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수레바퀴 - 38부

본문

## 느리지만...어렵게 관계를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직장 상사와 부하 관계로....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저도 힘들지만, 그 친구도 무척 불안해 보입니다... 잘 웃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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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어둠... 나는 그 속에서 혼자 떨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들이치는 파도 소리가 그나마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날 밤 강릉 바닷가의 민박집에 들어온 이후, 밖에 나가질 않았다. 아마 이삼일 정도 지난 듯... 




계속 마셔댄 소주에 내가 맨 정신인지, 취해 있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냥 멍해지고 싶어 술을 마셨지만, 내 대뇌는 끊임없이 일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한강 다리 위에서 진규 형이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질 때마다, 가슴이 들끓고 몸서리가 쳐졌다. 식사를 하지 않아서인지... 가벼운 소주병 하나 집어 입에 가져가는 것도 힘들었다. 가끔 내가 살아있는 걸 확인하려는지,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예... 하고 대답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러니, 부르르 떠는 핸드폰을 들어 귀에 대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저걸 집어 들면 말을 해야 한다...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지, 귀찮은 거짓말까지 해야 한다...




엉금엉금 화장실까지 기어가 변기 뚜껑을 열고 힘없는 오줌 줄기를 떨어뜨렸다. 물을 마시니까 오줌은 나오는구나...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에 급하게 입을 대 봤지만, 역시 입에서 나오는 게 없다. 다시 방까지 기어가 무기력하게 몸을 눕혔다. 나...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그냥 살다보면 생기는 일인데... 이렇게 힘들 필요는 없잖은가...




미워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진규 형은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 변명할 시간 같은 거 아예 주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 멋대로 나를 생각하고 원망해버린 것이다. 나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크크크크......!”




진규 형을 따라가서 변명할까? 항의도 하고... 




에이 그럴 수도 있지...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돌아갑시다, 형... 내가 앞으로는 잘 할게...




누나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으면, 진규 형도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꾸밀 재주가 없는 유미 누나가 진규 형한테 내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 내가 놀이터에서 봤던 그 때겠지... 어둠 속에서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눈을 반짝 반짝 빛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규 형은 누나의 말보다... 누나의 눈을 봤을 거다. 그 놈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벽이구나.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구나... 하지만, 진규 형... 솔직히 나도 노력하고 있었어... 그리고 나도 형 많이 응원했어...




기회가 많았던... 그리고 시간도 철철 넘쳐났던 그 때 아무 때나 유미 누나한테 이야기했어야 했다. 




누나랑 나는 미래가 없다고... 포기하라고... 




아니면, 애초에 처음부터 삼촌 찾아가지 않았어야 했다. 




유미 누나가 삼촌 찾아갈 때, 그 전에 먼저 가서 입을 막지 않았어야 했다. 




선미 누나한테 들켰을 때 그 때, 앞으론 절대 안할게... 다신 안 그럴게 했어야 했다. 




진규 형이 집에 찾아왔을 때, 매몰차게 대문을 잠궜어야 했다. 




선미 누나 입을 막지를 말던지... 그걸 유미 누나한테 보여주지 말던지... 




유미 누나가 내 방을 청소했던 그 많은 시간에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단 한 번이라도 얘기하던지... 






아... 아.... 아~~~~~~~~! 아~~~~~~~~~~~~~~~~~~~~~~~~~~~~~~~! 






내가 그런 것이다. 여지껏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지 않으면 다 괜찮다고... 머저리같이 생각했던 내가... 








진규 형을 죽인 것이다.








커튼이 밝아진 게 낮이 된 것 같았다. 눈 뜨자마자 또 구역질이 나왔다. 창문 너머로 겨울 바다를 찾은 사람들의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 쾅쾅하는 노크 소리... 




네... 


문 좀 열어요... 


왜요... 


그냥 문 좀 열어요... 


지금 못 열어요, 자고 있어요... 


빨리 문 좀 열어요... 


아... 왜 그러세요... 


글쎄 문 좀 열라니까... 


그냥 가세요. 좀 있다 가서 뵐께요... 


잠깐만 열라니까요.... 


아. 씨발. 그냥 좀 가라니까. 나 좀 놔두라니까... 


야. 안되겠다. 뜯어.




눈 앞이 캄캄해지기 전에 경찰 제복 두 개 정도를 본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진규 형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 형... 안 죽은 거 맞지... 진규 형의 뿔테 안경 속에서 두 눈이 초승달처럼 변했다. 그러더니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그리고 조금 후에 천정에 달린 형광등 불빛 아래로 얼굴 네 개가 보였다. 아빠... 엄마... 선미누나... 그리고... 유미누나... 다시 돌아왔구나. 사람 사는 세상으로...




“죄송해요.”




가족 중 누구도 진규 형의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구급차에 태워져 서울로 압송 당할 때, 유미 누나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아빠가 가족 모두에게 함구를 명령한 듯, 그녀 역시, 나의 갑작스러운 일탈에 대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에는 억지로인 게 분명한 미소를 지어 주었지만, 주변이 벌겋게 부어 있는 두 눈이 가끔 투명하게 빛나면, 어김없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참 살아간다는 거... 거미줄 같이 얽혀 있는 게 분명하구나. 내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유미 누나의 헌신적인 간호 때문인지, 건강은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기분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밝게 웃는다는 것이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일인지 예전에는 몰랐었다. 몸 상태가 예전과 비슷해졌다고 생각된 며칠 후, 다시 한 번 부모님께 세 번째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절대 어이없는 짓 또 하지 않을게요. 그냥 마지막으로 해야 할 숙제 같은 게 있어서 그래요.”


“네가 왜 그러는지, 네가 말할 때까지는 물어보지 않겠다. 네 엄마나 나나 우리 자식들 전부 대견하게 잘 자랐다고 생각하고 있어. 널 믿으마.”




진규 형의 하숙집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그의 무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야트막한 야산 중턱에서 얼기설기 떼를 둘러쓰고 있는 그의 봉분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춥겠네, 형. 그 찬 물에 들어가 죽었는데, 또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있으니... 하마터면 형 따라갈 뻔 했어.’




불과 몇 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에 그가 누워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지만, 죄책감만은 어김없이 가슴을 꽉 메웠다. 서러운 눈물처럼 맑은 소주를 그의 발 언저리에 뿌리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구했다.




‘형이 부탁한 건 어떻게든 노력해 볼게. 근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 이미 많이 꼬여 있거든... 미안해, 형. 나중에 언젠가 형 있는 데로 가면... 그때 무슨 벌이든 달게 받을게.’










생활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겉으로 누가 보더라도 나는 느닷없는 객기를 한 번 부리고 돌아온 예전의 밝은 김수호였다. 하지만 나는 많이 신중해져 있었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운전을 겁내게 되는 것처럼, 나는 끊임없이 교류해야만 하는 ‘삶’에 대해, 그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은 두려움 같은 걸 가지게 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삶이란...




심한 고초를 겪은 유진도 아마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아니, 목숨이 달랑거리는 위기를 경험한 그 애가 나보다는 훨씬 심한 변화를 겪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 애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강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유진은 예전의 맑고, 씩씩하고, 때로는 사려 깊은 그 유진이었다. 그간 왜 내가 해야 할 과외시간을 유미 누나가 대신 때웠는지 이유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비참한 기억도 다 잊었다는 듯, 입 밖에 내보내지 않았다. 참 오랜만에 같이 공부를 마치자, 유진이 기다렸다는 듯 계약을 물고 늘어졌다.




“오빠, 밀린 약속 지켜야지?”


“약속?”




“아...! 왜 이러실까?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할라구?”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자꾸 그러면 다음부턴 서약서 받는다?”


“하하하하. 알았어. 입술 내밀어. 쪽~ 해 줄게.”




“에이 이렇게 말고... 다음에 약속 잡아서 해야지.”


“무슨 뽀뽀하나 하는 데 약속까지 잡아? 거창하게?”




“촛불이 은은하게 켜져 있고... 둘이 나란히 앉아서... 음악 연주를 듣는 거야. 아... 와인도 있어야 돼. 오빠가 날 사랑스럽게 쳐다보다가 내가 오빠를 돌아보면 오빠가 입술을 슬며시 내밀고... 나는 눈을 감고... 아야! 왜 때려! 기분 좋은 상상하고 있는데...”




“하여튼 계집애가 까져가지고. 고 삼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갈 생각은 안 하고, 쯔쯔.”


“우헤헤헤! 좋아 그럼 뭐, 지금 해줘, 응? 대신 두 번이야. 오늘 한 번, 다음에 한 번.”




“다음에 올 때 양치질이나 잘 하고 와. 입 냄새 안 나면 해 줄게.”


“체~~~!”




“가자. 오늘은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


“나 오늘 오빠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얘가 또 병이 도졌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응. 집에 가면 심심해.”




“새엄마랑 놀아, 새엄마랑.”


“집에 없어. 일본 갔어.”




“일본?”


“응. 며칠 놀다 온다구... 꽤 됐는데 안 오네? 근데 참 이상하지? 전에는 놀러 가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은... 없으니까 좀...”




“보고 싶어?”


“그냥 좀... 허전한 거 같아.”




“아이구 우리 유진이 사람 됐네. 그럼 집에 혼자 있어?”


“아니, 아빠 회사 다니는 언니가 한 명 와 있어. 근데 별루 안 친해서...”




“의외네. 아무나 쉽게 친해지는 줄 알았더니...”


“에이, 나보구 아가씨, 아가씨 하는데 어떻게 친해져. 자기가 무슨 하녀로 온 줄 아나 봐.”




“그래, 자고 가라. 오늘만이야.”


“정말? 오빠 못 본 사이에 진짜 멋있어졌다. 그럼, 오빠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될까? 히히.”




“이 놈의 계집애가 근데... 왜? 또 더듬을라고?”


“응? 호호호호! 그걸 어떻게 아셨대?”




“너 한 번만 더 그런 못된 버릇 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알았어?”


“네네... 앞으론 절대 안 들킬게요. 히히. 아! 아버님한테 신고하러 가야지.”










[뚜루루루루....]


[여보세요?]




사기그릇에 구슬 굴러가듯 하네... 목소리가...




[저 유진이 과외 선생님인데요...]


[아, 김수호 씨? 안녕하세요?]




잉? 이름까지 외우네...?




[예. 안녕하세요? 오늘 유진이 집에서 재우고 내일 보내려구요.]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께 말씀드릴게요.]




[퇴근은 안 하세요?]


[네, 사모님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어머님은 언제 돌아오시죠?]


[저는 잘 몰라요. 그냥 있으라고 하실 때까지 있는 거예요. 지방 일정이 끝나야 오신답니다.]




[지방이라뇨? 일본 여행 가셨다던데?]


[그게... 그러니까요... 제가 한 번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까요?]




[아..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좋은 밤 되세요.]


[네.. 그럼.]




마지막엔 좀 허둥댄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냥 무시했다. 뭐, 말단이라 아무 것도 모르나 보지.








새벽 일찍 푸른 엔터테인먼트라고 써진 3층짜리 건물에 가서, 윤 희정 대리를 만났다. 중석이 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꼭 약속 뿐 아니라, 강의가 없어 생기는 시간 공백을 채워 줄 뭔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새로 생긴 아르바이트 자리가 싫지 않았다. 혼자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참 힘들던 시기여서, 집에서도 뭐라도 할 만한 일거리가 생기면 다음 일을 하기 전까지 최대한 늘여서 하곤 했다.




작달막한 키에 여자치고는 다소 다부져(?)보이는 체격의 윤 희정 대리는 조금 안 된 말로 TV 드라마의 ‘식모’ 캐릭터에 어울리는 분위기에 성격도 털털하기 그지없었고 처음보는 내게 붙임성도 좋았다. 그녀가 지하에 꾸며놓은 연습실을 보여 주며, 자문을 구했다. 중석이 형이 코치했는지 필요한 게 빠지지 않게 준비되어 있었다. 




“식사 전이시죠? 해장국 먹으러 가요.”




해장국보다는 해장술이 더 먹고 싶었는지, 싫다는 내게 더 권할 생각은 하지 않고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러면서 재잘거리며 내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쯤이예요, 뭐 궁금한 거 있으세요?”


“새벽부터 술 마셔도 회사에서 안 쫒겨나요?”




“호호호, 걱정 마세요. 가뜩이나 제가 나간다고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을 거예요.”


“쎄시네요.”




“말이 대리지 노가다예요. 여자가 필요한 자린데, 요염 떠는 얘들 견디질 못하거든요. 저처럼 체력이 소 같아야 버티죠.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보세요.”




“얼마나 실력이 좋길래, 그 깐깐한 정수진 씨 눈에 들었어요?”


“잘 봐 주셨나 보죠 뭐.”




“무술 가르치는 거 말고 딴 역할도 시키려나?”


“무슨 말씀이세요?”




“아... 아니예요. 댁이 하두 예쁘장하게 생겨서... 호호호.”


“나 원.”


사무실 2층으로 올라가, 총무과장이라는 사람이 내미는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었다. 무슨 운동 교습을 하는 데 보험까지 들어야 하는 건 처음 알았다. 윤 대리가 계약서 한 부를 봉투에 넣어 건네 주면서, 다음에 가지고 나와야 할 서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럼 사흘 후에 뵈요, 김수호씨.”


“뭐 하나 여쭤 봐도 되나요?”




“네.”


“최 중석이라는 사람은 이 회사하고 어떻게 되나요?”




“회장님 비서예요. 그거 말고는 저도 잘 몰라요.”


“네.... 회장님이 또 따로 계시나보네요.”




뭐 별로 배운 게 없는 중석이 형이 머리로 하는 비서 일을 할 리 없었다. 그 회사가 대충 그런 쪽에 얽혀 있다는 것도 탐탁지 않았지만, 계약금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액수가 많았던 것이다. 예전 같으면 덥석 받고 기분 좋아했을 터였지만, 그 때의 나는 많이 재고 소심해져 있었다. 찜찜한 기분....




그러니, 성수 아버지한테서 태어나 처음으로 전화를 받았을 때도 마음 속에 우선 거부감부터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런 쪽에는 더 이상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게. 내가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도리 아니겠나?]




그래 뭐... 친구 아버지가 식사하자는 건데... 그런데 역시 혼자 있지 않았다. 그 날 새벽 성수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봤던 사람들 중 둘이 더 있었다. 그래서, 그저 조용히 밥이나 먹으며 얘기 나누려니.. 하는 내 예상과는 달리 시작부터 떠들썩한 술자리였다. 어쨌든 마지막이니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주는 술을 곱게 받아 마시며, 낯 뜨거운 내 무용담이 그들의 입에 회자되는 걸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더 이상 앉아 있기 어려워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질 무렵이 되자, 술 한 잔 더하러 자리를 옮기려는 그들... 아마 전쟁에서 승리한 듯 하니, 그들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나는 친하지 않는 사람들.. 그것도 기본이 삼촌 뻘인 사람들하고 술 취해 어울린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댔더니, 성수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을 먼저 내보내고 나와 마주 앉았다.




“자 이거 받아 두게.”




편지 공포증에 걸려 있던 내게 그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얇지만 그래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포스... 갑자기 내가 돈벼락을 맞았나. 요즘 무슨 돈이 이렇게 쉽게 쉽게 생길까? 그것 역시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치면, 우선 두려워하던 시기였으니... 바램이 있다면, 그저 예전처럼 똑 같은 일상이 단 며칠이라도 반복되어서, 숨을 좀 돌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건 괜찮습니다. 그보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뭔가?”




말을 괜히 꺼냈나? 술 기운에 벌개져 있는 그에게 내 진심이 전해질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후에는 그를 될 수 있으면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유진이... 맑고 씩씩한 애예요. 어쩌면 아버님이 알고 계시는 것보다 훨씬 더...”


“......”




“이번에 솔직히 아버님께 좀 실망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라면 절대 자식 목숨 걸고 전쟁 같은 거 하지 않으실테니까요...”




그는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털끝만큼의 표정 변화도 없어, 그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기왕 말을 꺼낸 거...




“유진이 그간 빗나간 거, 제 짧은 생각으로는 정 붙일 가족이 없어 그런 겁니다. 아빠, 엄마, 오빠가 다 있는 데 가족이 없다는 게 이상하잖습니까? 걔가 좀 편안하게 돌아갈 집이 있으면, 저렇게 밖으로 빙빙 돌지는 않을 텐데... 지금은 성수가 없으니까, 아버님이 좀 유진이에게 정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아빠로서요....”


“알겠네. 내 고려해 보지.”




표정은 여전히 같았지만, 그의 말투로 봐선 꾹 참고 있는 듯 했다. 하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새까만 어린 놈이 아빠 노릇 좀 똑바로 하세요! 하고 있으니, 기분 좋은 사람 있겠는가? 그 기분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어이 한마디 덧붙이고 말았다.




“그리고 새어머니도 엄마로서 좀 따뜻하게 돌봐 줬으면...”


“그 여자는 안 돼!”




네? 안되다뇨? 뜻 밖의 그의 고함에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부인이면, 당연히 아이들의 엄마인데... 어느새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여자는 회사 소속이야. 유진이 엄마로는 맞지 않아. 두 번 다시 그런 소리하면... 어쨌든 자네 뜻은 잘 알겠네. 그 봉투는 넣어두게.”




그가 먼저 나가버리고, 나는 텅 빈 횟집 룸에 혼자 남아 마음 속 혼란을 정리했다. 회사 소속 직원을 그 동안 집에 출장 근무 시켰다는 것인가? 결혼은 그냥 한 거고... 하하... 아... 그렇지... 그래서 일본 보내서 교육도 시키고... 업무 능력 계발이구나... 집에 오는 손님 접대용으로 쓰고... 마누라를 내주니 얼마나 그것들이 짜릿해 하겠는가? 아... 돌겠구만. 천하의 똥개새끼도 안하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구만... 




성수 말대로 나이 들어 상품 가치가 없으면 폐기되겠구나. 조기 퇴직....흐흐흐... 마누라를 퇴직시키고... 신입 마누라 또 받고... 도대체 어려서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저런 말종 같은 발상이 나오나. 그럴거면 씨바, 죄 없는 애들은 딴 데 보내 키우던지... 그런 꼴 보게 하지 말고... 아랫배에서 묵직한 게 올라와, 가슴 속에 꽉 뭉쳤다. 그게 금방 터질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 동생들 다 그이 밑에 있어요.’ 했던 성수 새엄마의 말이 기억났다. 그래... 그 밑에서 그때 그 명수라는 친구처럼, ‘네 실장님!’하면서, 시키는 짓은 다하고 있겠지. 목숨이 끊어져도 문짝 하나 붙들고 있겠지. 저런 아버지니 성수나, 유진이나 돌아갈 곳이 없구나. 벗어나야 할 곳만 있구나... 에라이!




식탁이 뒤집히자 ‘와장창!’하고 그 위에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놀라 뛰어 들어온 종업원에게 성수 아버지가 줬던 봉투를 던져 줬다. 봉투 속을 확인하고 놀란 그 종업원이 후다닥 방에서 뛰어 나갔다. 나는 마치 갱 영화에서 나오는 듯한 유유한 발걸음... 사실은 몸이 떨려 가누기도 쉽지 않았다.




“저기...” 돌아보니 지배인인 듯한 자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서있었다.


“뭐요?”




“이거 가져가십시요.” 아까 그 봉투...


“그걸로 부서진 거 수리하세요. 꽤 될테니까...”




“그냥 가셔도 됩니다. 이걸 받았다가는...” 난처해 하는 표정으로 내 코트 안쪽 주머니에 그걸 찔러 넣는 지배인...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수리비는 원래 음식 값에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




좀 더 공기가 차가우면 좋겠는데... 속이 답답했다. 누가 시비라도 걸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당장은 작은 화풀이라도 할 만한 힘이 내겐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오면... 기어이 조기 퇴직 시키고 만다. 인간의 탈을 쓴 개 같은 자식...




집에 들어서자마자 대문을 열어준 유미 누나를 끌어 안았다. 누나... 우리 참 행복해. 좋은 부모 만나서... 내 품이 좋은 듯 가만히 서서 쫑알거리는 누나.




“또 술 마셨어?”


“응, 어쩔 수가 없었어.”




“몸도 좀 생각해라. 얼른 씻고 자.”


“누나 고마워.”








누나가 꿀물을 타 가지고, 내 방에 들어왔다. 그걸 벌컥벌컥 들이키고, ‘고마워, 누나.’해 주었다. 누나의 정성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듯, 그걸 받아들이는 나도 뻔뻔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누나가 빈 컵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다시 침대로 다가왔다. ‘엎드려 봐. 맛사지해 줄게.’ 그것마저 당연하다는 듯 나는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누나의 부드러운 손길을 떠올리며... 




‘단추 좀 풀어 봐.’... 몸을 굼벵이 같이 구부려 잠옷의 단추를 풀었다. 누나가 시키는 대로 팔을 한 쪽씩 펴니, 순식간에 위쪽 잠옷이 몸에서 벗어났다. 다시 베개에 이마를 걸치고, 베개와 침대보 사이의 틈으로 숨길을 확보했다. 엉덩이에 뭉클하게 올려지는 누나의 체중... 온 몸이 나른하게 힘이 빠지는 데, 한 곳은 오히려 뭉쳐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부드럽지만 강한 손길이 척추 양쪽을 압박하며 올라왔다. 돈 내고 하는 마사지면 ‘좀 더 세게요.’ 했겠지만, 무료라서 불평하지 않았다. 실력이야 박은혜 선생님에 비하면 형편 없지만, 그저 가볍게 등을 스치는 보드라운 감촉이 더 기분 좋았다. 세세하게 척추 마디마디를 세며 올라온 두 손이 목 뒤에서 양쪽으로 벌어져 어깨를 꾹꾹 압박해 왔다. ‘시원해?’, ‘응. 근육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 같아.’, ‘풋! 무슨 표현이 그래?’, ‘정말이야.’




양쪽으로 벌어진 어깨를 주무르느라, 누나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어깨보다는 엉덩이에 느껴지는 감촉이 더 나은 듯 했다. 치골의 단단함이 엉덩이를 움푹 누르고, 그 아래로... 이 두툼한 낯선 감촉은 뭐냐? 그 날인가......? 그래도 좋은 지, 철없이 부풀어 오른 기둥의 두께 때문에 하체가 허공에 뜨는 듯... 유미 누나의 체중에 내 엉덩이 체중까지 이겨내고 한껏 부풀어 침대를 짓누르는 힘 좋은 그 녀석... ‘힘들지 않아?’, ‘끄떡 없어.’




다시 두 손이 등의 바깥쪽을 누르며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와 골반이 만나는 지점에 유독 심한 압박을 가하는 누나... ‘킥, 내 허리가 부실하다고 느꼈나?’ 누나의 엉덩이가 몸에서 떨어지는 대신, 두 손이 엉덩이의 두터운 근육 층을 손바닥으로 눌러댔다. 엉덩이 근육은 물론 몸 반대쪽에 있는 기둥까지 심하게 눌려, 짜릿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만 해도 돼. 다 풀렸어.’, ‘아냐. 다리는 손도 안댔는데, 뭐.’




잠옷이 얇아 그냥 옷 위로 해도 될텐데, 바지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역시 무료라... 시키는 대로 엉덩이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내 몸을 벗어나는 바지...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팬티는 그냥 둬도 되는데... 짖굳게 끌어내리는 누나의 행동에서 마치 전문 직업인인 양, 자존심마저 엿보였다. 




무릎만 땅에 대고 지탱하는 고난이도의 자세로 그녀가 마사지를 이어갔다.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그리고 다시 허벅지로 와... 반대쪽으로... 누나가 엉덩이 근처를 주무를 때는 혹시 고랑이 벌어져 항문이 노출될까봐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철썩!’하고 누나가 엉덩이를 두들겼다. ‘큭, 왜 이렇게 궁둥이를 들고 있어?’ 참..나.. ‘누나가 남자가 돼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엎드려 있어 봐. 그러면 이해할 거야... 아래에 막대기를 하나 깔고 있거든...’




누나의 손길이 부드럽게 허벅지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누가 봐도 마사지는 아니다... 알주머니 근방의 피부를 긁으며 괴롭히는 그녀... ‘앞쪽도 해 줄까?’....... ‘힘들지 않아?’..... ‘응, 괜찮아.’... 부스스 몸을 돌려 누나를 쳐다 보았다. 베개에 눌려있어 흐린 시야에 누나의 모습이 뿌옇게 나타났다가, 점점 선명해졌다. 스탠드 백열등에 노랗게 반사되는 누나의 깨끗한 얼굴... 내 사타구니를 구경한 듯 고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두 눈은 초승달이 되어 있었다. 




빳빳하게 굳어 있는 기둥을 스스럼없이 내놓고 두 다리를 벌려 쫙 폈다. 그 안쪽에 갇힌 누나가 다시 발목부터 눌러가며 점점 위로 올라왔다. 허벅지까지 올라오자 나는 눈을 감아 주었다. 맘 놓고 보면서 해... 그런데 다시 반대쪽 발목으로 손을 옮겨 내 애를 태우는 누나... 드디어... 긴 시간을 기다려 이제 사타구니 말고는 만질 데가 없는데... 




손가락 끝 하나가 기둥을 타고 올랐다. ‘으음....’ 그 오묘한 감촉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 나왔다. 작정한 듯 기둥을 둥글게 포위하더니, 마치 다리를 마사지하듯 꾹꾹 눌러가며 기둥 길이 전체를 왕복했다. 어...어...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뭐 다른 방법이 있잖아... 응... 그렇게... 아... 너무 좋다... 누나가 처음에 배웠던 대로 기둥을 쥐고 피스톤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짜르르 전기가 흐르자, 저절로 허리 아래에 힘이 들어가 사타구니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누나는 그걸 무언의 강요로 받아들였다. 포피를 팽팽히 당겨 좆머리를 목까지 노출시키더니, 이제는 그걸 입술로 감싸왔다. 그리고, 느리지만 지긋한 압박... 점점 몸에 힘이 들어가 참기 어려웠다. ‘누나 올라와 봐.’, ‘안 돼, 오늘은...’, ‘왜? 하고 싶어.’, ‘오늘은 그냥 이렇게 해...’ 역시... 그 날이구나. ‘나 괜찮은데...’, ‘안 돼, 침대가 더러워질 거야.’ 여자에게 그 날을 선사하신 신이 미웠다.




팔을 머리 뒤로 괜 채, 내 흉측한 물건을 마치 예쁜 장난감인 양 가지고 노는 누나를 내려 보았다. 웅크려 있는 작은 몸뚱이... 사랑스럽다... 누나가 눈을 치떴다가 시선이 부딪치자 멋쩍은 미소를 짓고 다시 눈을 내렸다. 나도 해 줄게, 누나. 누나가 내게 해주는 것보다, 진규 형이 누나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이 해 줄게... 누나를 위해 세상 전부를 속이더라도, 앞으로는 절대 마음 아프게 하지 않을게... 




충분히 가지고 놀았는지, 누나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 속된 모습이, 전혀 속되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든 헌신하는 천사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쾌감 때문에 누나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누나... 나올려구 해...’ ......... ‘누나... 으....으으읏!’ 방은 어두운데, 머리 속은 하얗게 변했다. 뻔뻔한 좆대가리가 주둥이를 벌리고, 누나의 순결한 몸속에 정액을 마구 토해냈다. 




이제는 꽤 숙련된 듯 했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그걸 뱉어내는 누나... 그리고는 남은 정액은 나도 먹어야 한다는 듯, 잔뜩 충혈된 입술로 내 입술을 덮었다. 누나답지 않은 격렬한 키스... 




“사랑해. 나의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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