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초록스커트 - 7부

본문

소청빌딩 지하 사무실로 돌아온 시간은 거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퇴근 무렵이었다.




"수고들 많으셨지요? 어때요 미팅은 좋았나요?" 




난 같은 여자는 우리 일행을 맞이하면서 또 난같이 웃고 있었다. 조그만 회의실로 안내된 우리는 내오는 커피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누구의 동의도 없는데 모두 담배를 물고 불을 찾았다. 아무래도 초조한게 나만은 아니구나. 


잠시후 난같은 여자가 다시 들어 왔다. 그리고는 담배 피우는 우리를 향해 엷게 웃는다.




"담배 맛이 좋으시죠? 오늘은 여기 설문서만 작성해서 우리 미스 박에게 제출하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두어장 분량의 설문지였다. 




설문의 내용은 


회사의 이미지/ 첫느낌/ 미팅을 마친 기분/아쉬운 점/의문나는 점/ 앞으로의 기대/ 지금의 솔직한 생각/등 오늘의 겪은 일에 대한 소감이라고 할까 그런 내용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았으므로 우린 그것을 작성하고 곧바로 나와서 미스 박에게 그걸 넘겨 줬다. 




"이거, 아까 맡기신 봉투.." 




미스박이라는 아가씨가 내게 내민 봉투는 아! 윤식이가 주고간 그 봉투 깜박할 뻔했네. 




"아, 고마워요. 가도 되는거죠?" 


"네. 오늘은 가시고 내일은 안나오셔도 되요. 내일은 쉬시고 모래 아침 10시까지 출근해 주세요. 그날 할일은 그 날 알려 드릴거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많은 가게들이 있지만 내가 즐겨 찾는 곳 한군데가 있는데 편의점 옆에 있는 조그만 베이커리다. 밥 해먹기도 거북스럽고 하여 식빵이나 대용빵을 사는 가게랄까. 


주머니를 뒤지니 빵 값은 넉넉하다.




"안녕하세요? 오셨네요.."




들어서는 내게 올리는 빵집 여자의 인사가 찰랑거린다. 목례를 하고 빵을 고른다.




"아직 빵이 안나왔거든요. 1시간쯤 지나면 새 빵 나와요" 


"그래요."




대답대신 나는 빵을 몇종류 골라서 그녀의 앞에 놓았다.




"날씨가 그렇네요.. 좀 쓸쓸해 보이시네요."




언제 봤다고 별소리를 다하네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냥 검연쩍게 웃는 내게 그도 같이 웃어 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귓전을 감도는 음성의 살이 오늘 따라 선하게 들린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늘 혼자인 집. 옷을 벗어 대충 놓고. 유일한 친구 티비를 켠다. 홀아비 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고... 


쓸쓸한 밤이 시작되나보다. 




""여보세요. 나야. " 




윤식이 전화다. 




"너 그거 열어 봤냐?" 


"아니 지금 막 들어 왔어" 


"그래, 오늘 새 직장은 괜찮대?" 


"응, 그냥.. 아직 모르지 뭐" 


""허긴.." 


"근데 너 요즘 도대체 뭐하냐?" 


"응, 그거 풀어보고 나서 물어볼 것 있으면 전화해.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잘해야 돼 " 


"뭔데. 뭐를 잘해보라는 거야?" 


"응, 여하간 아직 안봤으니까 모르겠지 보고 나서 전화해라" 




전화가 끊어졌다. 


무얼까? 나는 각봉투의 주둥이를 뜯었다. 편지 한장 그리고 스카치 테이프 같은 작은 상자. 


이게 뭐야..? 




17 




『브레스톤 연구소의 DTMF 가이드』 라고 표지에 씌어 있었다.


이해는 커녕 문장과 어휘조차 낮설은 이 문서를 왜 내게 준걸까..?




첫장을 넘기면 순서 요약이 있었다. 약15장 정도로 되어 있는 문서. 


물건의 사진과 개요. 사용법. 그리고 주의사항 순으로 되어 있었다. 아이구 골치야. 이런걸 나보고 읽으라는거야. 체질에 안맞네.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뭔가 있기는 있는 것같은데.. 첨에 윤식이가 준 총과 그리고 지금 준 책자속에 무언가 내게 대한 부탁이 있을 것인데 말로하면 좋잖아....




티비에서는 코미디프로가 한창이다 수다를 떠는 수다맨이 나와서 연변이 어쩌구 저쩌구 이죽거리는데 담배에 의지하여 여유를 찾으려 애쓰는 홀아비 방. 동그란 담배 연기고리를 만들어 떠 보낸다. 오늘 그 산속에서 남자를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 뇌를 자극하나보다. 근질근질해지는 말초신경을 느끼면서 빙그레 웃고 있는데 참으로 내 앞 길이 어찌 되는건지 아리송 했다.




어린 시절에는 꿈이 많아 사람들은 나를 요셉이라 하지 않았던가. 꿈쟁이 요셉.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둘러 절하는 꿈얘기를 했다가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갔고 거기서 군대장관 보디발의 총애를 받아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다. 날이 갈수록 탐스러운 청년 요셉을 은근히 사모하며 몸을 비틀던 보디발의 아내는 타오르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남편 없는 날, 요셉을 자기 방으로 유혹하고 만다.




"아이고 요셉 청년 나좀 봐줘봥~ 배가 갑작스리 아파...여기좀 주물러봐용~" 


"아니, 마님 어디가 편찮으시단 말씀이십니까? 장군님을 부를까요?" 


"아녀요. 무슨 장군님을 불러용~ 요셉 당신의 손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어요. 당신은 정말 내 병을 고칠 명의란 말이용`" 


"네? 저는 의사가 아닌데요. 제가 무슨.." 


"괜찮아요 이리 다가와요. 나를.. 나를 좀 안정 시켜 줘용~ㅎ응응" 




이렇게 수작을 떨며 아담한 청년 요셉을 잡아 당겼지 않을까... 


점점 이상해지는 마님의 행동에 청년도 몸이 달아 올랐다. 이걸 어쩌나.. 나좀봐 몸이 타고 있잖아. 저 풍만한 몸매에 나를 오라하는 저 눈이 정말 너무 아름답네. 지금 여긴 아무도 없어. 이집엔 나와 마님뿐이잖아..그래, 그래 난 운좋은 놈이야. 정말 이런 횡재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왔잖아



"마님, 여기에요. 아님 여기예요?" 




요셉도 눈이 뒤집히고 보디발의 아내도 눈이 뒤집히니 곧 불바다가 될 기세다. 혈류가 열린다 몸이 커진다 부르르 떨리는 심장이 힘을 내어 아래로 흐르고 머리도 몸통도 다리도 이제는 제감각이 아니다. 이상 세포가 일어 난다. 올라간다. 불이 곧 붙을 것같다. 활화산이 터지리라. 세상에 내가 애굽까지 왔다가 이런 기쁨을 맛보다니 이 시대 최고의 미인이신 보디발 장관의 아내, 절세미인의 사과를 따 먹다니 금단의 사과는 왜이리 맛나고 싱그러운가....... 


그래서 그래서 요셉은 결단을 하였던 것이다. 정말 이럴 수가.... 




18 




음양의 이치가 섭리중의 가장 오묘한 섭리가 아닌가. 여행중에 어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남근 모양의 바위가 있는 고장을 지날 때 여인네들이 몸동작과 눈동자를 은근히 관찰해 본적이 있는데, 대개가 몸을 비틀거나 황당한 몸짓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스타베이션이라든지 그런류는 아닐지라도 상대의 성 앞에서서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정열에 불타고 정력 넘치는 청년 요셉은 타오르는 불꽃과 자신의 신앙과 자아와 그를 지키신다는 하나님과 투쟁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는 철문 잠긴 보디발 장군의 철옹성인 이 집. 그가 주인 마님과 잠시 정사를 나눈다 하여 누가 알 것이며 그 책임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 사랑에 국경이 없고 사랑에 나이가 없음이 진리이거늘 어찌 요동하는 저 여인의 청을 거절하여 쫒겨나는 우를 스스로 만들겠느냐 ¤ 




청년의 몸에 갖힌 용감한 정액들이 ‘ 나를 보디발의 아내 저 풍염한 궁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오’라고 조르고, 일어서는 육신의 힘이 그를 제촉한다. 그리고 몸이 단 여인의 옷이 벗겨지고 그 백옥 같은 풍만한 나신이 꿈틀대지 않는가.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그래도 그렇지 이 집안에 너를 들여 놓아주고, 너를 믿고 집안의 모든 것을 다 관장하게 하도록 전권을 준 보디발 장군의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다니. 사람으로서는 그럴 수 없나니 잠시 잠깐의 범죄가 평생의 사슬이 됨을 너도 알지 않느냐?’




양심이 반대편에서 요셉을 괴롭히며 변론한다.




"뭐해 요셉, 어서 이리로 오란 말이에요. 나를 가지세요.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해드릴께요. 둘이 도망가도 좋아요. 뭐든지 원하는 대로 따를께요. 어서요. 나를 나를...음음음... 어서.." 




요셉의 머리에서 두 의사가 싸운다 괜찮다 안된다 괜찮다 그래도 안된다. 네 책임이 아니다 기회다 늪이다.....갈등의 찰나가 흘러 간다. 인생은 어짜피 선택이 아닌가... 




"안돼오. 이 가정에서 있는 모두를 나에게 관리토록 하였으나, 단 하나 마님만은 저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보디발 장관님이십니다. 그리고 분명한 한마디를 말씀드리면 어찌 내가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요" 




불타던 청년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 덫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다. 


그러나 그는 보디발의 아내를 겁탈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훗날 바로왕의 꿈을 유일하게 해몽하는 사람이 되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7년 흉년이 드는 제국을 구원함으로써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과 아버지를 구해내는 인물이 된 것이다. 




얘기가 옆길로 새었나보다. 담배를 이어 물고 그 책자를 다시 살폈다. 




19 




<< 브레스톤 연구소의 DTMF 가이드 >> 를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 윤식이가 준 총의 모양이 그려져 있고 동그란 테이프로 보호된 붉은 색 탄환의 명칭과 용도에 대하여 적혀 있었다. 


<<물건은 22세기를 열어갈 선도적 상품으로 10년후에 우리 인류가 필요로하고 또한 이루려 하는 선진국의 기능을 자체적인 노하우로 제작한다>>변과 이는 실험용이라고 쓰여 있었다. 총을 꺼냈다. 냉장고 아래에 살며시 밀어 놓았던 총은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분명 내막이 복잡한 총이 틀림 없다고 판단 되었다. 




대충 훑어보고 내일 윤식이에게 전화를 하자고 맘 먹었다. 이 책과 총 그리고 설명서 탄환... 이걸 가지고 나보고 무엇을 하라는 건가.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라고 했고, 꼭 부탁을 들어 주어야 한다고 다짐을 했것다. 총과 나머지를 만져 본다



"그놈이 본래 성질배기가 더럽긴 하지. 잔치집에 가서나 초상집에 가서나 절대 남의 숫갈로 밥먹는 놈이 아니잖아"




윤식이를 두고 하는 내 말이다. 


청간쟁이였다 윤식이는 아무도 그에게 함부로 말을 부치는 일은 없었다.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놈이다. 뻔히 보이는데도 돌아서 가려 하지 않는 결벽증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총/누구나 총을 가지면 마음이 울근거리는거다. 남이 없는걸 가졌으니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나 할까..총이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을 굴복시키고 침몰시키며 뜻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던가..


그 총이 내게 지금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총이 세상에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닌 용도 미확인의 물체라니... 




담배를 이어 물었다. 


"딩동!" 


벨이 울렸다. 


비됴폰을 들었다.




"나야, 이모."




나는 피던 담배를 재털이에 비비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니, 왠일이세요?" 


"왠일이긴..조카 생각이 나서 늘 걸렸는데 오늘 큰 맘먹고 온거지. 저녁은 먹었어?" 


"아, 네 그.."




확실치 못한 내 대답을 눈치채고는 




"응, 그럴테지. 무슨 저녁을 먹었겠어. 좀만 기다려 내가 오늘은 밥좀 먹여야 겠네" 




이모를 보니 왜 이리 엄니 생각이 나는지. 어머니만 살아 계셨어도 내가 이꼴로 살지는 않을텐데... 




"그냥 놔두세요. 밖에서 늦게 먹었더니 별생각 없거든요..." 


"아니야. 그냥 가면 내 맘이 편치 않지..."




막내 이모는 삼성동에 사신다. 자식들이 다 훌륭하게 되어서 국내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과 남미로 떠나고 혼자 살지만 늘 편안하게 나를 대해주시는 분이시다. 엄마를 보고 싶으면 이모를 보라고 했던가. 




"자, 이리와. 다 됐어. 이거 조카 좋아하는거지. 먹어" 




이모는 내가 좋아하는 순두부에 담북장을 끓이신거다. 




"이모, 같이 드세요" 


"그래, 어서 먹어" 




이모이긴 하나 내가 나이 찬 조카인데다 홀아비이니 얼마나 조심스럽고 안탑깝겠는가.




"조카, 이리와 술한잔 가져 왔지. 나도 한잔 먹고 싶고 해서 슈퍼에서 한병 샀어." 




이모는 술잔을 내민다. 




"어이고 불쌍한 사람. 어쩌자고 혼자 이리 사나 그래" 


"이모님.." 




나는 잔을 받았다. 그리고 목에다 얼른 털어 놓고는 이모에게 잔을 내 밀었다. 




"그래, 조카하고 술먹으니까 참 좋으네" 




혼자 사는게 늘 고고해 보였던 이모가 오늘따라 외로워 보이는건 내 감정때문일까.. 




"근데, 어디 취직은 했어?" 


"네, 오늘부터 출근 했어요" 


"뭐하는데야?" 


"아직은 잘 모르겠구요. 뭐 연구하는 회사 같더라구요" 


"거 잘됐네. 요즘 얘기하는 거 벤처회사인가.." 


"네, 그런셈이네요" 


"그래, 부지런히 돈좀 벌고 짝 만나야지. 앞길이 구만리인데.." 




소주잔이 오고 갔다. 한 병이 금새 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사다 놓은 소주가 몇병 아직 있다. 




"한잔 더 하세요" 


"그럴까.. 큰맘먹고 왔으니 먹어도 되지 뭐" 




술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슴을 내놓는 약이라하지 




"이모, 외로우시겠네요? 미국으로 들어 가세요 형네 따라서.." 


"나는 안가. 혼자가 좋아. 혼자 사는 사람 심정을 조금은 알 것같아. 조카맘 이해가 돼" 


"그래도 이제 좀 야위신 것 같으셔요" 


"그렇지. 그러나 아직 견딜만 해." 




또 한병이 비워졌다. 


이런얘기 저런얘기 시간이 흐르고 상을 물린 이모와 난 외로운 얘기, 그리운 얘기에 시간을 보냈다. 


참으로 고웁던 이모. 아직 늙었다긴 그렇지만 눈가 잔주름이 인생수를 말해 준다.




"이리와봐. 조카. 참 귀여웠지 어릴적에..우리 언니 조카 낳고 얼마나 좋아 했는데... 오늘은 내가 큰맘먹고 조카한번 안아줘야겠네 이리와"




술이 좀 오르신건지 감정이 격하신지.. 


외로움을 밥먹듯하는 나야 이모가 너무 좋다.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피어 오른다. 




"이모! " 




이모는 나를 와락 안았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거리신다. 


이모의 따스한 체온이 귓뿌리를 달군다. 


어릴적 맡아본 젖냄새도 나는듯하고 나는 이모의 품으로 오무라졌다. 


먼데서 외로움의 둑이 터지는 함성이 들렸다. 밤이 깊어지고 이모와 난 자꾸 서로의 외로움을 터뜨리려는듯 연인처럼 몸을 붙당기고 있었다. 




20 




"내가 어제 술취했었나벼. 조카 잘 잤어?"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나는 이모의 뒷 모습에 아직도 소녀같은 수줍음이 서려 있다. 


밥을 짓는 사이 난 TV 틀었다. 대선주자의 얼굴이 나오고 사람 속 뒤집는 아니꼬운 세상사람 이야기가 즐비하게 나오고 좋은 얘기는 별로 없나보다. 




"나, 조카하고 같이 살면 어떨까?" 




싱크대에 붙어 선 이모가 빈말 같기도 하고 진실 같기도 한 말을 한다. 




"그러세요. 이모님 계시면 저야 좋죠" 


"그래~ 그래도 불편하지 않을까..?" 


"불편 하긴요. 정말이시면 그냥 오세요." 




보글보글 담북장이 끓고 김치도 가지런히 놓이고 김도 있고 근래에 첨 대하는 풍성한 아침상이라. 




"이모님하고 같이 살면 살찌겠네요..^^" 


"그래, 어서 먹어.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잖아?" 


"아니예요.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오라고 했거든요. 오늘은 윤식이좀 만나보려고 합니다" 


"응, 거 청계동 살던 이북영감 아들.." 


"네" 


"그사람 지금 뭐하지?" 


"잘 모르겠어요. 뭔가 대단한걸 하는 것같은데..." 




창밖으로 햇살이 찬연하게 들어온다. 


커피를 끓이시나 보다. 




"커피 사다 놓은 것 있나?" 


"네, 봉지커피요.." 




늘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윤식이 하고 사귀던 옥순인가 그 색시 내가 얼마전에 봤는데.." 


"어디서요?" 




귀가 번쩍 뛰었다. 




"응, 얼마전에 보니까 오류동 어느 빵가게 앞에서 봤거든.. 어딜 가는 것 같았어. 초록스커트를 입었는데 눈에 딱 띄대" 


"그래요~" 




옥순이는 윤식이와 어릴적부터 사귄 사이인걸 이모도 잘 안다. 그 것 말고도 옥순이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에 누구의 아내가 되나 하는 눈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늘 있어 왔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모님, 그럼 짐을 좀 가지고 오셔야 할텐데.." 


"정말이야! 내가 여기와서 살기를 정말 바라는거야?" 




이모는 감격한 것인지 의외여서인지 내손을 덥석 잡는다. 




"이모, 나 실제는 좀 힘들어요. 이모 오시니까 너무 좋네..."




응석을 부렸다. 그러고 싶었다. 




"알았어. 짐은 무슨 짐이 있나. 내가 알아서 할께. 자 오늘은 출근 안한다니까 좀더 자라고" 




설겆이를 하는 이모의 손소리가 들리고 난 소파에 비스듬이 눕는다. 




"담배 피워도 되죠?" 


"응, 괜찮아 " 




담배를 피워 문다. 


이모가 휴지에 물적신 재털이를 얼른 가져다 내 앞에 놓는다. 




"많이 피면 않좋다대. 어제 같이 잘때 보니까 담배 냄새 좀 나더라. 그리고 얼마나 가슴을 만지는지 민망해서 혼났네 ^^" 


"그랬어요.. 참 좋았어요 어제밤은.." 


"그랬어. 하긴 국민학교 다닐때가지 엄마 젖먹던 생각 나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쑥스러워서. 


아침이 지나고 우린 이런애기 저런 얘기를 한다. 


동네사람 얘기/ 아이들 얘기/ 미국간 이종사촌 얘기.... 




"이모, 피곤하시겠어요. 좀 누우세요." 


"그래, 날씨도 을씨년스럽고 어제먹다 남은 소주나 한잔 마실까?"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이모도 가실데 없으신가봐요?" 




조그만 손 상을 놓고 우린 또 술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고 술꾼도 아니고 중독도 아닌데.. 


외로운 사람들은 늘 서로의 가슴을 열기가 힘들어 술을 붓는다든가.... 




"자 마셔.." 




속이 짜르르 한다. 


이 기분에 술꾼들은 술을 마시나보다 




"이모도.." 




이모도 혼자산 탓인지 술을 좀은 마신다. 어릴적 앳띤 이모의 모습이 언뜻 언뜻 지나간다. 


참 고왔는데... 




"이모, 오늘 오후엔 드리이브나 할까요?" 




이모가 힐끗 돌아본다. 


발그래진 얼굴이 유리창 햇살을 받은 탓일까.. 




"이모, 참 예쁘시네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내 가슴에 진실이었다. 




21 




산이 술에 취하더니 이내 나무들이 잎을 떨고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싶은 사람들은 아랫목을 찾는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면 사람들은 학문을 연구하거나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다. 난 오랜 세월 굶주린 사람이다. 육신을 위해 무언가 죽어주지 않으면 몸이 살 수 없듯, 남자를 위해 어떤 여자가 몸을 부벼주지 않으면 굶주림은 해소 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며 절제하다가 무너지고 마는 것은 폭우에 견디지 못하는 저수지의 둑과 같은불가항력인가. 




포근한 이부자리위에 누워버린 여자. 사과 빛으로 속살드러낸 여인의 아름다움 앞에 선 나는 어쩔줄 몰랐다. 목마른 늑대는 샘을 넘보다가 물 맛을 보면 어떠한 위험도 무릎쓰고 샘을 찾는단다. 




"저 어째요. 너무 추워요. 안아주세요. 정말 너무 오래 떨었거든요." 




그녀는 내 맘을 알 것같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서 다가 오라고 손짓을 했다. 


폭설이 내렸나보다 하얀 눈 위를 달리는 사슴 한마리 꼬리를 살랑 거리며 깡총깡총! 


그 뒤를 달려가는 뿔달린 숫사슴 한마리. 힘을 다해 달리면 암사슴은 더욱 재미 있다는 듯 


나 잡아봐라를 연속하고... 




"어쩌죠. 이러면 안되는 줄 알지만요. 이제 제힘으로는 안돼요" 


"그렇지 너무 추웠지.. 어이고 불쌍한.." 




나는 그녀를 잡아야 했다. 폭죽이 터지는 순간 어쩔 수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나의 눈 속으로 들어 와서는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들고 그녀를 향해 돌진한다. 


미쳐버려도 한번은 질주하고 싶어 견딜 수 가 없다. 술이 화약이 된다. 브레이크 없는 차는 아래로 질주한다. 누군가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건데... 아무도 파열된 브레이크를 고칠 수 없다. 




"어......어.." 




언뜻 언뜻 황색선이 보이지만 그걸 의식할 처지가 아니다. 


사과빛 여인의 젖가슴을 헤쳤다. 정말 너무도 오랜만에 만져보는 꿈동산.. 


입술을 포갠다. 향긋한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 온다 입술에 배어오는 단물이 나의 몸을 떨게한다. 




"음응~" 




그녀가 내 몸을 받으려나보다. 


끈이 풀린다 내려간다 따스한 나라가 보인다 망아지가 되려나 보다 




"나도 너무 지쳤어. 이러면 안돼지만 어쪄~" 


".... 미안해요 죄송해요.." 


"아냐, 어쩌면 이러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잖아. .아무도 없어 여긴 둘 뿐이야.." 


더듬이를 뻗치고 어디에 나의 혼이 들어가야 하는지 더듬이질을 한다. 방향이 잡혀 온다. 그래 이곳이야 강이 이쯤에 있었지. 내가 원하는 강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쩐대. 사람이 아니지만 어쩐대... 정말 이러면 안돼잖아..." 




바람이 강물을 소용돌이 치게 한다. 구름위로 올라간다. 포근한 솜털들이 잔잔하게 깔려 있고 거기에 내 몸을 얹으면 샘이 보인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구름 위의 옹달샘. 




"아~ "나는 신음하였다 


"이....모.." 




갑자기 현관문이 확 열린다. 누구야! 


아니 엄~마! 돌아가신 엄마가! 




꿈이었다. 꿈이었구나. 미친놈! 속에서 나온 말이다. 


눈을 떳다. 쇼파에 기대 성냥팔이 소녀처럼 잠시 잠이 들었었나보다. 


이모는 어디 갔나... 


몸을 일으켜 두리번 거린다. 안방문을 연다. 




"어, 잠들었었네. 방이 따스하니까 졸리네. 좀더 자지 않고" 




난 무엇을 들킨 사람처럼 얼른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얼른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 댔다. 참으로 황당한 시간이었다. 혼돈스러웠다. 




22 




거지는 늘 배고프단다. 배부른 자들은 배고픈 자의 실정을 모른다. 왜 저들이 배고파 하고 괴로워 하는지 무시해 버린다. 그들은 무능해서 그렇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치부한다. 


홀로 살아 보지 않은 이들은 혼자사 는 자들의 머릿속을 늘 채우고 있는 갈증의 환상을 알지 못한다. 넉넉한 빵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문화의 혜택을 누리는 자들이야 인격도 있고 품위도 있고 늘 경건하고 성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영세민들의 생활이야 아무리 고고한 척해도 구차하고 지저분해 보인다. 옳은 소리를 해도 괜한 소리가 되고 철칙을 이야기 해도 너나 잘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어짜피 세상은 지남철과 같다. 힘이 센 쪽으로 달라 붙게 되어 있고 약한 쪽으로는 기울 수 없는게 인간사이라면 혼자 사는 나야말로 늘 배고픈 사람이니 개눈에 X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늘 정염을 태울 나눌 사람이 필요하고, 몸을 녹여줄 살이 필요하기에 혹하는 생각으로 늘 相對를 性으로 먼저 처다보는 우를 범하고 실수를 저지르곤 하지 않던가. 정상적인 사고가 안되는 건 욕구의 결핍 때문이다. 성적인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장애인이다 적어도 성에 대해서는 결핍을 가진 장애자일 수 밖에 없다.




세상에 태어나 늘 혼자라는 고정 관념의 틀속에서 육신의 걸인이 되도록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은 참다운 인간이 바닥을 모른다. 먹고 싶고 갖고 싶고 그리운 것들에 대해 애처럽게 갈구해 보지 않은 이들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난 다르다. 혼자서 오랜 세월을 갈증 찌꺼기 속에서 산 사람의 원초적 태성은 너무 다르다. 




이모는 이사를 온다고 했지만 빈말인것 같았다. 


하루를 이모와 둥그적거리고 드라이브도 가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갔다. 남녀란 함께라는 자체가 좋다. 연상의 여인은 포근해서 좋고, 연하의 남자는 싱싱해서 좋고 그래서 옛부터 연상의 여인을 사모하던 이들이 많았다지. 폭군 연산도 어릴적 자신의 이상이었던 숙모님을 범하고 말았는데 이는 남성의 정적 욕구 앞에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의자왕에겐 삼천궁녀가 있었고, 최고 권력자나 거부의 주변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암약(?)하고 있지 않는가. 부적절한 관계로 세계의 이목을 받았던 클린턴 대통령이나 모 국방장관 린다 김 사건등 인생의 근본적인 내용이 먹고 입고 자는 일과 성적인 쾌락의 전개일진데 누가 본능중의 본능을 유치하다 치부하나..... 




하루를 쉬고 출근 했다. 난같은 여자의 호칭은 사모님이다. 


그녀의 장애 남편은 명사장님이었고 주로 부르는 호칭은 박사님이다. 




"오늘도 여러분은 미팅을 가게 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 오시고 이따가 다시 보도록 하겠어요" 




일행은 전과 비슷했다. 이전에 거길 가야하나... 공주 지나 알지 못하는 산 속에 자리한 연구실같은 곳으로 가나보다. 그러나 그 생각이 이내 틀림을 알았다. 차는 금산쪽으로 가고 있었다. 남부 순환 도로를 접어 들다가 무주쪽으로 난 새길로 돈다. 우린 사뭇 멍하니 창 밖을 주시한다. 


아직 거두지 못한 갈 겆이들이 들판에 남아 있고 단풍잎이 산마다 스산하다. 




"자, 이제부터는 이걸 쓰셔야 합니다" 




도우미가 안대를 나눠준다 


우린 익숙하게 그걸 썻다. 그리고 이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커튼이 닫히고 어딘론지 차는 가고 있다. 오늘은 어딘가? 


궁금증이 가득한 침묵이 흐르고 도착 신호와 함께 우리가 안내 된다. 서글픈 산 바람이 을씨년스러운데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귓전에 성가시게 붙어 왔다. 




"이 무슨 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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