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4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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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눈 깜빡일 순(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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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시험이 있는 날은 항상 날씨가 춥다. ‘97년도 수능이 있던 날도 그 법칙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며칠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나 싶더니 수능이 있는 날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새벽같이 일어난 후는 주만과 민철을 태우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둘의 고시장이 가까운 데로 모여 있기도 했지만, 후는 선생님으로서, 수능을 두 번이나 겪어본 선배로서 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잠은 좀 잤어?”




“싸부~~!! 긴장이 되서 그런지 몇 시간 못 잤어요.”




“전 뭐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잠은 한 여덟 시간 정도 푹 잔 거 같아요.”




“그래, 주만인 시험 치다 졸리면 어쩌냐? 졸린다고 커피 같은 거 많이 먹으면 집중력 떨어지니까 오전에 한두 잔만 마셔. 그리고 고사장 들어가면 시험 전에 기다리는 30분 동안 책 같은 거 보지 말고, 정신 집중하는 데만 주력해. 피곤해도 쉬는 시간 동안 잠만 자지마. 자다 일어나면 잠시 동안 멍해져서 문제 푸는 데 방해가 돼. 정 잠이 오면, 쉬는 시간에 한 5분정도만, 점심 먹고 한 10분에서 20분 정도만 자. 그리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그 문제에 신경 쓰지 말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 괜히 그거 가지고 골머리 싸매다간 다른 문제 놓치기 십상이야. 점심은 많이 먹지 마. 정 배가 고파도 가져간 도시락만 먹어. 매점에 가서 뭐 사먹다간 오후에 식곤증 때문에 수리2랑 외국어에서 장대비가 내린다. 음… 또 뭐가 있더라. 그래! 쉬는 시간에 전 시간 답안 매기는 자살행위는 하지마라. 정 궁금한 거 있으면 한두 문제만 봐.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점심 때 식후 땡 말고는 담배, 입에도 대지마. 알겠냐?”




“에이 싸부. 저 담배 같은 거 안 키워요.”




“빠박~~!!”




“이노무 자식이~~! 형이 모를 줄 알았냐? 니 필통 아래에 담배가루가 보이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어. 누굴 속이려고 들어? 다만 내가 아무 소리 안 한 것은 니가 고 3 이라서 였어, 이놈아. 잡소리 지껄이지 말고 형 말 들어.”




“알았어요. 싸부.”




“그리고 민철이, 너도 알았어?”




“네.”




“너희들은 내가 몇 달간 심혈을 기울인 제자들이야.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모의고사보다 좋은 성적이 나올 거야. 형 허튼 소리 안하는 거 알지?”




“에이~~ 그래봤자 사이비 선생이면서, 큰 소리는……? 안 그래, 민철아?”




“아마 그럴 걸?”




“따닥~~!! 따닥~~!!”




“이 놈들이 진짜?”




“이런 폭력선생 같으니라고…….”




“형 진짜 말로 해요. 주만이 말도 틀리진 않네요.”




“알았어. 저녁에 강남역에서 보자. 잘 치고 와. 그리고 이거 초코렛이야. 배고플 때 먹어. 한꺼번에 다 먹진 말구. 형이 잘 치라고 주는 거야.”




고사장에 다가갈 무렵 두 녀석의 표정에는 긴장이 많이 줄어 있었다. 녀석들은 ‘놀았다’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금세 친해져 있었다. 후는 그런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도 괜한 농담으로 녀석들을 풀어준 것이 의도대로 먹혀들어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주의 할 점을 이야기해주고 그들이 고사장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대입시험 때문에 학교도 임시휴강을 하는 날이었다. 그는 전날 순정을 눌러준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이불 속에서 잠을 청했다.




그가 깨어난 것은 점심 먹을 시간이 조금 덜 되어서였다. 담배를 피우며 시계를 보니 제자들이 2교시 시험을 마칠 시간이었다. 후는 녀석들이 잘 치기를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기원하며 끼니꺼리를 찾았다. 그가 냉장고와 싱크대를 뒤져 보았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담배도 몇 개피 남지 않아 그가 가게로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는 대충 옷을 걸치고 담배와 라면, 계란 등을 사왔다. 그가 옥탑방으로 돌아오니 누군가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의 방에서 샤워를 할 여자는 순진뿐이다. 그는 내심 아랫도리가 부풀어 옴을 느끼며 옷을 벗었다. 나체가 된 그가 욕실의 문을 열었다. 수증기로 인해 자세히는 보이질 않았지만, 누군가가 쏟아지는 더운 물을 맞고 있었다. 수증기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은 그에게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좁고 동그란 어깨와 가는 허리,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펑퍼짐한 엉덩이는 순진의 그것이었다. 그 인영(人影)은 물소리 때문에 그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가만히 뒤로 다가가 가슴을 움켜잡았다.




“물컹~~!”




“꺄~~악! 오빠 뭐하는 짓이에요?”




후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니 순진이 아닌 순영이었다. 민망해진 그는 몸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방으로 들어간 그는 바닥에 떨어진 티셔츠로 물기를 닦았다. 그가 옷을 입고 조금 기다리니 순영이 옷을 입고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순영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저어… 언니는?”




순영은 그를 흘겨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언니는 기말고사 때문에 도서관에 갔어요. 그런데 방금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미안해! 처제……. 근데 어쩐 일이야?”




“형부, 어제 제가 음성 남긴 거 못 들었어요? 오늘 임시 공휴일이라 점심때쯤에 온다고 했었잖아요.”




“아~~!! 맞다. 내가 아침에 다른 일이 있어서 깜빡 했어. 근데 다 큰 처녀가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씻어?”




“아침에 고사장에서 선배들한테 커피랑 코코아 타주러 갔었거든요. 그거 끝나고 친구들이랑 수다나 좀 떨고 오니깐 오빠도 안 계시길래 잠깐 어디 나가셨나 했죠. 그리고 아침에 급하게 나가느라고 샤워를 못 했거든요. 설마하니 형부가 그렇게 일찍 들어올 줄이야 알았겠어요? 근데, 솔직히 얘기해 봐요. 방금 언니랑 나랑 착각한거죠?”




“저어…… 그게…….”




후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순영은 뭔가를 알았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오호라~~!! 그럼 언니랑 뭔가가 있다는 소린데……?”




“무슨 그런 천벌을 받을 소리를……?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후가 펄쩍 뛰자 순영은 더욱 확신에 찬 듯했다.




“이것 봐라. 형부가 정색을 하는 게 더욱 의심이 가는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책이나 펴.”




“아니 지금 공부가 중요해요? 형부도 생각을 해봐요. 여자가 씻고 있는데 뒤에서 가슴을 만질 정도라면, 남편이 아니면 애기겠죠? 그런데 형부는 애기가 아니고 언니도 아직 애엄마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두 사람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넘지 않을 선을 넘었다는 거 아녜요? 저도 이제 다 알만한 나이라구요. 우습게 보지 말아요. 솔직히 얘기 안 하면 방금 일 언니한테 이를 거예요.”




순영은 부끄러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대고 있었지만, 후는 그것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발뺌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걱정 말아요. 설마하니 제가 언니한테나 엄마한테 이르겠어요? 혹시 모르죠? 아빠가 아시면 둘 다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린다고 하실지……? 에이~~ 놀라지 마요. 농담이에요. 솔직히 저희 반에도 몇몇 애들은 남자랑 자봤다고 하던 걸요. 그렇다고 나까지 그런 건 아니구요. 글구 엄마아빠한테는 비밀로 할게요. 대신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해줘요, 네?”




후는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고 여름방학 때 있었던 첫날밤이 있기 전까지의 일만 이야기 해줬다. 기실 그 다음이야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고 아직까지 학생인 순영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순영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 순딩이 언니한테도 그런 면이 있었네……. 대단해. 그럼 이제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되겠다. 진짜 우리 형부~~~라고 불러야 되는 거네? 에이~~ 그럼 나도 형부 포기해야겠다. 언니랑 뽀뽀 정도였으면 나도 어떻게 해볼라구 했는데 안 되겠다. 뭘 그리 토끼눈을 뜨고 그래요? 이제 내가 알았으니 내가 두 사람 밀어 줄게요. 엄마아빠도 형부 좋아하시니깐 내가 그리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둘이 여행가고 그러는 것 정도는 제 말빨이 먹힐 거예요.”




“그래 알았어. 다 들었으면 그만하고 공부하자. 응, 처제?”




순영은 손을 들어 후를 제지하며 한마디를 더 꺼낸다. 후도 약점을 잡힌 것이라 뭐라 말도 못하고 그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여름방학 때부터 그랬다, 이거죠? 왠지 언니가 2학기 들어서는 좀 낌새가 이상하긴 하더라니, 저도 설마 둘이 그런 관계일까 짐작만 했었지 확증은 없었거든요. 하기야 요새 언니가 이상한 약을 매일같이 먹던데…….”




“잠깐 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르겠어요. 언니 가방 속에 이상한 약이 있던데요? 뭔지 묻지는 않았지만 매일 같이 약이 없어지는 걸 보니 하루에 하나씩은 먹는 가부죠. 반에 노는 애들한테 빙 둘러서 물어보니 그게 피임약일 가능성이 높다던데요? 그래도 설마 했는데 오늘 보니까 알겠네요. 자, 그럼 공부해요. 형부. 나 그거 가르쳐 줘요. 통박철학요.”




후는 순영의 말을 듣고 나니 요 몇 달간 순진이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 기억이 났다. 인희에게는 섹스와 여자의 심리에 대해서만 배웠지 나머지 것들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순진이 나오는 양이 적어 티가 잘 안난다고 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순정도 생리할 때가 지났다. 그녀는 가끔씩 생리가 불순일 때가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후의 생각은 순영의 재촉 때문에 끊기고 말았다.




“형부 안 가르쳐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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