오리처럼 보여요. 프흐흐흐~”




“버릇이 잘못 들었나 봐요. 그래도 오리는 너무 했다.”




봉을 하나 들고 왔다.




“팔 올려 보세요.”




그녀의 뒷목 아래부터 엉덩이 아래까지 중심까지 봉을 세로로 대고 다음 몸통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상황에 맞지 않게 야릇한 느낌.... 하얀 붕대에 둘러 싸인 육감적인 몸의 굴곡이 마치 다 벗은 것처럼 여과 없이 드러났다. 뭘 어떻게 입어도 섹시한 여자였다.




“나 이러고 있는 거, 누가 사진이라도 찍으면 큰일 나는 거 알아요?”


“사무실 지하에 누가 들어오겠어요?”




“혹시 여쭤 봐도 돼나요... 이게 뭐하는 짓?”


“오늘은 그렇게만 하시죠. 아무래도 자세 교정이 심각하네요.”




“난 또, 묶어 놓고 나쁜 거 하려는 줄 알았어요. 호호호.”


“아직 앞길이 창창해서 그런 건 못해요. 욕심은 나지만...”




그렇게 해 놓고 연습장 가장자리를 빙빙 돌아 걸으라고 지시했다. 최고의 스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서 오는 오만한 쾌감... 그런데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캐스팅을 잘못 한 것 같았다. 여전사의 이미지를 부각하려면 좀 더 비쩍 마르고, 엉덩이가 납작한 사람을 섭외했어야 하는데... 유진이랑 비슷한 몸매를 가진 사람을. 정수진 같은 굴곡이 심한 몸매... 특히 허리와 엉덩이 사이의 둘레차이가 큰 그런 몸매로는 강인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무래도, 액션영화보다는 에로영화 쪽에 가까운 몸매였다.




“수호 씨,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여자친구 있어요?”


“여자친구는 아닌데... 사귀는 사람은 있어요.”




“여자친구는 아니고 사귀는 사람이라... 혹시, 연상?”




귀신이네...




“제 신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연상 맞구나, 호호. 알았어요. 다음에 술 한 잔 먹이고 낱낱이 캐내야지.”




“저도 뭐 하나 여쭤보고 싶은데...”


“하세요.”




“뭐 시험 합격이 목표도 아니고, 두 달 동안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주죠?”


“호호호, 특별 대우를 받나 보죠. 뭐.”




“혹시, 가르치는 거 말고 딴 것도 해야 하나 해서요.”


“딴 것도 해야 한다면... 하시겠어요?”




“아뇨. 그러면 그냥 지금 그만 두려구요.”


“그냥 가벼운 일이라도? 예를 들어... 하루 정도 제 보디가드가 되는 거 정도면 어때요?”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서비스 차원에서 하죠.”


“묘하네요. 다른 남자라면 돈 내고라도 하겠다고 할 일인데...”




대답 없이 그냥 씩 웃어 주었다. 그녀의 소속사에 대한 의구심이 없다면, 나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트레이너가 좀 힘들겠어요. 제 생각엔 비쩍 말려 놓고 다시 근육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별로 없네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이 정도 하고요. 다음 교습부터 본격적으로 연습하죠. 서 있거나 걸을 때는 항상 의식하세요.”


“엉덩이 당기는 거?”




“예, 맞아요. 총명한 제자네.”


“호호호. 이거 풀어 주세요... 기분이 묘해요.”




칭칭 감은 붕대를 풀어주는 동안 나도 기분이 묘했다.




“시나리오를 볼 수 있으면 좀 도움이 될 텐데...”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극비랍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그런 미녀 연예인과 두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내게 진규 형의 자살이라는 충격이 없었다면, 눈앞에 놓인 ‘연예계’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와 같은 흥분과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나는, 넘치던 충동과 자신감을 일부 덜어내는 대신, 그 만큼의 자리를 신중함과 두려움으로 채우고 있었다. 최소한, 세상이 다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진규 형의 죽음이 유미 누나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3월에 개강을 하게 되면 소문은 삽시간에 번질 테고, 그간 진규 형과 유미 누나와의 관계를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이 누나를 다른 눈초리로 쳐다볼 게 분명했다. 아니, 모두가 거기에 무관심하다 해도, 정작 유미 누나 본인이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었다. 누나가 나처럼 골방에 숨어 죽기 직전까지 마셔대지는 않겠지만, 내가 가졌던 그 이상의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의 입과 귀를 다 막을 수는 없는 법... 역시, 유미 누나가 강인하게 버티기를 바랄 수 밖에...




누나 인생의 마지막 겨울 방학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보내게 할 필요는 없으니, 진규 형의 죽음을 미리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개강을 맞아, 갑작스러운 죄책감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한꺼번에 노출되도록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누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 시기를 2월 중순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죄책감과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후에 사람들의 시선에 맞설 준비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줘야 하니까... 그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지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김수호와 함께...




둘 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아침 일찍 내가 다니는 대학교의 도서관에 나가 잠시 동안 ‘공부하는 척’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눈이 맞으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치 탈선을 저지르는 비행 청소년처럼 그간 가보고 싶었던 곳을 여기저기 쏘다니며 데이트를 즐기다, 저녁이 되면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고 돌아온 척하며 집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낮에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부족했던 스킨십을 보충하기 위해, 둘 중 하나가 상대의 방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의 몸을 탐했다. 다른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이었다... 




유진의 공부를 마치고 배웅하는 길...




“오빠, 요즘 깨 쏟아지네?”


“그게 무슨 말이니?”




“음... 음... 대질심문이라도 해 볼까?”


“허튼 소리 하지 마세요.”




“부러워.”


“뭐가?”




“유미 언니.”


“그렇겠다. 잘 해주는 동생이 있으니까...”




사실, 우리를 항상 관찰할 수 있는 위치의 유진에게 유미 누나와 나의 관계를 완벽하게 감추기 어려웠다. 게다가... 눈치 9단이라는 주부를 뺨치는 놀라운 감지 능력을 가진 얘라서... 하지만 유진에게만은 세상 누구도 몰라야 할 우리의 관계가 드러나는 게,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오빠, 우리 성수 오빠 면회 한 번 갈까?”


“오오! 임 유진의 머리에서 어쩜 그런 기특한 생각이 나오니? 근데 아마 휴가 나올 때쯤 된 거 같은데?”




“나... 요즘 쫌 외로워, 오빠.”




쓸쓸한 표정의 그 말만은 장난 같지 않았다. 내 요청에 화를 내고 나가버린 유진의 아버지가 예전하고 달라지지 않은 듯 했다. 하긴, 그가 달라진다고 해도 그건 가식일 뿐일 테니... 유진의 눈치로 그런 걸 모를 리 없었다. 측은한 마음...




“유진아, 이리 와 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골목 언저리에서 그 애를 꼭 안아 주었다. 아마 이제 그 애도 자신의 주변이 너무 삭막하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다른 사람들하고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 애도 그걸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가정이든 뭐든, 그 애를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는 그 무엇...




“오빠... 나 키스... 한 번만...”




그 많던 빚 독촉 중, 그 때만큼은 장난이 아닌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그걸 거부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잔인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얘한테 좀 더 따뜻하게 해줘야 겠다... 차가운 입술을 내 입술로 비벼 주었다. 유진이 목을 길게 뽑아 내 입술에 매달려왔다. 뭔가 기다리는 듯, 벌어지는 치열...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 애가 원하는 대로 혀를 밀어 넣어 주었다. 그걸 뽑아가고 싶다는 듯, 강하게 빨아오는 유진... 혀를 거두자 기다렸다는 듯 얇은 자신의 혀를 내 입속에 밀어 넣었다. 




“아....!”




여전히 황홀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유진의 머리를 당겨, 내 어깨 언저리에 묻었다. 표현이 너무 심했던 게 아닐까?...




“나 흥분 돼, 오빠.”


“뭐야?”




몸에서 떼어내 꽁! 하고 알밤을 줘도, 여전히 꿈을 꾸는 표정이었다. 팔을 당겨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로 나가니, 그제서야 포기한 듯, 걸음을 옮겼다.




“오빠 오늘 90점. 10점은 왜 까먹었는지 알지?”


“아이고, 감지덕집니다. 너는 오늘 빵 점.”




“왜?”


“밥 먹고 키스만 하고 살았냐? 아주 선수다, 선수.”




“히히히. 내가 그런 건 빨리 배우잖아. 공부는 못해도...”


“새엄마는?”




“아직 안 왔어.”


“아직? 2주가 넘은 것 같은데?”




“몰라. 일본이 좋아서 오기 싫은가 보지, 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어두웠던 그녀의 표정이 뭔가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혹시... 예전에 말했던 그 교육? 그러고 보니 유진의 집에 있는 회사 직원에게 전화했을 때, 유진의 새엄마가 지방에 내려갔다고 한 게 기억났다. 일본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진아. 너, 앞으로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정말, 그래도 돼? 우와, 오빠 백 점.”




“내일 오후에 너네 집에 누구누구 있니?”


“그 언니 혼자 있을 텐데?”




“내일 내가 가볼 테니까 오후에 집에 있을래?”


“응. 기다릴게.”










‘엉덩이!’하면서 ‘찰싹!’하고 두들긴 건, 성추행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전혀 교정된 게 없는 정수진 씨의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 있던 참이었다. 


스텝을 가르치던 중에, 눈 앞에 불룩 튀어나와 있는 미운 엉덩이에 나도 모르게 손찌검을 한 건, 그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살덩이가 출렁~하며 진동하는 걸 느끼는 순간, 내가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톱스타의 엉덩이에 손을 대다니...




“아... 이건...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요.”


“호호호...”




글러브로 입을 막고 깔깔거리는 게, 화를 낼 것 같지는 않았다. 성격도 괜찮네... 근데 참, 예쁘다...예쁘긴.




“죄송해요.”


“아니, 기분 나쁘지 않아요. 그런 건 괜찮아요. 빨리 배우는 게 중요하니까. 근데... 좋던가요?”




얼굴이 달아올랐다. 문제는 문제였다. 왜 그렇게 엉덩이가 뒤로 자꾸 빠지는지, 엑스레이라도 찍어보고 싶었다. 그걸 어떻게 자각시키나? 차차 바로잡기로 하고... 가드를 설명해 주었다. 시범을 보이고 말로 수정해 주고...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만 하려니, 체육관에서 후배들 지도하는 것보다 열 배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내 심정을 그녀가 알았나 보다.




“수호 씨. 팔 내밀어 보세요.”




팔을 내밀자 그녀가 글러브를 낀 두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설마... 손끝에 그녀의 불룩한 유방의 융기가 와서 닿았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정도는 아랑곳없다는 듯, 그녀가 젖가슴 전체를 내 손바닥에 문질러왔다. 브래져의 감촉 아래로 말랑말랑한 유방의 탄력이 느껴졌다. 왜 이럴까? 그녀의 글러브가 내 손등을 짓눌렀다. 내 손 아래에서 그녀의 유방이 짓이겨졌다.




“왜... 왜 이러세요?”




그녀의 유도에 따라 내 손이 목줄기로, 얼굴로, 옆구리로, 아랫배로... 그녀의 몸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톱스타의 몸을 더듬는 호사를 경험하는 내 손. 그런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장난기는 없고, 대신 엷은 미소만 어려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알 거 같아요...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저한테 함부로 못하는 수호 씨 입장 이해해요. 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저를 존중해 주는 게 아니예요. 저는 수호 씨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누가 봐도 그럴 듯한 실력을 가지게 해주기를 바래요.”


“......”




“그러니 평소에 다른 남자들 가르치듯 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여자라는 거... 나이가 더 많다는 거... 스타라는 거... 다 무시하고... 아시겠어요?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영화도 제겐 생존의 문제예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성공작을 만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해요.”


“이해해요.”




“앞으론 좀 편하게 가르쳐 주셨으면 해요. 수호 씨... 아니 김 사범님 입장에선 아르바이트일 뿐이지만... 제 입장에서는 장난이 아니랍니다.”




따끔한 일침을 놓은 그녀가 내 손을 놓아 주었다. 여전히 은은한 미소... 하지만, 옵셋 2 밀리미터로 정확하게 그어진 그녀의 예쁜 쌍거풀 아래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나를 무섭게 책망하고 있었다. 역시 프로구나...




“그래도 일부러 더듬으시면 안돼요. 호호호.”




한결 수월했다. 그녀의 배려 덕분에 그제서야 교습을 주도할 수 있었다. 그녀 말대로 내 임무는 데이트가 아니라, 훈련시키는 것이니까... 최소한 교습시간만큼은 그녀가 톱 스타라는 사실을 잊는 게 필요했다. 그저, 어리숙한 신참내기 후배일 뿐이다. 에이... 그래도 저 망할 엉덩이! 대패로 깎아버리고 싶네...








“누구세요. 오빠?”


“응.”




“들어와.”


“그 언니라는 분은?”




“회사에 잠깐 간댔는데... 저녁시간에 맞춰 온댔어.”


“잘 됐다.”




그녀가 일부러 나를 피했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 회사직원을 집에서 쫒아낼 핑계를 찾던 내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거실을 지나 안방 문을 열었다. 쪼르르 따라오는 유진...




“오빠 뭐 해? 나랑 놀라구 온 거 아냐?”


“먼저 알아볼 게 있어서...”




성수 아버지에게 대놓고 ‘마누라를 어디 두셨죠?’하고 물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생각한 것이다. 정말 일본으로 관광 여행을 떠난 건지도 모르지만, 찜찜한 생각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도 그 정도는 해야 했다. 집을 뒤진다고 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단서가 될 만한 뭐라도 건질지 모르니까... 안방을 도둑처럼 뒤지고 있는 나를 보는 유진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뭐 찾는데?”


“여권.”




“가져갔겠지. 일본 갔는데...”


“그러니까...”




“없는 걸 왜 찾아?”


“여기 있잖아?”




화장대 서랍 속에서 ‘주 소영’이라는 이름의 여권을 찾아낸 것이 더 좋지 않았다. 최소한... 정상적인 출국 절차를 밟고 나가지는 않은 것이다. 아니면 아예 나가지 않았거나... 불길한 예감이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본 간 거 아니네?”


“유진아 혹시, 우리나라 안에서 새엄마가 어디 갈만한 곳이 있을까? 친정 같은데.”




“몰라. 외국 말고 이렇게 오랫동안 어디 간 적이 없어서... 친정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교통사고로...”


“언제?”




“아빠랑 결혼하기 전인데... 언젠지는 몰라.”


“그러면... 외삼촌은? 그러니까... 새엄마 동생들 말야.”




“아, 한 명 알아. 이름이 주철식이었던가? 아빠 회사 다닌댔어.”


“주철식?”




“확실치는 않아. 근데 오빼 왜? 새엄마한테 무슨 일 있어?”


“글쎄다. 오늘 내가 여기 뒤진 거는 비밀인 거 알지?”






귀찮은데... 뭔가 또 해야만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진의 집에서 그냥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 게 나았을 뻔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개강하기 전까지는 그저 아무 일 없이 유미 누나와 함께 있는 시간만 즐겼으면 하는 게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성수가 사랑하는 여자라는 것도 문제지만, 만약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그건 분명히 나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강요해서 금기를 어기게 만들었으니까... 




중석이 형에게 전화하기 전에 한참 망설였지만, 결국 만나기로 했다. 그저 가벼운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자 얘기 해 봐. 나 만나자고 한 이유.”


“사람 한 명만 어디 있는지 찾아 줬으면 해서...”




“누군데?”


“이름이 주철식이라는 데 확실치는 않아. 지니 컨설팅 소속이야.”




“야...너...”


“알아, 알아. 형이 무슨 말 하려는지... 그래도 간절하니까 부탁하는 거 아냐.”




“너 그 성격 못버리면 크게 후회할 거다. 그냥 좀 내버려 둬. 알아서들 살게.”


“이 번만 참견할게. 응?”




“이게 마지막이다, 알았어? 사람 찾는 거야 쉽지만, 더 이상은 들어줄 수 없어. 왜 그런지 알지?”


“응. 고마워, 형.”




“이전 건은 네가 재수가 좋았던 거야. 너 가진 거 많잖아. 그거만 지키고 살아도 충분해. 다음부턴 이런 쓸데없는 부탁하지 마.”


“네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음에 시간나면 술이나 한 잔 하자. 가볍게...”


“응. 내가 한 잔 살게. 돈이 엄청 생겼거든...”




성수가 휴가 나오기 전에, 성수 새엄마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에 있어야 하는데... 아니면, 그 자식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끝장을 보고 마는 성수 성격을 아는지라, 그가 뭔가 해결될 때까지는 절대 순순히 부대에 복귀할 리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성수 아빠한테 가서 아들이 군대 제대로 마치지 못할 것 같으니, 마누라 곱게 집에 모셔 놓으라고 협박이라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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