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4부 1장

본문

제 4 장 눈 깜빡일 순(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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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는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에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었다. 평상시 보다 두 시간이나 더 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너무 설친 것이 기억났다. 이사를 한답시고 아침부터 뛰어다녔고, 순진에게 세 번이나 그의 체액을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는 머리맡의 주전자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갈증이 사라진 그가 담배를 물고 이제 자신의 것이 된 방을 둘러보았다. 판넬로 지은 것이라 겨울엔 몰라도 여름엔 엄청나게 더울 것 같았다. 그는 삐삐를 켰다. 아니나 다를까, 삐삐는 혼자서 한참을 울어재낀다. 어제 순진을 집에 보내는 길에서도 쉬지 않고 울던 삐삐였다. 뒷자리번호를 보니 인희였다. 보나마나 기숙사 앞에서 그를 기다리다 지쳐 연락을 한 것이다. 그가 순진을 보내고 큰길 공중전화로 들은 음성은 그의 예상대로였다. 인희는 화난 목소리, 슬픈 목소리 등 그녀가 낼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메세지로 남겨 두었다.




‘후씨, 나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와요.’




‘후씨, 지나가는 남자들이 날 자꾸 쳐다봐요. 무서워요. 빨리 와요.’




‘야! 천 후 빨리 안 와? 너 죽고 싶어? 내가 이제껏 봐줬더니…….’




‘후씨, 내가 잘못…….’




‘너 이제 내가 필요 없는 거니? 그래, 내가 떠나줄게…….’




‘후씨, 가지마. 흑흑~~! …….“




‘후씨…….’




그의 음성사서함이 모두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는 인희의 음성이 나오면 긴말 없이 8번을 눌렀다.(당시 모 이동통신에서는 8번이 삭제 버튼이었다.) 그가 옥탑방에 돌아오는 길에도 삐삐는 계속 울었다. 후는 아예 호출기의 건전지를 빼버렸다. 그도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을 보며 딜레마에 빠졌다. 필요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귀찮게 하니 가버려라 하는 식인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도 인희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가면 인희에게는 더욱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막았다. 지금이야 인희나 후나 좋을지도 모르지만, 버릇이라는 것은 무섭다. 시작이 어렵지, 그 다음은 일사천리라는 말은 비단 불륜에만 적용되는 공식은 아니다. 그가 인희를 받아주기 시작하면, 언제든지 조금이라도 힘이 들면 그렇게 나올 가능성이 짙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지명한 일이다. 그는 인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와의 첫날밤을, 그녀에게 연락처를 준 여름날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줄담배를 피우며 그렇게 인희를 지워나갔다. 그러는 중에도 삐삐는 계속 울어댄다. 수신시간을 보니 그가 담배를 물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져있다. 후는 다시 삐삐를 껐다. 그는 내일 어떤 일이 있어도 삐삐번호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는 건물 1층에 있는 공중전화로 가서 순진과 순정에게 연락을 했다. 순진에게는 오늘 과외 하는 집에 보강을 해주어야한다며 거짓말을 했고, 삐삐는 고장이 났다고 했다. 순정에게도 삐삐는 고장이 났다고 했고, 이사를 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기숙사에 찾아올 때는 어디 카페 같은 데에 들어가서 연락을 하라고 했다. 말로는 추운 날씨와, 순정의 미모에 빠진 남자들의 집적거림이 싫어서였지만, 실상으로는 계속 찾아올 것이 분명한 인희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지난 수요일 인희가 순정을 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그로서는 그것을 숨겨야했다. 게다가 방을 옮긴 것이 알려지면, 순정은 분명 방으로 들어오려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명목상의 방주인이며 그의 법적동거인이 된 순진과의 관계도 들통이 난다.(계약자가 순진이기 때문에 순진도 함께 주민등록을 옮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후는 기숙사에도 그가 퇴실한 사실을 함구에 붙였으며, 순정에게도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복잡한 나머지 아침을 굶은 그는 개나리 아파트 입구에서 순정을 태우고 바람도 쐴 겸 머리도 식힐 겸해서 교외로 나섰다. 강변북로를 따라 구리시로 들어간 그는 길가의 중국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다시 운전대를 잡은 후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순정은 하던 대로 가만히 그의 손을 잡고만 있었다. 후는 그날 필요한 말 말고는 입 밖에 내질 않았다. 그가 유료낚시터에 입장료를 내고 낚시를 드리울 때도 순정은 그의 옆에서 아무 말 없었다. 그는 순 시스터즈를 속이는 자신이 한심했고, 인희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는 이런 날 순정을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이 없으면 순 시스터즈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순진은 그의 기분이 나쁜 것을 알고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옆에서 재잘거리며 애교를 떤다. 후가 그녀의 말에 대꾸해주다 보면 그녀는 그가 왜 기분이 나쁜지를 알고 그의 속을 풀어준다. 반대로 순정의 경우는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가만히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에게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후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입을 열었을 때에는 다시 따뜻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되어 있곤 했다. 두 여인마다 각기 장단점이 있겠지만, 오늘 같은 기분의 후에게는 조용한 것이 나았다. 낚시터를 온 것만 봐도 그가 휴식을 원한다는 것을 아는 순정이었다. 그것은 후에게는 더욱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올 때쯤엔 그의 울적함도 많이 풀렸다. 낚시도 기분 탓인지 그가 순정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한 시점부터 입질이 시작되었다. 잠시 순정과 이야기하는 동안 몇 마리의 고기를 놓치긴 했지만 열 마리 조금 넘는 붕어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늦가을 치고는 많이 잡힌 편이었다. 그가 잡은 고기를 박스에 넣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여관의 불빛이 보일 때마다, 순정의 손이 그의 손을 잡는 것을 느꼈으나 후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순정으로서는 울적해 뵈는 후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지라 섹스로나마 그를 풀어주고 싶었던 것이었고, 후로서는 아직 순정에 대한 죄책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를 안는 것이 힘들었다.


후는 잡은 고기를 순정의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순정의 부모님의 고향은 경남 함안이었다. 지금이야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 없이 살 때에는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배를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했다. 어머니는 옛날 생각나게 해줘서 고맙다며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후는 붕어로 끊인 매운탕을 반찬으로 밥을 다섯 공기나 비웠다. 어머니는 옛날 분이라 그가 잘 먹는다며 좋아하셨지만, 아이스하키를 하던 민철은 그런 후의 먹성에 혀를 내두른다.


저녁까지 얻어먹은 후는 그냥 가기 뭣해서 민철의 공부를 봐줬다. 민철은 고2때까지 아이스하키를 하다가,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패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팀에서 쫓겨났다. 술을 마신 이유도 시합에 져서 코치에게 빳다를 맞은 분을 삭이느라 그런 것이지만, 어쨌건 목표였던 체대진학이 물거품이 되고는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나 치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후도 처음엔 과외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순정의 간곡한 부탁을 이기지 못하고 맡은 것이었다. 그는 주만의 경우처럼 맞짱을 떠볼까도 생각을 했었지만, 189cm의 키에 97kg의 체중은 솔직히 후에게도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주만이 때처럼 럭키펀치가 나가준다 해도, 녀석이 뻗어줄 지도 의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이 누나인 순정은 무서워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덩치의 반밖에 되지 않는 누나에게 잡혀있는 모습은 아이러니였으나, 민철이 해준 어린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이해는 갔다.




“형! 생각을 해보세요. 누나랑 나랑 연년생이잖아요? 얼마나 싸웠겠어요? 중학교 땐가, 제가 몸집이 더 커져서 싸우면 거의 제가 이겼거든요. 누나도 나중에는 힘에서 밀리니까 옆에 걸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 더라구요. 그래도 자기도 못 이기니까 짜증이 나던지, 하루는 거의 미쳐 날뛰는데……. 형도 이 사실을 알면 아마 누나랑 얼굴도 마주치기 싫을 걸요? 그날은 부엌에서 싸운 날이었어요. 의자랑 밥그릇 던지는 건 참고 있었는데, 그거로는 부족하다 싶던지 식칼이랑 과도랑 막 던지잖아요. 한 다섯 개 정도 던졌나? 아무튼 그중에 하나는 제 팔에 맞고 하나는 배에 박혔어요. 봐요, 형? 여기 자국보이죠?”




확실하게 녀석의 왼팔에는 길게 베인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들쳐준 티셔츠 안에는 움푹하게 들어간 칼자국이 있었다. 녀석은 그렇게 팔에 일곱 바늘, 배에 다섯 바늘을 꼬맨 다음부터는 누나에게 덤비지 않았단다. 그때 후는 잠시 경악했었다. 그리고 짐짓 두려운 표정으로 민철에게 물었더랬다.




“철아! 나 너희 누나가 자꾸 무서워진다. 나도 칼 맞는 거 아냐?”




“에이, 형~~! 농담하지 마세요. 운동도 많이 하셨고 조직에도 계셨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재수했다고 하던데요. 그러니 누나도 저 같은 건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고, 괜히 개기면 뼈도 못 추린다고 그러던걸요? 척하면 착이죠. 저도 뭐, 형 어깨만 봐도 알겠던 걸요.”




후가 운동을 많이 한 것은 맞다. 군살 없이 벌어진 어깨하며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건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이니 뭐니 하는 민철의 이야기는 그로서도 금시초문이었지만, 그 말을 듣자 왜 처음부터 민철이 은근히 그를 겁내는 눈치이며 이제껏 고분고분해왔던 것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도 거기서 들킬 수는 없었다.




“형은 여자한테는 손을 안 대니까 그러지, 인석아!”




“빡~!!”




“앗~!! 작은 손이 왜 이렇게 매워요? 아야~~!! 그래도 전 형보고 많이 놀랐어요. 집에서도 목소리 젤 큰 게 누난데, 형이 뭐라 하면 찍소리도 못하잖아요? 아빠한테도 안 그러는데요. 어찌 됐건 형이 대단한 사람인 건 확실해요. 근데… 분위기를 보니까, 누나한테 책잡힌 거 있나보죠? 안 그러고선 누나 겁낼 필요가 없을텐데……. 헤헤…….”




‘이눔아! 안 그래도 그거 들키면 나도 칼 맞을까봐 무서운 거다.’




“헛소리 그만하고, 공부나 하자.”




“따악~~!!”




“아얏~~!! 알았어요.”




이유야 어쨌건, 후도 자신을 따르는 민철에게 잘해주었다. 민철은 운동을 하던 녀석이라 순박했고, 위아래도 확실했다. 그리고 운동으로 다져진 본능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용하게 알아보곤 했다. 녀석 또한 같은 것을 재차 물어봐도 인상하나 찡그리지 않는 후에게서 - 비록 속은 것이지만 - 두려움과 함께 정을 느꼈고, 착실한 모범생이 되어주었다. 다행이 민철은 중학교까지는 곧잘 공부를 하던 녀석이라 후가 조금만 신경을 써주니 조금씩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후가 순정의 집에서 나선 것은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골프를 치고 온 순정의 아버지가 매운탕을 안주로 술이나 한잔하고 가라고 그를 잡았으나 후는 차도 있고, 기숙사에 점호가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후도 낮부터 자신만을 바라보던 순정의 눈에서 야속함을 읽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직까지는 혼자이고 싶었다. 그는 따뜻한 눈빛으로 순정을 달래고 차에 올랐다. 운전을 하면서도 후는 계속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상담역이던 인희를 보내고 나니 이제는 모든 일을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고향에 있던 형도 몇 달 전에 군대를 가버렸다. 형이라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있으련만……. 그는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자신에게는 두 여인이 남아있지만, 그녀들에게 탁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고민인 것이 너무 괴로웠다. 그가 잠이 든 것은 방안에서 깡소주를 세병이나 비우고 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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