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외로움을 잊기 위해 난 겨울을 ... - 4부

본문

재희는 몇 번이나 놀러 와서 익숙해진-친구들과 밤새 파티를 했던 적도 있는- 진호의 오피스텔이 이렇게 낯설게 보이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혼자 사는 남자의 집에서 나는 당연한 냄새도 거의 맡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는 진호의 오피스텔을 유난히 좋아했던 재희였다. 무턱대고 찾아와 진호가 일하는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의 흔적으로 가득한 이곳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었던 재희는 무겁게 가라앉은 집안의 공기에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물론 이곳까지 오면서 진호의 차 안에서 느꼈던 것과 똑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 ...... "




상의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진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몇번이나 뭔가 적당한 말을 찾아내려던 재희는 이내 포기하고 입을 닫아버렸다. 아까의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일어나"라는 아주 짧은 말을 한 이외에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진호의 태도는 그녀를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 오...빠... "




진호는 재희가 부르는데도 전혀 듣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을 했다. 천천히 옷을 걸고 와이셔츠 차림이 된 그는 거실 한쪽에 놓인 소퍼에 앉아 재희를 올려다 보았다.




" 앉아. "




재희는 묵묵히 그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 소퍼에 앉아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앉고 난 후에도 진호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 흐음... "




진호는 감정을 조절하려는 듯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알고 있니? "




재희는 그의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에 지금껏 그녀를 괴롭히던 불안감이 조금 가시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대답해. "




그녀의 이런 식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진호가 말했다.




" 알고... 있어. "




" 재희가 알고 있는걸 한번 들어보자. "




진호는 말을 하며 작은 티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담배갑을 집어 들고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웬만해선 재희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빨리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니코틴의 도움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 오빠의 부탁... 날... 위한거였는데... 거짓말 하고...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




재희는 살짝 고개를 들고 그의 입에 물린 담배가 빨갛게 타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 아니 "




진호는 재희의 대답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길게 연기를 한모금 빨아들이더니 다시 내뿜으며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 내가 처음에 했던 말 기억하니? "




" ...... "




재희는 진호를 쳐다보며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내가 재희에게 바라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얘기했었지? "




그제서야 재희는 진호가 앞에서 했던 질문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재희에게는 첫키스의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그날, 진호는 재희에게 그녀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했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말고 약속을 지키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자신이 재희에게 원하는 것은 이것 뿐이라고 말했었다. 나머지는 지금의 모습으로 충분하다고 했던 진호를 보며 재희는 몇번이나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했지만 지금까지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 응... "




" 답답할텐데 우선 겉옷이라도 벗어라. "




재희는 아직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슬픈 미소를 지으며 코트의 단추를 풀었다. 옷을 소퍼 한쪽에 내려놓으려던 그녀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돌려 진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난 지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는게 아닐까... "




재희가 옷걸이에 외투를 거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호의 생각이었다.








" 이대로 용서해 줄까? "




진호의 질문에 재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끝나면 영원히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넘어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진호는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짐짓 무서운 목소리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하며 늘 재희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해해 주었었다. 재희는 만약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 버린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그녀 스스로 어렵게 얻어낸 사랑을 깨뜨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진호가 용서를 한다고 해도 자신이 용서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




재희는 문득 자신을 끝없는 생각의 고리 속에서 맴돌도록 강요하는 진호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라고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냥 이렇게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 어떤... 벌이든 받을께... "




한참 동안 생각해서 겨우 내린 결론이었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절대 이런 대답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고 있었다. 재희는 혹시라도 진호가 일주일-심하면 한달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동안 집에서 반성하라는 벌을 주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전화도 못하게 한다면 재희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임이 너무도 분명했다.




" ...... "




진호는 재희의 대답에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재희가 어떤 의미로 "벌"이라는 말을 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호로서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이 사랑스러운 여자를 한동안이라도 못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재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벌을 생각하고 있었다.




" 평범하게... 이 선을 넘지만 않으면... "




" 내가 어떤 벌을 줄지 알고 하는 말이야? "




" 아... 아니... 그건 아닌데... "




재희는 차마 머리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진호가 괜히 자신의 말을 듣고 그런 벌을 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그래... 내 마음만 확실하다면... "




" 어떤 벌이라도 받을거지? "




이미 진호의 의식은 강을 건너기 위해 물속으로 한발자국 내딛고 있었다.




" ...그...그게... "




" 제발... "




재희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며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어떤... 벌이라도... 받을께... "




그녀는 대답을 하고 난 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걱정하고 있던 그런 것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재희는 자신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니 상상은 했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기억 한편에 깊숙이 내던져 두었던 그 무엇인가가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후우우 "




재희의 마지막 대답을 들은 진호는 머리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였다.




" 일어나서 이쪽으로 와. "




재희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천천히 진호를 향해 걸어갔다. 진호의 옆으로 다가간 재희의 시선이 그의 얼굴을 향했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는 진호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종류의 벌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그녀를 괴롭히고 있던 걱정이 사라지자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재희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진호는 왼손으로 재희의 오른쪽 손목을 잡았다. 그의 손을 통해서 그녀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진호는 천천히 재희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녀가 자신의 무릎위로 엎드릴 수 있게 했다. 그 순간 재희는 진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엉덩이를 때려줄꺼야... 엉덩이를 때려줄꺼야... 엉덩이를... ]




현실에서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기억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 그런게 어딨어? 내가 애도 아니고! ]




[ 애가 아니라면서 왜 애들처럼 손톱을 물어 뜯는거야? 애들처럼 행동했으니 그에 맞는 벌을 줘야지. ]




[ 그래도 말도 안돼! ]




[ 그건 너 하기에 달렸어. 싫으면 버릇을 고치면 되잖아. ]




[ 고치는건 고치는 거고. 엉덩이에 손만 대봐! ]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마치 어제의 일이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재희가 옛날 일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 진호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보기좋게 솟아올라 있는 그녀의 엉덩이를 보고 있었다. 스커트가 몸에 꼭 맞는 것이었는지 속옷의 모양이 드러나 보였지만 진호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는 다만 벌을 주어야 할 부분을 보면서 자신을 냉정함 속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 아! "




재희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라 크게 소리를 내었다. 물론 아프지는 않았지만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진호는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다. 재희의 얇은 스커트의 옷감과 진호의 손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처음보다 조금 크게 들려왔다. 재희는 부끄러움에 입을 다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참아냈다.


진호는 재희의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때리면서 조금씩 매의 강도를 높여갔다. 그에 따라 처음의 자세 그대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매를 참고 있던 재희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래로 기울어져 있던 그녀의 상체도 그의 손이 한번씩 내리쳐질 때마다 조금씩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 아아! "




재희는 점점 강해지는 진호의 손길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망설임 없이 팔을 휘둘렀다.




" 읍! "




그녀는 자신의 엉덩이 한가운데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고 상체를 일으키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금새 진호의 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진호는 왼손으로 그녀의 등을 누르며 오른손으로 스커트 자락을 잡아갔다. 진호의 행동을 눈치 챈 재희는 다급히 그것을 저지하려 했지만 그녀가 하고 있는 자세와 그의 왼손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재희는 오른손을 뒤로 가져가 자신의 스커트를 꼭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 싫어 오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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