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1 ... - 1부 15장

본문

15. 동반 자살 






동반 자살한 남학생이 차분하고 깔금한 수재였다는 사실이 학생들 


의 동요를 한층 더 부채질했다. 그렇지만 같은 학년이 아니었기 때문 


에 좀처럼 자세한 정보는 들려오지 않았다. 상급생들은 자기들 친구의 


불행이 하급생들의 호기심거리가 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학교측에 


선 아무런 발표도 없었다. 학교로서도 직접적인 책임이 없으므로 분명 


성가신 사건이었을 것이다. 


"눈 쌓인 산속에서 정사(情死)라! 정말 낭만적이야. 멋있어 !" 


"죽음은 본래 아름다울 수가 없어. 조금도 낭만적일 게 없다구!" 


"그렇지만 본인들은 낭만적인 기분으로 죽었을 거야." 


"아냐. 틀림없이 무슨 심각한 고민이 있었을 거야. 보통 일로 자살까 


지야 하겠어?" 


"죽어야 될 사정이 남자에게만 있었는데 여자까지 동반한 거라면 용 


서할 수 없어. 비겁한 일이야. 그 반대였다면 여자가 너무 의존적인 


거고. 둘 다에게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을까? 그건 그들 관계 때 


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한 것도 아니라며? 그럼 대체 


이유가 뭐야?" 


학생들 대부분은 동반 자살을 비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그런 


사랑의 짝을 갖고 있었던 가마다에게 꽤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얼마나 깊은 관계였을까?" 당연히, 그들의 정신적인 관 


계뿐아니라 육체적인 애정의 깊이에 대해서도 관심들이 많았다. 그것 


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경찰뿐이었는데, 경찰도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았다. 


"동반 자살까지 한 걸 보면 서로 다 허락한 사이였겠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니야. 꼭 그렇지만도 않아. 한없이 낭만적이기만 해서 그들은 육 


체라는 것에 대해 무관심했을지도 몰라." 


다에꼬는 동급생이니까 여자 쪽 얘기를 들었을지도 몰랐다. 학교에 


서 돌아온 마사오는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부엌의 설겆이통에 도 


시락을 던져놓자마자 곧장 다에꼬네 집으로 달려갓다. 샛길로 막 들어 


서려는데 후미에가 나타났다. "어머?" 후미에는 깜짝 놀라 멈춰섰다. 


요즘 그녀는 옷차림새까지 달라졌다. 머리도 짧게 자르고 화장기도 없 


었다. 순진한 보통 여학생 모습이었다. 


"안녕? 이제 오는 거야?" 


"응." 


후미에는 전과 달라 마사오에게 바싹 다가왔다. 그리고는 마사오 


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동반 자살 사건, 알고 있어?" 


"아니." 


마사오는 학교가 다른 후미에가 알고 있는 것에 놀라왔다. 


"넌 알고 있어?" 


"응. 난 가마다를 잘 알거든." 


"그래? 어떻게?" 


"자세히 알고 싶어?" 


"응." 


"그러면 우리 집에 갈래? 마침 식혜가 있어." 


마사오는 후미에와 나란히 걸었다. 담 양편으로 오솔길이었다. 다 


행히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래간만이야." 후미에는 마사오의 팔을 


놓지 않았다. 마사오도 굳이 거부하지는 않았다. 


"오까모또와 끊은 건 정말인 모양이지?" 


"정말이야. 착실해지니까 할머니가 기뻐하셔." 


"그 녀석이 또 만나자고 하지 않아?" 


"가끔. 그렇지만 이제 상대하지 않아. 원래 난 착실한 편이야. 내 2 


학기 때 성적을 보여 줄께. 착실하게 산다는 것의 증거야." 


"그것보다, ...가마다는 어떻게 아니?" 


"천천히 얘기할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후미에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 방 


은 처음이군." 조그마한 다다미 방이었는데 인형과 목각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각로위에는 수학 참고서가 놓여 있었다. 마사오가 앉 


자마자 후미에는 잘게 썬 떡과 식혜 대접을 쟁반에 받쳐들고 들어왓다. 


"자, 먹어. 감미료가 아니라 진짜 설탕이 들어간 거야. 이 떡도 맛있어." 


"이거 황송한데." 


후미에는 마사오의 옆에 앉아 식혜를 마시는 마사오의 입자를 바라 


보고 있었다. 


"가마다는 좋은 사람이었어." 


"어떻게 알아?" 


"가마다의 애인이 우리 반이었거든." 


"거짓말. 동반 자살한 여학생은 너희 학교가 아니잖아?" 


"이시가와 말하는 거지? 이시가와 마쯔요. 내가 말하는 애는 지까후지 


기미꼬야." 


마사오는 젓가락으로 떡을 집다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후미에의 이 


야기가 놀랍기도 했지만 실은 젓가락 때문이었다. 후미에가 준 젓가락 


이 빨갛고 작은 여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젓가락...?" 


"응." 후미에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말했다. 


"내 젓가락이야. 화내지 마. 그걸로 먹게 하고 싶었어." 


"어차피 키스도 한 사이니까 화낼 것도 없지. 그런데 지까후지는 누구야?" 


"그러니까 가마다에겐 애인이 둘이었다는 거야."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그랬을 거야. 그 사람, 기미꼬와의 사이는 그저 숨기기만 했었어. 


마쯔요와의 사이도 그랬던 것 같아. 수재의 이름에 먹칠하는 거잖아." 


"시원스럽게 얘기 좀 해 봐." 


"가마다는 훨씬 전부터 마쯔요랑 사귀고 있었어. 순수하고 낭만적이 


었지. 그런데 기미꼬가 가마다를 노렸어. 기미꼬는 적극적이야. 매혹 


적인 아이였지. 나랑은 달라. 정말 요녀였다구." 


"왜 노렸는데?" 


"일시적인 기분이엇을 거야. 우연히 구미가 당겼거나. 그래서 순간적으 


로 유혹했어." 


"...." 


"넌 나한테 유혹당하지 않았어. 왠지 알아? 내가 널 좋아했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기미꼬는 달랐어. 유혹하는 것만이 목적이었어. 자기 매력을 


증명받고 싶었던 거야. 불량배와 놀러다니는 것보다 착실한 남학생을 


늪에 빠뜨리는 게 짜릿한 맛도 있고 세상을 향한 복수의 의도 있고, 그 


래서 즐거웠을 거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래. 그래서 두어 번 정도 데리고 놀다가 버리는 거지." 


"여자가 남자를?" 


"그래. 그게 작년이었어. 가마다가 죽은 건 기미꼬에게 버림받았기 때 


문이지. 마쯔요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마다의 불행을 동정해서고, 또 


자기를 배반한 것에 절망을 느꼈겠지. 그래서 함께 죽은 거야." 


"이해가 안 가는데." 


"여자에겐 그런 심리가 있어." 


"남자의 심리도 모르겠어." 


"모두 너처럼 강하진 않아. 식혜 한 그릇 더 줄까?" 


"아니, 됐어. 잘 먹었어." 


후미에는 손수건을 꺼내 마사오의 입을 닦아 주었다. 부드러운 손길 


이었다. 눈빛엔 정감이 어려 있었다. 


"차를 가져올께." 


차를 가져온 후미에는 마사오에게 바싹 다가와 앉았다. 


"그러니까 기미꼬의 장난이 순정파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거야. 기 


미꼬도 설마 가마다가 죽기까지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거고." 


"넌 기미꼬와 친하니?" 


"그렇지도 않아. 하지만 그 아이의 남자 친구들 자랑은 많이 들었어. 


나도 자기처럼 처녀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내겐 자세히 얘기해." 


"가마다와의 일도?" 


"응." 


후미에의 목소리는 차츰 은밀해졌다. 마사오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마사오의 팔에 그녀의 가슴이 느껴졌다. 


"그 애는 수준급이니까 늘 여유가 잇어. 언제든 변신할 수가 있다구." 


"너는 아니야?" 


"난 달라. 언제든 너에게 증명할 수 있어. 너라면 지금이라도 좋아. 


체험해 보고 싶지만 다른 애는 싫어. 널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한 여자와 가깝게 지내다 버림받게 되니까 전부터 따르던 여자랑 


동반 자살이라. 그런 바보 같은..." 


"가마다에게는 기미꼬가 첫 여자였어. 마쯔요와는 키스도 안 해본것 


같애. 그래서 기미꼬에게 빠진 거지." 


"모르겠어." 


"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애. 내가 만약 널 좋아하지 않았다면 우리 


도 비슷하게 되었을지 몰라. 너에겐 다에꼬가 있으니까." 


"난 너와 그렇게 된다 해도 네게 빠지진 않아." 


"그러면 이미 다에꼬와..." 후미에는 갑자기 몸을 떼며 마사오의 눈 


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모두 허락했어?" 


"아니, 아직." 


"정말?" 


"너에게 증명할 의무는 없지만 비약시켜 생각하면 곤란하니까 말하 


겠어. 아직이야." 


"그러면 내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거구나."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마사오는 갑자기 후미에의 어깨를 껴안으며 말했다."지금 여기서 벗 


을 수 있어?" 


후미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좋아." 


"아무도 안 들어올까?" 


"응. 그렇지만 너도 벗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싫어." 


"음, 처녀는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던데 보여줄 수 있어?" 


"좋아." 후미에의 눈이 젖어 있었다. 이미 모든 걸 결심한 듯한 눈빛 


이었다. 


"보고 나서 처녀가 아니면 너 어떻게 할래?" 


"절대 그럴 리 없어." 후미에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여기까지 말해 놓고 안 하면 싫어." 


"좋아, 알았어." 


후미에는 저고리와 스웨터를 벗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비경을 알 


고 있었다.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는 꽃잎을 자세히 펼쳐 보았었다. 


남자의 몸을 맞이할 그곳은 그렇게 작은 입구는 아닐 것이다. 경험이 


없다는 후미에의 말을 마사오는 믿을 수 없었다. 확인하고 싶다고 전 


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확인할 수 있다면 관계를 맺어도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에꼬의 순결을 지켜 주면서도 마사오 자신은 여자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지금까지 문득문득 떠올리던 생각이었다. 후미에 


는 속옷을 벗으려고 했다. 


"잠깐." 


"싫어. 지금 해." 


"그게 아냐. 지금 누가 오고 있어."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후미에는 황급히 웃도리를 입었다. 문 바 


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미야자끼 씨에게 손님이 찾아왔어요." 


"누구?" 


문이 열리고 후미에 할머니 얼굴이 나타났다. 후미에는 스웨터를 각 


로 속에 숨겨 넣은 채 앉아 있었다. 


"다에꼬라는 여학생이군요." 


"아 - ." 


마사오는 급히 현관으로 나갔다. 


코트 깃을 세우고 다에꼬가 우뚝 서 있었다. 얼굴이 매우 작아 보였 


다. 마사오를 보는 눈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려 버릴 것 같았다. 


"널 불러오라고 아주머니가 부탁하셨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마사오는 직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같이 가자. 곧 나올께.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마사오는 방으로 돌아갔다. 후미에는 아직 스웨터를 입지 않은 채, 


흰 속옷 위에 저고리를 걸치고 있었다. 


"가 봐야 돼. 엄마가 부르신대." 


"할 수 없지. 본부인이 왔으니. 후후." 


의외로 후미에는 그리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심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일어서더니 양팔을 마사오에게 걸쳐 오며 말했다. 


"약속은 잊지 마." 


"알았어." 


"젓가락은 닦지 않고 쓸 거야." 


대문 밖에서 다에꼬는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마사오가 곁에 다가 


서자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미안해. 어떤 사람이 네가 그 집에 들어가는 걸 봤다고 알려 줬어. 


남 일에 껴들기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다에꼬의 집에 가다가 마주쳤어. 동반 자살에 대해 알고 았다고 해 


서..." 마사오는 사실대로 설명했다. 


"...정말 알고 있든?" 


"응. 전부 만들어낸 얘기는 아닐 거야. 역시 숨겨진 사실이 있었어. 


죽은 여학생이 이시가와 마쯔요라는 동급생이었지?" 


"응. 가정과야. 몇 번 얘기해 본 적이 있어." 


"어떤 애야?" 


"그것보다. ...후미에하고 뭘 하고 있었어? 물어 보면 안 돼?" 


"식혜를 먹고 얘기 좀 했을 뿐이야." 


"그 애의 방에서?" 


"응." 


"정말이지?" 


마사오는 다에꼬의 어깨를 껴안았다. 


"아무 일도 없었어. 난 그 애를 좋아하지 않아." 


"그래도 매력은 느꼈을 거 아냐?" 


"그렇지도 않아. 이시가와라는 여학생은 어떤 여자야?" 


"학교에선 정말 떠들썩했어. 장례식을 치렀는데, 여학생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어."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의 충격이 컸으리라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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