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4 ... - 4부 1장

본문

4권 (밀회)






1.우연 




마사오가 도쿄로 올라온 후, 마사오 주위에는 고향에서 어울렸던 여자들만큼이나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고향에서 체험한 여자들과 도쿄의 여자들이 다른 점이있다면, 그것은 도쿄의 여자들이 보다 다채로운 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마사오의 여성 편력도 다채로워졌다는 뜻이다. 


다에꼬를 비롯한 고향의 여자들이 마사오에게 성의 세계로 들어서는 신비로움과 호기심을 안겨 주었다면, 도쿄의 여자들은 마사오로 하여금 비로소 육체적인 쾌감을 맛보게 해 준 것이었다. 


첫번째 하숙집에서 알게 된 아끼, 누님뻘 되는 술집 여주인 시나노의 관능적인 자태, 같은 학교 일 년 선배인 묘우미와 그녀의 친구 시루꼬, 또 여관집 주인인 삼십 대의 기꾸, 그리고 지금 묵고 있는 하숙집에도 세명의 다른 여자가 있었다. 


건너방 센가의 유혹은 여전했고, 하숙집의 미망인 찌에와는 앞날을 예측 할 수 없는 처지였으며, 찌에의 딸 유끼꼬와는 마사오 자신이 어느정도 금단의 선을 그어 놓고 있었다. 유끼꼬는 너무 어리기 때문이었다. 


황혼의 신사 경내에서 아끼와 색다른 사랑을 나누었던 이튿날 오후, 마사오는 그녀와의 약속대로 만나기로 한 장소로 조금 일찍 나갔다. 학교에서 낮에 묘우미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도 아끼의 저녁 약속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설령 아끼가 품행이 좋지 못한 여자라 할지라도 노골적으로 창피를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약속 장소인 백화점 앞에는 많은 인파가 들끓었다. 마사오는 정문 옆 간이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끼와의 약속 시간까지는 십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마사오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어제 저녁 아끼와 신사에서 나누었던 순간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그것은 마사오로서도 처음 겪은 사랑의 행위였다. 고향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으나 아끼와 나눈 사랑만큼 짜릿한 쾌감은 없었다. 역시 적극적인 아끼가 아무런 주저함 없이 마사오의 몸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끼는 느티나무에 등을 기댄 채 마사오를 응시하며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마사오의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중심을 오른발에 두고 왼쪽 다리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끼는 사람들이 신사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초조해 하는 눈치였으나 그녀의 몸은 마사오를 탐하고 있었다. 


마사오는 아끼의 왼쪽 다리를 오른쪽 손으로 받치고 왼팔로 그녀의 허리를 두른 뒤 몸을 밀착시켰다. 아끼는 약간 몸을 뒤로 젖히며 높이를 조절했고, 마사오는 아끼의 왼쪽 다리 허벅지를 오른팔로 바깥쪽에서 감싸안으며 뒤어서 아끼의 음부에 가운뎃손가락을 살짝 집어넣었다. 화원은 따뜻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마사오는 꽆잎을 벌렸다. 아끼의 손에 이끌려온 마사오의 기둥 끝이 그의 손가락에 가 닿았다. 자기 신체의 일부인데도 마사오는 거것이 마치 다른 데서 나타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마사오는 자기의 중심을 아끼의 꽃잎에 맞추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마사오의 어깨에 얹혀 있던 아끼의 손이 내려와 마사오의 허리를 감싸며 잡아당겨 두 사람의 몸은 자연스럽게 밀착되면서 연결되었다. 


아끼가 가슴을 뒤로 젖혀 나무에 기대며 신음을 또해냈다. 마사오는 뜨거운 용암속에 있었다. 


아끼의 허리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사오의 움직임을 재촉하는 동작이었다. 마사오는 주의 깊게 움직였다. 손과 다리고 아끼의 왼쪽 다리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아끼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리듬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신선한 가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따. 갑자기 아끼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심하게 흔들었다. 뿌드득 이빨 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이상한 반응이었다. 마사오도 움직임을 중단했다. 아끼 내부의 조임이 한층 강해지고 있었다. 


"왜그래?" 


"이대로, 이대로 가만있어. 나, 절정에 다달하는 거 같아." 


"그럼 좋잖아" 


언제 누가 나타날지 모른다. 이렇게 된 이상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마사오는 느꼈다. 


"응, 그런데 아쉬워. 잠깐만 이렇게 하고 있어." 


"누가 오면 어쩌려구?" 


"이제 아무도 오지 않아. 온다 해도 눈에 띄지 않아. 아아. 이대로 가만있어." 


"항상 이런 자세로 했었어?" 


"아니야. 처음이야. 자기가 내 안에 있어 지금. 우린 너무 오랬동안 못만났어." 


아끼의 내부에서 다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따뜻함이 새롭게 전해져 오는 것을 마사오는 느꼈다. 


"나 어때? 변한 것 같아?" 


"응, 옛날보다 훨씬 멋져" 


"그동안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몰라" 


"자, 아무도 없을 떄...." 


마사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끼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으 ㅣ리듬이 합쳐졌다. 이윽고 아끼의 움직임이 크고 빨라졌다. 입에서는 어린애같은 소리가 계속 새어나왔다. 몸 전체가 부드러워지면서 내부의 반응은 날카로워졌다. 호흡이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숨을 내뱉지는 않고 들여마시기만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끼의 팔에 힘이 가득 들어가더니 날카로운 괴성을 내질렀다. 마사오는 당황해서 얼른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아끼의 목소리는 마사오의 입에 묻혀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했다. 아끼의 내부에 진동이 생기더니 몸이 경직되었따. 그리고 곧 정지했다. 


"됐다. 이제 끝난거다." 


마사오는 진동을 기분 좋게 느끼면서 해방된 기분이기도 했다. 


"이제 얌전히 돌아가 주겠지" 


아끼의 입에서 입술을 떼었다. 아끼는 심호흡을 하더니 숨을 고르느라 한참 동안 불규칙하게 호흡을 했다. 


"이제 끝내야지?" 


마사오는 속삭였다. 아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안심이었다. 마사오는 천천히 허리를 끌여당겨 똑바로 서며 아끼의 들려 있던 다리를 내려 놓았다. 아끼는 두 발로 땅을 짚으며 쓰러질 듯 몸을 기우뚱했다. 마사오는 그녀를 받아 안으며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제 곧장 집으로 가는 거지?" 


아끼는 순진한 어린애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아냐, 굉장히 좋았어" 


아끼는 고개를 끄뎍여 보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옷...." 


마사오의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팬티를 꺼냈다. 


"내가 입혀 줄게." 


"아니 그것보다...." 


아끼는 쭈그리고 앉더니 마사오의 성기를 손에 잡았다. 도중에 행동을 중지했기 때문에 그의 남성은 아직도 발기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아끼에게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상태였다. 마사오는 팬티로 성기를 부드럽게 닦기 시작했다. 


"늦어서 미안해" 


아끼였다. 


어제의 일을 떠올리는 사이에 아끼가 어느 새 와 있었다. 조금 전까지 머리 속에서 뜨거운 몸짓을 하던 아끼가 다시 바로 눈 앞에 나타난 셈이었다. 


아끼는 마사오의 팔을 잡으며 옆 자리에 앉았다. 


<늦어서 화났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였다. 


채 마사오의 말도 끝나지 않아서 불쑥 검은 물체가 아끼에게 달려들었다. 


학생복 차림의 웬 남자였다. 


그 남자의 손이 올라가더니 철썩 하는 소리가 났다. 


아끼는 옆으로 쓰러지려고 했다. 


그 남자가 아끼를 받쳐 안고 마사오를 돌아보았다. 


<내 여자니까 참견하지 마.> 


험상궂은 얼굴로 소리쳤다. 


눈은 적의와 증오로 불타고 있었다. 


그의 품 안에서 아끼는 반항할 생각도 못한 채 그저 겁에 질려 있었다. 


남자는 당황한 마사오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아끼의 팔을 끌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이, 쫓아가서 구해내야지. 좋은 여자 같은데.> 


인파 속에서 그를 부추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커다란 의문이 그의 발을 붙들었다. 


(긴쥬를 칼로 찌르기까지 했을 정도의 독한 면이 있는 아끼가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 뜻밖이다. 겁을 내면서도 그 남자의 행동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또한 아끼가 만약 구원을 요청했다면 내가 결투까지 벌였을 것이다.) 


그런 의문이 자신이 개입했다가는 우스운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마사오는 잠시 뒤에 아끼가 끌려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가 찜찜했다. 


아끼를 빼앗으려는 행동을 했어야 옳지 않았었을까 하는 반성이 생기기도 했다.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곧장 집으로 들어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조금 정처 없이 걷고 있는데 기꾸의 여관이 눈에 들어왔다. 


술이나 한 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발을 저절로 그 안으로 옮겨갔다. 


기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모노 차림으로 반겼다. 


<어머, 어서 와요. 그녀는 나중에 오기로 했어요?> 


<아닙니다. 그냥 혼자 들러 본 겁니다.> 


<그럼 손님으로 온 게 아니네. 하여튼 어서 들어 와요.> 


기꾸는 카운터와 붙어 있는 자신의 방으로 마사오를 안내했다. 


다다미 네 장 반 짜리 방이었다. 


갖가지 인형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기꾸가 권하는 방석에 마사오는 정좌했고 그녀는 바로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양손을 마사오의 무릎 위에 얹었다. 


<어떻게 된 거지? 둘이 싸웠어?> 


<아니오, 그런 게 아니에요.> 


마사오는 자초지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끼와의 지난 일들을 간략하게 나마 말해야 했다. 


기꾸는 놀라는 눈을 하면서 마사오의 무릎을 쓰다듬었다. 


<혼자 술을 마시기도 뭐하고 해서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싸우질 않길 잘했어. 그런 사람들은 칼도 지니고 다닐 수도 있잖아요. 잘참았어요. 못써요. 그런 이상한 여자와 사귀면. 학생한텐 좋은 사람이 있잖아. 남자는 과거에 집착하면 안 돼.> 


기꾸는 마사오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목욕부터 해요. 씻고 나면 기분 전환이 될 테니까. 그리고 나서 나랑 시원한 맥주라도 마셔요.> 


기꾸는 일어서서 마사오의 등 뒤로 돌아가 상의를 벗기기 시작했다. 


<자, 일어나요.> 


마사오는 순순히 일어섰다. 


<그 애 집에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선배가 아직 하숙하고 있으니 구실은 있는 셈인데.> 


<싫어요. 이젠 그런 애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아요.> 


기꾸는 마사오의 바지 벨트에 이어서 아래 단추도 풀었다. 


그리고 바지를 내렸다. 


마사오는 시키는 대로 차례로 한 쪽씩 다리를 들었다. 


한 손으로 벗겨낸 바지를 들고 기꾸는 마사오의 팬티 위로 불룩 튀어나온 부분을 밑에서 다른 손바닥으로 받쳐 손을 오므렸다. 


<이렇게 무거운 걸 보니 학생은 크게 출세하겠어. 불량 소녀 따윌 상대할 사람이 아니야. 그럼 안 돼요.> 


기꾸는 손가락을 다체롭게 움직이며 성기를 주물렀다. 


직접 손이 닿은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 대로 쾌감이 생겨났다. 


<그렇게 하면 서 버려요.> 


<좋잖아?> 


마사오는 기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젖어 있었다. 


<참, 전에 왔을 때 나이 많은 아주머니만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당신은 어디 가냐고 물어 보았더니 남자 만나러 갔다던데. 애인이 생긴 거예요?> 


<그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해요.> 


기꾸는 손을 놓고 일어서서 바지를 바닥에 놓고 가운을 들었다. 


다시 마사오의 등 뒤로 돌아갔다. 


<자, 이걸 입고 있어요. 난 곧 목욕물을 준비할 테니까.> 


얼마 후 마사오는 기꾸가 일러준 빈 방의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다시 기꾸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가운데에는 작은 상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고 그 위에 중국 요리 몇 접시가 놓여 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고 싶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어요. 이 집 요리가 맛이 좋아요. 자, 어서 앉아요.> 


기꾸는 병마개를 따고 마사오에게 맥주를 따랐다. 


기꾸의 잔은 마사오가 채웠다. 


건배를 하고 기꾸는 새하얀 목덜미를 보이며 단번에 잔을 비웠다. 


맥주는 적당히 차가워서 맛이 좋았다. 


마사오도 단숨에 마셨다. 


<그 사람이 방해하지 않았으면 여자를 여기로 데리고 올려고 했어?> 


<아니오. 다른 여관으로 갈 생각이었어요. 당신과 묘우미 씨에게 미안해서.> 


<일부러 다른 집 장사해 줄 필요 없잖아? 그런 때라도 이쪽으로 와요. 어쨌든 잘 됐어요. 난 학생에게 감사해야 겠는 걸.> 


그때 현관으로 손님이 들어왔다. 


기꾸가 일어서 현관으로 나갔다. 


조금 지나 기꾸는 약간 당화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마사오의 옆에 앉아 어 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들어 온 손님 마사오 씨가 말했던 두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남학생과 파란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야.> 


<설마?> 


<아니야. 이런 곳에선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우연한 일이 많다구. 역 근처니까.> 


<남자는 머리를 짧게 깎고 모자를 쓰지 않았어요.> 


<맞아. 손에도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어.> 


<키는 나와 비슷하고 얼굴은 역삼각형.> 


<맞다니까. 상의 단추를 두 개씩이나 풀어서 하얀 셔츠가 다 보이더군. 보기에도 불량배 같더라니까.> 


<여자는 어떻게 생겼어요?> 


<파마머리을 하고 있었어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던데, 상당히 많이 맞았는지 얼굴이 부은 것 같던데. 아무튼 숙박부를 들고 갔다올게.> 


기꾸가 나간 뒤 마사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두사람이 여관을 이용한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장소가 바로 여기가 됐다는 것도 가능성 있는 일이다. 


기꾸가 다시 돌아와 숙박부를 내밀었다. 


<이걸 한 번 봐.> 


남자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물론 이건 허위겠죠?> 


<그렇겠지. 여자애는 정말 얼굴이 빨갛게 부어 있더군. 한 두 대 맞은 게아니던데.> 


<어디로 끌려가서 또 맞은 걸까? 참, 신을 한 번 보여 주세요.> 


기꾸가 여자 신을 가지고 왔다. 


어제 마사오는 신사의 경내에서 아끼의 팬티를 벗겼었다. 


그때 아끼는 흙이 묻지 않게 먼저 신부터 벗었다. 


그 신이었다.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거 봐. 이런 것에서 일하는 사람은 눈치가 빠르다구.> 


기꾸는 신을 갖다놓고 마사오의 옆에 앉아 허리를 안았다. 


<아주머니, 그 두 사람이 묵고 있는 옆방은 지금 비어 있습니까?> 


<비어 있긴 한데, 어쩌려구? 옆 방에 가서 뭘 하게? 같이 여관방에 온 걸보면 화해한 거겠지. 상처는 입지 않은 것 같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자. 마셔요. 모처럼 혼자 왔잖아. 자, 어서.> 


<그렇지 않아요.> 


마사오는 기꾸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아끼는 그 학생과 헤어질 거라고 했어요. 그래 놓고 같이 여기에 온 겁니다. 그러고도 또 다시 나를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확실하게 확인해 두고 싶어요. 그리고 그 남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궁금하구요.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어요.> 


<할 수 없군.> 


기꾸는 한숨을 쉬었다. 


<단, 절대 뛰어들어 가면 안 돼.> 


<그건 걱정 마세요.> 


<아직 그 애를 좋아하고 있는 거 아냐?> 


<그렇지 않아요. 옛날에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걸요.> 


마사오는 기꾸의 안내를 받아 그 옆방으로 잠입해서 벽장 속으로 들어갔다. 


우선 여자가 아끼인지 아닌지부터 분명히 확인해야 했다. 


기꾸의 설명에 의하면 벽장과 옆방은 얇은 벽 하나로 막혀 있다고 했다. 


귀를 벽에 바짝 대면서 마사오의 내부에선 아끼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서로 엇갈렸다. 




2.끌려온 여인 




<야, 이리 와.> 


그 남자의 목소리인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연치고는 정말 거짓말 같은 우연이군.) 


<싫어요.> 


적의에 찬 아끼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러지 마. 내가 너무 한 거 알아. 반성하고 있다니까. 그렇게 한 건 너한테 그만큼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야. 자, 이불 속으로 와 봐. 거기에 그러고 있으면 얘기도 못 하잖아.> 


달콤한 목소리였다. 


여자를 이불 속으로 유혹할 때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이었다. 


<싫어. 이런 얼굴을 하곤 다닐 수가 없어서 여기 들어 온 것 뿐이야. 난 이제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상대하기도 싫단 말야.> 


강경한 어조가 아끼다웠다. 


남자와 헤어지기로 했다는 말이 사실임이 충분히 증명됐다. 


아끼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므로 마사오는 일단 안심이 됐다. 


<이것 보라구. 이게 너를 원하고 있잖아. 갖고 싶지 않아?> 


남자가 이불을 걷고 자신의 몸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아끼의 반응은 없었다. 


남자가 말을 계속했다. 


<안 올래? 오랜만이잖아? 내 이 것, 그 뒤로 다른 여자한테는 사용하지 않았어.> 


아끼가 비정댔다. 


<여자가 있을 텐데? 주저 말고 즐기시지. 나하고는 이제 상관없는 일이니까.> 


<태연한 척 하지 마.> 


<이젠 싫어. 지겨워.> 


<네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그렇게 된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자, 이리 와.>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아끼에게 다가가는 것 같았다. 


<싫어. 이 손 치워. 싫대도. 뭐 하는 짓이야!>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바닥에 뭔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왜 자꾸 이래? ... 이거 못 놔? ... 소리를 지르겠어. ... 정말 싫다니까.> 


아끼의 날카로운 소리만 계속 이어질 뿐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말로 해서 안 되니까 본격적으로 실력 행사에 나선 게 아닐까? 


<앗! 거기서 손 빼. 이 비열한 자식아!> 


아마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비경에 손을 댄 것 같았다. 


마사오는 결국에는 아끼가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아끼가 끝까지 저항해서 몸을 지켰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치한에게 습격당할 경우에 저항을 하면서도 수치스러워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는 여자도 가끔 있다. 하물며 이미 관계하고 있는 남자라면 적어도 다 


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는않겠지. 아마 아끼도 마찬가지일 거야.) 


몸싸움은 계속됐다. 


아끼의 목소리가 점점 숨이 차 다급해졌다. 


필사적으로 버티다 보니 힘이 빠진 것이리라. 


갑자기 뺨을 때리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야! 이 계집애야. 더 혼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사람 살려요.> 


아끼는 드디어 구원을 요청했다. 


간절한 목소리였다. 


<누구, 누구 없...> 


도중에 소리가 꺾였다. 


입을 틀어막힌 게 틀림없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아끼를 구해야 한다.) 


마사오는 황급히 벽장을 나왔다. 


방을 나와 복도를 달렸다. 


기꾸의 방으로 들어갔다. 


기꾸는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틀림 없이 내가 아는 애 맞아요.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남자에게 얻어맞고 있어요. 얼른 좀 가봐 주십시오.> 


<우리들은 손님들의 일엔 간섭하지 않는 걸로 돼 있는데.> 


<어쩌면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구요.> 


<그렇게 사태가 심각해?> 


<그래요.> 


기꾸가 일어섰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 


기꾸가 나가고 마사오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기꾸는 좀처럼 돌아오질 않았다. 


마사오는 안심했다.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그 방에 들어간 것이다. 


이십 분 정도 지나서야 기꾸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정말 큰 일날 뻔 했어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했어요.> 


대답하는 목소리는 아끼였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아끼만 그 방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마사오는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자신과 마주치면 아끼가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 


기꾸가 돌아왔다. 


마사오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잠깐 기다려요.> 


기꾸는 그대로 전화기로 다가서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다른 손으로 노트를 펴 보면서 다이얼을 돌렸다. 


<기요미 씨? ...나, 기꾸에요. 부탁이 있는데. ...학생인데 올 수 있겠어? ...아니, 당신과 함께 왔던 사람은 아니고 여자에가 응해 주지 않고 나가 버렸어.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지만 기요미 씨 정도면 잘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고마워.> 


수화기를 놓고 기꾸는 방을 나가더니 금방 돌아왔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사건은 해결된 셈이군.> 


<어떻게 된 겁니까?> 


<가스가 샌다는 핑계를 대고 들어가니까, 그 틈에 여자애가 튀어나오는 거야. 옷은 입고 있었어. 남자는 얼른 가운만 걸친 모양이고. 바닥에 여자애 팬티가 떨어져 있더군. 옷도 그렇고 머리도 마구 헝클어져 있었어요. 옷이 두 군데나 찢어져 있더라구. 완강하게 저항했던 것 같아. 일단 두 사람을 따로 앉혀 놓고 양쪽 얘기를 들었지. 남자는 내 여자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더군. 당연히 나로서는 여자 편이 될 수밖에 없지. -아무리 연인이나 부부 사이라도, 여자가 싫다면 하는 수 없는 것 아녜요? 요금은 돌려 줄 테니까 함께 나가 주세요- 하고 말하자 남자는 못 나가겠다고 우겼는데 그 뒤가 재미있어. 남자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 여자는 보내 주겠다. 하지만 난 이대로는 뭇 나간다. 여자를 보내달라. 그러면 이 여자를 놔주겠다.- 그래서 알아보겠다고 하고는 여자를 데리고 방에서 나왔어요. 그 여자앤 벌써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 남자를 상대할 여자가 곧 올 거야.> 


<그 남자가 아끼 앞에서 대신해 줄 여자를 구해 달라고 했단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 애 마음을 떠보려고 그런 건지도 모르지 뭐. 그 앤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갔어요. 얼굴은 상당히 부었지만, 어떻게든 알아서 가겠죠.>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활달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저 왔어요.> 


<기요미 씨?> 


<예.> 


기꾸는 방을 나갔다. 


무슨 소린지 낮은 목소리로 소근댔다. 


곧 얘기가 끝나고 기꾸만 방으로 들어왔다. 


<이젠 안심이야.> 


<전에 여기선 여자를 소개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어. 오늘만 특별히 부른 거야.> 


<어떤 여자인데요?> 


<돈을 모아서 가게를 내겠다고 몸을 파는 착실한 아가씨에요. 기둥 서방도 없어요. 이 근처에 사는 데다가 단골이라 나와는 친하죠. 얼굴이 귀엽게 생겼으니까 그 학생도 마음에 들어할 거예요.> 


<그런데 정부가 없는데 장사가 됩니까?> 


<길거리 여자가 아니니까. 주로 퇴근 시간이나 밤에 전철 안에서 회사원들을 유혹하는 거지.> 


어제 아침에 있었던 찌에와의 일이 생각났다. 


기요미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만원 열차 안에서 손으로 접촉하는 것이 아닐까? 


<전화했을 때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나 봐. 마침 잘 됐지.> 


기꾸는 직업상 뒷골목 세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얼굴이 굉장히 귀여워서 남자들이 잘 넘어가요. 어두운 길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들은 밝은 곳에서는 남자를 붙잡지 못해요. 피부도 거칠고 화장을 짙게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 앤 보통 화장을 하고 남자에게 접근하지. 자신이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 유혹하는데요?> 


<전철 안에서 손이 서로 맞닿게 하는 거야. 물론 그러기 전에 남자를 잘 관찰해서 선택해야지.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그쪽에서 먼저 손을 잡는다더군.> 


<확률이 높군요.> 


<처음엔 그렇지 못했는데 차츰 상대를 고르는 안목과 손을 접촉하는 방법이 능숙해지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손을 잡아오는 남자 중 대부분은 -차라도 한 잔 할까요?- 라든지 -식사라도 하지 않겠어요-라는 식으로 속삭인데요. 그럼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역에서 찻집이나 술집으로 들어가지. 그 다음엔 물론 여관 행이고. 그렇지 않고 곧바로 여관으로 유인 


하는 남자도 많대요. 상대에 따라서 여관에 들어가기 전에 돈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들어가서 바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다 끝나고 나서 억지로 받아내는 때도 있대요.> 


기꾸는 침이 마르는지 맥주를 들이키고 나서 장난기 어린 눈으로 마사오를 봤다. 


<그 벽장에 한 번 더 들어가 보겠어?> 


<예. 잠깐 동안만.> 


잠시 후 마사오는 그 장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진동이 벽을 타고 전해져 왔다. 


여자의 낮은 신음이 들렸다.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아끼에 대한 분풀이가 아니라 정말로 여자가 필요했던 모양이지.) 


때때로 남자의 신음도 섞여 있었다. 


점차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며서 동시에 남자의 신음도 그 간격이 짧아져갔다. 


오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여자의 신음이 요란해지자 그것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남자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여자는 노골적이고 음탕한 말들을 계속 내뱉았다. 


일부러 남자가 듣도록 그렇게 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적이 찾아왔다. 


잠시 후 부스럭 부스럭 옷 입는 소리가 났다. 


<어때요? 같이 나가겠어요? 아니면 먼저 혼자 나갈까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위치가 높아졌다. 


<먼저 가. 이제 됐으니.> 


<알았어요. 그럼 난 화장만 좀 고치고 나가죠.> 


마사오는 조용히 벽장을 빠져 나와 기꾸의 방으로 돌아왔다. 


여자의 반응이 너무 단순하고 변화가 없어서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럽지 못했고 흥분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은밀한 거래가 잠깐 사이에 끝나버린 허무한 느낌이었다. 


기꾸는 몸을 마사오에게 밀착시키며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땠어?> 


<시시하더군요.> 


<그래서 도중에 온 거야?> 


<아니, 끝났어요.> 


<벌써? 이상한 학생이군. 여자에게 버림받고 몸 파는 여자를 산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 끝나다니. 혈기 왕성할 때니까 그럴 수도 있지 뭐.> 


마사오의 잔을 채우며 기꾸는 그의 무릎을 더듬다가 이내 가운 옷자락을 젖히고 앞을 만졌다. 


조금 부풀어올랐던 몸은 이내 수그러들어 지금은 평상시 그래로였다. 


<흥분하기는 커녕 오히려 공허한 기분이었어요.> 


<학생은 좋아하는 여자밖에 모르니까.> 


기꾸가 직접 접촉해 오더니 미묘하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마사오는 급속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있어요?> 


기꾸는 얼른 손을 빼고 마사오의 옷자락을 바르게 해 주었다. 


<벌써 가려구?> 


문이 열리고 긴 머리에 뽀얀 살결의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귀엽고 예쁜 얼굴이었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 정도나 될까? 


<어머! 손님이 계셨군요. 실례했습니다.> 


<괜찮아요. 들어와요. 잠깐 마시고 가지 않겠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자, 어서.> 


여자는 들어와 마사오에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마사오도 답례했다. 


감색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아무리 봐도 순진한 여사무원 같았다. 


<아는 사람 아들이야.> 


기꾸는 마사오를 소개하고 자랑스럽게 학교 이름을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얌전한 아가씨로밖에 보이지 않죠?> 


간접적으로 마사오가 이미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예. 믿기지가 않군요.> 


여자는 핸드백에서 지폐 두 장을 꺼냈다. 


<미안해요. 이건 통화료. 부족한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기요미 씨가 날 도와준 건데 이러면 내가 미안해요.> 


찌에도 기요미도 무척 어색해 했다. 


그래서 마사오는 이런 일이 처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기요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돈을 다시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기꾸가 기요미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은데.> 


<젊은 사람은 그래서 좋아요. 전 술취한 사람은 일부러 멀리하죠. 술냄새도 술냄새지만 오래 하거든요.> 


여자는 하얀 목을 보이며 맥주를 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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