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Goal! - 39부

본문

39부. 틀림, 혹은 다름.
















주의!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팀명, 그리고 모든 일들은 소설로서 가공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ㅋ


















-




“그게…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희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오자,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영후는 그제야 남희의 양 어깨를 붙들고는 


훈련을 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모일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 시선들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영후는 이내 헛웃음을 흘리다가도 


다시 그럴 리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애써 피하는 남희의 시선을 억지로 찾으며 물었다. 




“아…니죠? 하하, 제가 잘못들은 거죠? 그죠?”




“아닙니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남희씨…?!”




영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남희에게 말을 하려 했지만, 철조망 사이로 


하나 둘 훈련을 멈춘 채 다가오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보이자, 


안되겠던지 갑자기 남희의 손목을 잡고는 다짜고짜 달리기 시작했다.




















-






부드럽게 도로 위를 달리는 고급 세단의 뒷좌석에 몸을 묻은 채 


조전무는 운전석의 기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은밀한 목소리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 때 말했던… 그래 그래… 되도록 빨리… 가능하면 오늘이라도… 그래… 음… 그럼 연락 기다리지.”




이윽고 전화를 끊고는 잠시 운전석을 바라보기도 했던 조전무는 이내 시선을 돌려 차창을 내다보며 


복도에서 만난 윤지의 흔들리는 눈빛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이제 약발이 다돼간다 이건가… 그렇다고 제까짓 게 내 손아귈 벗어날 순 없지… 암.’




조전무는 붉게 충혈된 눈과 대비될 정도로 입 꼬리를 올리며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괜히 꽉 쥐어보고 있었다.




















-




조전무와 윤지가 은밀한 대화를 끝내고 복도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도 다리가 풀린 듯, 


한동안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있던 철용은 그러나 지금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것들을 


누군가에게 한시라도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체 누구에게…?!’




분명, 있어서는 안될 엄청난 이야기였지만, 


과연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음에도 믿지 못할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해야 할지 철용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녀석에게 직접 말해줘야 하나?’




하지만 철용은 이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뜩이나 첫 경기를 패배한 팀의 감독에게 곧바로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면, 


분명 심각한 내분이 일어날 게 뻔할 것이었으니까. 




아니, 설령 내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 녀석이라면, 어쩌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채 


그대로 이 모든 걸 안고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그러니 어떻게든 빠른 시간 내에 영후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야만 했다. 


만에 하나 이 사실이 언론에 밝혀진다면, 분명 그 더러운 진흙탕 싸움에서 영후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만큼 승부조작이란, 스포츠에선 가장 무서운 범죄였으니까.




‘눈치 빠른 기자들이 알기 전에 조용히… 기자? … 기자?! 그래! 기자!!’




순간 철용은 ‘그 누군가’를 떠올려내고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




영후와 남희가 조금은 이상한 분위기로 사라지자, 


수림은 자신의 궁금증부터 애써 잠재우고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문제는 윤지였다.




“코치니~임! 트래핑 가르쳐 달라구요!”




“글쎄! 그것보다 지금은 마무리 훈련이 우선이라고 했잖니! 


너 제대로 연습도 하지 않다가 오늘 갑작스레 45분이나 뛰었잖아, 자칫하면 다친단 말야!”




“아이 참, 저 아무렇지도 않다 구요. 보세요!”




윤지는 정말 전혀 피곤하지 않다는 얼굴로 수림의 곁을 재빠르게 한 바퀴 돌아 보이고는 다시 앞에 섰다.




“보셨죠? 그니까, 가르쳐주세요오~! 전, 지금 그게 더 급하다구요!!”




수림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윤지를 바라보았고,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윤지도 수림을 바라봤지만, 


조금은 애원의 눈빛도 담겨있었다. 물론, 수림은 마음이 흔들릴까 애써 엄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결국 윤지도 수림도 자신의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자, 


오늘 출전하지 않았던 승은이가 슬쩍 둘 사이에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코치님, 공 주고 받는 건 그렇게 힘든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윤지하고 있을게요. 


코치님은 아이들 봐주세요, 네?”




결국 윤지에게만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었던 수림은 곱게 눈을 흘겨주곤, 


한데 모여 마무리 훈련에 한창인 아이들 쪽으로 걸어갔고 


그제야 승은이는 윤지를 향해 눈을 찡끗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자, 코치님은 가셨고… 난 뭘 도와주면 되겠니?”




“어? 어어, 그럼 우선 나한테 공을 차줘. 잘 차줄 필요 없고, 그냥 막.”




“어디, 여기서?”




“우선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맞는 거겠지?”




자신에게서 거리를 가늠하며 진지하게 떨어지는, 그저 장난으로 시작하는 것 같지는 않은 윤지의 얼굴에 


승은인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발 아래 놓여있는 축구공을 ‘툭’ 밀어주었다.




















-




하연은 영후의 기자회견 내용 전문을 본사로 전송시키자 마자 노트북을 대충 백에 집어 넣고는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와 영후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설마 했었지만, 공개석상에서 이번 대회의 우승과 해외이적을 결부시켜버리자, 


차라리 묻지 말았어야 했을까 후회도 잠시 해보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때문에 영후의 말을 되담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엔 그 녀석에게 가야만 할 것 같았다.




‘바보! 이 바보야! 그러지 말았어야지! 어쩌자고… 어쩌자고…’




하지만 경기장에도, 라커룸에도 영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하연은 여전히 발걸음을 옮기며 머리로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안되겠는지 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한 곳이 있었다.




‘그래, 보조 경기장!’




















-




“자, 이제 다시 얘기해 봐요. 남희씨, 그게 진심입니까?”




보조 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 경기장과 보조 경기장 사이에 있는 야외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한국여대의 리무진 버스의 뒤꽁무니에 서 있던 남희는 여전히 영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남희씨,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이런 건, 도무지 남희씨 같지 않잖아요! 


지금의 남희씬 제가 알고 있는 남희씨가 아닌 거 같단 말이에요!”




“제가… 어떤데요…? 감독님께서 보시기엔 제가 어땠습니까?”




드디어 남희의 입이 열리자 영후는 조금쯤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떠냐뇨? 그걸 몰라서 묻는 거에요?”




그러나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 여전히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희의 눈에 


영후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책임감 강하고, 언제나 올곧고…”




하지만 그렇게 많을 것만 같던 남희의 장점을 영후는 더는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왜 갑자기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 거지…?!’




분명, 영후가 아는 남희는, 권남희란 여자는 정말 좋은 여자였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일부 남자에게 의존하기만 하는 여자들과는 차원부터가 다른, 진짜 여자였다. 


그렇게 좋은 여자인데, 그런데…




‘도대체 난… 남희씨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걸까… 아니, 정말 뭘 알고는 있던 걸까? 


아님… 그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제야 영후는 남희를 비롯해 이렇게 소중한, 자신의 주변에서 항상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무심했던 건 아니었을까, 반성에 또 반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됐습니다. 그런 이유만으로 계속 팀에 머물며 폐를 끼치고 싶진 않습니다.”




한편 자신의 능력에 대해선 전혀 언급해주지 않는 영후의 모습에 남희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입을 열었지만, 그와 동시에 영후의 입이 열릴 것 같자 남희는 의도적으로 반 박자 먼저 끼어들고는 


연이어 속내를 털어놨다.




“처음부터 제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총장님 덕분에 일을 시작했던 것뿐 이었으니, 


이제는 원래 제 자리로 돌아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바보 같은 저 때문에 


오늘 경기도 이렇게 되어버려서 죄송했습니다.”




“후… 그게 대체!!! 오늘 경기에 진 건, 남희씨 때문이 아니잖아요!”




남희는 자신이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답’을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기에, 


눈앞에서 갑자기 화를 내는 영후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희가 이해를 하던 말던 영후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우리 한국여대가 우승이란 걸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됐어요?! 하지만!”




“!”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내 입으로 말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야말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남자의 입에서, 


길을 가다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남자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나약한 마음에 대한 고백이 흘러나오자 


남희는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이미 영후는 남희의 반응을 살필 여력이 없었던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남희씬 제가 어떤 놈인지 알아요? 저야말로 우유부단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놈이에요. 


하지만 내가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또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서 늘, 


난 버거운 목표만을 세우기 시작했죠. 


목표라도 그렇게 세워보지 못하면 현실의 난 여전히 망나니로 주저앉았을 테니까요.”




남희는 벌어진 입 만큼이나 안경 너머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들 중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실은 어느 누구와도 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여리다는 사실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제 앞에 갑자기 나타나준 남희씨는 모든 면에서 제게 귀감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남희씨가 우리 팀 코치였기 때문에 전, 더욱 높은 목표를 세울 수 있었구요.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남희씨는… 남희씨는 분명”




“……”




“제가 본 최고의 코칩니다.”




“!”




이미 마음을 접고 나서야 영후의 입에서 최고의 찬사가 튀어나오자 남희는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지만, 


영후는 그런 남희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러니, 어때요? 다음 위덕대와의 경기… 한 번 지휘해 보지 않겠어요?”




“예?! 그게 무슨…?!”




분명, 농담이어야 할 말이 그러나 영후의 표정 덕분에 진심으로 들리자 남희는 자칫 오해를 할 뻔도 했다. 


이미 한국여대의 탈락이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게다가 작년 이 대회의 준우승팀을 맞아 싸워야 하는 경기를, 


감독이 다짜고짜 코치에게 맡아보라고 하니 그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책임회피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이도 지금 이 남자의 눈을 바라본다면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지금의 남희 또한 그러했으니.




“남희씬 저와 생각이 달랐을 뿐이지, ‘틀린’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경기에 패배한 걸로 보자면, 남희씨보단 제가 틀린 거겠죠.”




“그런…!”




“전 남희씨 믿어요.”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할 수 없었던 남희는 


그러나 진심으로 자신을 믿는 영후의 눈빛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하연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경기장을 빠져 나와 연습 경기장을 가기 위해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던 중, 


한국여대의 리무진 버스가 세워진 곳에 서 있는 영후와 남희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항상 사리분별이 정확한 남희까지 있으니 마침 더욱 잘됐다 싶은 마음에 


하연은 한달음에 그 쪽으로 다가갔지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가 감도는 탓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는 버스의 운전석 쪽 앞 머리에 몸을 숨긴 채 둘의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자신의 뒤로 또 한남자가 다급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




남희는 이렇게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영후를 바라보다 보니, 지금 이 상황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어쩐지 지금이야 말로 자신의 마음을 밝혀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의 순결을 내어주면서도 결코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을, 이제는 부담 없이 말해도 될 것만 같았다.




“그럼, 절 선택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이에요? 난 이미 남희씨를 선택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같은 길을 가고 있잖아요.”




“아니요, 그런 것 말고…”




“?”




“위덕대와의 경기를 맡는 대가로, 박기자님 대신 절 선택하실 수 있겠냐는 말씀입니다.”




“네?! 그… 그건…”




순간 영후보다도 숨어서 엿듣고 있던 하연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만 가고 있었지만, 


그래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남희의 뺨을 후려치고는, 지금 제정신이냐고, 


이런 긴박한 순간에 남의 남자가 가로채려하는 당신, 미친 거 아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머리채도 휘어잡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러지 말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바보, 안 그러기로 했잖아… 이제 영후, 놓아주기로 했잖아… 


영후야, 난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어서 남희씰 잡아… 어서!’




이렇게 하연이 갈등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남희가 꺼내든 말도 안 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영후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입을 열 생각도 못한 채 


남희의 눈에서 땅으로, 땅에서 다시 하늘로, 그리고 또다시 남희의 눈으로 영후의 시선은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대답도 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남희의 입이 다시 열리고 있었고.




“당연히, 아니 막연하게 박기자님을 감독님께선 사랑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오래된 사이였으니까요.”




남희의 말과 동시에 영후도, 하연도 그 옛날부터 이어져 온, 친구라는 이름의 굴레를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어젯밤, 그 지독한 멍에를 벗어버렸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나 불공평했습니다. 


감독님을, 제가 늦게 만나고 싶어서 이제야 만난 건 절대 아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제야, 하연은 영후의 원룸에서 영후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하던 


남희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때는 뭐가 그리 부러운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남희의 말 또한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은 그저, 남희보다 영후를 일찍 만난 ‘행운’이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누가 누굴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 시간은 아무런 핑계가 되지 못한 다는 결론을, 저는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길고도 절박한 남희의 독백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후는 그러나 별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




“남희씨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면…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네요.”




‘안돼, 안돼, 영후야 그러면 안돼!’




하연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둘의 앞에 나타나려 했지만, 


그와 동시에 하연의 팔을 붙드는 손이 있었다. 때문에 하연은 자신의 팔을 붙드는 손의 주인을 확인했지만 




‘처…철용씨…?!’




그 팔의 주인 또한 지금의 상황을 듣고 있었다는 듯, 그리고 하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겠으나 


부디 그러지 말라는 듯 조심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어주고 있었다.




















-




“오늘 혜미가 아저씨께서 온 줄 알았더라면 무척 좋아했을 거에요.”




물론, 더욱 신나서 경기도 잘했을 거라는 말은 현우는 하지 않았다. 경기는 이미 끝났으니까. 


하지만 현우가 차마 하지 못한 말만을 들은 듯 규식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혜미였다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을 게다.”




“아저씨두 참… 아 맞다, 내일 모레 위덕대하고 경기 있잖아요. 가실거죠?”




“봐서…”




분명 가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써 있었음에도 미지근하게 말하는 규식을 바라보며 


현우는 괜히 무안한 마음에 뒷통수를 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왜 어른들은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현우였지만, 


그래도 어쩐지 규식과 혜미를 보면 볼수록 부녀의 모습 그대로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덕분에 편히 갔다 왔다. 나중에 가게에 들리렴, 시원한 음료수 하나, 아니 두 개 정도는 공짜로 주마.”




“진짜요?! 약속하셨어요? 헤헤.”




별것도 아닌 것에 착한 웃음을 흘리며 좋아라하는 현우를 보고 있노라니 


규식은 그나마 오늘의 경기를 보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단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지만, 


이틀 후 다시 가슴을 졸이며 딸의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금 이마엔 주름이 깊게 패이고 있었다.




‘혜미 엄마도 하루하루가 이랬던 걸까…?’




어쩐지, 이제야 처음으로 헤어진 혜미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여자에 대해 ‘이해’라는 것을 해보는 규식이었다. 


아니 이해라는 건 부질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은 채 무조건 그라운드만 내달렸던 바로 그 때. 


규식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가게가 보이자 현우는 평소완 달리 조금은 바쁜 듯 인사를 했다.




“그럼, 저 가볼게요 아저씨.”




“그래, 조심이 가거라.”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내내 조금은 안절부절 못하더니만, 바쁘면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도 


부득불 큰 길가에 차를 세워 둔 채 가게에까지 같이 동행해준, 


그리고 다시 큰길가로 되돌아가는 현우를 규식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수림을 비롯해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버린 후, 연습 경기장에 남은 건 혜미와 윤지 뿐이었다. 




혜미는 시합 중에 했었던 패스와는 전혀 다른, 꽤나 딱딱한 느낌의 패스를 높게, 혹은 낮게 윤지에게 뿌려댔고, 


윤지는 그 공을 가슴으로, 머리로, 허벅지로, 발등으로 최대한 몸 가까이에 떨어뜨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튕겨내는 게 아니라, 힘을 죽인다는 느낌으로!”




혜미는 패스 한 번을 할 때마다 윤지에게 큰 소리로 조언과 응원을 해주고는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꽤나 놀라고 있었다. 이제 한 두 시간 남짓 연습을 했을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윤지는 어느덧 자신에게 오는 공을 반경 일 미터 안으로 들어오게끔 공을 받아내고 있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슛하는 거 말고도 패스 주고 받는 것도 자세히 좀 봐둘 걸 그랬어.”




“!!”




혜미는 정신없이 트래핑만을 하는 줄 알았던 윤지가 어느새 여유가 생겼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패스를 보내다 말고 선 채로 윤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안보내? 혜미야?”




“윤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어? 뭐가?”




“지금… 뭐라고 했잖아… 슛하는 거… 봤다고?”




“어? 어어. 너도 축구 좋아하지만, 나도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으면서 새삼 놀라는 척하긴…”




“아니, 그게 아니라… 너 그럼, 오늘 보여준 슛도, 어디선가 본 걸… 따라한거야…?”




“그게… 처음에 넣은 건, 너도 봤잖아. 그때 내가 아이팟에 넣어준 거.”




그제야 혜미도 생각이 났다. 


그 작은 아이팟 화면으로만 봤음에도 온 몸에 전율이 일었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칩 슛이. 


하지만 지금 혜미는 그 때 보다 더욱 충격과 놀람으로 말문조차 막히고 있었다.




“그…니까… 너… 그냥… 본 걸… 따라서…”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윤지를 바라보며, 


혜미는 눈으로 보고 또 자신의 귀로 듣고 있으면서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것만 같았다.






















-




현우는 자신이 타고 온 고급 승용차와 함께, 자신을 기다리느라 차 밖에 나와 서 있는 운전 기사를 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언제나 똑 같은 모습으로 운전기사는 뒷좌석 쪽의 문을 부드럽게 연 채로 


현우가 차에 타길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현우가 차에 타자 문을 조심스럽게 닫아주고는, 


운전 기사도 자신의 자리에 타 시동을 걸려고 했는데,




“저 아저씨…”




“예, 도련님.”




“죄송한데요, 오늘은 먼저 집에 가서 기다려 주시면 안될까요?”




“네? 도련님 갑자기 왜…?”




“그냥… 좀 걷고 싶어서요. 바람도 좀 쐬고 싶고… 안될…까요?”




운전기사는 조금 고민을 하고 있었다. 


현우는 몰랐지만 조전무는 언제나 현우의 귀가 여부를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때문에 운전 기사는 항상 현우와 함께 해야만 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현우가 혼자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다…’




운전기사가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현우는 그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주고 있었기에 


결국 운전 기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현우는 그제야 밝은 얼굴이 되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튕기듯 뛰쳐나갔지만, 현우가 멀어지는 모습을 사이드미러로 한참이나 지켜보던 운전 기사는 


충분히 현우의 모습이 멀어지자, 시동 버튼을 가만히 눌러보았다.






















-




편의점안에서 밖이 내다보이는 통 유리에 하연과 나란히 선 채로 


철용은 컵라면의 남은 국물을 들이키고는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려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 따윈 하연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캔커피를 손에 든 채 


거리의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처연하게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고. 


철용은 나무젓가락을 간단하게 두 동강 내 빈 컵라면용기와 함께 휴지통에 쑤셔 넣고는 입을 열었다.




“아, 배고파 뒤지는 줄 알았네. 근데, 뭐라도 안 먹어도 되겠어요?”




철용은 자신만 허기를 달랜 것이 그제야 미안했던 지 짐짓 하연에게 또 한 번 물었지만 


하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그 모습에 철용은 방금 먹었던 라면발이 곤두서는 것만 같아 


‘왁!’ 소리를 질렀다.




“뭡니까?! 영후가 박기자님을 두고 딴 마음이라도 품을 것 같았어요?!”




“……”




그럼에도 아무런 말이 없는 하연의 캔커피를 쥐고 있는 손을 바라보다 철용은 겨우 성질머리를 죽였다.




“남녀 사이 이렇게 끼어드는 거 아니라는 건 아는데, 쳇! 어쩐지 남 일 같지가 않아서 말이오.”




철용의 긴 서론에 목이 말라옴을 느꼈던 탓일까, 하연이 그제야 손에 들려있던 미지근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제야 철용도 갈증이 해소된 듯, 다시 입을 열었고.




“마음에 짐이 있는 거죠?”




“!”




“뭐, 나하고 똑같지는 않겠지만. 왠지 그럴 거 같았수다. 


영후의 앞길을 막은 게 혹시 ‘내가’아닐까 하는 마음. 물론 나야, 진짜 그 놈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긴 하지만, 


나 말고도 영후 주변엔 우리 말고도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치만 기어코 놈이 싫다는데도 이럴 필요는 없잖소. 그러니 우리 이제 그런 착한 척은 그만 합시다. 


까놓고 말해서, 모든 선택은 그 놈이 한 거 아뇨, 아닙니까?”




그제야 하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철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철용은 하연의 슬프디 슬픈 눈빛에 


주춤할 뻔도 했지만, 짐짓 유리창으로 고개를 돌리며 계속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부상을 감춘 것도 그 놈이었고, 선수가 아닌 감독을 택한 것도 그 놈이었잖소. 


그런데 왜 우리가 지레 미안해하고 걱정을 해야 되느냔 말이오. 


아, 물론 좋아하는 사이라면 또 달라지겠지만, 난 이래봬도 여자를 좋아하지, 남자를 사랑하진 않거든.”




나름 재밌는 유머를 구사했다고 생각한 철용은 그러나 하연이 웃어주기는커녕, 


자신처럼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머쓱해졌다. 




하지만 하연의 시선은 그 어떤 것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걸, 오로지 좀 전 한국여대 코치와 함께 있던 


영후에게로 향해 있다는 걸 아는 철용은,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아까 그 두 사람 앞에 나타나서 뭘 어쩌려고 그랬어요? 


뭐, 난 괜찮으니까 그 코치를 택하라고? 사랑보단 영후 놈의 꿈이 더 소중하니까?”




“…”




“누가 그럽디까? 놈의 꿈이 박기자님의 사랑보다 중요하다고.”




“!”




“꿈은 말이오, 나 혼자 노력하면 죽기 전까지는 어찌됐든 이뤄볼 수 있는 게 꿈이란 놈이요. 


하지만 사랑은, 사랑이란 놈은 그렇게 꿈을 위해 죽도록 노력할 각오가 된,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사람의 마음이, 그것도 동시에 필요한 건데, 


그런데도 감히 꿈보다 사랑이 가볍다고 어느 미친놈이 말할 수 있겠소?”




꿈과 사랑.




하연은 무척이나 투박한 남자의 입에서 그 두 단어가 튀어나오자, 마음이 더 아련해지는 것만 같았다. 


다른 선수들이 꾸는 꿈은, 지금 그 남자에게는 꿈이 아니었다. 


그대신 그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것만 같은 꿈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여자 때문에…’




여전히 한숨만을 내쉬는 하연 때문에 속이 터질듯하던 철용은 


갑자기 자신의 이마를 ‘탁’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치며 입을 열었다.




“내 참,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네. 이봐요, 박기자님. 


내가 박기자님 고민을 덜어줬으니, 이번엔 내 얘기 좀 들어주겠소? 이번엔 진짜 영후 놈 문젠데 말이오.”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목소리를 낮춘 철용의 목소리는 더없이 작았지만,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철용의 억양과 분위기에 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기자로서의 본능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이 편의점에 들어온 이래로 철용의 말에 가장 집중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영후의 안위를 먼저 물었다.




“무슨… 설마 영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하연은 꽤나 심각하게 변하고 있는 철용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디 별 일이 아니길 바랬지만, 


자신의 육감은 그러나 단단히 각오해두라고 속삭이고 있었기에 


하연은 손에 든 커피캔이 찌그러질 정도로 힘을 줘보고 있었다.


















-




현우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 윤지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한달음에 달려왔고, 


숨도 고를 새 없이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스르륵 문이 닫히고는 기분좋은 중력의 느낌을 주며 부드럽게 올라갔고, 


층 수를 나타내는 숫자는 빠르게 바뀌어 어느새 11층을 표시하더니만 이윽고 문이 열렸다.




현우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윤지가 사는 맞은 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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