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5부 7장

본문

제 5 장 젊은 남자




- 7 -




미정은 상당히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입이 따분한 것은 아니었다.




“아~~! 좀 더……. 좀 더 세게~~! 그래… 거기~~!”




그녀는 자신의 위에서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남자를 북돋아줘야 할 필요성 때문에 입을 떼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배위에 있는 이 남자는 얼마 전에 친구의 소개로 만난 젊은 유부남이었다. 친구의 말로는 힘 꽤나 쓴다고 하기에 만난 것인데, 처음 몇 번은 어느 정도 만족을 시켜주더니 근래 들어서는 부실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박 마담, 고 깍쟁이년~! 단물은 지가 다 빨아먹고서 나한테 넘긴 거구만. 두고 보자. 그리고 이 녀석은 내가 먹인 보약이 얼마짜린데……? 약값이 아깝다. 정말……! 혹시 지 마누라한테 쏙 빼주고 온 거 아냐?’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위를 바라보니 그 녀석은 벌써 참을 수가 없는 것인지 연신 풀무질 비슷한 소리를 코에서 내뿜고 있었다. 그래도 아래에서 흥분한 척 소리도 질러주고 몸도 꼬아주면 조금이라도 나은 기색을 보이기에 그녀는 다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래! 김 군. 거기야, 거기……. 아~~ 나 죽어~~!”




“오 여사님! 어때요? 좋으세요?”




“그래~! 나… 미칠 것 같아~~! 계속 해줘~!”




미정의 몸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지만, 기실 그 땀의 대부분은 김 군이라는 작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것을 알리 없는 김 군은 자신이 변강쇠라는 착각에 빠져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정의 연기와 김 군의 노력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행위의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잠시 후 김 군이 사정을 하자 미정은 엉덩이를 돌리며 사지로 그를 조였다. 미정은 사내의 정액이 자신의 질 내에 채워지는 감각을 좋아했다. 비록 자신이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정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약간의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늘도 그 느낌에 아랫도리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미정도 원래는 그리 색을 밝히는 여자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귀던 복학생 선배와 결혼을 하고, 주만과 주진을 연년생으로 낳을 당시만 해도 불륜이라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생각지도 못할 죄악 중에 하나였던 전형적인 한국의 주부이자 엄마였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안팎으로 잘해주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대기업의 이사로 근무하는 주만 아버지는 사십대 후반의 나이긴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의무방어전을 치러주고, 두 번 중에 한번은 사십대 중반의 뜨거운 미정에게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주는 썩 쓸만한 사람이었다. 주위에 금슬이 좋다고 소문난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명동에 화장품 가게를 오픈 하면서부터였다.


화장품회사를 다니던 주만의 아버지가 고속승진을 하면서 집으로 가져오는 돈이 남아돌자 미정은 그 돈으로 남대문시장 귀퉁이 작은 화장품가게를 열었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장사 수완이 좋아 금세 명동으로 가게를 이전할 수 있었고, 명동에서도 그녀의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여자 연예인들이 단골로 하는 - 이것이 주진이 연예인이 되겠다고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유명한 가게가 되었다. 게다가 당시 화장품회사의 부장이었던 남편의 외조로, 미정은 장사를 시작한지 3년도 채 안 되어 3개의 큰 점포를 소유한 업계의 큰손이 될 수 있었다.


그녀가 손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쥐게 되자 주변에 쉬파리처럼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미정은 귀가가 늦어지는 일이 잦아졌고, 으레 그런 날은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얼마 후 그녀는 주변의 여사장들이 하나둘씩의 젊은 애인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라고 못할 것 없지 하는 생각에 남자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정조관념과 두 아이들이 불륜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막았지만, 접대를 하고 돌아온 남편의 옷에서 발견되는 립스틱자국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처음의 불륜은 남들이 하는 데 나도 해야 한다는 비뚤어진 경쟁심리가 낳은 것이었고, 남편이 아닌 외간남자와 관계를 가진다는 데서 오는 짜릿함이 그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자 그녀도 남자 맛을 알게 되었고, 좀 더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남자를 찾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정은 주변의 친구들처럼 미소년 타입의 변강쇠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불법 호스트 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녀석들은 데리고 다니는 데 돈도 많이 들뿐더러, 뒤탈도 많았고, 또한 관계를 가질 때에는 아들 생각이 나게 만들어 자신의 행각에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애인이 있는 총각이나 초보 유부남을 노렸다. 그런 남자들은 힘도 좋았고, 경험도 많은 편이라 잠자리 기술도 쓸만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사회 물을 먹었기 때문에 헤어질 때도 뒤끝이 좋았다.


지금 미정의 위에서 숨을 돌리고 있는 김 군이라는 녀석도 얼마 전에 첫애를 낳은 회사원이었다. 출산 때문에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한 지가 오래 되어 한참을 굶고 다니던 것을 친구인 박 마담이 데리고 놀다가 자신에게 넘겼던 것이 세 달 전의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배 위의 남자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 녀석은 그만 만나야겠어. 젊다고 덥석 무는 게 아니었는데……. 어디 괜찮은 놈 없나? 그래~! 그러고 보니 약을 세 첩이나 먹여놓은 놈이 있었지.’




그녀는 아직까지 자신의 위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김 군은 밀쳐냈다.




“다 했으면 일어나!”




미정은 샤워를 하고 나온 김 군에게 십만 원짜리 수표를 던져주며 말했다.




“김 군! 수고했어. 내 다음에 연락할게. 먼저 나가봐.”




그가 나가자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외간남자의 흔적을 씻어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더운 물이 가슴을 타고 아랫도리로 흐르는 것을 느끼며 미정은 새로운 남자에 대한 궁리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넘어오게 만들 수가 있을까? 다른 놈들처럼 돈으로 발라볼까? 아무리 그래도 좀 켕기는 것은 사실인데……. 그러고 보니 심하게 다쳤다던데 약값이나 제대로 뽑을 수 있을라나……?’






그 시각, 약을 세 첩이나 받아먹은 놈은 자신이 누군가의 사냥감이 된지도 모르고 자취방 옥상에서 다섯 대째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후는 흘린 눈물이 말라갈 때가 되어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시스터즈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그녀들이 흘린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후의 가슴을 세차게 할퀴는 야수의 발톱 같은 느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도 그녀들을 보내면서 많이 후회했다. 그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생각만으로 그녀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싶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것이었고,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었다. 그는 방을 정리하다 말고 다시 술잔을 찾았다. 술잔에는 연신 그의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젠장, 마지막까지 공평을 지키게 만드는 군.’




그는 손을 들어 순진이 후려친 곳과 순정에게 술잔으로 맞은 부위를 만지작거렸다. 눈물인지 술인지 모를 액체가 그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후는 철환과 함께 현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현장으로 가는 세피아 안에서 철환은 자신이 후를 친척조카 쯤으로 소개해뒀다는 이야기를 했다. 딸의 남자친구라고 말하기엔 철환의 입지가 조금 우스워진다는 것을 후도 모를 리 없었다. 철환이 현장에서의 주의 사항을 몇 가지 더 일러주었을 무렵 그들은 일산 쪽의 아파트 단지 공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량철골과 알루미늄 패널로 지어진 2층짜리 사무실에 들어선 후는 쳘환에게서 7명의 동료들을 소개받았다. 입사 12년차의 박규진 과장, 8년차의 서명화 대리, 각기 4, 5년차인 김일환 주임과 천봉수 주임, 얼마 전에 입사한 이진우 기사, 그리고 나머지는 경리업무와 적산(積算)을 담당하는 10년차의 진재영 대리와 2년차의 권미지 경리가 그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후가 관심을 보인 이는 이 기사였다. 그것은 후가 철환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 기사는 철환의 얘기대로 거만해 보였고 태도도 약간 껄렁한 것이 타인의 속을 긁어놓을 만 했다. 반대로 후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은 시원한 인상의 천 주임과 앙칼지게 생긴 권 경리였다. 천 주임과 후는 연안 천씨(延安 千氏)로 본관이 같았다. 그는 후에게 파벌 등을 묻더니 자신이 후의 조카뻘이 된다면서, 철환에게 부하직원을 데려온 것이 아니라 윗사람을 데리고 왔다며 농담을 해 사무실 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권 경리는 철환이 후가 76년생이라고 소개를 하자 눈을 반짝이던 아가씨였다. 그녀는 입사 2년차라고는 하지만, 전문대 2학년 가을 학기에 취업을 나왔기 때문에 얼마 전에 2년차가 되었다. 원래 후보다 한살이 많아야 되지만,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동갑인 후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띠띠 띠리리리~~ 띠띠 띠리리리~!”




‘날 좀 보소’의 벨소리가 사무실을 채운다. 철환이 작업복 바지에서 초등학생 필통만한 핸드폰을 꺼냈다.




“예, 이 철환입니다. 누구……? 아 김 사장! 지금 어디라고……? 그럼 현장 사무실에서 기다릴 테니 빨리 와요. 그런데,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은 어떻게……? 아~! 그래요? 하하……. 알겠습니다. 이다가 뵙죠.”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거래처에서 걸려온 전화인 모양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넣더니 부하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박 과장! 자네는 서 대리하고 101동부터 103동까지 돌아봐. 오늘 102동 콘크리트 타설 작업 있지? 그거 끝내고 지난주에 102동 15층에 하자(瑕疵) 난 것, 하스리(콘크리트 공사에서 잘못된 부분을 깎아내는 작업, 또는 철거)업체 수배하고, 오늘내로 견적 뽑아 놔. 진 대리랑 권 양은 다음 주에 들어올 자재 물량 파악하고, 섀시 견적 좀 정리해서 넣어줘. 이 기사는 내가 단지 동측 상가 자네한테 맡길 테니까 오늘부터 관리해봐. 그리고 천 주임은 김 주임이랑 천 군 데리고 104동, 105동 돌아. 내가 지난주에 지시한데로 우리 천 군 좀 가르쳐. 자, 인부들 다 모였지? 안전교육 끝나면 지시한데로 일 시작해. 난 도기(陶器) 김 사장이랑 면담할 게 있어서 들어가 보겠네.”




“저어…… 삼촌!”




후는 출근길에 철환의 이야기대로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후야! 여기선 소장님이라고 부르라했지? 근데 왜? 아~~! 오늘은 내가 바빠서 널 못 가르치겠구나. 여기 두 주임님들 얘기 잘 듣고 시키는 것만 하면 돼. 내가 미리 부탁해뒀으니까 잘 도와줄 거야. 오후에나 되면 내가 시간이 나니까 그때 같이 돌아보자. 그러고 보니 깜빡한 게 있구먼. 어이~ 봉수! 자네 천 군 소개할 때 스물다섯이라고 얘기하게. 대학 졸업한 기사라고 말이야. 나머진 자네가 알아서 하고…….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 이따 봄세.”




철환은 후를 내버려 두고 사무실에 딸린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후는 약속대로 철환이 자신을 가르치지 않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하는 수 없이 두 주임 뒤를 따라갔다. 사무실 밖 공터에는 인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후와 사무실 직원들이 나오자 체조 대형으로 벌려 섰다. 박 과장이 수박 겉핥기식의 안전교육을 끝내고 인부들에게 안전체조를 시켰다. 인원체크가 끝나자 과장은 각 팀의 오야지(팀장, 두목)를 불러 작업 내용을 지시하고는 서류철과 카메라를 들고 뼈대만 지어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천 주임은 후와 김 주임을 데리고 락카 스프레이로 104동이라고 적힌 건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말이 없던 후는 궁금한 점이 있어 입을 떼었다.




“저어 천 주임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아재! 말씀해 봐.”




천 주임은 노가다 체질답게 농담을 잘 하는지라 후를 보고 아재(친척아저씨)라고 부른다.




“소장님이 아까 저보구 스물다섯이라고 소개하라 그러셨잖아요? 왜 그런 거죠?”




“아재, 그건 말이야. 이놈의 개 같은 노가도 곤조(근성(根性)이라는 일본말로 여기에서는 뿌리박힌 나쁜 관행이나 인습, 습성 등을 의미) 때문에 그러시는 거야. 현장에서는 대학 졸업한 기사라도 신참이라면 인부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거든. 아재가 어리고 기사가 아니란 것을 알면 인부들을 통제하기 힘들고……, 뭐 그런 이유 때문이야. 이 기사 있지? 걔도 처음에 목수들에게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알지도 못하는 게 깝친다고 맞아 죽을 뻔한 적이 있었지. 나랑 소장님이 겨우 말려서 다행이긴 했지만 말이야. 아무튼 현장에서 인부들 비위 안 거슬리게 조심해야 돼. 다행이 아재는 얼굴이 나이 들어 보여서 인부들이 잘하면 속겠는데……. 하하~~!”




그 말에 말수가 적은 김 주임마저 큰소리로 웃는다. 두 주임은 후에게 상세도면 하나와 줄자, 메모지를 주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들은 거푸집을 조립하는 곳으로 후를 데리고 가더니 줄자로 치수 재는 법과 도면과 비교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장소를 이동할 때에는 현장에서 주의할 점 등을 알려주었다. 다행이 후는 지난 1년간 수십 장의 도면을 손수 그려봤고, 방학 동안의 경험이 있어 쉽게 일에 적응해 나갔다. 두 주임도 가르치는 재미가 나는 지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을 그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후는 오후 참(오후 3시 30분) 때까지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후는 발바닥에 불이 난 것 같았다. 현장에는 아직까지 호이스트카(건설용 임시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만 오르락내리락 했기 때문이었다. 천 주임은 자신의 업무가 끝났다며 자신의 책상에서 컴퓨터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고 있었고, 김 주임은 후에게 일보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후는 처음 적어보는 일보에 정신이 팔려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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