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외로움을 잊기 위해 난 겨울을 ... - 8부

본문

[ 여보세요. ]




[ 진호군, 나에요. ]




진호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 네,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




시간은 아침 7시였고 시간상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화에 진호는 약간 긴장이 되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 이른 시간인데 미안해요. ]




[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




[ 혹시... ]




[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




진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재희의 어머니였다. 이 사실이 진호에게 원인 모를 불안감을 안겨 주고 있었다.




[ 혹시 우리 재희랑 같이 있었나요? ]




[ 네? ]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는 목소리를 내버린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물은 쏟아진 후였다. 순간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바쁘게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역시 그렇군요... ]




[ 별일 없을 겁니다. 어제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했으니 친구 집에서라도 자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연락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




[ 그래요. 미안해요. 이런 전화 하는게 아닌데... ]








재희의 어머니는 진호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진호가 재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괜한 걱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없었더라도 양가 부모 상견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결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리라는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밤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재희의 안위였다.




정중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는 진호의 표정은 재희의 어머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진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재희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 어머, 진호 오빠! ]




[ 잘 있었니? ]




[ 네... 근데... ]




진호는 더듬거리는 대답에 일순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 재희... 거기있지? ]




[ 자... 잠깐만요... 지금 바꿔 줄께요. ]




수화기에서는 요란스러운 소음과 함께 재희의 이름을 외쳐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재희는 친구가 자신의 몸을 흔들며 부르는 소리에 한참 단꿈에 빠져있다가 방해를 받은 듯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친구가 전화를 내밀며 하는 말에 잠이 싹 달아나고 아직 남아 있는 취기가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 받아. 진호오빠야. "




" 누구? 진호오빠? 지금 깨우면 어떻게 해! "




전화기의 감도가 좋아서인지 친구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는 재희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진호의 표정은 어느새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 여...여보세...요... ]




[ ...... ]




재희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애써 용기를 내며 전화를 받았지만 진호는 재희의 목소리를 듣고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집에 전화부터 해라. 어머님 걱정하시더라... 나중에 통화하자. ]




진호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계속 통화를 하다가는 크게 화를 내버릴 것 같은 기분에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재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통화 종료음을 듣고 수화기를 든 손을 늘어뜨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 하아아~ "




재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눈앞에 심판의 문처럼 굳게 닫힌 채 발걸음을 가로막고 있는 철제 문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때문인지 속이 울렁거리고 약간 어지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 하아... "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재희는 뭔가 결심을 한 듯 손잡이를 잡아갔다. 무겁게만 보이던 철제 문은 의외로 아무 소리도 없이 너무 조용히 열리며 안쪽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구두를 벗어놓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재희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진호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귀에 거슬리는 슬리퍼 소리에 신경을 쓰며 걷다가 쇼퍼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진호의 모습을 발견했다. 자신이 뭔가 잘못을 할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많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재희는 진호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추었다.




" 이쪽으로 와. "




진호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재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천천히 자신의 무릎위로 엎드리게 만들었다. 재희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특별히 놀라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아무 설명도 없이 시작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지 두 눈을 꼭 감고 온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 내가 걱정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




재희는 자신의 스커트가 진호의 손에 의해 걷혀 올라가는 느낌에 오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벌이 평소와는 다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널 당신들 자신보다 더욱 사랑하시는 분들을 걱정시킨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야. "




진호는 그녀의 속옷을 아래로 끌어 내리며 덧붙였다.




" 부모님들께서 재희를 그냥 용서하신다고 해도 오빠는 그렇게 못해. "




진호는 무릎을 조금 움직여 재희의 엉덩이가 때리기 좋은 위치에 오도록 만들었다.




" 다른 할말 있어? "




" ...... "




잠시 재희의 대답을 기다리던 진호는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가 그녀의 엉덩이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 으읍! "




재희는 양 주먹을 꼭 움켜쥐고 필사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아냈다. 몇 번이나 사람의 손이 엉덩이에 이렇게까지 큰 아픔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던 재희는 이번에도 똑 같은 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눈물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진호는 한쪽 손만으로도 재희가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있을 때...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 좋은 말만 해주고, 좋은 기억만을 남겨두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




재희는 자신의 엉덩이에 살짝 와 닿는 차가운 감촉에 흠칫 몸을 떨었다. 진호는 손에 든 브러시로 재희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 이별 후에 잘해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




" 아악! "




재희는 손바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픔에 급기야 비명을 질렀다.




" 사위가 될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딸의 행방을 물어봐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 본적 있니? "




" 아아악! "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고 재희의 눈에서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밤새도록 자식을 걱정하며 불안한 마음에도 아무일 없을거라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오직 그런 마음만으로 연락을 기다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적 있니? "




" 아악! 흑흑흑... 오빠 잘못했어... 흑흑..."




재희의 머리 속에는 엉덩이의 아픔이 더 강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녀를 끌어안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모습이 한층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진호는 자신의 손에 의해 빨갛게 변하고 다시 파란 멍이 들기 시작하는 재희의 엉덩이를 보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브러시를 휘둘렀다.








" 이거 좋아하실까? "




" 응. "




재희는 진호가 들어올리는 예쁘게 포장된 버섯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는 계산대로 걸어가며 자신의 뒤쪽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오는 재희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 이제 오빠 안볼꺼야? "




" 아...아니... "




쇼핑센터를 나와 재희의 집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재희는 계속 울어서 부어버린 눈이 신경 쓰였는지 계속 고개를 숙이려고 하였지만 진호는 고개를 저으며 양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 쥐고 싱긋 웃어 보였다.




" 다른 말 하지 말고, 딱 한마디만 하는거야. 엄마, 아빠 사랑해요. 알겠지? "




" 넵! "




" 내일 아침밥은? "




" 재희가 직접 만들어서 아빠, 엄마 맛있게 드시게 한다! 그리고 반찬은 오빠가 사준 송이버섯! "




" 오빠가 아니라 재희가 산거야. 용돈 모아서. "




" 하지만... 그건 거짓말인걸... "




" 모르실 것 같아? 우리 둘 다 점수를 따는거야. 이유는 잘 생각해봐. "




진호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재희를 살짝 안아주고 말을 계속했다.




" 자, 얼른 들어가서 효녀 노릇 좀 해봐라. "




재희는 아쉽다는 듯 다시 한번 진호를 꼭 끌어안고 나서 초인종을 눌렀다.




" 사랑스런 딸! "




진호는 인터콤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진호를 향해 혀를 살짝 내미는 재희의 모습을 보며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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