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5부 1장

본문

제 5 장 젊은 남자




- 1 -




“후야! 정신이 들어?”




“후야! 괜찮아?”




후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시팔~~! 죽은 거야, 산 거야? 윽~~!! 아픈 걸 보니 뒈지진 못했나보군.’




그는 오른쪽 배 윗부분이 도려낸 듯이 아팠지만, 참을 만했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이곳이 병원임을 알았다. 일어서려던 그의 얼굴이 다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를 본 두 여인들이 달려와 그를 말렸다.




“아직까지 일어나지 말래, 의사선생님이…….”




“가만히 있어. 상처 덧 나.”




그녀들은 두 눈이 퉁퉁 부은 것이 밤새도록 울었나보다. 순 시스터즈들을 쳐다보던 후는 생각에 잠겼다.




‘순정이가 이리로 데려온 모양이군. 순진이는 순정이가 불렀을 것이고……. 이제 어떻게 한다? 이런 것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차라리 한 번 더 찌를 걸 그랬나? 젠장, 뒈지게 놔두지 왜 살린 거야?’




그는 우선 그녀들을 안심시키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나 참을 만 하니깐 호들갑 좀 그만 떨어. 근데 너희들, 밥은 먹었어?”




“니가 이런데 어떻게 밥이 넘어가? 흑흑….”




순진이 후의 품에 안기려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정의 손에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순진은 매섭게 순정을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상처 벌어져.”




“…….”




“나 좀 일으켜줘.”




“안 돼! 좀 더 누워있어. 피를 많이 흘려서 어지러울 거래.”




“일으켜줘.”




그녀들은 그의 고집을 아는지라 한 쪽씩 잡고 그를 일으켰다. 그는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 주는 괴로움 보다는 나쁘진 않았다. 일어서려고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다시 상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가 얼굴을 찡그리자 다시 그녀들이 잡아주려 했지만 그는 손을 들어 말렸다. 한참 후 순진이 먼저 입을 땠다.




“후야! 어떻게 된 일이야? 순정이 쟨 그 시간에 왜 거기 있었던 거야?”




순진도 어느 정도 감을 잡긴 하였으나 그래도 그의 해명을 듣고 싶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문을 열었다.




“그건…….”




순정이 후의 말을 끊었다.




“순진아! 후 지금은 아프니깐 나중에 얘기해, 응?”




“이순정! 나 너한테 물은 적 없어~!”




“순진아, 후는 환자라구~~. 그것도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단 말야.”




순진이 화가나 소리치자 순정도 맞받아친다. 그는 머리가 웅웅 거리는 것 같았다.




“둘 다 그만해!!”




그가 호통을 치자 다시 상처가 아파온다. 그녀들은 후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만, 눈으로는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벌써 일어났나? 역시 젊음이 좋구만.”




후가 고개를 들어보니 40대 후반의 배 나온 아저씨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벽에 아가씨들이 데려올 때만 해도 과다출혈로 위태위태하더니, 생각보다 빨리 정신을 차렸군. 몸은 좀 어떤가?”




“참을 만 합니다.”




“자네, 운이 좋았어. 다행인 줄 알어. 자네 운동 많이 했더구만. 복근이 튼튼한데다 칼도 무뎌서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알콜 때문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내일까지 쉬었다가 퇴원하게.”




“아닙니다. 지금 수속 밟아 주십시오.”




그는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시스터즈가 사람들이 많은 그곳에서 다시 싸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서 그 소리가 나오자 의사와 두 여인이 동시에 소리친다.




“안 돼~~!”




그는 이미 그들이 그렇게 나오리라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세 사람을 향해 싱긋 웃더니 왼팔에 꼽힌 링거 바늘을 확 잡아 뺐다. 그의 주특기인 극약처방이었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그를 말렸지만, 그가 살기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급하게 움직이며 상처가 벌어져 붕대에 피가 배어나왔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환자복 바지를 벗고 어제 입고 온 자신의 피 묻은 청바지를 입었다. 치료를 하느라 팬티까지 벗겨낸 것이라 성기가 덜렁 거려 간호사들도 얼굴을 붉혔지만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위에 티셔츠도 치료를 하면서 잘라낸 것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남방은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남방을 걸치고 단추도 채우지 않은 그가 돌아서며 말했다.




“제가 간다면 가는 겁니다.”




그가 휘청거리며 병실을 나서자 순진과 순정, 두 여자가 그를 쫒아왔다. 그녀들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양 옆에서 부축하려 했지만 후는 그것을 뿌리쳤다. 극약처방이 효과를 보려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그의 논리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접수실이 어디야?”




접수실에서는 의사의 소견서가 없으면 퇴원할 수 없다고 직원이 그를 타일렀지만, 그가 다시 눈에 힘을 주자 퇴원 수속을 해주었다. 그의 피 묻은 옷과 짧게 깎은 머리, 목에 걸린 두 냥짜리 금목걸이, 흉흉한 눈빛 덕택이었다. 자해(自害)를 한 것으로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입원비와 수술비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는 순정의 카드로 계산을 했다.


택시를 내려 자취방에 돌아온 그는 옥상에 버려진 칼부터 쓰레기통에 던졌다.




‘나나 저 쓰레기통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군. 둘 다 칼이나 맞으니…….’




그는 다시 옷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자신의 상처를 쳐다봤다. 붕대는 더 이상 피를 흡수하지 못하고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는 붕대를 풀고 상처를 살폈다. 상처는 깊숙이 찔린 것이라 촘촘하게 아홉 바늘이 꿰매져 있었다. 그는 약상자에서 소독용 알콜을 꺼내 상처에 부었다. 그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탈지면으로 상처와 피를 닦아내고 다시 지혈제로 마무리를 했다. 이마의 상처도 살펴봤지만 얇게 배인 것일 뿐 대수롭지 않았다. 고통을 참느라 극도로 피곤해진 그는 팬티도 입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녀들은 그때까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로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잠이 들자 그의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잠시 방을 둘러보던 그는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부엌에서는 연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알몸으로 잠들었던 자신의 몸에 속옷이 입혀져 있고, 이불까지 덮여진 것을 알았다.




“윽~~!”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던 그가 침음성을 발했다. 그 소리를 들은 순진과 순정은 동시에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후야! 괜찮아?”




“됐어. 지금 뭐 하니?”




“인삼이랑 가득 넣어서 삼계탕 끊이고 있어.”




“누가 만들었는데?”




“응, 순진이랑 둘이서…….”




그녀들은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사이가 많이 좋아져 있었다. 서로 으르렁 거려도 시원치 않을 그녀들이 아무런 일 없는 듯 행동하자 그가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래도 그가 잠든 사이 둘이서 모종의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누워있어. 다 되면 우리가 먹여줄게.”




그때부터 그는 갓난아기 취급을 받는 게 아닌 싶을 정도로 호강을 했다. 삼계탕을 가져온 그녀들은 그의 입이 댈세라 고기를 찢어 후후 불어가며 그의 입에 집어넣었고, 먹기 좋게 잘려진 인삼을 입으로 씹어서 다시 그에게 먹였다. 그가 한 시간 여의 긴 식사를 마치자 여인들은 그를 알몸으로 만들더니, 뜨거운 물수건으로 그의 전신을 닦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행여나 그가 흥분하면 상처가 벌어질까 중요부분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녀들의 손길에 그의 아래가 참지 못하고 부풀어 버렸다. 그의 부푼 몸을 본 그녀들의 눈에는 욕심과 회한(悔恨) 비슷한 것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다시 옷을 입혔다. 그는 그녀들이 잘 해주자 오히려 불안함을 느꼈다.




“너희들 정말 왜 이래? 그냥 맘 내키는 대로 해.”




“그냥 지금은 몸 낫게 하는 데만 신경 써. 우린 걱정하지 말구…….”




“그래, 얼른 나아야지. 나머진 그때 가서 생각해.”




그는 못 믿겠다는 듯이 그녀들을 바라보았지만 시스터즈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는 뭔가가 생각난 듯 그녀들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야?”




“응, 다섯 시 조금 지났어.”




그 말을 들은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일어서려고 하자 그녀들이 뜯어말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주만이 과외 하는 날이잖아. 낼 모레면 본고산데 가서 가르쳐 주고 와야지.”




“그 몸으로 어딜 간다고 그래? 전화하구 하루 쉬어.”




“그래도 그럴 수야 있나?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구, 그리고 주만인 일생이 걸린 큰 시험이잖아?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후는 고통보다도 그녀들을 마주하는 것이 더 괴로웠다. 그리고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주만에 대한 책임감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는 그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그의 등은 그녀들의 눈엔 세상 모든 짐을 맡기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듯이 듬직하고 야무져 보였다. 둘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 저런 남자라면…….’




둘이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을 때에는 서로의 생각이 읽힌 듯 부끄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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