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7부 6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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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을 나와 헤어진 호걸이 그녀에게 연락을 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호출을 한 이유는 그녀의 몸이었다. 윤정은 아무 성과도 없이 연락한 호걸에게 욕을 해댔지만, 그녀의 몸은 또 다시 그의 왕성한 육체에 허물어져 버렸다. 여관으로 끌고 가는 호걸에게 처음에는 약간의 저항을 해보았지만, 결국 지난번의 쾌락이 기억난 윤정은 자신도 모르게 방값을 계산해 버린 것이다.


윤정이 처음으로 호걸과 관계를 가진지 일주일이 되던 날 호걸은 다시 한 번 연락을 해왔다. 윤정은 또 지난번처럼 여관에서 만남을 가질 것 같아 미리 선수를 쳐 여관을 잡을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이번에는 사육신 외에 세 명을 더 데리고 나타난 녀석이었다. 호걸이 데리고 나타난 녀석은 윤정의 마음에 꼭 드는 녀석이었다. 한 녀석은 중훈이 현성과 싸우던 날 전령 노릇을 하다가 현성에게 버림받은 놈이었다. 중훈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현성의 똘마니 짓을 하고 있을 것이었지만, 중훈이 나타나는 관계로 그 좋았던 시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중훈에게 진 녀석들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게 깨진 녀석들로 중훈에 대한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그 패배의 모멸감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추잡한 놈들이었다.


이들이 나타남으로써 윤정은 이제 적당한 멤버가 구성되었다며 즐거워 마지않았다. 그러나 윤정은 호걸이 마지막 구성원 하나가 부족하다고 했다. 적어도 중훈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싸움꾼이 자신의 계획에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녀는 호걸에게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녀석을 데리고 오면 다시 관계를 가져주겠다고 한 뒤 자리를 떴다. 그녀는 자리를 뜨기 전에 비상연락망을 구축한다는 핑계로 아홉 명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다음날부터 따로 녀석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호걸에게서처럼 자신의 몸을 담보로 한 계약을 성립시켰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그들로써 윤정이 알아서 몸을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윤정은 담보물을 제공하고 나서는 만약 이 일을 발설한다면 중훈에게 거짓을 말해서라도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다행이 녀석들은 이미 중훈의 무서움을 실감하고 있는데다, 그에 대한 복수심도 만만치 않아서 그녀가 그런 말들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밀월을 내뱉은 생각은 처음부터 없는 것 같았다.


윤정이 그렇게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켜 가는 동안 중훈은 그대로 수환에게 빠져 있어 윤정이 연락이 줄었지만 그런 것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마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오히려 그녀가 연락을 덜 해오자 더욱 편한 마음으로 수환과의 데이트에 열중할 수 있었기에 그녀의 배려아닌 배려(?)를 고맙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윤정은 중훈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긴 했지만, 호걸이 깔아둔 정보망 덕에 중훈의 일상을 대강은 알고 있었다. 중훈의 외도는 그녀에게 괴로운 것이었지만 이제 조금만 있으면 모든 것을 끝내고 중훈을 데려올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좀 더 참을 수 있다고 다짐하는 윤정이었다. 그리고 그를 신경 쓰는 것보다 다른 귀찮은 일이 윤정에게는 많았다.


윤정의 계획은 이제 호걸이 데려오는 마지막 한 녀석만을 남겨둔 상황이지만, 그 계획 구성원들이 그녀의 몸을 자꾸 원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윤정은 행여나 자신의 계획이 무너질까 녀석들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한강에 배 한 번 더 지나간다고 해서 표시가 나지 않는다는 못된 생각도 일조를 했다. 어쨌거나 윤정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호걸을 비롯한 나머지들에게 몸을 제공하는 데에 써야만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녀석들의 불붙은 성욕은 사그라질 줄 몰랐고, 그녀는 모든 시간을 녀석들에게 빼앗길 상황에 이르렀다. 그녀는 중훈을 만나기 전처럼 한꺼번에 여러 녀석을 상대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해보려 했지만, 여자 혼자 감당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특히 호걸을 상대하고 나면 다른 녀석들과는 아예 관계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녀는 녀석들을 피하기 위해 갖은 잔머리를 굴려야했다. 그러나 윤정은 다시 녀석들에게 다리를 벌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녀석들이 담합을 시도, 그녀를 협박해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재한(在韓) 일본산 변태인 호걸 덕에 그녀의 괴로움은 극에 달했다. 녀석은 난교 도중에도 다른 녀석을 시켜 - 싸움실력은 그나마 호걸이 제일 좋았으므로 은연중에 녀석이 공모의 대장이 되었었다. - 윤정의 모든 구멍에 성기를 박아버리는 변태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관계 후면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처참한 몰골이 되는 그녀였지만, 녀석들이 구멍동서로서의 동질감을 가지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도 한 여자의 체력으로는 한계를 느끼지 시작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예전의 오빠(?)들을 찾았다. 예전에 그 오빠들과 난교파티를 벌이던 친구들이 그들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녀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오빠들의 허락이 필요했다. 예전에 중훈을 가지기 위해 관계가 소원해진 탓에 그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윤정은 여자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했고, 다섯 오빠들에게는 돌림빵을 당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참아야했다. 악다문 이빨 사이로 중훈에 대한 욕지거리가 올라왔지만, 그것을 뱉는다면 견뎌온 바람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거의 기어들어가다 시피해서 집으로 돌아간 윤정이 오빠들에게 얻어낸 수락조건은 언제든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엉덩이를 까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두 친구의 도움으로 조금은 수월하게 쓰레기들의 정액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그 뒤에 다가올 오빠들의 조건이 그녀를 걱정에 싸이게 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중훈만 돌아온다면 쉽사리 해결될 것이라 믿는 그녀였기에 마음속으로 수천수만 번을 ‘이제 조금만……!’을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던 어느 날, 드디어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가 다가왔다. 호걸이 드디어 쓸만한 주먹을 구했다는 것이다. 둘의 비뚤어진 복수심은 윤정 자신을 예쁘게 포장해 여관으로 데려다 놓는 서비스 정신으로 이어졌다. 윤정도 친구를 보내고 싶었지만, 자신이 먼저 물건을 확인해야만 안심을 할 수 있었으므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 가능하면 친구들의 도움은 적게 하는 것이 후일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음 날, 천호(호걸이 데려온 주먹꾼의 이름이다.)는 남서울터미널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걸은 멀리서도 그를 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천호의 외모는 거의 30대 아저씨를 방불케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천호가 아무리 중학교 때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한 해를 꿇었다고 하지만, 그의 외모는 정말이지 너무했다. 그러나 호걸은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녀석을 데리고 주근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아무 술집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지만. 천호의 외모 덕에 입구에서 제지당하지는 않았다. 둘은 몇 병의 소주를 비운 뒤 미리 잡아둔 여관방으로 향했다. 호걸은 천호를 방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방에 들어선 천호는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를 보고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넌 뭐냐?”




윤정이 그의 말을 받았다.




“어머 호걸이가 얘기 안 해줬니? 그냥 니가 우릴 도와주는 데 대한 사례라고 생각해!”




“허, 참~~!”




녀석은 비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윤정은 그 표정을 보며 중훈의 그것과도 비슷하다는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바지 앞섶을 쥐었다. 그 동작을 하느라 출렁이는 그녀의 가슴……. 이것은 천호가 자신을 바라보며 욕정을 가지게 하기위한 그녀의 계획된 의도였다. 그녀의 입에서는 유혹의 두 번째 단계인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왜? 넌 여자가 싫은 거야?”




그녀의 눈빛은 지난 한 달의 노고로 인해 색기(色氣)가 그득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천호의 눈빛은 무심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내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다른 친구를 보내줄까?”




“꺼져!”




윤정은 그의 낮은 목소리가 뜻하는 내용을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확인을 했다.




“뭐?”




“썅! 귀 먹었어? 꺼지라구!”




윤정은 자신의 벗은 몸을 보고서도, 아니 자신에게 잡힌 중심이 분명 뼈대를 이루고 있는 상태의 사내가 눈빛하나 흩트리지 않은 채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술까지 마신 젊은 남자였다.




“너 설마… 고자니?”




“난 완빤찌만 보면 돼! 다른 건 필요 없어. 꺼져!”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그녀의 자존심을 대변하듯 그녀의 목소리는 서릿발 같았다.




“날 거절한 결과가 어떤 건지 몰라?”




“거절이 거절이지, 다른 게 또 있나?”




“날 거절하면 완빤찌는 구경도 못할 텐데?”




“호걸이가 원한 건 중훈이라는 녀석을 쓰러뜨려 달라는 것이었어. 아니, 그건 내가 원한 건 완빤찌와 주먹을 섞어보는 거야. 호걸이란 녀석도 너란 여자에 대해선 언급하지도 않았고……. 그러니 내가 널 거절한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다고 봐!”




천호는 방에 들어온 이후 가장 길게 말을 했다. 윤정은 그에 대한 탐색을 하기 위해 여러 말을 더 시켜보았지만, 정말로 천호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외모가 어디 가서 딸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더 예쁜 여자를 데려와도 그는 건드리기는커녕 눈빛 한번 주지 않을 녀석이란 것을 알았다. 윤정은 정말로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쓰러졌던 자존심을 추스를 수 있었다. 윤정은 그에게 뻗었던 손을 거두어들이고는 옷을 입었다.




“그래, 니 뜻은 잘 알았어.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




“다른 게 아니라 내일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중훈이에게 한 마디만 해줘!”




“……?”




“그냥 ‘수환이’ 라고 말하기만 하면 돼! 날 거절한 대신 부탁하는 거야! 들어줄 수 있겠어?”




윤정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천호가 자신을 안았다하더라도 그녀는 똑같은 부탁을 했을 것이다. 천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깊은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윤정에게 말했다.




“너희가 무슨 짓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대충 들어보니 사람을 이용하는 아주 비열하고 더러운 계획인 것 같은데, 그런 데 다가 날 끼울 생각을 하지 마라. 그런 수를 써서 이기고 싶은 맘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것 없이도 녀석과는 붙을 테니 그런 건 걱정 마라. 이제 다 지껄였으면 꺼져!”




“내가 보기엔 니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난 네가 중훈일 이길 거라고 보지 않아. 그러니 질 것 같으면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이 좋아.”




윤정은 천호를 도발시키기 위해 그 말을 했으나, 천호는 덤덤했다. 오히려 녀석의 얼굴은 기쁨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말이 기쁨이지 인상은 더욱 험악해 보이는 천호였다.




“그럼 더욱 기대가 되는데?”




윤정은 그의 넉살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을 했다. 윤정은 한 숨을 내쉬며 여관을 빠져나왔다. 어찌 되었건 천호가 중훈과 싸움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기에 그나마 안심이 되지만, 천호란 녀석이 중훈을 이겨줄지가 의문이었고, 행여나 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인근의 커피숖에서 호걸에게 삐삐를 쳤다.






중훈은 수환을 바래다주고는 지하철을 탔다. 방금 전 수환과의 키스 - 지난번에는 키스라고 부르기도 뭐한 뽀뽀였지만, 이제는 이 명칭이 어울리는 것이므로 - 로 인해 녀석의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호걸이 자신 있게 말하길 이번 상대는 정말 어렵게 구한 만큼 쉽지 않다고 했지만, 거기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 중훈이었다. 아니 지더라도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싸인 중훈은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중훈은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못내 속을 들킨 것 같아 머리를 긁적이던 녀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석진 곳에 호걸과 함께 서있는 덩치가 이번에 호걸이 데리고 온 사움군인가보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철호에게 물었다.




“형! 현성이 자식은요?”




“어라? 그러고 보니 그녀석이 어딜 갔지? 야! 원모야, 현성이 못 봤어?”




지난 번 중훈에게 패한 뒤로 친구가 되어버린 원모는 관장의 권유도 있고 해서 아예 충훈과 같은 체육관을 다니고 있었다.




“현성이 오늘 안 왔는데요?”




“그래? 이상한 일이다. 중훈이가 시합한다는데 그 녀석이 안 오다니?”




중훈은 기분이 좀 묘했다. 이제껏 한 번도 중훈의 시합에 빠지던 적이 없던 녀석이 빠진 것이 찜찜한 기분을 주었지만, 아직까지 그는 수환의 일로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에 이내 녀석에게 무슨 급한 일이 있으려니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늘상 있어왔던 일이 되어버린 중훈의 결투는 이제 체육관에서는 그리 놀랄만한 것이 못된다. 관장은 오늘도 중훈이 이길 것을 예견한 것인지 하품을 하며 링에 올라갔다. 중훈과 천호가 링에 오르자 관장은 예의 무규칙의 규칙을 간단히 설명하고는 링 밖으로 나갔다.


관장의 호령을 기점으로 중훈과 천호가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중훈보다 머리하나가 더 크고, 체중은 배가 나갈 것 같은 덩치이기에 중훈은 천호를 돌진형의 인파이터라고 생각했다. 중훈은 상대의 실력도 가늠하고 자신의 판단을 확인하려는 듯으로 잽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상대는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몸을 돌려 그것을 피하는 게 아닌가? 중훈은 다시 연속적으로 잽을 날려 보았다. 역시나 허탕이었다. 중훈이 잠시 놀라는 사이 상대는 펴면 중훈의 얼굴을 가릴 것 같은 주먹을 들어 중훈의 복부를 가격했다. 잠시 놀란 중훈은 그것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중훈은 양팔을 교차시킨 블록으로 상대의 주먹을 막았으나 두 발이 공중으로 한참이나 뜨고 말았다. 중훈이 다시 바닥에 발이 닿기도 전에 날아든 천호의 발이 중훈의 블록을 다시 한 번 겨냥했다. 피할 수 없던 중훈은 로프로 날아가 심하게 튕겨 나오며 바닥에 뒹굴었다.




“싸우면서 무슨 잡생각이 그리 많아? 얼른 일어나!”




천호가 중훈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읽은 듯이 말하자 중훈은 이제야 상대가 보통이 넘는 - 이제껏 자신이 눕혀왔던 상대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임을 알아챘다. 중훈은 근래 들어 완빤찌라는 이름에 너무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중훈은 누워 있다가 허리반동을 이용해 자세를 잡고 일어섰다. 일어서는 중훈의 배에 다시 예의 무시무시한 발이 날아들었다. 중훈은 오랜만에 뒹굴어보는 캔버스 위에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누운 상태로 방금 맞은 팔을 살펴봤다. 그곳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일년 남짓한 기간 동안 몸을 단련해온 그에게 멍 자국이 생긴다는 것은 천호의 파괴력이 보통은 넘는다는 것을 말했다.




“완빤찌라더니 겉멋만 잔뜩 든 놈이었군?”




상대의 비아냥거림에 화가 치솟는 중훈이었지만, 저기에 휩쓸려서는 자신의 페이스가 흩트려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이 넘어졌다고 해서 수수방관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중훈은 수환과의 기억은 잠시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중훈은 자신을 밟기 위해 내려찍어지는 상대의 발을 피해 옆으로 굴렀다. 중훈은 엎드린 상태에서 발을 휘둘러 천호의 복숭아뼈 바로 윗부분을 쓸어 넘겼다. 천호는 정확히 급소를 맞고 휘청거리긴 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잠깐의 사이에 중훈은 자세를 잡고 일어섰다.


중훈은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상대의 허점을 찾기 위한 그의 눈빛이 번득였다. 천호가 자신의 허리를 감아 안 듯이 발을 뻗었다. 중훈은 주먹으로 천호의 허벅지를 쳤다. 상당한 힘이 실린 주먹을 맞고서도 여전히 궤도를 그리며 날아도는 천호의 발을 피하기 위해 중훈은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천호는 물러서는 중훈을 따라 들어와 왼쪽 주먹을 휘둘렀다. 중훈은 고개를 숙이며 천호의 겨드랑이에 주먹을 꽂았다. 분명 때린 것은 중훈인데 철벽을 때린 듯 자신의 주먹이 아팠다. 그는 천호를 올려다보며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약간 움찔거렸을 뿐 이상이 없어 보였다. 중훈은 이후 계속하여 상대의 급소만을 노리고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했지만, 상대는 완빤찌라는 중훈의 펀치를 맞고서도 끄떡없이 돌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중훈이 자신의 등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중훈의 주먹이 천호의 턱에 직격했을 때의 일이었다. 천호는 주먹을 맞은 채로 그를 뒤로 밀어버린 것이다. 중훈은 아연 실색했다. 이건 괴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주먹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거기다 코너까지 밀린 상황…….


중훈은 싸움을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절망적인 기분에 잠겼다. 그런 그가 그런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천호의 주먹이 사방에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블록으로 막아냈지만, 헤비급인 천호의 주먹을 미들급의 중훈이 버텨내기는 힘들었다. 천호가 다섯 번째 뻗은 펀치가 중훈의 턱에 들어갔다. 중훈의 머리가 코너에 심하게 부딪히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젠장, 여기서 끝낼 순 없지!’




중훈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천호의 발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러나 이내 등에 느껴지는 둔탁한 느낌에 다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냥 누워 있어라. 완빤찌라더니, 별 거 아니구만. 에이~ 쓰벌!”




천호는 손을 탁탁 털고 뒤로 돌아 자신의 코너로 가벼렸다. 관장은 천호의 괴력이상의 무지막지함에 중훈이 떡이 되는 것을 보고도 스톱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주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호걸도 예상 밖의 결과에 자신의 계획을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석상처럼 움직임이 멈춰있었다.


천호는 링을 내려가다 말고 뭔가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야! 근데 수환이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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