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Goal! - 4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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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부. 패스워드
















주의!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팀명, 그리고 모든 일들은 소설로서 가공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ㅋ


















-


하연은, 경기장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던 차에 몸을 싣고는, 시동을 걸기는커녕, 


다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빠르게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기자석에서 작성했어도 되었을 것을 차에 와서 쓰는 이유는 별 다를 게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국여대와 윤지에게 감동을 받아 버렸었기에, 


기사 작성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시선을 담기 위해, 조용한 공간을 찾아 왔던 것이었다. 




[새로운 별이 뜨다.




X월 X일. 


전국 여자축구 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선, 


어쩌면 한국 여자 축구계를 이끌어 갈지도 모를 샛별 하나가 떴다. 그 별의 이름은 다름 아닌 ‘송윤지’. 


송 선수는 경기 후반 20분 경 한국여대 스트라이커 장혜미가 부상으로 아웃되자 


그를 대신해 교체되어 들어왔는데, 2 : 1로 뒤지던 경기를 기적 같은 한 개의 어시스트와 


환상적인 두 골로 뒤집으며 결국 스코어 4 : 2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내 하연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창을 닫아버렸다. 




분명, 한국여대의 경기는 손가락에 꼽을 만한 멋진 경기였고, 그런 경기를 만들어낸 윤지야 말로 


더욱 멋진 선수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결과일 뿐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꽤나 거칠게 다뤄지며 상처가 많이 생겨난 노트북의 모서리를 매만지던 하연의 마음은 


그러나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경기장 그라운드로 향하고 있었다.




















-




경기가 끝난 건 벌써 한참이나 지났지만, 공식 경기에서 첫 승리의 맛을 본 한국여대 아이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관중석 앞까지 다가와 일렬로 선 채 어깨동무를 하고는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어댔다. 




이에 한국여대를 응원하러 온 관중들과 그저 축구를 관람하러 왔던 관중들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모두들 선수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한편, 혜미도 선수들의 환호에 동참하고 있었는데, 


다리에 아이싱을 한 채로 다른 아이들보다 더 격하게 뛰어대는 모습에 윤지는 혜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고, 


문득 윤지의 시선을 느낀 혜미는 그제야 윤지를 돌아보았다.




“왜?”




“괜찮…은 거야?”




그제야 윤지가 묻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혜미는 보란듯이 다리를 더욱 세게 바닥에 굴러 보이고는 


혀를 낼름 내밀어 보였다. 그에 윤지는 그나마 부상이 아니라는 것에 마음을 놓긴 했지만 


조금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혜미를 바라봤는데 혜미는 그에 아랑곳하지않고 그 누구보다도 더욱 높이 뛰어댔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치열했던 그라운드를 양복차림으로 천천히 거닐고 있던 영후의 귓가에 


조심스런 인기척이 느껴졌고, 천천히 돌아보자 그곳엔 남희가 복잡한 얼굴을 한 채로 서 있었다. 




“남희씨…”




“지금은, 아닙니다.”




“?”




고마운 마음에 남희를 불러본 영후였지만, 돌아온 남희의 대답이 무슨 의미인지 언뜻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영후를 남희는 잠시 동안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희는 영후가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나지막하게 불러주는 게 참 좋았다. 


오직 자신의 이름은, 눈 앞의 이 남자만이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서 만큼은 


자신은 "권남희"가 아니었다. 때문에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남희는 수줍은 듯 입을 열었다.




“권코칩니다. 감독님.”




남희의 입으로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한 영후는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남희를, 


아니 권코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물론 남희는 영후의 손이 자신을 안아주지 않고 


여전히 바지 속에 머물러 있는 아쉬움을 남몰래 감춰야만 했지만.
























-




“아응… 아… 아… 너무 좋아요…”




호텔의 룸 어디에선가 어린 소녀들의 이상 야릇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소녀들의 몸 위에 올라탄 수림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정말 죽어라 한 거구나?”




“참나, 그럼 뭐 장난으로 했겠어요? 아!”




침대에 엎드린 채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수림에게 마사지를 받으며 수비수 진희가 발끈했지만, 


그런 진희의 종아리를 잡고 있던 손에 수림이 일부러 힘을 주자, 


자지러지는 진희였고 그런 진희를 의기양양하게 바라보며 말하는 수림이었다.




“또 까불어라, 응?”




“칫, 코치님 미워요! 윤지가 있었으면 훨씬 안 아프게 해줬을 텐데…”




“뭐, 윤지?”




“윤지가 얼마나 마사지를 잘 하는지 모르시죠? 


맨날 우리 연습 마치고 나면 윤지가 우리들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곤 했었다구요.”




“정말?”




“그러니까 맨날 그 많은 훈련을 받았죠. 안 그랬음 죽었다 깨나도 못했을걸요?”




“훈…련? 그럼 학교에서부터? 마사지를 해줬단거니? 윤지가?”




“네…에.”




수림이 처음 알았다는 듯, 꽤나 놀라는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마사지를 멈추고 생각에 잠기자 


진희는 덜컥 잘못 얘기했나 싶어, 수림의 눈치를 살폈지만, 이윽고 수림의 입이 열렸다.




“근데, 윤지 방에는 아무도 없나 보던데…?”




“아마… 혜미랑 연습 경기장에 있을걸요?”




“뭐어?! 거긴 왜? 마무리 훈련은 아까 다 끝났잖니?”




“그게…”




그제야 제대로 혼나겠다 싶어진 진희가 입을 다물었지만, 


뭣도 모르고 샤워를 마치고 등장한 미애가 타월로 머리를 말리며 말했다.




“그 녀석들, 축구에 제대로 미쳤거든요. 아마 지금도 개인 훈련 하고 있을걸요? 어제도 그제도 그랬으니까.”




‘지쳐있을 텐데, 또 개인 훈련을?!’




수림은 시합을 마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점에 또다시 훈련을 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그러나 그 이전에 윤지의 마사지에 대해 듣고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자, 


왜 아이들이, 훈련에 별반 참여를 하지도 않았었던 윤지를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또한, 이제 경기에서마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훈련을 하고 있을 그라운드 위의 윤지를 떠올릴 수 있었고.
























-




“간다~”




혜미는 이제 거의 3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패스를 해도 제법 그럴싸하게 트래핑 해 내는 윤지를 향해 


그 느낌을 잊지 말길 바라며 몇 번이고 장거리 패스를 보내주었다. 




한편 윤지는 일부러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종잡을 수 없이 패스를 보내는 혜미에게 


불평조차 하지 않으며 열심히 공을 받기 위해 쉴새 없이 뛰어다녔다. 




“에고, 좀 길다~”




강약 조절에 조금 실패했던지, 패스를 날리자마자 혜미는 미안하다는 투로 얘기했지만, 


윤지는 그것마저 받아내겠다는 듯 달려갔다. 




허나 의외로 점점 더 뻗어나가는 공을 잡으려 바람처럼 달려나가던 윤지는 


자신의 앞에서 날아온 공을 너무나 가볍게 발 아래로 멈춰놓는 남자의 발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 먼저 반응을 한 건 윤지가 아닌 혜미였다.




“어? 아빠?!”




“푹 쉬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딸.”




“아 그게… 어, 근데 아빤 여기 어떻게…?”




“그…”




그제야 규식은 딸의 경기를 보러 오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었던 걸 기억해내곤 잠시 궁지에 몰렸지만, 


이내 이곳에 온 이유가 생각났다는 듯 바로 역공을 했다.




“그나저나 너 이 녀석, 아까 다친 데는 어쩌고 지금 이러고 있는 거야?”




“으…”




혜미는 딱히 뭐라고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윤지를 위해서 일부러 그랬던 거라 하면 경기가 장난이냐며 혼날 것이었고, 


실제로 다쳤던 거라면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혜미가 슬그머니 규식의 눈치를 살폈을 땐, 규식의 시선은 이미 윤지에게로 향해 있었다. 


이윽고 윤지가 가볍게 목례를 하자, 규식은 눈으로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아직, 뛸 만 한 거냐?”




“……”




윤지는 언뜻 규식의 말을 이해 못했지만, 규식은 이미 그라운드로 들어서며 말했다.




“괜찮다면, 오늘 시합에서 보여줬던 거…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말이다.”




“아, 아빠? 지금 무슨…? 우린 그냥 몸 풀기 정도로 하고 있었지 뭘 보여달라고… 어 윤지야? 넌 또 왜…?”




이해할 수 없는 아빠의 등장과 윤지에의 요구, 그리고 행동에 혜미는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당황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윤지는 페널티 에어리어 즈음으로 걸어가는 규식과는 반대로 


센터라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총장의 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노감독과 총장은 좀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총장은 실제로 확인한 한국여대 팀의 플레이를 보고 받은 감동이 사라질까 말을 아낀 것이었고, 


노감독은 그와는 좀 달랐지만 총장을 슬쩍 바라보고는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며 넌지시 물었다.




“그래, 괜찮았소?”




“뭐가요?”




“경기 말이오. 당신이 보기에 꽤나 조마조마 했을 성 싶던데…”




“말도 마세요. 아주 죽는 줄 알았는걸요. 참, 다음 경기는 나흘 뒤랬죠? 


그 때도 저하고 같이 와요. 네? 그러실 거죠?”




“허허…”




노감독은 방금 전까지 관중들과 하나가 되어 열광을 하던 총장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너털웃음을 지어보았지만,


그도 잠시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윤지의 모습에 다시금 차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헌데, 놈은… 왜 실전에선 그 드리블을 보여주지 않았던 겐가…’






















-




약한 바람이 불고 있는 연습경기장의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와있던 혜미는 


페널티 아크 즈음에 서 있는 자신의 아빠와 센터서클에 서 있는 윤지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뭣들을 하려고…’




하지만, 혜미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갑자기 윤지가 공을 툭 차고는 발걸음을 떼자마자 


톱 기어를 넣고 전속력으로 달려나갔고, 그에 규식 또한 조금은 긴장되는 듯한 자세로 윤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혜미는 시합 중 위덕대의 수비수와 부딪혔던, 윤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왜 또 저러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규식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윤지의 모습에서 절대 눈을 떼지 않으려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수비수들이 애 먹을 만 하구먼.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닐 테지? 어서, 어서 보여봐 봐! 그 드리블을!’




하지만 그 빠른 속도에서 한 단 더 가속이 되며 거의 규식의 코 앞으로 윤지가 다가왔을 즈음, 


규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이건?!’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규식에게 충돌하는 윤지가 있었고, 


규식은 윤지가 무턱대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통에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규식은 윤지가 다치지 않게끔 충격을 완화시키며 


윤지를 껴안은 채 그라운드 위로 붕 떴다가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털썩!




“윤지야! 아빠!”




윤지와 규식이 충돌함과 동시에 그라운드로 달려들어온 혜미는 쓰러져있는 규식과 윤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겨우 몸을 일으키는 두 사람 모두 괜찮은 건지 몇 번이고 확인해보고 나서야 


되려 규식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다칠 뻔 했잖아!”




“아이구 허리야… 그래. 다칠 뻔했다. 그런데 어쩌면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게다. 그렇지 않냐?!”




혜미는 갑자기 규식이 큰 소리로 외치며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만 같자, 윤지를 일으켜 세우다 


규식의 시선이 닿는 곳을 돌아보았는데, 그곳엔 다름아닌 한국여대의 감독이 서 있었다.
























-




한 손만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창틀에 손을 얹어 머리를 괸 채로 


지루한 밤길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하연은 그러나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핸들에 달려있는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 통화를 시작했다.




“네, 박하연입니다.”




‘박기자, 날세.’




“엇, 국장님?!”




하연은 방송국의 보도 국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바로 자세를 고치고 앉았다. 




‘우선, 미안하단 말을 해야겠네.’




“네? 그게 무슨…?”




‘자네가 말했던, 축구 협회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네.’ 




“네? 왜요? 충분히 취재해볼 만한 거였잖아요! 국장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게… 실은… 모든 루트가 막혀버렸네.’




“그런…”




아무리 심증이 있다 해도, 물증, 그러니까 ‘팩트’가 없다면 뉴스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하연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취재자체가 막혀버린다면 그건 더 이상 팩트의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자네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새롭게 선임된 이사진이 모두 그쪽 계열 사람들이라, 압력이 심해.’




설마 했지만, 하연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 방송국의 몇몇 시사 고발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뉴스라면, 그래도 희망을 걸어볼 만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때문에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힘이 빠져나가버린 듯한 하연이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국장님.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미안하네만, 내 힘으로도 여기까지가 한계라네.’




“그런 말씀 마세요. 어려운 부탁 드렸던 제가 더 죄송한걸요. 그럼 들어가세요.”




이윽고 국장의 전화가 끊기자 하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어중간하게 밟고 있던 악셀레이터를 깊숙이 밟으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이윽고 호텔로 돌아온 혜미와 윤지가 거리낌 없이 유니폼을 벗어 던지자 


그 폐쇄된 공간에 두 명의 늘씬한 미녀의 반라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 상태로 윤지는 혜미의 엉덩이를 장난스레 주물러대고는 웃으며 도망치는 혜미를 따라 


욕실로 들어가려 했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탓에 다시금 룸을 둘러보았다.




“왜 그래?”




욕실로 뛰어들어가려던 윤지가 멈춰선 채로 룸을 바라보자 역시나 속옷 차림의 혜미가 물었는데, 


윤지는 다시 혜미에게 물었다.




“혹시, 침대 옆에 뒀던 내 가방 못 봤니?”




“가방? 글쎄… 왜, 없어? 어떤 가방인데? 중요한 거라도 들은 거야? 누가 여기 들어올리는 없었을 텐데…”




현우가 가지고 온 가방을 직접 보지 못했던 혜미였기에 알 리가 없을 거라 생각한 윤지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혜미를 돌아보고 말했다.




“먼저 씻을래? 난 조금 쉬었다가 씻을게.”




“왜, 같이 씻지…”




어느새 윤지와 같이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에 어색함이 사라진 혜미는 윤지에게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윤지는 그런 혜미의 시선을 외면하며 침대에 앉았고 결국 윤지와의 목욕을 포기한 혜미는 욕실로 들어섰다.




“그럼, 나 먼저 씻는다.”




이윽고 혜미가 욕실로 사라지자 윤지는 잠시 욕실 문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집어 들곤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윽고 몇 번의 신호음이 들린 후에야 언제나 들어도 탐욕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튀어나왔다.




‘그래, 연락할 줄 알았지.’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러는 넌 무슨 생각인 게냐? 나는 우리가 무척이나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




‘뭐 상관없다. 이제 또다시 서로의 입장이 달라졌으니 새로운 계약을 맺으면 되는 거니까.’




“말 했잖아요, 더는…!”




‘지시를 내리는 건 내 쪽이다! 네가 아니라.’




“!”




‘그리고 넌, 지시한 그대로 움직여야 하는 거고. 물론, 네 물건을 돌려받고 싶다면.’




“그치만!”




결국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는 듯, 조전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고 


윤지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한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뜨끈한 국수국물 덕분에 자욱한 김이 서려있는 포장마차 안에서, 


규식은 소주병을 들어 영후의 잔에 채워주고는 이내 자신의 잔에 가득 담은 후 간단하게 원 샷을 해 버렸다. 


하지만 그런 규식을 영후는 바라만 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 했지만, 규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말해 보게.”




“네?”




“왜, 저런 어린 아이들에게 그런 몹쓸 기술을 가르쳤는지. 물론, 아직 완전하게 익히진 못한 모양이긴 했지만.”




“……”




“내 눈이 틀린 게 아니라면, 그 드리블, 전신 페인팅이더군. 아닌가?”




규식의 입에서 드리블 이야기가 나오자 영후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잠자코 소주잔을 들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맞습니다. 어느 정도는…”




“……”




규식은 영후가 별 동요 없이 인정을 하자 더욱 놀랐다. 또한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았다는 것 또한. 


설마 했지만 윤지가 보여준 동작은 그야말로 축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급 기술의 집약체였다. 


게다가 수준이 높은 선수들일수록 더욱 속이기 쉬운. 




수비수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공격수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수비수는 절대적인 반응을 보이며 미리 움직이기 위해 행동을 하는 법이었다. 


때문에 그런 수비수들에 대항하려 공격수들은 더욱 치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방금 확인한 윤지의 드리블을 영후가 한다고 생각하자 규식은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사실 윤지의 드리블은 그렇게 큰 동작은 없었다. 




하지만 거의 마주치기 일보직전에 윤지가 보여준 미세한 움직임은 규식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 미세한 움직임에 먼저 반응하며 규식 스스로 길을 터주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분명 윤지는 일직선 그대로 달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도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놀라다니.”




“윤지에겐 그런 걸 가르친 적은커녕, 그 드리블을 했던 적은 단 한번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비공식 연습 경기에서.”




규식은 영후의 이야기에 더욱 놀랐다. 


예상은 했었지만, 영후조차도 겨우 한 번을 해봤을 정도로버거운 기술일 줄은 몰랐으니까. 


그렇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여린 여자아이에게는 더더욱 고통스러운 기술일 것이었다. 




시선은 기본이고, 방향을 급속도로 몇 번이고 전환시켜야 하는 드리블은 


말 그대로 온 몸의 근육을 혹사시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럼 그 윤지라는 아이는 도대체…?”




“아마, 그 때의 제 모습을 보고 흉내를 내는 거 겠지요.”




영후는 파주의 화장실에서 윤지를 만났던 것을 떠올리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규식은 그런 영후의 미소와는 반대로 경악스러운 얼굴로 변해갔다.




“뭐?! 흉내…를 내? 설마, 그저 눈으로 본 것 만으로? 그 말을 지금 내게 믿으라는 건가?!”




“저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있을 줄은…”




영후와 규식은 각각 비워져 있는 술잔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이내 영후가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워주자, 


규식은 잔을 들어 또다시 간단하게 비워버리곤, 탁자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그럼 이제 어쩔건가? 계속, 저 드리블을 하도록 가만 놔둘 겐가? 눈앞의 승리에 집착해서 


저 어린 것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도록 놔둘 거냔 말일세!”




영후는 규식의 물음에 역시 소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크으,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제가 못하게 할 겁니다. 그래서도 안되고요…”




영후는 파주NFC에서 했었던 드리블을 떠올리자, 


또다시 온 몸의 뼈와 근육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아,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




어두운 방안에서 현우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아둔 윤지의 하드디스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만 볼까?’




하지만, 분명 암호가 걸려 있을 것이었다. 




‘에이, 뭐하는 거야 지금. 윤지는 그냥 맡아달라고만 했는데… ’




현우는 호기심과 윤지의 부탁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드디스크 쪽으로 천천히 손을 뻗어보았고, 이내 에어캡을 풀고는 컴퓨터 케이스를 열고 케이블과 전원선을 연결하고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뭐, 그냥… 잠깐만 보는 것 뿐이야.’




이윽고 모니터에 바탕화면이 나타나자 현우는 탐색기로 윤지의 하드디스크를 찾아 열어보았다. 


그러자 여러 동영상 들이 썸네일로 보여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녹색의 그라운드들 뿐이었다.




“축구… 경기 같은 것들인가?”




어느덧 긴장감이 사라진 현우는 이런 저런 동영상들을 재생시켜 보았지만, 


예상대로 각종 축구 경기들을 직접 촬영한 듯한 화면이었기에 흥미가 떨어졌는데, 


결국 숨김 파일 형식으로 잠겨있는 폴더를 찾아냈지만, 


두근거리며 클릭을 하자 패스워드를 요구하는 창이 떴기에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더 이상 이럴 필요는 없겠다 싶어진 현우는 컴퓨터를 끌까 했지만, 


뭐 다른 재밌는 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머지 재생 가능한 목록을 살펴봤는데 그 때였다. 




“어? 이건 뭐지?”




한참이나 아래에 있던 동영상의 썸네일은 그라운드가 아닌 다른 것이었기에 


현우는 이내 그 동영상을 재생시켜 보았는데, 확실히 그 동영상은 축구 경기가 나오는 동영상이 아니었다. 


어떤 남자가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볼일을 보려 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을 뿐.




“뭐, 뭐야…?!”




하지만, 이내 화면은 전환됐고, 이번엔 눈에 익은 한국여대 아이들과 즐겁게 웃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여졌다.


그리고 또다시 전환된 화면에선 이내 사무실인 것 같은 곳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여졌다. 




그에 카메라는 더욱 접근하여,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의자에서 졸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는데, 


카메라 워킹은 카메라 촬영기술을 전혀 모르는 현우가 보기에도 피사체에 무척이나 애정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부드럽게 감겨져 있는 남자의 눈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짙은 눈썹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화면에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의 진동 소리가 들려온 건.




우우우웅, 우우우웅.




“까…깜짝이야… 도대체 누가 이 밤중에…”




미처 진동에서 벨소리로 변경하지 않았던 핸드폰이 책상 위에서 제멋대로 움직이며 진동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후 이 밤 중에 누구인가 싶어 액정을 들여다보던 현우는 


마치 도둑질 하다 들킨 심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다가 재빨리 동영상을 일시 정지시켰는데, 


때문에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남자의 얼굴은 그대로 커다란 사진처럼 멈춰버렸고,


현우는 그 화면을 그대로 방치한 채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으응, 윤지야.”




‘어, 밤늦게 미안.’




“아, 아니야 괜찮아. 근데 무슨 일로…?”




‘그냥 해봤어.’




“어어…”




너무나 놀란 현우는 그 어떤 말도 쉽게 할 수 없었지만, 윤지 또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때문에 현우는 어떤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위덕대와의 경기 이야기를 꺼냈다.




“참, 경기 잘봤어. 정말 대단하더라.”




‘그 얘긴,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아, 그, 그런가?”




그러고 보니 혜미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던 걸 떠올리고, 아차 싶었는데 그런 현우의 멈칫거림으로 인해 


역시나 대화가 단절되어 버리자 현우는 답답했지만, 이번엔 윤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마워.’




“어? 뭐…가?”




‘하드디스크 말야.’




“아… 난 또 뭐라고.”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윤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중에, 나… 엄마랑 아빠 만나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보여 드리고 싶었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




현우는 그제야 하드디스크에는 윤지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음을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었다. 


또한 윤지와는 정반대로, 현실에 비관하며 ‘그 분’을 경멸하면서도 ‘그 분’의 힘을 빌어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어리고, 바보 같기만 했다. 때문에 현우는 이런 윤지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느껴졌기에, 


이내 진심을 담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좋아하실 거야. 분명히.”




하지만 그런 현우의 격려에도, 


이젠 그럴 수가 없는 걸… 이라며 윤지는 나지막하게 속삭였지만 현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또 통화하자.’




“어, 그래.”




‘참.’




“어?”




전화를 끊으려던 현우는 곧이어 윤지가 아스라히 남겨놓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좋아하는 사람 이름이야.’




“어? 뭐?”




통화를 끝내기 직전, 다짜고짜 이상한 말을 하는 윤지에게 현우는 곧바로 무슨 얘기냐고 되물었지만, 


어느새 핸드폰은 끊겨있었다. 




‘무슨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 이름이라니…’




현우는 도대체 모를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은 윤지를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모니터로 옮긴 순간, 


‘아!’하는 탄성을 질렀다. 




그곳엔 누구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의 얼굴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까.




‘좋아하는…! 윤지가… 좋아하는 사람…! 설마…?!’




현우는 서둘러 잠겨있는 폴더를 클릭했고, 패스워드 입력란이 뜨자,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력을 해 보았다.




ㅇ,ㅣ,ㅇ,ㅕ,ㅇ,ㅎ,ㅜ




그리고 엔터키를 누르자, 폴더는 거짓말처럼 열렸고, 현우는 조심스럽게 파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는 지금까지 열어 본 동영상들과는 달리 하나같이 어두운 배경의 썸네일들이 보여지고 있었기에 


결국 그 중 하나를 클릭해서 내용을 확인하는 현우의 눈은 더없이 커져만 갔다.




‘이… 이건?!’






















-




조전무는 윤지에게 한 방을 먹여준 생각에 희희낙락이었다. 


또한 현우에게 먼저 전화를 받고, 게다가 만나자는 얘기를 듣고 나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었다. 


때문에 비밀스런 요정에 들어서면서도 새로 들어왔을 법한 아가씨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현우와 만나기로 한 룸으로 안내를 받으며 들어섰다.




“……”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목례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정말 ‘현우’였다. 


마치 꿈처럼 현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조전무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평소와 달리 안절부절 못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그래. 오랜 만이구나. 그간, 별일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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