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2부 7장

본문

제 2 장 수난시대




- 7 -




다음날 저녁, 후는 음료수 한 박스를 사들고 순진의 집으로 향했다. 지난주에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순정과의 일 때문에 일주일이나 늦어버렸다. 그가 미안해하며 대문으로 들어서자 순진의 어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아유, 후 학생 얼른 올라와요. 어머… 훤칠하니 잘 생겼네.”




“순진이가 누굴 닮아 예쁜 가 했더니 어머님 때문이네요.”




“어머머… 어른 놀리면 못 써요. 호호호….”




후의 아부에 어머니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방에 들어가니 순진의 아버지가 밥상을 두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는 공손하게 절을 드렸다.




“아버님,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구, 이럴 것까지야 없는데… 어쨌던 잘 왔네. 그래, 우리 진이 친구라고?”




“예, 학교에서 같은 동아리에 있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얼른 앉게.”




후는 순진의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를 했다. 순영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후를 훔쳐보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순영의 과외 건의 얘기를 했다. 시간이나 급여는 순진이 이야기한 데로였다. 식사가 끝나자 순진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술상을 봐오라 했다.




“자네, 술 좀 마시나?”




“예, 취하지 않을 만큼은 됩니다.”




“그래? 다행이구만. 여보! 저번에 석류주 잘 있지? 그거 꺼내와. 진이는 엄마 도와드리고, 작은 딸, 너는 니 방으로 건너가서 공부 하고 있어.”




“아빤 나만 갖고 그래.”




순영은 혀를 삐쭉 내밀더니 툴툴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잠시 후, 말선이 술독을 가져왔다. 후가 술독을 보니 랩에 덥혀있는 상태였다. 지난 가을에 담은 모양이었는데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것이 귀한 술임에 틀림없었다. 순진이 집에다 어떻게 애기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사위 대접이라 할만했다. 이제 대학교 1학년인 그로서는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만큼 어려운 자리였다. 실수를 하면 안 되었기에, 그는 조심조심 행동했다. 술독이 열리자 상큼한 석류냄새와 소주의 진한 향이 어우러져 나왔다. 후는 국자를 들어 술을 떴다.




“아버님, 한잔 받으세요?”




“어, 그래.”




그는 술이 바닥에 떨어질까 한 손으로 국자아래를 받치고 술을 따랐다. 그도 아버지에게서 잔을 받았다. 둘은 건배를 하고 첫잔을 비웠다. 대기업의 현장 소장인 아버지는 현장에서만 20년 넘게 생활을 해온 분이라 거침없이 잔을 비웠다. 후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술을 마셨다.




“자네, 주도를 제대로 배웠구만. 술잔은 고개를 왼쪽으로만 돌려 마시는 건 알아도 왼손으로 가리는 것은 여간해선 잘 모르는데…….”




“그냥 어른께 술 마시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들었지, 저도 왼쪽만 쓰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게 주도라네. 그래, 술은 누구에게서 배웠나?”




“고등학교 때 집에서 어른께 배웠습니다.”




“함부로 술을 배운 것 같지는 않아……. 그래, 고등학생이면 예전엔 어른 취급을 했었지. 아버님 연배는 어떻게 되시나?”




순진의 아버지, 철환은 후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호구조사 비슷한 것을 후는 예의바르게 대답해주었다. 철환은 처음에 큰딸의 이야기를 듣고서 후라는 녀석에게 질투 비슷한 감정을 가졌었다. 머리는 좋지만 툭하면 사고를 치는 아들 녀석보다는 순진에게 정을 많이 쏟은 그였기에 그 감정은 더 했다.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는 후의 모습이 보통 술꾼은 넘는 것 같아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꽤 여러 잔을 비웠음에도 절도를 잊지 않는 후의 모습에 차츰 그 마음은 옅어져 갔다. 안주를 가져온 순진모녀는 술꾼들이라며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그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이윽고 네 사람이 술판을 벌이자 처음 조용했던 목소리는 왁자지껄한 소리로 바뀌었다. 순영이 시끄러워 공부가 안 된다며 투정을 부렸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후가 철환의 사위로 불리고 있었다. 후가 순영에게 농담을 건낸다.




“이쁜 우리 처제, 형부가 한잔 줄까?”




“이 사람이 공부하는 학생한테 술은 무슨……!!”




“엄마!! 정말 후를 사위 대하듯 하네?”




“하하하~!”




“호호호~!”




안방은 금세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어머니가 후의 농담에 대꾸하며 작은 딸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주었다. 오버하는 후였지만, 철환과 가족들은 그의 넉살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 큰 석류주 단지가 바닥을 향해 수위를 낮추었다. 후가 순진의 집에서 나온 것은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다행이 기숙사에서는 금요일에는 점호를 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학생이 많았고, 학생들에게 그 정도 놀 시간은 주어야 한다는 사감의 배려였다. 순진의 아버지는 너무 취해 잠이 들었고, 순진과 그녀의 어머니만이 대문까지 배웅해 주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택시비를 쥐어 주었다. 후도 거절을 하려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주머니 속으로 챙겨 넣었다.




“후 학생, 다음 주부터 우리 순영이 잘 부탁해. 많이 마셨을 텐데, 어여 들어가서 쉬어.”




어머니는 후의 엉덩이를 톡톡 치며 말했다. 후는 어머니의 따뜻한 모정에 객지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어머님, 오늘 정말 잘 먹고 갑니다. 너무 맛있었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많이 늦었으니 빨리 가봐.”




“네, 다음 주에 뵐게요.”




순진이 택시 타는 데까지 바래다준다며 따라나섰다. 후가 밤에 혼자 골목으로 돌아올 그녀가 걱정되어 반대하자, 그녀는 요 앞 골목까지라도 바래다주겠단다. 그들은 골목을 꺾자마자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한참을 부비던 순진은 입술을 떼었다.




“후야, 조심해서 들어가. 내일 연락할 게. 사랑해.”




“알았어, 어머니 걱정하시겠다. 얼른 들어가.”






후와 순진이 만난 것은 토요일, 이른 점심시간이었다. 순진은 후를 데리고 신림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둘은 순대볶음을 맛나게 먹었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마셨더니, 금세 취기가 올랐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은 탓이었다. 그들이 식당을 나오자 바로 옆 골목에 여관이 보였다. 후는 대실을 기억해냈다. 그는 순진의 손을 잡고 뒷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머, 얘가 왜 이래? 사람들 보잖아.”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아는 순진이 잡아 뺐지만, 후가 다시 끌어당기자 고개를 숙이고 얼른 따라 들어갔다. 카운터는 작은 창이 달려 있었고, 그나마도 커튼으로 가려져 안이 보이지 않았다. 안에서 주인여자가 물어왔다.




“쉬었다 가실 거죠?”




후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돈을 지불했다. 순진은 계속 문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계단을 타고 방으로 들어간 다음에야 순진이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후야! 쉬었다 가는 게 뭐야?”




“응? 그러니까 방을 하룻밤을 빌리는 게 아니고, 서너 시간만 빌려 쓰는 거야. 가격도 싸고, 필요한 사람들만 쓰는 방식이래.”




“응… 그렇구나. 근데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혹시…… 딴 여자랑 와 본거 아냐?”




“얘가 왜 이래? 너 밖에 모르는 사람을……. 인이 형이 가르쳐줬어.”




“정말 그랬다간, 죽음이야!!”




“알았습니다. 부인~~!! 얼른 가서 씻으세요.”




후는 인을 방패막이로 둘러댔다. 인희와도 닮은 이름이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순진도 인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음을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녀는 화장대 위에 놓인 수건과 칫솔을 들고 욕실로 향하려다 말고 후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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