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Goal! - 3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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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부. 잘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주의!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팀명, 그리고 모든 일들은 소설로서 가공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ㅋ














-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고 라커룸으로 들어온 아이들의 얼굴은 


어느정도 배어져 나온 땀 덕분에 아침 때와는 달리 긴장이 해소되어 보였고, 


그것만으로도 수림은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샌가 준비해온 진한 블랙 커피를 한 잔씩 나눠주는 남희의 모습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설마…’




“근데, 왠 커피에요? 나 커피 안 좋아 하는데…”




혜미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종이컵에 가득 담긴 커피를 바라보며 투덜거리자 


남희는 나무라는 투로 대답해주었다.




“후식으로 마시라는 거 아니야. 전, 후반 내내 지구력을 유지하기 위한 일환인 거지.”




“에에? 그게 이 진한 블랙 커피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보통 운동을 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는 글리코겐에서 공급되는데, 


그 글리코겐이 없어지면 대신 피하지방이 에너지로 변하거든. 


그치만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은 글리코겐보다 먼저 피하지방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작용을 해. 




“아, 어려워요~”




“그니까, 다시 말하면 ‘카페인은 탄수화물보다는 지방을 에너지 원으로 먼저 사용하도록 


근육을 자극하기 때문에 소량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운동 중 지구력을 연장시킬 수 있다’뭐, 이런 건가요?”




수림은 자신의 학창시절 그나마 졸지 않고 들었던 스포츠과학 강의의 내용을 떠올리며 


쉽게 풀어 이야기 하며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커피를 한 잔 마신다고 갑자기 지구력이 늘어날 리가…”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혜미가 입을 열었지만, 바로 이어지는 남희의 말 덕분에 입을 쏙 닫을 수 밖에 없었다.




“30프로야.”




“예?”




“지구력이 30프로 증가된다고. 게다가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량의 카페인으로도 운동 중이나 


후에 느껴지는 피로도를 60프로까지 지연시킬 수 있다고 하니까, 싫더라도 한 잔씩 마시고 나가도록 해.”




남희가 그렇다면 군말없이 따라야 한다는 걸 알고 있던 혜미는 의외로 잘 마시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남자친구를 만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그리도 자주 커피ㅤㅅㅛㅍ에 다녀봐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순간 그 누구도 아닌 ‘현우’를 떠올린 것은 당연했고.




“저, 권코치님.”




한편 수림이 평소와 다른 딱딱한 음성과 함께 근심스런 표정으로 남희를 부르자 


남희는 전에 없이 안정되지 못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분명 첫 시합 날이니 만큼,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수림은 


그래서 더욱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네…? 무슨…?”




“커피요, 커피! 지금 권코치님은 눈앞의 승부에 집착해서, 정작 아이들의 건강을 외면하고 계시잖아요!”




그제야 남희는 수림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카페인. 




지금 수림은 카페인의 유해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반면 자신은 카페인의 단기적 효용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고.




“잊으셨어요? 감독님은 언제나 즐겁게 운동을 하자고 하셨잖아요. 근데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아이들을, 


아니 권코치님부터 이렇게 승부에 집착을 하신다면, 전 절대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저 전, 오늘 있을 시합을 위한 경기력 향상을 위해”




“그런 생각이 바로 문제 아닌가요? 경기력은 아이들이 지금껏 해온 훈련량이 말해주는 거지, 


이런 커피 따위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구요!”




“커피 따위라뇨! 이건 그저 단순한 커피일 뿐입니다! 게다가 요새 아이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커피란 말입니다!”




남희의 말 그대로 그저 커피 한 잔이었을 뿐이었음에도, 두 코치가 처음으로 반목하며 언성을 높이자 


괜히 투정을 부려봤던 혜미는 그야말로 눈동자만 굴리며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고, 


비단 다른 아이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두 코치는 여전히 서로를 쏘아보느라 아이들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기에, 


윤지만이 어젯밤 하연과 단 둘이 밤을 보낸 영후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거란 걸 눈치 채고 있었을 뿐, 


다른 아이들은 오늘의 경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더해져 


몸을 풀기 전보다 더욱 경직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자, 몸들 잘 풀었니 얘들아?” 




겨우 영후가 구세주처럼 커피 향이 가득한 라커룸에 들어섰지만, 


냉랭해진 분위기는 쉽게 바뀌질 않았고, 영문을 알리 없던 영후는 갑자기 찬바람이 쌩 부는 


두 코치들을 바라보다가 윤지에게 눈으로 물었지만 윤지는 심드렁하게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




‘후…’




기자석에 앉아 여주대와 한국여대의 출전선수 명단을 바라보던 하연은 중,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하러 온 것 말고는 텅텅 비어있는 관중석을 확인하고는 조금 한숨을 내쉬어보았다.




“괜찮으려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관중의 수라면 보통,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첫 출전의 선수들에겐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축구선수답지 않은 아이들의 미모 덕분에 


매일 한국여대의 스탠드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관중들이 들어찼었기에, 


어쩌면 관중들의 환호에 길들여져 있던 한국여대 선수들로선 맥이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때문에 이럴 때 일수록 선수들을 다독거려야 할 감독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는데, 


어제까지와는 확실히 뭔가가 달라져버린 것만 같은 자신처럼, 


혹여 영후도 그런 건 아닌 지 하연은 걱정해 볼 수 밖에 없었으나 그도 잠시, 




아직도 뭔가가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은 자신의 하복부의 느낌 때문에 하연은 


아직도 떨리고 있는 두 다리를 애써 오므리며 주변의 기자들 모르게 얼굴을 붉혀보고 있었다.
















-




병원의 재활 센터에서 도우미의 지시를 받으며 의자에 앉은 채 천천히 왼 무릎을 접었다 펴는 동작을 하면서도 


근명은 입을 쉬지 않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니 다음주면 독일로 수술하러 갈 사람을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진짜…”




“몇 번을 말씀 드려요, 이런 류의 부상은 우선은 간단한 재활 과정을 거친 후에 수술을 받는 거라니까요. 


안 그럼 수술을 받는다 해도 걷기는커녕, 무릎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게 된다고요. 


아니지, 어쩌면 수술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독일 병원 측에서도 자기네로 오기 전까지 이렇게 스케줄 진행을 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또…”




“아, 누가 뭐래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성질 더러운 근명을 위해 특별 배치된 만만치 않은 도우미들 덕분에 


근명은 꽤나 순한 양이 되어 버린 듯, 금새 말꼬리를 흐리며 묵묵히 왼 발에 정신을 집중하며 움직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근명은 무릎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티비 좀 보면서 하면 안돼요?”




“예? 왜요?”




“축구 경기 좀 보게요.”




“지금 이 시간에요? 무슨…? 아, 프리미어리그 재방송이라도 하나요?”




“프리미어리그는 얼어 죽을… 축구 선수권대회요.”




“축구… 선수권 대회요? 그게 뭔데요?”




“아, 진짜… 그런 거 있어요! 여자애들 나와서 하는…”




“에에? 여자들이 축구를 해요? 금시초문이네요. 근데 그걸 무슨 재미로 봐요? 


적어도 프리미어리그나 세리아 정도는 돼야”




“이봐요…”




“…?”




“나, 대한민국 K리그 선수거든? 


당신 우리나라 축구 경기장에는 한 번 가보기라도 하고 주둥이를 나불대는 거야 지금?”




“……”




“잔말 말고 빨리 티비나 틀라고!”




그제야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달은 도우미는 근명의 눈치를 보며 리모컨으로 


천정에 매달려 있는 넓은 화면의 엘씨디 티비를 켰고, 그러자 마침 그라운드로 꼬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는데, 




푸른 색의 그라운드를 보자마자 근명은 하마터면 자신의 다리 부상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날 뻔 했을 정도로 


그리움을 짙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또다시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에 전화를 해준 ‘그녀’에게로 옮겨가고 있었고.
















-




정말 평소의 근명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간단한 재활 운동이었음에도 ‘부상’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고, 


또 환자복을 입고 있자니 괜히 더해지는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깊은 단잠에 빠져있던 새벽. 




아스라히 먼 어디선가 울리고 있는 음악소리에 베고 있던 베개로 귀를 막을 까도 생각해 봤지만 


어쩐지 눈을 떠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머리맡 테이블 쪽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으으… 누구야… 누군데 잠이나 쳐 잘 것이지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잠결에도 성격은 변치 않는 것인지, 아니면 단잠을 깨웠기에 더욱 화가 난 건지, 


근명은 중얼거리듯 잠 내음을 풍기며 입을 열었는데, 수화기로 들려오는 너무나 간절했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어쩌면 침대 위로 일 미터는 뛰어 오를 것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잤니…?’




“바,박기자님?! 어…어쩐 일이에요?”




‘미안, 자는 거 깨웠나 보네.’




“아니에요 아니에요! 자긴 누가 잤다 그래요?! 이런 초저녁에.”




말도 안 되는 말을 되는 대로 늘어놓는 근명의 목소리에 수화기 저편에선 잠시 침묵을 유지했고, 


그 때문에 근명은 더욱 조바심을 내며 핸드폰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꿔 잡으며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박기자님?! 끊은 거에요?”




‘아니, 나 여기 있어.’




“뭐에요, 놀랐잖아요. 전화 건 사람이 말은 않고…”




겨우 하연의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던 근명은, 


그러나 뭔지 모를 느낌이 뇌리를 스치자 갑자기 전혀 알 수 없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어 


홀연히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소중한 것을 눈 앞에서 잃어버린 것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런 기분이었기에 근명은 차마 더 이상 하연에게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지만, 


이내 하연이 망설임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자 근명이 얼른 말을 가로 막았다.




‘근명아, 나…’




“선배는 잘 있죠?”




‘어? 어어…’




“정신 바짝 차리라고 전해줘요. 내가 지켜보고 있다고…”




축구 선수권대회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영후와 자신의 사이를 말하는 건지 언뜻 이해하지 못하던 하연은 


그러나 어쨌든 근명의 마음, 이해했다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맙구…’




근명 또한 뭐가 그리 미안하고, 또 뭐가 그리 고맙다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이 말을 끝으로 하연이란 여자는 이제 완전히 자신에게서 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더 할말 없으면, 이만 끊을게요. 요새 잠이 늘었는지, 졸리네요.”




‘…그래… 미안…’




“그 미안하다는 말 좀!!!”




순간 울컥하며 소리를 질러버리고는 이내 후회가 밀려오자 근명은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뗀 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환자복 소매로 닦아 보았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목소리만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소리질러서… 미안해요. 그럼 끊을게요.”




‘그래… 그럼 잘자…’




근명은 결국 할 말만 하고 황급히 핸드폰을 끊으려 했지만, 


자신보다 먼저 끊지 않고 대답해주는 하연 덕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한 손에 든 채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




전주 월드컵 경기장을 다시 찾은 철용은 오늘은 편안히 혼자 관람할 요량으로 


그늘을 찾아 관중석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겨우 좋은 자리를 찾아냈지만, 


그곳은 이미 이상한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남자애 하나와 역시나 비슷한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커다란 몸집의 중년 남자 하나가 이미 선점하고 있었다.




“어, 선배님…?”




“엇!?”




혹여 혜미가 알아볼 까 꽤나 공들여 변장을 했건만, 너무나 손쉽게 철용이 자신을 알아보자 


규식은 무척이나 당황해 하며 옆에 앉아 있던 애꿎은 현우만 잡았다.




“임마! 이러면 몰라볼 거라며!? ”




“으… 얼굴이야 그렇지만요…”




그 커다란 덩치는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하려던 현우는 그러나 


철용이 규식의 옆에 앉으며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여긴 또 어떻게…?”




“아, 뭐… 딸을 둔 애비의 심정이라고 해 두세.”




“아차, 그때 말씀해 주셨었는데, 깜빡 했습니다. 근데 그게 누굽니까…?”




“두고 보면 알 걸세. 그 어떤 선수보다도 눈에 띌 테니까.”




역시나 자식 자랑은 그 어떤 부모이던 간에 마찬가지였던 건지, 


규식의 무한한 신뢰를 지켜보며 현우는 괜히 조전무를 떠올리고 있었고, 


철용은 철용대로 규식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며 조금쯤 커지는 눈으로 물었다.




“그 정도… 인 겁니까? 그럼, 진작에 저한테 맡겨 주셨으면”




“임마, 영후나 해결하고 들이대라. 그럼 한 번 생각해 보고.”




“아, 그거야…”




규식의 입에서 조차 영후가 거론되자, 하여간 그 놈이야 말로 만병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하며 


철용은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여자 애들 축구 수준은 좀 어때? 한 번 보기는 했나?”




“음, 네 어제 개막 경기 봤었습니다. 


생각보다 아기자기 한 면도 있고, 남자 경기 만큼이나 터프한 면도 있고, 뭐 그렇더군요.”




“그래…?”




철용의 진지한 대답에 규식 또한 진지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현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오늘 한국여대와 붙는 저 ‘경기 여주대’에 대해서 아시나요?”




“아, 뭐 조금… 근데 넌 누구냐?”




“아, 안녕하세요 저는”




현우가 머쓱해하며 인사를 하려하자, 냉큼 규식이 먼저 끼어들었다.




“현우라고, 딸내미 남자친구일세. 잘 키워서 사위 삼을 까 생각 중이고.”




“에에?”




철용은 이제 겨우 고등학생 티를 갓 벗은 것 같은 현우를 꽤나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똘망 똘망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덕분에 질문을 다시 떠올리곤 


어제 남희와 나눴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간단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너 혹시 우리나라 여자 축구 선수들의 꿈이 뭔지 아냐?”




철용에게서 의외의 질문이 먼저 건네지자 현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전혀…요.”




“하나는 대표팀에 승선하는 거고, 또 하나는 해외 진출을 하는 거야.”




“보통의 남자 선수들도 꾸는 꿈 아닌가 그건? 새삼스럽게… 싱겁긴.”




조금 기대했었던 탓에 무척이나 원론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규식은 헛웃음을 지었지만, 


철용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치만 그것 말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선배.”




“?”




“그건 바로… 여주대를 이겨보는 거라더군요.”




“!!!”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는 철용을 그제야 규식과 현우는 놀란 눈으로 바라봤지만, 


철용은 모른 척하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지금이야 해외 이적과 신설된 프로리그로 선수들이 빠져나가서 국가대표 선수가 적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지금도 공격수,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수비에 한 명씩, 모두 세 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있고, 또”




“또?!”




“오늘의 여주대 스타팅 멤버 전원이 유니버시아드 선발진 입니다. 


즉, 다시 말해 대학 선발 대표팀이나 다름 없단 말이죠.”




“마…말도 안돼… 그래도 그렇지, 저… 전원이…?!”




그제야 규식은 철용이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혜미야…’






















-




혜미는 센터서클에 선 채로 제법 영후와 비슷하게 축구공 위에 발을 올려 놓은 채 


휘슬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상대 진영을 바라보았다.






---------------김나래-----김진영




----강나루-----박성은-----김인영-----윤지수




----김소정-----이유라-----심서연-----홍진아




--------------------윤사랑






여주대 선수들의 온통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혹여 까맣게 탈까 얼굴과 팔 다리 등에 


잔뜩 선 블록을 바르고 나온 한국여대 선수들과 더욱 대비되어 보였고,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 또한 단정한 여주대의 선수들에 비해 오합지졸로 비쳐지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혜미가 느끼고 있는 뭔지 모를 압박감에 비하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만만치 않겠는걸…’




국가대표니, 대학 선발이니 그런 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어쩐지 조기 축구회의 아저씨들을 마주섰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 느껴지는 통에 


혜미는 애써 심호흡을 해보며 뒤를 돌아보았다.






-------------------혜미 




-------------------아라 




----민지------수정------은채------나경




----하늘------진희------미애------소영




-------------------미자 






그런데 혜미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아이들도 모두 느끼고 있었던 듯, 


꽤나 얼어있는 모습이었기에 혜미는 어떻게 해야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며 


벤치에 묵묵히 서 있는 영후를 돌아보았는데, 




저기 서 있는 감독이라는 직함을 가진 남자가 라커룸을 빠져 나오기 전 


자신을 따로 불러 세워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어 보았다.


















-




“혜미야, 잠깐 감독님 좀 볼까.”




“?”




라커룸을 나와 곧바로 경기장으로 나가려는 혜미를 멈춰 세운 건 다름아닌 영후였다. 


경기를 앞두고 결국은 아이들에게 평소대로 ‘즐겁게’ 경기를 할 것을 주문하는 모습에, 


혜미는 역시 감독님답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서야 


자신을 따로 불러 세우자 혜미는 조금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경기… 쉽지 않은 건가…?’




하지만 이내 영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혜미에게 물어왔다.




“어떠니 그거. 괜찮다면 오늘 보고 싶은데, 혹시 안될까? ”




“네? 그거… 라뇨?”




“그거 있잖니, 너하고 처음 만났던 날.”




“처음… 만났던 날이요?”




“그래,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그거’말야. 시작하자마자 바로 해보지 않을래?”




영후의 수수께끼를 곧바로 풀지 못한 혜미는 그러나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먼저 통로를 빠져나가는 영후의 뒷모습을 뒤쫓아 우선은 경기장으로 나왔지만, 


영후는 더 이상의 힌트를 주지 않은 채 상대팀의 벤치로 걸어가고 있었다.
















-




“오늘 경기, 잘 부탁 드립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며 세세한 관찰을 하던 여주대의 이영기 감독은 


뜻하지 않게 영후가 먼저 찾아와 반듯하게 인사를 건네자, 조금쯤 마음이 흔들릴 뻔도 했다. 




선수로서 활약은 커녕, 프로에 데뷔도 못해본 자신의 미천한 경력, 그리고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여자축구의 감독이란 자리를 맡고 있는 자신을, 당연히 이 남자 깔보고 업신여기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허나 영후의 인사 한번으로 모든 게 뒤죽박죽 되어버리는 기분마저 들었기에 이영기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기쁘게 맞아주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뭐, 잘해봅시다.”




그리고 예의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맞잡아 본 영후의 손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축구인만이 느낄 수 있는 열정이 느껴지는 통에 하마터면 이영기 감독은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후의 손을 홱 뿌리칠 뻔도 했다.




“그럼.”




악수를 나누고서 다시 간략한 목례를 하고 돌아가는 영후의 뒷모습에 이영기 감독은 생각했다. 




절대 봐주거나, 소홀히 하지 말자고. 


그것이 이 남자에게 해줄 수 있는 자신의 유일한 인사일 테니까.


















-




‘시작하자마자 바로 해보지 않을래?’




삐~익!




‘아…! 맞다!’




위 아래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있던 한국여대 아이들과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파이팅을 외칠 때도, 


자신들의 포지션을 찾아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난 후에도, 




혜미는 영후가 내준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지만, 


이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려 퍼지자, 머리에 번뜩이며 지나가는 것 하나가 있었다. 




‘바보! 늘 연습해왔으면서! 그 날 이후로, 항상 연습해 왔으면서!!’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낸 완전 신난 혜미는, 센터서클에서 곧바로 아라에게 공을 밀어 주었다가 


다시 돌려 받고는 곧바로 공을 몰며 여주대의 진영으로 들어갔고, 


센터서클을 넘어 얼마 전진하기도 전, 그러니까 여주대 선수들이 채 진영을 가다듬기도 전에 


갑자기 왼발을 잔디에 견고하게 파 묻고는 오른발로 벼락같은 슈팅을 날렸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감독님이 보여준 그 슛을!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구요!!!’
















-




“아니 쟤가 갑자기 왜…!?”




남희과 수림 모두 갑자기 먼 거리에서 무모한 슛을 시도한 혜미를 보며 어이가 없는 듯, 


자리에앉으려다 말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멋진 폼이다 혜미야.’




벤치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지붕의 한 쪽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던 영후는 빙긋 웃었을 뿐이었다.














-




“어… 어어… 어어어…!!”




그야말로 철용은 자신이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분명, 지금 철용은 꿈을 꾸는 것도, 환상을 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엄청난 슛을 목격한 것이었을 뿐.




낮은 무게 중심을 유지한 채로, 무척이나 작고 간결한 폼으로 멋지게 찬 공은, 


온몸의 무게가 실린 듯 묵직하고도 꽤 빠르게 날아갔으며, 




미처 그렇게 먼 거리에서의 슈팅을 예상하지 못했던 여주대의 골키퍼 윤사랑을 비웃듯, 


공은 왼쪽 골 포스트의 중간 지점으로 정확히 날아가 골네트를 가르고 있었다.
















-




“우와아아아아!!!!!!!!!!”




그야말로 경기 시작을 알린 지 채 10초나 지났을까. 




혜미의 엄청난 슛이 성공하자 한국여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혜미에게 달려갔지만, 


혜미는 그 누구에게도 따라 잡히지 않으며 곧바로 영후에게로 달려가 그대로 덥석 안겼다.




“감독님! 봤어요? 내가 넣었어요! 내가 넣었다고요!!!”




영후는 땅에서 두 발이 떨어진 채 자신의 품에 와락 안겨있는 혜미를 대견스럽다는 듯, 


등을 두드려 주었고, 두 코치와 아이들도 그런 영후와 혜미를 둘러 싸고는 


한동안 선취 골의 기쁨을 나눴는데, 윤지만큼은 그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채 


영후와 진정한 교감을 나누고 있는 혜미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지…?’




당연히 기뻐해야 할 순간에 이상하리만치 질투심이 나는 것을 윤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윤지 말고도 그 순간에 좋아해야 함에도 좋아하지 못한 사람은 또 한 명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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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용이 현우의 목을 조르며 여전히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어쩐지 규식은 좋아하기는커녕 근심스런 얼굴로 다시 시작되는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돌아가는 혜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슛을 보고, 자네가 뭔가 깨달았길 바라네만… 행여 그랬대두… 


저 엷은 스쿼드로는 그 어떤감독이 와도 어쩔 수 없겠지.’




부디 자신의 예상이 틀리길 바람과 동시에 한국여대가 어떻게든 이 선취 골을 잘 지켜내어 


승리를 얻기를 바라며 규식은 더욱 심각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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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열이 정비되고 휘슬이 울리자, 불의의 일격을 맞은 이영기 감독은 그러나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 수비를 보고 있는 심서연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고, 이영기 감독의 사인을 확인한 심서연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백의 수비라인을 전체적으로 조금씩 끌어올리며 전진시킴과 동시에, 


자신은 그보다 조금 더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미묘한 변화를 한국여대 선수들은 감지하지 못했고, 


어느새 자신의 코 앞에 서 있는 심서연을 마주 하게 된 혜미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제대로 한 방 먹여줬단 생각에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으며 움직였는데, 


심서연은 순간 놓치지 않고 혜미에게 따라 붙었다.




“너… 뭐야…?”




농구경기도 아닌데 경기 시작부터 일대일 맨마킹이라니, 혜미는 꽤나 당황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래봬도 자신은 이영후 감독님의 마크도 따돌리고 슛을 성공시킨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이 경기에서 한 골을 넣었으니까. 




하지만 혜미는 알지 못했다. 심서연 뿐만 아니라 모든 여주대 선수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공간과 사람 둘 다 숨 쉴 틈 없이 옥죄기 시작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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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은 기자석에 앉아 기사 작성도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한국여대가 아닌, 여주대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바로 심서연이란 국가대표 중앙수비수가 있었고.




‘저 아이… 국가대표의 수준이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




하연은 현대축구에서 중원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중앙 수비수가 허리싸움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새롭게 깨닫고 있었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자리로 올라가 한국여대의 반격의 싹을 바로 바로 잘라버리기도 하고, 


때론 다른 3명의 수비수들을 지휘하며 오프사이드 라인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휘했으며, 


오버래핑을 나가는 양 윙백의 빈 공간을 적절하게 지켜내기도 하는 중앙수비수.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때때로 직접 전진하다가 적재적소로 지체 없이 장거리 패스를 날려 


공격의 시발점까지 해 내고 있는, 국가대표 수비수‘심서연’이야말로 


여주대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는 선수였던 것이다. 




혜미의 골 이후로, 심서연의 지휘아래 여주대 선수들의 엄청난 압박 수비가 시작되자 


그야말로 단 한번도 센터라인을 넘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모든 한국여대 선수들은 


여주대 선수들에게 완벽하게 장악 당했고, 종내에는 자신감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영후야…’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하연이 간절하게 영후를 불러보고 있었지만, 


하연의 간절함 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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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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