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1 ... - 1부 18장

본문

18. 사창가 






날이 저물자 마사오는 집을 나섰다. 지까후지를 만나기로 약속한 곳 


은 가따소데 다리였다. 에도 시대 중엽부터 젊은 남녀 한 쌍의 애닮고 


슬픈 사연이 얽혀 있는 다리였다. 남자가 이승을 하직하려고 한다. 여 


자가 그 남자를 붙들고 놔 주지 않는다. 남자를 끌고가는 저승 사자가 


강제로 두 사람을 떼어내는데도 여자는 남자의 소매에 울며불며 매달 


린다. 저승 사자는 남자를 재촉한다. 여자는 더더욱 남자의 옷깃을 움 


켜잡으며 매달린다. 결국 남자의 소매가 찢겨져 나가고 남자는 저승 


사자의 손에 끌려 이승을 떠난다. 그리고 여자는 갈갈이 찢겨진 채 남 


은 한 조각 천을 가슴에 품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길은 역으로 이어졌다. 금방 열차가 떠난 듯 몇 사람이 우르르 스쳐 


지나갔다. "어중간한 시간이군." 평소의 걸음걸이였으므로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누가 봐도 평범한 학생으로 볼 수 


있는 교복 차림이었다. 그래도 역시 기분은 거림칙했다. 괜찮을 거야. 


마음을 다잡고 걷는데 불쑥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 다에꼬의 아버지였 


다. 마사오는 인사를 했다. 


"아니 이 시간에 어디를 가냐?" 


"친구 집에요. 내일 읽을 책을 빌리러 갑니다." 아는 사람과 마주칠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한 말이었다. 


"놀러 오너라." 


"예." 


다에꼬의 아버지가 멀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걸음을 재촉했다. 가 


까소데에는 이미 지까후지가 와 있었다. 웬 남자와 함께였다. 남자는 


강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가자 담배 냄새가 


풍겼다. 양담배였다. 지까후지는 마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왔어. 꼭 올 줄 알았지." 


남자가 뒤돌아보았다. 지까후지가 마사오를 그에게 소개했다. 그 


남자는 다나까라고 했다. 삼십을 전후한 나이의 극단 배우 같은 인상 


을 주었다. 


"넌 모처럼의 기회인데 왜 여자가 필요없다고 그러지? 어쨌든 재미 


있게 해줄 테니까 그 다음은 네가 알아서 해라. 자, 가자." 


다리를 건너 오오노야로 접어들 때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근의 


주택가도 모두 문이 닫힌 채였다. 지까후지가 말한 대로 세 사람은 안 


쪽 문으로 들어갔다. 나무문을 연 다나까가 "자, 내가 왔다구"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 오셨어요?" 요염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준비는 됐지?" 


"그럼요, 벌써 특별히 해뒀죠. 자, 들어오세요." 


다나까를 따라 지까후지가 먼저 들어가고 마사오도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을 맞이한 사람은 사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로 분 화장 때문 


에 얼굴이 하얗게 보였다. 


부엌이었다. 기둥이나 책장으로 칸막이가 돼 있었다. 맞은편에 몇 


몇 남녀가 있었다. 마사오는 순간 얼굴을 돌렸다. 여자의 안내로 이층 


으로 올라갔다. 고풍스러운 방이었는데 탁자 위에는 벗꽃 꽃병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산수화 족자도 걸려 있었다. 보통 가정의 객실과 별 차 


이가 없었다. 방 가운데에는 검은 식탁과 방석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다다미에 손을 짚으며 새삼스럽게 


인사를 해 왔다. 지까후지와 마사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까후지는 굳어진 표정이었다. 마사오는 별로 긴장하진 않았다. 이 


미 이렇게 되어 버린 거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타일렀다. 어쨌든 이렇 


게 금지 구역에 들어온 이상 퇴학당할 짓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술 가져와. 고기는 없나?" 


"예, 알았습니다. 손님들, 운이 좋아요. 마침 좋은 잉어가 들어왔어요." 


여자가 나가자 탁자를 등지고 앉아 있던 다나까가 마사오에게 양담 


배를 내밀었다. 


"피워 보겠니?" 


"피우지 않습니다." 


"음." 그는 혼자서 담배를 붙여 물고 말했다. 


"네 얘긴 지까후지에게서 많이 들었다. 공부를 상당히 잘 한다고?" 


"아뇨, 지까후지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이런 곳에서 학업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이상했다. 


이윽고 술과 요리가 날라져 왔다. 특별히 주문을 해서인지 안내해 


준 여자가 혼자 들락거렸다. 


"저 아줌마는 누구죠?" 지까후지가 다나까에게 물었다. 


"아, 저 사람도 창녀야. 창녀를 감독하는 할멈은 아니고, 너희들이 


만날 사람은 이제부터 올 세 여자와 저 여자가 다야." 


식탁 위에 잉어를 담은 큰 접시가 놓여졌다. 


"오늘 아침에 잡은 거랍니다. 특별히 가져온 거예요." 


"이거야말로 특식이로군." 


생선은 배급제였다. 살아 있는 맛있는 잉어는 보통 가정에서는 먹을 


수 없었다. 이런 곳으로 모두 유출되는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비싸겠는데." 지까후지가 감동한 듯 중얼거렸다. 


"값은 걱정하지 마. 여자와 비교하면 잉어 따윈 값도 아니야." 


상이 다 차려진 후에 여자가 다나까와 마사오 사이에 앉았다. 


"자, 우선 맛을 보세요." 다나까에게 한 젓가락 건네자 다나까는 그 


걸 받아 맛을 음미했다. 


"음 좋군. 술도." 


청주였다. 술도 배급제였지만 이런 가게에는 특별 배급이 있다고 들 


었다. 마사오도 잔을 들어 지까후지와 함께 마셨다. 거기에서 비로소 


여자는 마사오 일행을 칭찬했다. 


"둘 다 상당히 호감가게 생기셨어요. 여자 친구가 있을 거 같은데? 


이제 여학생처럼 예쁜 아이들을 데리고 올 테니까 걱정 말고 음식이나 


맛있게 드세요." 


마사오와 지까후지가 석 잔씩 마셨을 쯤에 세 여자가 들어왔다. 모 


두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고 있었다. 제일 먼저 들어온 여자가 다나까 


와 지까후지 사이에 앉아 다나까에게 교태를 부렸다. 


"요전엔 정말 감사했어요. 오래간만이라 반가와요." 


나머지 두 여자는 아직 어렸다. 화장도 짙지 않았다. 홍조를 띤 뺨 


의 색깔이 그대로 나타날 정도였다. 


"미요라고 해요. 잘 부탁합니다." 


다다미에 양손을 짚고 이마를 조아려 절을 했다. 지까후지가 말한 


대로 아직 스무 살도 안 돼 보욨다. 갸름한 얼굴이었다. 스무 살 전이 


라 해도 마사오보다 연상인 것은 확실했는데 그 떨리는 목소리에 어떤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다미라고 합니다." 그 옆의 여자도 이름을 대더니 미요와 똑같이 


인사했다. 다미는 둥근 얼굴로 왠지 모르게 순진하고 귀여워 보였다. 


눈이 컸다. 역시 미요와 같은 또래였다. 마사오와 지까후지도 얼결에 


맞절을 했다. 인사를 마치자 눈을 내리깔고 있는 여자에게 다나까가 


말했다. 


"자, 그렇게 격식 차리지 말고 이쪽으로 와. 참, 너희들." 지까후지와 


마사오를 번갈아보며 말을 했다. 


"어느 쪽이 좋은지 결정해." 


"어떡 할까?" 지까후지가 마사오에게 소곤거렸다. 


난 이렇게 술을 마시기만 할 테니까 네가 골라 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흥을 께기 십장이었다. 


"네가 알아서 해." 


"아냐, 네가 골라." 


지까후지는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인지 마사오에게 밀어 붙이려고 


만 했다.다나까나 그 여자들은 둘의 양보를 재미있어 했지만 결국 가 


까이 앉아 있는 사람과 짝이 되기로 했다. 마사오 옆에 앉아 있는 여 


자는 미요였다. 미요는 다시 한번 다다미에 손을 짚으며 정중히 인사 


를 했다. 마사오는 당초의 자신만만함은 사라지고 몹시 당황하고 있었 


다. 미요와 다미가 다른 두 여자들과 인상이나 분위기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불량스런 친구들 말에 의하면 창녀촌이라는 곳이 이렇게 어색한 곳 


은 분명 아니었다. 여자들도 탁 까발려놓고 문자 그대로 발가벗은 채 


살다시피한다고 들었다. 본능과 환락과 방탕함만이 소용돌이치는 떠 


들썩한 세계로 들었다. "이건 마치 선보는 것 같군." 미요는 젓가락을 


건넸다. 


"드세요." 


이미 다나까는 지까후지나 마사오에겐 신경쓰지 않고 자기 옆의 여 


자와 진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마사오는 미요의 손을 보았다. 갸 


름하고 청순한 얼굴과는 달리 손은 마디가 굵고 붉었다. 분명 일을 많 


이 하면서 자란 손이었다. 아마 손바닥에는 굳은 살이 배겨 있을 거라 


고 추측했다. 그런 추측을 할 여유를 가진 자신이 만족스러웠다. 


"미요는 본명이예요?" 잔을 받으면서 마사오가 물었다. 이런 곳에 


있는 여자들은 가명을 사용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지 


식이 있음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야뇨." 미요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받은 이름이에요." 


"그럴 줄 알았어요." 


잔을 입에 대면서 마사오는 지까후지를 보았다. 역시 지까후지는 긴 


장해 있었다. 몸놀림이 어색했다. 그래도 술은 잘 받아 넘기곤 했다. 


"본명을 묻는 건 실례일 거야." 


"나이는요?" 


"열 아홉이에요." 


역시 연상이었다. "내 나이를 물으면 난처한데." 다행스럽게도 미요 


는 다른 말을 했다. 


"저 벚꽃, 제가 오늘 꽃꽃이한 거에요. 꽃이 좋죠?" 


"어떠게 지금까지 피어 있죠?" 


"북족 응달의 서늘한 곳에 피어 있었어요. 그런 꽃은 보통 벚꽃과 달리 


잘 시들지 않아요." 


무슨 의미심장한 뜻을 가진 말 같기도 했지만 그 뜻을 알 수 없었 


다. 마사오는 다나까가 하는 대로 잔을 미요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미요는 입을 꼭 다문 채 양손으로 받았다. 마사오가 


그 잔에 술을 채웠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미요는 그걸 세 번에 나누 


어 마시더니 잔 가장자리를 닦아 마사오에게 주었다. 마사오는 온몸에 


취기가 도는 걸 느꼈다. 술기운은 특히 머리로 쏠렸다.침착할 수 있 


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술만 마실 게 아니라 안주도 같이 드시는 게 좋겠어요." 미요가 음 


식을 권했다. 


"그러죠. 이런 성찬은 오래간만이어서." 마사오는 음식을 먹기 시작 


했다. 지까후지와 다미도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나누고 있었지만 다나까 


의 괄괄한 목소리에 눌려 아무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다나까는 자신 


이 오오사까에서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통조림 


제품의 암중개인인 것 같았다. 


먹고 마시는 동안에 취기는 더욱 더해 갔다. 처음 마셔 본 술이었 


다. 처음에 왔던 여자가 미요와 다미를 데리고 나가 자리를 피해 주었 


다. 다나까가 우선 지까후지에게 물었다. 


"어때? 그 여자 마음에 들어?" 


지까후지는 술로 이미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예, 좋아요." 


"좋아, 너는?"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전 돌아가겠읍니다. 저 여자가 싫다는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러기로 


하고 왔습니다." 


"음, 아직 시간이 일러. 트럼프라도 하고 놀다 가." 


곧 여자들은 다시 들어왔다. 처음부터 있던 여자와 다나까 옆에 앉 


아 있던 여자는 둘이 뭔가를 속삭였다. 처음부터 있던 여자는 다끼라 


고 했다. 그 다끼가 마사오에게 무릎을 조이며 달라붙어 왔다. 벌써 


상당히 취한 듯했다. 다끼가 마사오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당신, 남자잖아요?" 


"예, 남자입니다." 


미요는 마사오가 아직 젓가락을 대지 않은 잉어의 뼈를 발리고 있었 


다. 다미는 지까후지에게 정답게 기대어 있었다. 


"그런데 배짱이 없어요?" 


"배짱?" 마사오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배짱이요?" 


"남자의 배짱. 이렇게 예쁜 애를 거들떠보지도 않다니." 


"난 술을 마시러 왔어요. 그러니까 먹고 마시다 가겠읍니다." 


"비겁해요. 친구를 두고. 자기만 모범생이 되어 돌아가다니!" 


"비겁하다고 해도 좋아요?" 


미요가 마사오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 와 보세요." 


미요는 장지문 건너편 방으로 마사오를 끌고갔다. 역시 두 칸짜리 


다다미 방이었다. 미요는 장지문을 닫았다. 전등을 켜지 않았으므로 


방은 깜깜했다. 미요가 별안가 달려들어 마사오를 껴안았다. 분내가 


마사오의 코를 간지럽혔다. "역시 매춘부군." 미요는 부드러운 가슴으 


로 누르듯 안기며 말했다. 


"제 방에 오기만 해 주세요. 네? 부탁이에요." 


사뭇 호소하는 투였다. 마사오는 미요 가슴의 탄력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 방?" 


"예. 제 방이요. 아직 아무도 묵은 적이 없어요. 아무도 잔 적이 없다구요." 


"왜 가기만 해 달라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혼나요." 


"엄마?" 


"주인인 다끼 언니요." 


뭐든지 처음 듣는 말뿐이었다. 불량스러운 아이들이 가르쳐 준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손님과 잔 적이 없다구? 나를 속이려 


고 하는군" 하고 생각할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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