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외전-그녀가 흔들릴 때 - 2부

본문

이번 회차 글은 "그녀가 흔들릴 때" 6부와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2-1




이 후 혁진 선배에게 짐짓 무관심한 목소리 톤으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전화를 했었다. 그 때마다 혁진 선배는 회사 일 등을 이유로 간곡히 거절하였다. 혹 일부러 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지만, 워낙 이유가 분명하게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해서 더 이상 득달할 수도 없었다. 




다시 만난 은주 역시 나에게 매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난 잠시 내가 오해했거니 생각했었다. 내 주변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인데 설마.






#2-2




2001년 9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 잠실 교통회관.


회사 같은 부서 선배가 결혼을 했다. 내가 알기로는 사고 쳐서 결혼하는 것이다. 신부가 임신 5개월이라나. 좀 조심하지. 쯧쯧. 그게 그렇게 안되나? 




3시 반 즈음 되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은주가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어, 마감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


“점심 먹었어?”


“아니 못먹었지.”


“여기 음식 다 떨어졌는데, 내가 나가서 맛있는거 사줄게”




“어이, 철민씨 우리 회사사람들끼리 저쪽 신천역 쪽에서 뒷풀이 할 껀데. 같이 가지? 제수씨 모시고 말야”


나와 같은 팀 박대리가 나를 붙잡는다. 이 말을 하면서도 이 인간의 눈은 은주의 몸을 타고 위 아래고 오르내린다. 씨바 새끼, 여자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아 네 좋지요, 뭐”




박대리는 나와 은주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고 별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은주가 자기 첫사랑을 닮았다느니, 언니나 동생 없냐는 둥 별 시덥지 않은 소리만 늘어 놓는다. 꼭 여자 없는 티를 낸다.




10명 정도가 택시 세대에 나누어 타고 신천역으로 향했다. 이 동네가 자기 구역이라고 설치는 박대리가 길을 안내한다. 뭐, 빠져나갈 핑계없을까?




성당앞에서 꺽어져서 안쪽 길로 접어드니 꽤 사람들이 많다. 이쁜 여자들도 많이 보인다. 햐, 신천역도 좋아졌구나. 전에는 여관밖에 없는 동네였는데.. 어? 저게 누구지?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오뎅 먹고 있는 저 남자. 분명 혁진선배였다. 




“어, 선배님 여기 왠 일이세요?”


“뭐, 그냥 놀러 왔지. 넌 여기 왠일이냐?”


“오늘 회사 사람이 교통회관에서 결혼했거든요, 거기 같이 왔다가 여기 피로연하러.. 아, 은주야 선배님 기억나지?”


“안녕하셨어요, 선..배..님”




혁진선배가 매우 놀란다. 잘 됐다. 박대리한테 선배 핑계대고 빠져나와야겠다. 그 때 박대리가 나를 부른다.


“철민씨, 제수씨 모시고 빨리 올라와”




“야, 가봐라. 너 부른다야.”


“에이 저 인간들은 회사가면 날마다 보는 인간들인 걸요. 정말 간만인데 선배님이랑 한 잔 해야죠. 가서 말하고 올게요. 참, 시간되죠?”


“어..그렇긴 한데..”


“기다려요, 선배님”




박대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정말 졸업 후에 처음 보는 선배인데 무서운 선배라서 안 갈 수가 없다고 뻥을 쳤다. 박대리가 무척 아쉬워하는 얼굴을 한다. 내가 아니라 은주를 못 봐서 아쉽겠지. 쯧쯧




계산하고 있는 혁진선배에게 다가갔다.


“가시죠, 선배님”


“근데, 나 여자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야, 우리 선배님 드디어 한껀 하셨구나. 잘됐네~~ 오시라고 해요. 같이 저녁 먹으면 되자나요.” 


“어어, 그럴까?”




#2-3




우리는 건물 4층에 있는 일식주점으로 가서 다다미 방에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민다.


“선배님이 알아서 주문하세요, 저는 많이 먹어서요”


혁진 선배가 메뉴판도 보지도 않고 주문한다.


“알탕 하나, 모듬꼬치 하나, 맥주 한병, 아 카스로요. 그리고 참이슬 하나, 잔은 세 개씩 주시고요.”




종업원이 술을 내오자 맥주를 세 잔에 따르더니 혁진 선배가 말한다.


“자, 첫잔은 원샷입니다.~ ”




혁진 선배와는 못 본지가 꽤 되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한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화장실 다녀온다며 자리에서 나왔다. 사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였다. 은주의 성화로 올 가을부터 담배를 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은주 앞에서 대 놓고 담배를 피우기가 좀 멋쩍었다. 




‘에이, 돗대네..’


4층과 5층사이의 계단에서 돗대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내린다. 내리자 마자 울리는 그 여자의 핸드폰 소리. 여자가 4층 계단 끝에 서서 전화를 받는다. 살짝 내려다 보니 짧은 단발머리에 커리어우먼 스타일 바지 정장을 입은 여자다. 




“어, 오늘 남자친구 만난다고 그랬자나”


.


.


“아휴, 그제도 했자나, 오늘 또?”


.


.


“아니, 오늘은 힘들다니까?”


목소리가 꽤나 앙칼지다. 상대편 남자를 쏘아부치는 것 같다.


.


“아, 싫어. 오늘은 안돼, 안된다니까?”


.


.


“왜 사람이 자기 생각만 하냐?”


.


.


“알았어, 그럼 한 시간 후에 전화해. 둘러대고 나갈테니까. 어휴..”




‘탁’ 폴더를 신경질 적으로 닫은 여자가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간다. 미루어 짐작컨대 양다리 걸치는 여자인가보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2-4


담뱃불을 발로 비벼끄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 ㅤㅆㅣㅆ은 다음에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아까 그 계단에서 전화 받던 여자가 혁진선배 옆에 앉아 있다.


이거 아주 웃기는 상황이네..푸핫




“윤민주입니다”


명함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며 내게 인사한다.


“와 형수님. 되게 미인이시네”


내가 오버하면서 너스레를 형수를 칭찬했다.




“결혼도 안했는데 형수님은요. 무슨~”


그럼, 미인이라는 말은 당연하다는 거야 뭐야.




명함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OO 커뮤니케이션즈 EA 윤민주’




“어, 사무실이 역삼동이세요? 저도 역삼동인데..”


“오, 정말요?”


그때 혁진선배가 끼어 들었다.“


“아 맞다, 철민아, 민주는 우리 후배야. 너보다 두 학번 후배일껄?”


“아, 그래요? 야.. 반갑다..아 뭐라 불러야하나? 하하 이거..선배님 여자 친구라서..”


“여기는 철민이 여자친구. 정은주씨. OO은행 다니시는. 아마 자기보다 한 살 언니일꺼야.”


“아네, 언니 안녕하세요. 오늘 예쁜 옷 입으셨네요”




“무슨 과 나오셨어요?”


내가 민주에게 물었다.


“아, 신방과요”“어? 그럼 수정이 아세요? 변수정?”


“그 키 큰 수정이? 어떻게 아세요?”


“나랑 같은 성당 다녔었거든요. 하하. 세상 좁네.”




선후배가 모이고 한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 생기니 분위기가 급 좋아진다. 학교 근처에서 잘가던 까페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났을 때 민주가 은주에게 묻는다.




“아 언니는 어디 나오셨어요?”


아, 씨바.. 분위기 싸해지겠다.




“전 대학 안 다녔어요”


“아, 네..죄송해요”


“그게 뭐 민주씨가 죄송한 일인가요?”


은주는 자기 앞에 놓여있던 가득 담겨있던 소주를 한잔 모두 들이켰다.




그 때 테이블 위에 펜디 장지갑과 같이 올려 놓은 민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민주가 받는다.


“아, 네 팀장님. 네.. 네.. 아까 팀장님 책상에 올려 드렸는데요? 네? 지금요? 네..알겠습니다.”


민주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말한다.


“어쩌죠, 방금 왔는데. 오늘 하루 종일 만든 시안 잘못됐다고 지금 빨리와서 수정하래요. 어휴, 그 망할 놈의 팀장”


확실히 오버하는것이 눈에 보인다. 아까 복도에서 통화한 놈일텐데.. 




속모르는 혁진 선배가 말한다.


“야, 그놈의 광고대행사. 천하에 다닐 때가 못 되는 직장이야..”


#2-5




담배나 하나 사와야겠다 싶어서 술집 밖으로 나와서 편의점으로 들어서려고 하니 아까 먼저 나갔던 혁진선배 여자친구 민주가 카운터에 줄 서 있다. 




들어서려다 마주치면 좀 어색한 상황이 될 것 같아서 유리창 밖에서 지켜보았다. 담배와 뭔지 모를 것을 함께 계산한다.




‘오호, 담배도 피우시는군’ 


이크 나온다. 잠시 피해야겠다.




편의점에서 나온 민주는 바쁜 걸음으로 큰길 쪽을 향해 걸어간다. 조금 뒤 따라 가보고 싶었다. 




뒤 따라가며 민주 모습을 살폈다.


키는 160정도 되는 것 같고, 전체적으로 좀 마른 것 같다. 도회적이고 세련되면서 새침한 성격에 여우짓 많이 할 것 같은, 확실히 은주와는 다른 스타일이다. 




대로변에 있는 극장 키노 앞에 거의 다다르자 살짝 종종 걸음치더니, 길가에 세워 놓은 차에 올라탄다. 은색 크라이슬러 PT크루져. 차는 잠실 방향으로 출발한다. 




‘회사 들어간다더니, 훗’




애초에는 이날 관찰한 모든 사실을 혁진선배에게 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고 올라갔을 때 혁진선배와 은주는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른채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중이었고,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이야기 해 주기 싫어졌다. 혁진 선배가 모르는 비밀 정보 하나 쯤 나도 가지고 싶어졌다. 그리고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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