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모로스 - 1부 1장

본문

모로스 (그리스어:"운명")는 그리스 신화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의인화된 신이다.


모로스는 ‘밤’ ㅤㄴㅟㄱ스가 스스로 낳은 자식으로 케레스(죽음의 여신)과 타나토스(죽음)와 함께 태어났다. 이들 세 명은 각각 "죽음"의 서로 다른 양상을 의미한다. 이들은 또한 ㅤㄴㅟㄱ스가 낳은 다른 자식들, 아파테 (사기), 모모스 (비난), 모이라이 (운명의 여신들), 오이쥐스 (불행, 고초), 오네이로이 (꿈), 필로테스 (우정), 에리스 (불화 不和)과도 같은 남매지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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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모이라이(운명의 여신들)




“야, 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이 몇 신데 아직껏 도착을 안한거야?”


“야, 야. 보채지마 다 왔다 다 왔어. 지금 입구다 입구.”


전화를 끊은 양수는 단단히 화가 나 엠퍼러 호텔 입구를 서성였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제민을 기다리며 이미 양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양수와 제민은 오늘 아침 엠퍼러 호텔 옥상의 수영장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화려하고 물이 좋다고 알려진 엠퍼러 호텔 수영장에 그들이 가려는 이유는 단 하나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였다. 대학 때부터 잘 알려진 헌팅 콤비였던 이 둘은 오랜만의 작업을 위해 며칠 전부터 착실히 준비해왔다. 일반인들은 구하기도 힘들다는 수영장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호텔에 근무하는 선배를 찾아가 수 일 간의 아부 끝에 티켓을 얻어 내는데 성공했고 각자의 회사에 온갖 거짓말로 간신히 일차를 맞췄다. 마지막으로‘활동 자금’을 위해 통장에 남아있는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 온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양수는 오늘 하루 일 분 일초가 아까운 심정이었다. 이미 입장시간을 삼십 분이나 넘긴 시계를 보고 양수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꺾었다. 생각 같아서는 제민은 내팽개쳐버리고 자신 혼자 가고 싶었지만 양수는 곳 생각을 고쳐먹었다. 제민은 대학 때부터 오랜 친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제민은 빠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입구에서 제민이 허겁지겁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양수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얼른 제민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민이 미안하다는 듯 양수의 눈치를 살폈다. “야, 야 미안하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수영복을 못 찾아서 말이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임마. 우리가 계획한 지가 며칠 전인데 그런 건 미리미리 챙겼어야지. 그거 때문에 금쪽 같은 시간을 한 시간이나 허비해야겠어?”


“ 알았다 알았어.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의심스럽다는 듯 양수가 제민을 흘겨보며 말했다. “너 설마 수영복 챙긴다고 다른 물건 엉망으로 가져 온 건 아니겠지? 우리가 가는 데는 물이 다르다고 분명히 말했다. 여긴 노는 애들이 최고급이라서 자기들이 봤을 때 격이 떨어진다 싶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나 원 참 자식, 걱정 마라. 너나 나나 어디 작업 한 두 번 하냐? 걱정 마라, 선글라스에 태닝 오일에 완벽하다, 완벽해.” 제민이 걱정 말라는 듯 양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여곡절 끝에 수영장 안으로 들어 온 양수와 제민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마치 한국이 아닌 듯한 호화로운 내부 시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안의 사람들 또한 그들에게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수영장 안의 남녀는 누구나 할 거 없이 늘씬한 미남미녀였고 그들의 행동 또한 전혀 이질감 없이 수영장 안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오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여 두리번거리는 이들은 양수와 제민 둘 뿐이었다. 




“야, 야. 뭐 이런 데가 있냐? 이거 어디든 걸려들기만 하면 대박이겠다.” 제민의 말이 흥분하여 빨라졌다.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얼른 와라. 티 내지 말고.” 양수가 제민에게 눈치를 주었다. 


흥분한 제만과 달리 자리를 잡고 앉은 양수는 차분히 주변을 둘러 보며 먹잇감을 고르기 시작했다. 




오랜 경험으로 양수는 먹잇감을 고르는데 나름의 원칙이 서 있었다. 너무 많은 것 보다는 3, 4명 정도의 여자 일행을 공략할 것. 나이대가 비슷한 무리를 고를 것. 분위기가 밝은 무리 쪽으로 접근 할 것 그리고……




그 때 였다. 갑자기 제민이 놀란 표정으로 양수의 팔을 툭툭 치며 수영장 한 켠을 가리켰다. 제민의 손 끝을 따라간 양수의 시선도 그곳에 고정되어 버렸다. 




수영장 한 켠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 셋이 비치볼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들 셋의 행동은 나머지 여자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외모는 다른 이들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비키니를 입은 채 비치볼을 던지고 있는 여자는 시원한 키와 뇌쇄적인 몸매, 그리고 고양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눈매를 가진 이국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몸매도 몸매거니와 비치볼을 던지며 소리 내어 웃는 그의 모습은 표정 하나하나에서 섹시함이 묻어 나왔다. 




반면 반대편에서 비치볼을 받으며 웃는 여자의 모습은 정 반대였다. 선한 눈매에 단아하다고 할 만큼 고운 얼굴의 여자는 무엇이 즐거운지 비치볼을 받으며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앞의 여자와는 달리 소리 내어 웃어도 그 모습은 한 편의 그림을 연상시킬 만큼 청순한 모습이었다. 




둘 사이에서 연신 비치볼을 빼앗으려 애쓰는 여자는 나머지 둘과는 또 다른, 그러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미인이었다. 다른 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늘씬한 몸매의 여자는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아기 같은 얼굴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웃는 여자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뤘지만 그 대조가 오히려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섹시함과 청순함, 그리고 귀여움이라는 세 여자의 모습은 섣불리 끼어들기 힘든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양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둘러보니 세 여자의 미모에 넋을 놓은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이미 수영장에 있는 남자들의 상당수는 세 여자에게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그들 중 일부는 같이 온 여자 파트너에게 들켜 구박을 받는 중이었다. 




“야, 야. 세상에 저게 사람이냐 여신이냐?” 제민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양수는 세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제민이 놀라 양수를 바라보았다. “야 임마. 너, 뭐하게? 어쩌려고?” “잔소리 말고 따라와. 저거 오늘 목표물이다.”




사실 양수로서도 저들을 바라보면서 딱히 작업할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무언가 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양수를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양수가 세 여자에게 다가가는 중에도 여자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아니, 의식하지 않는다기 보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좁혀질수록 여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점점 숨이 막히고 있었다. 오랜 헌팅의 경험으로도 어떻게 돌파구를 뚫어야 할지 이렇게 생각나지 않는 경우는 양수로서도 처음이었다. 




그 때였다. 두 명 사이에서 공을 빼앗으려 애쓰던 여자가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양수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여자를 받으려 했지만 결국은 여자와 함께 물에 빠지는 신세가 되었다. 여자에 깔려 버둥거리는 와중에도 양수는 몸을 추슬러 여자를 일으켰고, 넘어진 여자의 곁으로 다른 두 여자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달려 왔다. 넘어졌던 여자가 정신을 못 차린 채로 머리를 흔들자 청순한 얼굴의 여자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부축해 주였다. 




“이 대 일이라, 게임치고는 너무 불리해 보이고. 혹시 저 분이 괴롭힘이라도 당하고 계신 건가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흰 단지 장난을 친 것뿐인데,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청순한 얼굴의 여자가 당황한 듯 말을 이었다. 섹시한 외모의 여자가 재미있다는 듯 양수를 바라보았다. 




“아, 말이 지나쳤다면 죄송합니다. 단지 전 저 분이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 같아서 승리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면 어떨까 싶었거든요.” “승리감이라, 어떤 식으로요?”




“3:1 대결에서 2:2 대결로 바꾸는 거죠. 제가 저쪽 분과 같은 편이 돼서.”




귀여운 얼굴의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섹시한 여자의 뒤로 숨으며 말했다. “싫어 언니, 내가 왜 처음 보는 남자랑 한 편을 해야 해?”여자는 양수를 쳐다보며 혀를 내밀었고 섹시한 얼굴의 여자가 이제 어쩌겠느냐는 표정으로 양수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단지 장난일 뿐인데 제가 너무 오버했나 보군요.”양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돌아 섰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몸짓이었지만 양수의 머리 속은 다른 접근 방법을 찾기 위해 바쁘게 회전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정의의 기사님.” 양수의 등 뒤에서 섹시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럼 경기 방식을 바꾸는 건 어때요?” “어떻게요?” “그냥 남자 대 여자로 하죠.” 양수는 순간 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확신했다. 




“흠……글쎄요.” “왜요, 경기 방식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면 상대가?” 섹시한 외모의 여자가 묘한 웃음을 띠며 물었다. 


“그렇다기 보단, 서로 적이 되긴 싫어서요.” “어머? 적이라뇨. 아까 본인 입으로 게임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설마 실제와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건 아니겠죠?”


양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지금 여자 세 분에 남자라곤 저 하나니까 저 쪽에 있는 제 친구까지 경기에 참가하는 걸루요.”


“응원군이라, 아까는 정의의 사도 행세시더니 이제 와서 약한 척인가요?” “남자라고 천하무적은 아니니까요. 여자분들의 너그러움에 호소해 보죠.”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여자들의 모성애는 항상 남자보다 우월한 법이니까요.”




결국 시합은 제민 일행과 여자들간의 2:3 수구(?) 경기로 진행되었다. 수영장 양 편 가장자리에 비치볼을 갖다 대면 점수를 얻는 방식의 경기에서 여성 팀은 득점을 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점차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반면 이런 경기에서 승부욕을 불태울 만큼 저단수인 양수가 아니었다. 결국 10분 간의 경기에서 양수 팀은 12:3이라는 압도적인 점수차로 패배했다. 




경기가 끝난 후 양수와 여자 일행은 모두 풀장 가에 지쳐서 뻗어 버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제민의 계속적인 수다는 여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있었고, 결국 여자들의 이름을 알아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섹시한 외모의 여자는 이채영,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최소희, 그리고 귀여운 여자의 이름은 김민아이었다. 


“우와 기운 없어. 정말 지쳐 버렸어.” 민아가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래 정말 뻗어버렸네 더 놀아야 하는데 완전히 진이 빠졌으니” 채영이 양수를 묘한 표정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지실 거죠?” “책임지라면야 대환영이죠. 뭐든 말 만 해요, 원하는 대로 책임질 테니까.”제민이 소희의 어깨에 슬쩍 손을 얹으며 말했다. 




소희가 양수의 손을 피해 옆으로 살짝 비키는 것을 보고 양수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나 섣부름은 일을 그르치는 법. 진정한 낚시꾼은 찌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절대 챔질을 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럼 우리 저 쪽에서 뭐라도 마시면서 잠시 쉴까요?” 양수가 가리킨 곳은 수영장 한 켠에 있는 작은 야외 바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인데요? 선수 냄새가 나는 것만 빼면?” 또다시 묘한 채영의 미소가 양수의 얼굴로 향했다. “들켰나요?”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니까요.”




“잠깐만.” 일행이 모두 바로 향하려 하자 민아가 문득 제지하며 나섰다. “우리 가더라도 오빠한테 허락은 받고 가야 하잖아.” 양수와 제민이 어리둥절해 하는 것과 달리 여자들은 순간 ‘아차’하는 표정이 되었다. 


“오빠라구요?” “네, 민아가 오빠면서 제 보호자에요. 그리고 소희 남자친구이기도 하구요.”채영이 약올리는 듯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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