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1부 1장

본문

제 1 부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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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싸늘한 바람이 쌀쌀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었다. 몇 년 동안 가장 추웠다는 지난 겨울 탓에 꽃샘추위가 상당히 매서웠다. 후는 그런 날씨는 아랑곳 않고 청바지에 가벼운 남방, 그 안에 반팔티만 걸치고 기숙사에서 나와 학생회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후는 서울 모 대학의 새내기다. 지방 출신인 그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학에도 합격했지만,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억지로 부모님의 동의를 얻은 그는 기숙사에 짐을 풀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집에서 떨어져 생활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는 낙천적인 성격과 사교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별 다른 문제없이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해나갔다.


다른 새내기들이 신입생환영회니, 개강파티니 하는 술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무렵 후는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잘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과모임은 그에게 별로 감흥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OT에도 참석을 안 했기 때문에 아는 동기니 선배도 없었다. 그래서 과모임에는 거의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나마 기숙사 내에서는 새내기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향수라는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었다. 어쨌든 고 3 현역 시절 패배의 고배를 마셨으며, 95년 여름 39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재수를 경험한 그는 2년간의 고생한 대가를 여실히 보상받고 싶었을 게다. 2주일의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화끈한 동아리를 들어야 잘 놀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누가 꾄 것도 아니었는데 무작정 학생회관으로 쳐들어가 마음에 드는 동아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 소 설 연 구 회 ’




이름도 거창하게 연구회란다. 하지만 나름대로 관심이 많았던 주제인데다 다른 동아리처럼 신입생유치에 열을 올리지 않는 동아리였고, 기숙사 선배의 말에 의하면 주당들이 모이는 곳이라 했기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그의 습관에 따라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동아리 가입하러 왔는데요…”




“여기 가입원서 있으니까 작성해주세요.”




원서를 작성하며 선배인 듯한 사람을 쳐다봤다. 키는 175정도지만 다부져 보이는 몸매에 호남 형으로, 언뜻 냉막한 인상이었으나 친근하고 매너 있는 말투에 호감이 갔다.




‘이름 : 천 후, 생년월일 : 76, XX, XX"




“아니 76년생이세요? 재수만 하셨어요?”




“예?”




“죄송합니다. 예비군인줄 알았습니다. 하하…”




‘젠장맞을…’




“하하하… 제가 좀 늙어 보이죠?”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 일순간 고민을 했더랬죠… 하하하… 참 전 19기 ‘강 인’입니다. 95학번이지만 재수를 했으니 그쪽 보단 형이네요.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하하하…”




‘이런 망할…’




후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래도 인의 웃음소리는 호탕하여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차갑고 냉정해 보였지만 속정이 깊어보였다. 후도 그 웃음에 동화되어 함께 웃고 말았다. 인의 눈에도 삭아 보이는 후배가 맘에 들었다. 그날 저녁 인은 반갑다며 술을 샀고, 헤어질 때 둘은 형 동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후의 대학생활은 시작되고 있었다.




후가 동아리에 가입한지 4일째 되던 날 오후였다. 며칠간 동아리에 여자 동기가 안 들어오나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선배들의 말로는 기대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자회원이 거의 없는 이유는 술 때문이란다. 일단 들어와서도 술자리 몇 번하면 나간단다. 20년 가까이 졸업한 여자회원이 단 한명뿐이라는 것이다. 술을 안 마시려고 해도 복학생들이 문학은 술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창하는 바람에 전통이 되었다했다. 게다가 동아리 내의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한단다. 술뿐만 아니라 남녀 관계 때문에도 동아리를 관두는 회원이 많기 때문에 동아리 내 연애는 불문율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공강시간에 동아리 방에서 죽 때리던 후는 다른 동아리나 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노크소리와 함께 웬 여학생 둘이 들어왔다.




“저어…”




‘앗, 여자다’




여자 동기라는 마음에 들뜬 그는 잠깐 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자기가 할 일을 기억해냈다.




“예… 아… 어떻게 오셨나요?”




“동아리 가입하러 왔는데…요?”




둘 다 키는 162,3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하나는 인형처럼 귀엽게 생겼고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았는지 약간 통통했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얼굴은 평범했지만 몸매는 남성의 보호 본능을 무시하게 만드는 상태……. 어찌 됐건 친절은 여자를 함락하는 첫 번째 무기라 했던가? 후는 밝은 미소로 대답했다.




“네, 잘 오셨어요. 그럼, 여기 가입원서 작성해주세요. 매주 수요일마다 한번씩 세미나가 있구요. 회비는 매주 3,000원씩입니다.”




“예… 여기 작성하면 되나요? 선배님…”




“저어… 저도 동긴데요…”




“어머…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하하… 정 제 외모가 부담되시면 오빠라구 부르세요… 하하하…”




말투는 친절했지만 표정은 상처받은 그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돼요…?”




“하하… 농담입니다. 동긴데 서로 편하게 지내요.”




후의 순박한 웃음이 두 여학생의 어색함을 무마해주었다. 그녀들의 성씨는 같은 이씨였다. 귀여운 애가 ‘순진’이였고, 드럼통은 ‘순정’이였다. 둘 다 후보다 한살 어렸지만 동기인지라 서로 말을 트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후가 뽑아온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둘은 같은 과 동기였고, 이름이 비슷하여 학번이 붙어있었다. 그 때문에 OT때부터 단짝이란다. 순정이 이 동아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혼자 오기가 뭣해서 순진을 데려 온 것이라 했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그녀들은 후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동아리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주된 관심사는 후의 신변에 관한 것이었다. 후도 특별히 숨길 것도 없는지라 그녀들의 호기심을 채워주었다. 게시판에 붙은 선배들 강의 시간표를 보니 올 때가 지났는데 오지를 않는다. 선배들에게 삐삐를 쳐서 신입생이 들어왔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기니 10분도 안 돼서 동아리 방으로 전화가 왔다. 인이다.




“야! 후냐? 난데 지금 걔네들 시간 괜찮다하면 후문 앞에 ‘개술집’으로 데리고 와라.”




개술집. 동아리 단골 술집이다. ‘강아지 술독에 빠진 날’이 원래 이름이었지만 선배들은 강아지를 ‘개X끼’로 바꾸고 다시 줄여서 그렇게들 불렀다.




“얘들아, 저녁에 시간 있어? 형들이 후문 앞에서 맛있는 거 사준다는 데, 인사도 할 겸 같이 가지 않을래?”




“그래두 돼?”




순진이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이때는 당근이지. 말밥이지. 하는 표현이 없었다.) 형들도 너희처럼 이쁘고 귀여운 후배 보면 좋아할 거야.”




“그런데 지난주에도 계속 술 마시고 들어가서 부모님께 야단맞았는데… 어떡하지…?”




순정이 뺐다. 가만있으면 2등이라두 하지… 하지만 후는 적당히 튕겨야 했다.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뭐… 오늘만 날은 아니니깐… 형들한텐 내가 잘 얘기할게”




“순정아, 그러지 말고 한번 가보자. 응? 술은 안 마시면 되잖아? 응? 후야, 그래두 되지?”




이럴 땐 적당히 편도 들어주고, 빠져 나올 구멍도 만들어야 한다.




“난 괜찮지만 그래도 형들이 먹이면 어떡하지?




“몇 잔 마시다가 안 되면 우리 동기 후가 흑기사 해주겠지, 모~~~”




“그래 까짓 꺼… 순진이가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야 한번 죽어주지. 순정아 괜찮겠어?”




그렇게 셋은 개술집으로 내려갔다. 들어서니 ‘소연(소설연구회)’ 지정석인 구석자리에 인과 ‘유 달’이 앉아있다. 달은 가입 이후에 알게 된 선배였다. 인과 달, 둘은 재수학원에서부터 대학의 학과를 거쳐 동아리까지 동기인, 나름대로 끈질긴 우정을 과시하는 친구사이다. 탁자 위를 보니 소주가 세 병이나 비워져 있다. 후는 그 광경을 보며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에 앉았다.




“형, 얘네들이야. 얘들아! 앉아.”




그들은 만난지 며칠 되진 않았지만 둘 다 후에게 잘 대해 주었고, 후도 그런 형들이 좋아 서로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였다. 먼저 인이 말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강 인’입니다. 반가워요.”




달도 한마디 한다.




“이 자식… 형님을 제쳐두고 먼저 인사를 해? 전 ‘유 달’입니다.”




“예, 전 ‘이 순진’이구요. 얘는 ‘이 순정’이에요.”




서로 통성명을 하고 호구조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근데 형들 언제부터 온 거야? 으이구 벌써 네 병째네? 순진이랑 순정이가 쫄겠다.”




“강의 끝나고 왔으니깐 한 시간 조금 덜 된 것 같은 데… 꺼어~~억… 순진아 우리 원래 이렇게 안 마시는데 사랑스런 후배들이 들어왔다 길래 참을 수가 있어야지…”




이미 존대를 떼어버린 달이다. 달을 바라보는 후의 표정은 근심으로 가득하다. 여자동기에 대한 희망이 벌써부터 달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후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평상시 보다 술을 적게 마시며 분위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인과 달은 기분이 좋은지 오늘 끝까지 갈 기세였다. 다른 학생들이야 2차, 3차를 가겠지만 소연은 주로 개술집에서 끝장을 본다. 가끔 택시비가 떨어지면 동아리 방에 술을 사가지고 가서 마신다는 애긴 들었지만 그때까진 그런 적이 없었다. 후가 기숙사에 전화를 해 저녁 10시에 있는 점호에 참석 못한다는 전화를 하고 온 후였다.




“자자, 뭐하냐? 쭈욱~ 들이켜. 우리 소연의 발전을 위하여~~~.”




평소 말을 잘해 어딜 가나 분위기 메이커인 달이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도 따라서 잔을 든다. 그렇게 2학년들이 이리저리 잔을 권하기 시작해 몇 순배가 돌았다. 2학년들은 전주(前酒)가 있어서인지 다섯 병이 더 나뒹굴자 천천히 취하기 시작했다. 순정은 첨엔 빼더니 홀짝홀짝 잘도 받아 마셨다. 다섯 명이서 열병이 넘게 마셨는데도 얼굴만 빨갛지 술에 취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튼튼한 외모만큼 술도 센 편이었다. 순진은 한 병도 안 되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후도 여자애들 잔을 흑기사로 꽤 받아 마셨지만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개술집 벽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이 너무 늦은데다 사람들도 너무 취해 있었다. 이제 끝날 타이밍인거 같아 후가 넌지시 형들에게 운을 뗀다.




“형, 아침에 전공수업 있지 않나? 무슨 원론인가 하는 거 말야. 교수가 깐깐하다며?”




“그러고 보니 싸이코 수업이네. 인아, 오늘은 이만 접을까?”




“그럴까? 순 시스터즈들 집이 어디라 했지? 꺽… 순정양은 강남 이랬으니깐 우리랑 같이 가고, 순진양은 꺽… 동대문이라니깐 후, 니가 바래다주고 기숙사 들어가라. 자, 택시비.”




달이 후에게 만 원짜리 지폐를 쥐어 주고선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했다. 지독한 술독들이지만, 술자리에서의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것이 장점이었다. 다같이 밖으로 나와서 2학년들과 순정을 택시를 태워 보내고 나니 11시가 다 되어 간다.




“순진아, 택시 타자. 근데 나 지리를 잘 모르는데 어디서 타야 되냐?”




“잠깐만… 나 좀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좀 걸었다가 가면 안 될까?”




그러면서 혼자서 먼저 걸어간다. 근데 술이 많이 되었는지 일보전진에 이보 후퇴였다. 가만 놔두면 다칠 것 같기에 후가 옆으로 가서 가만히 팔을 잡았다.




“미안해, 후야. 나 많이 취했지?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지. 괜히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마셨으니…”




그렇게 한 30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후야! 힘들지?”




“아니, 괜찮아.”




“그러지 말구 잠깐만…”




순진이 두 팔로 후의 왼팔을 끌어안았다. 후도 여자랑 팔짱 껴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꼭 낀 적은 없었던지라 가슴이 뛰었다. 삼두에 전해져오는 몽실몽실한 감촉 때문인 것 같았다. 후의 청바지가 괜히 꽉 끼여 보였다.




“오늘 일 후의 여자친구한텐 비밀로 해줘, 알았지?”




“여자친구는 무슨 나 그런 거 없어.”




“왜 우리 후가 어때서~~~? 근데… 정말 여자친구 없어?”




“뭐, 그냥…”




후는 무안함에 고개를 돌리고 계속 걸음을 옮겼지만, 팔뚝에 전해오는 느낌이 자꾸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도 가슴만 뜨거웠지 그 방면엔 숙맥이었다. 아랫도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순진이 때문에 뺄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걸어가니 순진이 자기네집이라며 걸음을 멈춘다. 순진이 대문사이로 사라지고 나니 왼팔이 끊어질 듯 아프다.




“젠장… 아이구 팔이야,”




피곤함에 당장 택시를 잡아타야했지만 싫었다. 후는 순진이가 매달려있던 왼팔을 쓰다듬으며 걷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돌아오니 새벽 한시였다. 다음 날 후가 동아리에서 만난 순진에게 속은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가볍게 ‘응’하며 대답할 뿐 고맙다거나 하는 말은 없었다.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도 내색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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